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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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180 건
"내가 살아있는 한 시련은 있을지언정 실패는 없다." "나 자신을 자본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부유한 노동자일 뿐이다." 24년 전 오늘, 2001년 3월21일. 대한민국 경제성장을 이끈 현대사의 큰 별이 졌다. 현대그룹 창업주이자 우리나라 1세대 기업인으로 현대사를 써내려간 아산 정주영 회장이 별세하면서다. 그는 현대자동차의 모태가 된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시작으로 자동차와 건설, 조선 등에 걸쳐 고도 성장을 이뤘는데 한 기업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선진 산업국으로 도약시킨 주역이다. 정 회장이 현대사의 큰 별로 꼽히는 건 기업가 그 이상의 업적을 남겨서다. 그는 1988년 서울에서 열린 88서울올림픽을 유치하는가 하면 1998년 소 떼를 이끌고 북한에 가면서 남북 교류 협력의 물꼬를 트기도 했다. 정 회장은 1915년 11월25일 강원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에서 6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호로 삼은 아산은 고향 아산리에서 딴 것이다. 소학교만 졸업한 정 회장은 열아홉
1983년 3월20일. 그룹 송골매로 활동하던 가수 배철수가 KBS '젊음의 행진' 생방송 무대에서 노래를 시작하려던 중 마이크를 잡자마자 그 자세 그대로 쓰러지는 모습이 전국에 그대로 송출됐다. 감전으로 뻣뻣하게 굳은 그의 모습이 충격을 준 가운데, 시청자들은 배철수가 축 늘어진 채로 스태프에게 끌려 나가는 장면까지 보고 말았다. ━혼란 속에 마무리된 생방송━ 갑작스러운 사고에 현장에는 놀란 소녀팬들의 비명이 가득했다. PD들이 뛰어와 배철수가 잡고 있는 마이크를 발로 찬 뒤 응급조치를 취했다. 카메라는 다급히 배경 화면을 당겨 배철수가 보이지 않게 했다. 급하게 나온 MC가 "대단히 죄송하다. 생방송 도중에 배철수씨가 기타 감전이 된 모양이다"라고 말하던 중 카메라 화면이 MC를 잡았다. 그 순간 MC 뒤로 축 늘어진 배철수를 들고 빠져나가는 스태프의 모습이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 2022년 7월13일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에 출연한 배철수는 당시에 대해
41년 전 오늘, 1984년 3월19일. 빨간 국물 일색이던 라면 시장에 혁명이 일어났다. '국민 음식' 짜장면을 라면으로 만든 농심 '짜파게티'가 등장하면서다. 짜장면과 스파게티 합성어로 탄생한 짜파게티는 지난해까지 94억개 판매된 '국민 라면'이다. 전체 라면 시장에서는 신라면에 이은 2위로 꼽히고 짜장라면 시장 점유율은 80% 이상이다. 41년간 짜파게티는 하나의 라면 브랜드가 아닌 요리로 진화했다. 농심 '너구리'와 만난 '짜파구리'는 방송 연예 프로그램과 영화 '기생충'에 나와 한때 신드롬을 일으켰다. ━짜장면+스파게티=짜파게티…'국민 라면' 되기까지━ 짜파게티의 시작은 1970년에 출시된 농심 '짜장면'이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짜장면을 집에서 간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표로 오랜 연구를 거쳐 탄생한 제품이었다. 농심 연구원들은 전국의 짜장면 맛집을 돌아다니면서 레시피를 전수받았다. 짜장면은 출시되자마자 불티나게 팔렸다. 당시 농심이 생산라인을 풀가동해도 시장
2010년 3월 18일. 국민 애플리케이션(앱) 카카오톡이 출시됐다. 카카오톡은 대한민국의 피처폰 시대를 종료시킨 일등 공신이다. 스마트폰 시대의 서막을 열고 국내 스마트폰 보급률을 급증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마트폰 메신저 넘어 내비게이션·결제·은행까지…명실상부 국민 메신저 ━한국 메신저 시장 점유율 97%에 달하는 카카오톡은 2010년 3월 18일 iOS용 앱으로 세상에 등장했다. 같은 해 8월 안드로이드용 앱이 나왔다. 3년 후인 2013년 6월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용 버전이 출시되면서 스마트폰 뿐만 아니라 PC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피처폰 사용자가 대부분이었던 2010년대 초 '카카오톡을 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카카오톡은 국내에서 휴대전화에 대한 패러다임을 전환시켰다. 카카오톡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사진을 비롯해 파일을 자유롭게 보낼 수 있는 데다가 여러 명 간 단체 채팅이 가능하다는 점이 기존 문자 메시지와 달라 사용자들을 끌어들였다.
