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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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4월24일 오후 8시40분쯤. 전남 순천시의 한 음식점에서 세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독립운동가 출신 서민호 무소속 의원이 서창선 대위와 말다툼을 하다 권총 방아쇠를 당겼다. 서창선은 현장에서 즉사했고, 서민호는 다음 날인 25일 경찰에 자진 출두했다. 서민호는 '정당방위'를 주장했지만, 경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서민호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암살에 반격한 서민호…정당방위였나━ 정황과 증언에 따르면 서민호의 총격은 정당방위였다. 당시 국회 내무위원장이던 서민호는 지방 선거를 앞두고 호남 지방을 시찰하고 있었고, 분과위원 등과 저녁 식사를 하던 참이었다. 서창선은 서민호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옆방에서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그러다 서민호의 경호원에 발각되자 서창선은 약 5m 거리에서 권총을 뽑아 서민호를 향해 쐈다. 서창선의 저격은 경호원의 제지로 무위에 그쳤다. 서창선은 빠르게 도주했지만, 서민호는 자신이 지닌 호신용 권총으로 서창선을 사살했다. 흉부와 복부
8년 전 오늘인 2016년 4월 22일, 53세 남성 오모씨가 가족과 외식 후 돌아와 잠들었다가 그대로 깨어나지 못했다. 생전 담배를 피우지 않았던 그의 사인은 '니코틴 중독'. 그의 몸에서 검출된 니코틴은 평생 줄담배를 피운 사람에게도 나오지 않을 정도 양이었다. 이른바 '남양주 니코틴 남편 살인 사건'으로 불리는 이 일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생한 니코틴을 이용한 살인사건이었다.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기며 모방 범죄가 발생하기도 했다. ━담배 한 대도 안 피웠는데 "치사량 수준 니코틴 검출"━오씨는 당시 22세였던 의붓딸 등과 외식하고 돌아온 후 거실에서 맥주를 마시고 방에 들어가 수면제를 먹고 잠들었다. 신고가 접수된 것은 오씨 아내 송모(당시 48세)씨가 귀가하고 3시간 30분 뒤였다. 송씨는 "남편이 안약을 넣을 시간이 됐는데 안 일어나길래 방문을 열고 들어가 흔들어보니 숨을 쉬지 않는다"고 신고했다. 사인이 명확하지 않았지만 송씨는 오씨의 부검을 완강히 거부했다. 이 때문
25년 전인 1999년 4월 20일(현지시간). 미국 콜로라도의 작은 마을 컬럼바인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해당 고등학교에 다니던 17세 소년 에릭 해리스(Eric Harris)와 딜런 클레볼드(Dylan Klebold)였다. 학생 12명과 교사 1명이 숨졌고, 21명이 부상을 입었다. 희생자 대부분과 가해자 모두 미성년자였다. 총기 규제와 학교 안전 강화 필요성에 대한 논쟁을 촉발했다. ━학생들 가장 많은 시간 골랐다…원래 목적은 '폭탄 테러'━사건 당일 오전 11시19분쯤. 에릭과 딜런은 트렌치코트를 입고 실탄 900여발을 들고 와 잔디밭에서부터 총을 쏘기 시작했다. 총소리에 놀란 학생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두 범인은 학교 건물로 들어섰다. 에릭과 딜런은 입고 있던 코트까지 벗어 던진 채 본격적으로 마주치는 모든 사람에게 총격을 가했다. 이들은 도서관으로 도망치는 학생들을 따라다니며 총기를 난사했다. 주변에서 "제발 쏘지 말아줘!"라고 애원하는 소
1978년 4월20일. 프랑스 파리 오를리 공항에서 출발해 김포국제공항으로 도착 예정이던 대한항공 902편이 이날 오후 9시40분쯤 격추됐다. 미사일을 쏘아올린 나라는 소련. 직항이 있는 현재와 달리 당시 소련의 영공은 함부로 거쳐 갈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여객기는 미국 알래스카 앵커리지 국제공항을 경유해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런데 이날은 평소와 달리 항공기가 소련 영공을 침범했다. 소련의 격추로 902편의 왼쪽 날개는 떨어져 나갔고 파편이 튀기며 동체에 구멍이 생겼다. 한국인 승객은 머리에 파편을 맞고 즉시 사망했으며 일본인 승객 또한 어깨와 오른팔에 중상을 입고 버티다 과다출혈로 끝내 숨졌다. 그 외에도 탑승자 13명이 부상을 당했다. 기체의 급격한 감압으로 비상경보가 뜨자 대한항공 902편을 운항하던 김창규 기장은 약 3분 만에 급하강했다. 기장의 눈앞에는 코르피야르비 호수가 보였고 꽝꽝 언 물가 위로 항공기는 안전히 착륙했다. 무사히 땅을 밟을 수 있다는 희망도
