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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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인 2012년 12월 10일, 대한민국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KBO리그에서 '꿈의 무대' 미국 메이저리그(MLB)로 직행한 선수가 탄생했다. 주인공은 당시 한화 이글스의 에이스 투수였던 류현진. 만 25세의 KBO리그 최고 좌완 투수를 품에 안은 구단은 '박찬호의 팀'으로 유명했던 로스앤젤레스(LA) 다저스였다. 류현진은 박찬호, 최희섭, 서재응 다음으로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은 네 번째 한국 선수가 됐다. 류현진과 LA 다저스는 6년간 3600만달러(당시 약 390억원) 계약서에 서명했다. LA 다저스는 류현진을 영입하고자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경쟁 입찰)에서 약 2573만달러(당시 약 280억원)라는 거액을 투자했다. MLB 진출 전 류현진은 7시즌 동안 KBO리그에서 뛰며 △190경기 출장 △98승 52패 1세이브 △1238탈삼진 등 기록을 남겼다. 류현진은 데뷔 첫해 KBO리그에서 최초로 신인왕과 MVP를 동시 수상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류현진은 올림픽, 월
2015년 12월9일 오전, 일본 도쿄 국제 공항에서는 20대 한국인 전모씨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태평양 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에 폭발물을 설치한 혐의였다. 전씨는 당초 "야스쿠니신사를 방문한 건 맞지만, 폭발물을 설치한 적은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계속된 수사에 압박을 느끼고 결국 범행을 자백했다. 평범한 20대였던 전씨는 왜 야스쿠니신사에 폭발물을 설치한 걸까. ━화장실에 설치된 시한폭탄…다행히 인명피해는 無━ 사건은 보름 전인 그해 11월23일 벌어졌다. 도쿄 소방청에 따르면 "야스쿠니신사에서 폭발음이 들렸다"는 신고가 접수된 건 이날 오전 10시쯤이다. 경찰은 신사 남문에 있는 공중화장실에서 검게 그을린 흔적과 건전지, 전선, 시계, 철제 파이프 등 시한폭탄의 부품으로 보이는 물건을 발견했다. 파이프에는 도화선과 비닐관 등이 붙어 있어 외견상 기폭장치와 비슷했다. 일본 언론은 "천장에 가로세로 30cm가량의 구멍이 있었지만 폭발로
1980년 12월 8일. 20세기 최고의 싱어송라이터 존 레논이 복귀를 알린 그해 총탄 4발을 맞고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향년 40세. 범인은 살해 약 5시간 전 존 레논에게 사인을 받았던 하와이 호놀룰루 출신 25세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이었다. 그는 현재까지 교도소에 갇혀 있다. ━◇녹음실에서 귀가 도중, 저택 입구에서 기다리던 범인에게 피살━ 존 레논은 "베토벤 이후 최고의 작곡가"라는 찬사를 듣던 실력파 싱어송라이터였다. 1963년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와 함께 비틀즈로 데뷔해 1970년까지 활동했다. 1969년 일본 가수 겸 행위예술가 오노 요코와 결혼한 레논은 비틀즈 해체 후 솔로로 전향했다가 1975년부터 활동을 중단하고 가정에 몰두하기도 했다. 팬들의 아쉬움이 커지던 무렵 그는 1980년 복귀를 선언하고 새 앨범 '더블 판타지'(Double Fantasy)를 발매했다. 12월8일 레논은 잡지 커버 촬영과 음악 프로그램 인터뷰 등의 스케줄을 소화했다. 레논
1941년 12월 7일 일요일 아침 7시 55분(현지 시간), 일본군은 선전포고 없이 하와이 오아후섬의 진주만(펄하버)에 집결해 있던 미국의 태평양함대를 기습 공격했다. 갑작스러운 습격으로 12척의 미 해군 함선이 피해를 입거나 침몰했고, 188대의 비행기가 격추되거나 손상을 입었으며, 2335명의 군인과 68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막대한 피해를 입은 미군과 달리 일본군 희생자는 64명에 불과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 고립주의 입장을 고수하던 미국은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미국 의회가 일본에 선전포고하며 태평양 전쟁이 시작됐고, 일본은 전 세계 유일한 피폭국이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 됐다. ━日강경파 "美와 협상? 차라리 전쟁" ━ 1941년 7월 일본군은 프랑스 식민지였던 베트남의 수도를 장악했다. 이들은 기세를 이어 네덜란드가 지배하던 동인도제도를 정복하고자 했으나 미국은 이에 대해 엄중 경고했다. 하지만 일본은 듣지 않았고, 미국은 7월 25일 미국