2019년 3월 15일(현지시간). 평화롭던 뉴질랜드 이슬람사원에서 '이민자 혐오' 총격 테러가 발생했다. 한국인 피해는 없었지만 호주 출신의 테러범은 SNS(소셜미디어)에 총격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엽기 행각까지 벌였다. 이 사건은 '뉴질랜드 역사상 최악의 테러'로 기록됐다. 이 사건으로 51명이 사망하고 50여명이 다쳤다. ━백인우월주의 망상서 비롯...반이민주의, 무슬림 혐오━2019년 3월 15일 오후 1시 40분. 총기로 무장한 총격범들이 크라이스트처치 중심부에 있는 딘스 애비뉴 알 누르 이슬람사원과 외곽 린우드 마스지드 이슬람사원을 침입해 수십명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사원에서 예배를 보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총기가 난사되자 피할 틈도 없이 참극을 당하게 됐다. 경찰은 학교와 정부 건물 등을 폐쇄하는 등 빠르게 테러에 대응했다. 현지 경찰은 남성 3명과 여성 1명을 용의자로 체포했으며, 이들이 '백인 우월주의자'라고 밝혔다. 뉴질랜드 총격 테러 사건 배경에는 유럽 내 반
1995년 3월 14일 오후 11시10분. 당시 덕원예고 이사장 김씨(72)가 자택 안방에서 숨졌다. 부인은 거실에서 TV를 보던 중 신음 소리를 듣고 안방에 들어갔다가 목에 피를 흘리는 남편을 발견했다. 김씨는 서울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다. 경찰 조사 결과 범인은 장남 A씨(당시 40세)였다. S대 경제학과 교수였던 큰아들 A씨는 집에서 자고 있던 아버지의 목을 칼로 찔러 살해한 후 강도사건으로 은폐하려다 탄로나자 범행을 자백했다. 사건발생 1년 전인 1994년 도박빚을 갚기 위해 부모를 살해한 박한상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어서 사회적 충격이 컸다. ━ 자수성가한 자산가 덕원예고 이사장 피살━피살된 김씨는 평양이 고향으로 해방이후 혈혈단신 월남한 뒤 갖은 고생끝에 동대문시장에서 포목업으로 자수성가해 부동산 부자가 됐다. 김씨는 부동산 관리업체 해강기업 대표로 있으면서 주로 자신이 소유한 부동산의 임대업을 하고 있었다. 그의 재산은 약 1000억원
"당신을 원망하지 않아요. 당신이 잘살기를, 당신의 아름다운 꿈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2008년 3월13일. 결혼 한 달 만에 남편 폭행으로 숨진 19살 베트남 결혼이주 여성 후안마이씨가 생전 남편에게 쓴 편지글이 세상에 공개됐다. 그는 이 편지를 끝으로 한국을 떠나 베트남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이는 허무하게 부서졌다. 집을 나서는 길에 남편을 만났고 그 자리에서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된 것이다. 후안마이씨는 고국 땅을 밟지 못한 채 이역만리 땅에서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간 남긴 편지에는 남편에 대한 서운함과 답답함, 그리고 동시에 백년가약을 못 지키고 혼자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 묻어있었다. ━집·직장 있다더니…시작부터 삐걱댄 결혼생활━후안마이씨는 2006년 12월 한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47세 한국 남성 장모씨와 만났다. 결혼정보업체는 장씨를 번듯한 직장인으로 소개했고 한국에 같이 살 집도 있다고 했다. 이 말을 철석같이 믿은 후안마이씨는 2007년 5월16일 충
2018년 3월12일. 전남 고흥군의 한 해수욕장에서 발견된 변사체의 신원이 확인됐다. 피해자는 베트남 국적의 30대 남성으로, 과거 고향 친구였던 A씨 일당에 납치·감금됐다가 도주 중 변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만리타국으로 건너온 피해자는 왜 옛 동료에게 쫓기다 차가운 바닷물에 몸을 던진 것일까. ━돈 1700만원 도박 탕진 후 잠적…2년간 행방 추적━사건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피해자는 A씨에게 빌린 돈 1700만원을 대구의 한 불법 도박장에서 탕진하고 잠적했다. A씨는 2년간 수소문 끝에 피해자 행방을 확인, 추적에 나섰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함께 범행에 가담할 사람도 모았다. 그는 양아버지로 모시던 한국인 B씨(54)와 전남 보성군에 사는 C씨(25), 사회복무요원 등 5명을 범행에 끌어들였고, 일당에 돌려받을 돈의 20%를 떼주기로 약속했다. ━탈출 후 바다로 숨은 피해자…결국 익사━A씨 일당은 2018년 2월24일 고흥군에 있는