64년 전인 1960년 4월 19일 학생들 주도하에 이승만 대통령(1875~1965)의 하야를 요구하는 대규모 민주주의 운동이 전국에서 벌어졌다.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사건은 1960년 3월 15일에 치러진 부정 선거였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은 자신들의 장기 집권을 위해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 제5대 부통령 선거에서 투표를 조작했다. 이에 이날 3·15 의거가 일어났고, 이후 4월 18일 고려대 학생들이 자유당 독재를 규탄하고자 시위에 나섰다. 이승만 정부는 정치 깡패를 동원해 거리로 나온 학생들을 무력으로 짓밟았다. 이 같은 소식은 다음 날 조간신문을 통해 알려졌고, 분노한 국민은 전국적으로 민주주의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4월 19일 서울과 부산, 광주, 대구, 대전, 제주 등 전국에서 독재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나왔다. 시위 진압 과정에서 이승만 정부의 경찰은 자신들이 보호해야 할 시민에게 발포하기도 했다. 하루 동안의 시위에서만 100여명이 넘는
"파도보다 더 거친 게 몰아치는 듯 했어요." "소리만 들었을 때 거대한 기차가 지나가는 것 같았죠." 118년 전 오늘, 1906년 4월18일. 이날은 미국에서 20세기 최악의 자연재해가 일어난 날로 역사에 기록됐다. 최초의 진동이 감지된지 2분 만에 샌프란시스코 도심은 삽시간에 뒤흔들렸다. '샌프란시스코 지진'은 이날 오전 5시12분 샌안드레아스 단층에서 진동이 감지된 데서 시작됐다. 태평양 판과 북아메리카 판 사이 지체의 경계를 형성한 변환단층이다. 판 경계 단층이어서 지진을 발생시킬 수 있다. 이 단층의 일부가 어긋나면서 시작된 지진은 단 2분 만에 샌프란시스코를 무너트렸다. 거리마다 건물이 무너져내렸고 길은 푹 꺼졌다. 지진은 대규모 화재로 이어져 도시를 삽시간에 파괴시켰다. ━주민 반 이상 집 잃고 나앉았다…최대 2만명 사망━ 지진의 여파는 상당했다. 우선 막대한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정부는 사망자를 567명이라고 발표했지만 사망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본다
"인간의 기술로 삶을 늘리는 건 천박한 짓인 것 같소. 내 사명은 이제 끝냈으니 우아하게 가겠소" 1955년 4월18일.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대동맥류 파열로 인한 뇌출혈로 사망했다. 향년 76세. 아인슈타인은 사후 화장하길 바랐지만, 그의 뇌만큼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부검을 맡았던 토마스 스톨츠 하비 프린스턴 병원의 병리학자가 그의 동의를 받지 않은 채 뇌를 꺼내 240조각으로 잘라 보관해 버렸기 때문이다. 무엇이 아인슈타인을 이렇게 똑똑하게 만들었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토마스 스톨츠는 대중들에게 비난받았다. 어떻게 학자의 양심을 저버리고 동의 없이 아인슈타인의 뇌를 잘라 보관했느냐고. 하지만 당대 최고 천재의 뇌를 그대로 화장한다면 큰 손실이라고 판단했던 걸까. 역설적으로 그의 일탈(?) 덕분에 후세 사람들은 아인슈타인의 뇌를 박물관에서 볼 수 있게 됐다. ━독일 출신 천재, 10대에 미적분 독학 터득━ 아인슈타인은 1879년 3월14일 독일 울름의 한 유대인 가정에서
105년 전인 1919년 4월 15일, 일제는 3·1 운동에 대한 보복으로 경기 수원군 향남면(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에서 민간인 20여명을 학살하는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다. 당시 화성 지역 주민들은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송산면, 장안면, 우정면 등에서 만세 시위로 독립운동을 벌였다. 기록에 따르면 이 만세 행군에는 1000명이 넘는 시민이 함께했다. 시위대는 일제 무단 통치의 상징이었던 면사무소와 주재소를 파괴하는 등 격렬한 항쟁을 벌였다. 지역에서 유례없는 항쟁이 발발하자 일제는 보복에 나섰다. 시위대가 모임을 해산한 뒤 일상으로 돌아간 틈을 노렸다. 일본군은 향남면 제암리 교회에 민간인 20여명을 가둔 뒤 학살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팔탄면 고주리로 이동해 일가족 6명을 만세 시위의 주동자로 몰아 사살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사료에는 학살 사건 당시 일제가 제암리 교회에 가둔 인물들이 기독교, 천도교 신자였다고 적혔다. 일제는 교회에서 이들을 총칼로 잔인하게 살해했고,