"펑!" 29년 전인 1994년 12월 7일.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지하 도시가스 공급기지에서 가스 배관이 폭발한 것이다. 평화롭던 주택가는 한순간에 지옥으로 변했다. 이 사고로 12명이 목숨을 잃었고, 이재민 600여명이 발생했다. 사고 원인을 조사한 결과 인재(人災)였다. 점검 작업 중 약 40분간 가스가 누출됐는데도 가스공사 측은 아무 조치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40분간 가스 누출 알면서도 '무대응'━사고는 예견된 것이었다. 당시 한국가스기술공업과 서울도시가스 직원들은 서울 마포구 아현동 도시가스 공급기지 저장소에서 중간밸브를 잠그지 않은 상태로 점검 작업에 나섰다. 가스가 누출되면서 중앙 통제소의 경보장치가 울리기 시작했다. 오후 2시쯤 작업을 시작한 지 약 10분 만이었다. 하지만 중앙통제소 측은 하루 3000번 이상 울리는 경보음에 익숙한 탓인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작업을 이어가던 현장 기술자들도 가스가 새어 나오는 사실을 알
2007년 12월 6일. 강화도에서 경계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던 해병대 대원 2명이 차량과 흉기로 공격 당한 뒤 총기를 탈취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오후 5시 30분쯤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황산도 초소에서는 전역을 2개월 앞둔 이 모 병장과 입대 7개월 차였던 박 모 일병이 경계 근무 후 부대로 돌아오고 있었다. 제방 도로를 걷고 있던 이 병장과 박 일병을 향해 한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 한 대가 전속력으로 돌진했다. 차량 앞면에는 충돌시 더 큰 충격을 가할 수 있는 '캥거루 범퍼'라는 구조물이 달려있었다. 차량에 치인 박 일병은 도로 옆 갯벌로 곤두박질 쳤고, 이 병장은 도로에 쓰러졌다. 이 차량은 두 사람을 친 뒤 충격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이들을 향해 다시 돌아왔다. 범인은 조영국 씨(당시 35세, 현 51세)였다. 조씨는 차를 세운 뒤 주머니에 양손을 넣은 채 도로에 쓰러진 이 병장에게 접근해 "미안하다, 어디 다친 데는 없나. 단순 교통사고"라며 안심시
2014년 12월 4일 오후 1시, 경기도 수원시 팔달산을 등산하던 40대 남성이 등산 도중 검은색 비닐봉지를 발견했다. 봉지 안에는 심각하게 훼손된 토막 시신이 있었다. 발견된 시신은 처참했다. 몸통만 있었으며, 대부분 장기가 사라진 상태였다. 팔달산은 번화가인 수원역에서 고작 2㎞가량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등산객이 많이 다니는 주택가 인근 산이었기에 많은 이에게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더욱이 불과 2년 전 1.4㎞ 떨어진 곳에서 인육 논란이 불거졌던 이른바 '오원춘 사건'이 발생했기에 일각에서는 장기매매설, 인신매매설 등도 확산했다. 시민 제보로 검거한 범인은 50대 조선족 박춘풍이었다. 피해자 역시 중국 국적의 조선적으로 밝혀졌고, 이에 사회 전반적으로 제노포비아(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을 혐오하고 증오하는 현상)가 기승을 부렸다. ━피해자는 박춘풍 동거녀…"말다툼하다 밀었다"━ 경찰은 12월 11일 토막 살인 피해자의 시신 살점 및 장기를 수원천 매세교와 세천교 사이에서