2011년 3월11일 낮 2시46분쯤. 최악의 강진이 일본 열도를 강타했다. 지진은 도쿄에서 북동쪽으로 391㎞쯤 떨어진 도호쿠(東北) 지방 부근 해저에서 발생했다. 지진 규모는 8.8로, 일본 국내에서 관측된 것으로는 가장 컸다. 이는 6000명 이상 희생자가 발생한 효고현 남부 지진(규모 7.3)의 180배에 해당된다. ━1분만 도쿄 덮친 지진…전국서 통신대란━지진은 불과 1~2분 만에 도쿄를 덮쳤다. 도쿄에서 도호쿠(東北) 지방을 잇는 신칸센 운행이 중단됐고, 도쿄 도심 고층빌딩에서도 수분 동안 선반 물건이 쏟아져 내릴 만큼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고층 빌딩 엘리베이터 운행도 중단됐다. 미야기현 센다이시에서는 가스 누출로 인한 화재가 여러 건 발생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건물이 무너지기도 했다. 일본 전역에서는 '통신 대란'도 빚어졌다. 일본의 3대 이동통신사인 NTT도코모와 KDDI, 소프트뱅크는 이날 강진으로 전국 통신시설이 파괴돼 전기·전화·인터넷이 끊겼다고 밝혔다. 업계
2008년 3월 10일 오후 3시 8분,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 반포대교 남단에서 400미터 떨어진 한강 한가운데에서 전 프로야구 선수 이호성의 시신이 발견됐다. 향년 40세.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내린 이호성의 사망 원인은 익사였다. 스스로 한강에 뛰어든 것. 이호성은 한국시리즈 승리의 주역이었다. 그는 은퇴 후 고향인 광주에서 웨딩홀 사업으로 연 매출 70억~80억원을 올리는 사업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호성은 사망 당시 네 모녀 살해사건의 용의자 신분이기도 했다. ━야구선수에서 사업가로 변신 후 수백억대 빚더미…사생활은 양다리━ 이호성은 1990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해 4번 타자로 네 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골든글러브도 두 번 수상했다. 사업가로 인생 2막을 연 이호성은 2001년 은퇴한 뒤 고향 광주에 예식장을 차렸고 연 매출 70억원~80억원을 올렸다. 하지만 이호성은 2005년 실내 스크린 경마장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100억원의 부도를 냈다. 그는 사업
2022년 3월9일 새벽 2시. 여성 박모씨(당시 52세)가 투자 사기로 삶을 비관해 두 딸을 살해했다. 둘째 딸은 '죽기 싫다'고 표현했지만 이미 마음을 먹은 엄마를 이길 수 없었다. 박모씨는 딸들을 죽인 뒤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지만 목숨을 건졌다. ━투자사기범에 전재산 잃은 피해 엄마, 딸들에 살해 계획 공유…마지막까지 엄마에게 사랑 표현한 딸━ 박모씨는 오래 알고 지낸 50대 지인 A씨가 고수익을 벌어준다는 말에 전재산을 내어줬다가 4억원대 투자 사기를 당했다. 해당 사기로 생활고를 견디기 힘들었던 박모씨는 결국 두 딸 B(24·사건 발생 당시 연령)씨와 C(17)양을 살해하게 됐다. 그는 아이들을 죽이고 자신도 극단적 선택을 시도할 계획을 세웠다. 박모씨는 첫째 딸 B씨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C양(17)을 질식해 숨지게 했다. 박모씨는 C양을 먼저 살해한 뒤 약 10분 뒤 첫째 딸에게 공터에 차를 주차하게 하고 같은 방식으로 살해했다. 그는 두 딸이 질식사하지 않을 상황을 대
매년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 IWD)이다. 1908년 미국 여성 노동자들의 시위를 기념하기 위해 정해진 이 날은 1977년 UN(국제연합)이 공식 기념일로 지정하면서 세계적인 의미를 가지게 됐다. 노동 환경 개선과 참정권 보장을 외쳤던 그때와 비교하면 여성의 지위는 크게 향상됐지만, 여전히 성평등을 위한 과제는 남아 있다. 세계 여성의 날의 시작은 185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산업혁명으로 방적기가 만들어지면서 섬유 산업이 세계적인 붐을 이뤘다. 1800년대 미국은 대규모 목화 농장을 만들고 흑인 노예들의 노동력으로 큰 돈을 벌었다. 뉴욕에도 대규모 섬유 공장들이 자리잡았는데, 이 곳에서 일하는 흑인과 이민자, 여성들은 하루 12-14시간 넘는 고된 노동에 시달렸다. 당시엔 성폭력, 성희롱 등도 서슴지 않게 벌어졌다고 한다. 노동 착취에 시달리던 여성들이 참다 못해 들고 일어났다. 칼바람이 불던 1908년 3월 8일 일요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