지난 2010년 4월14일 오전 7시49분. 중국 칭하이성에서 규모 7.1 강진이 발생했다. '수정 메르칼리 진도 등급(MMI)'에 따르면 진도 7 이상 지진은 일반 건물에도 피해를 주며 부실한 건물의 경우 붕괴하는 등 현상이 나타난다. 칭하이성에서 가장 지진 피해가 컸던 곳은 인구 8만명이 거주하고 있던 위수 티베트 자치주였다. 티베트족이 주로 모여 사는 이곳은 대부분 건물이 벽돌, 나무로 지어져 피해가 더 심각했다. 시민들은 집 안에서 중요 물품을 갖고 나올 틈도 없이 겨우 몸만 피했으며 그마저도 못한 이들은 주택 등 붕괴된 건물 잔해에 깔려 생사를 오가고 있었다. 구조물의 약 85%가 전파 혹은 반파됐다. 신화통신 등 당시 중국 언론에 따르면 학생들이 수업받고 있던 도중 학교가 무너지는 비극적인 참사가 발생했다. 또 위수 내 호텔에서 머물고 있던 관광객 100명 중 30명은 구조되지 못했다. 복구 작업도 여의찮았다. 산사태 등으로 도로가 끊겨 있어 구조·복구 작업 등이 지연됐
2005년 4월 13일. 강원도 속초에서 어부 황모(당시 57)씨가 술에 취한 채 배를 몰고 나가 그대로 월북하는 일이 발생했다. 정부는 조사 결과 만취한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벌인 일로 판단된다고 밝혔고 북한에서도 그를 5일 만에 돌려보냈다. 한 어부의 월북 사건은 국가보안법 위반이 아닌 단순 촌극으로 마무리됐지만, 소형어선의 월북을 저지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군은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만취한 상태에서 우발적 '월북'━황씨는 월북 당일 오전 11시쯤 정비차 속초시 동명항에 정박했다. 이후 다른 배 선장과 1.8ℓ 소주 1병을 나눠 마셨다. 만취 상태였던 그는 오후 1시쯤 출항 신고를 하지 않고 '황만호'를 타고 나갔다. 이후 그가 발견된 것은 약 3시간 뒤인 오후 3시 55분쯤이다. 북방한계선(NLL) 인근에 있었고 우리 해군은 경고사격을 했다. 하지만 황만호는 멈추지 않았고 같은 날 오후 4시 4분쯤 군사분계선(MDL)의 연장선을 통과해 월북했다. 합동참모본부와 국정원, 해경 등
"전국 노래자랑~!" 무려 34년간 전 국민을 웃고 울게 만든 '전국노래자랑' MC 故 송해. 그는 2년 전인 2022년 4월 12일 '최고령 TV 음악 프로그램 진행자'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등재됐다. 당시 95세였던 송해는 이미 대한민국 최고령 방송인이었다. 송해는 같은 해 5월 말 기네스 인증서를 받게 됐다. 한 달 전에 이름을 올렸지만, 코로나19 유행으로 기네스 협회 측 업무가 지연되면서 대외적인 발표가 늦어졌다. 이날 송해는 "긴 세월 전국노래자랑을 아껴 주신 대한민국 시청자들 덕분"이라며 소감을 밝혔다. ━밝고 경쾌한 모습 뒤 굴곡진 인생사━송해는 해방 전이었던 1927년 4월 27일 황해남도 재령군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송복희. 어릴 적부터 음악에 소질이 있던 그는 1949년 해주음악전문학교 성악과에 입학했다. 행복했던 날도 잠시, 6·25 전쟁을 겪으며 송해는 가족과 생이별하게 됐다. 이후 부산으로 피난을 내려온 그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됐다. 정식적인 데뷔는 1955
2007년 4월12일. 연쇄살인범 정남규의 사형이 확정됐다. 정남규는 힘없는 아이, 힘이 약한 여성과 중년 남성 등 총 13명을 살해하고 20명에게 흉기 또는 방화로 중상을 입쳤다. 정남규는 "피해자에게 미안하지 않냐"는 한 취재진의 말에 마스크를 내리고 미소를 보였다. 쾌락을 위해 살인을 저지른 사형수 정남규는 독방 수감 후 살인을 저지르지 못해 괴로워했다. 그는 2009년 11월21일 독방에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살인에 미쳐 결국 자기 자신까지 죽여버렸다. ━◇정남규의 범행, 약자 위주로 대상 정해━ 1969년생 정남규는 1989년 특수강도 혐의, 1996년 강도 및 강간미수 혐의 등으로 수감 생활하는 등 범죄자가 됐다. 이후에도 1999년 절도 및 강간, 2002년 자동차 절도 등의 혐의로 징역형을 받고 교도소를 들락날락했다. 그러던 그가 살인자가 된 건 2004년부터다. 그는 그해 1월14일 저녁 경기 부천시 원미구 소사동의 한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13세 A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