"자수를 한다면 지은 죄는 밉지만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아주 최대한도의 관용을 베풀어 줄 테니 꼭 자수하도록."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직접 약속했음에도 1987년 12월 3일 납치된 원혜준양(사망 당시 6세)은 사건 발생 43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범인 함효식은 범행 후 약혼녀와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까지 떠났을 뿐만 아니라, 검거 후에도 거짓 증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큰 충격을 안겼다. ━"母 친구집에 있으니 나랑 가자" 유인 후 납치━ 함효식은 1987년 11월, 운전사로 일하던 중 전신주를 들이받아 100만원을 변제할 처지에 몰리자 돈을 마련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며칠 뒤인 12월 3일, 그는 유치원을 마치고 집에 가던 혜준양에게 "너희 엄마가 친구 집에 있으니 나랑 같이 가자"고 유인한 뒤 승용차에 태워 유괴했다. 함효식은 범행 다음 날 혜준양을 목 졸라 살해했고, 혜준양의 집에 전화를 걸어 유괴 사실을 알린 뒤 몸값 500만원을 요구했다
1975년 12월3일. 발아하던 우리 대중음악에 찬물을 끼얹은 일대의 사건이 발생했다. 노래 '그건 너'로 한창 주가를 끌어올린 이장희를 비롯해 가수 윤형주와 이종용이 대마초를 피운 혐의(습관성의약품관리법)로 느닷없이 구속되면서 가요계에 찬 바람이 불어 닥쳤다. 경찰의 단속은 살벌했다. 이튿날 저녁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 신중현과 가수 김추자가 구속됐으며, 가수 이수미, 김세환 등 굵직한 가수 대부분 하루가 멀다고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아닌 밤중의 홍두깨였다. 지금이야 대마초가 마약으로 분류되지만, 당시에는 '해피스모우크'로 불리며 유행으로 번진 히피 문화의 하나였다. 단속이 이뤄진 적도 없었다. 밴드 '더 맨'의 보컬 고(故) 박광수씨는 대마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길거리에 앉아서도 피웠다. 한번도 단속당한 적이 없다. 그게 망국적 연기일지 누가 알았겠나. '소주 한잔 하자'와 비슷하게 여겼다. 죄의식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신중현도 "한창 사이키델릭 음
"나는 협상하기 위해서 왔다." 26년 전인 1997년 12월3일 오전 7시쯤, 한국에 도착한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의 일성이었다. 약 12시간 뒤 'IMF 구제금융 정책 의향서'에는 세 사람의 사인이 적혔다. 캉드쉬 총재, 임창열 부총리,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 IMF 체제가 공식적으로 시작된 날이었다. 한국 언론은 이날을 '경제 국치의 날'로 기록했다. ━40억달러 있는데 1500억달러 당장 갚아야…"IMF 체제 시작"━1997년 1월23일 한보철강 부도가 국가 부도 위기의 방아쇠를 당겼다. 한보그룹은 당시 정치권 로비를 통해 무리하게 대출받으며 재계 순위 14위까지 올랐다. 14위 대기업이 갑자기 5조원 규모 빚을 지고 부도나자 은행권 자금 순환에도 문제가 생겼다. 다른 기업들도 줄줄이 부도가 나기 시작했다. 당시 국내 재계 순위 30대 그룹 중 현재까지 살아남은 기업은 11개에 불과하다. 외국 금융사들은 급히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채무 상환 기간을 연장해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된 한국 선원 네 사람의 가족들 20여명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피랍된 지 500여일간 지켜온 침묵을 깨는 행보였다. 해적과 정부 사이에 협상이 혹여 불발될까 숨죽였던 가족들은 그해 7월 피랍된 가족에게 오던 연락마저 끊기자 참았던 말을 꺼냈다. 가족들은 "피랍된 선원들의 생존이나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없어 절박하다. 협상이 해결될 여지가 없어 막막하다"며 "언론보도가 매우 조심스럽지만 생사 절벽에 서 있는 가족들의 무사 귀환을 바라며 국민과 국가에 도움을 호소하게 됐다"고 눈물 흘렸다. '제미니호 피랍 사건'을 언론이 다룬 지 100일째 되던 2012년 12월1일, 장기 피랍된 싱가포르 선적 제미니호의 한국인 선원 네 사람이 1년7개월 만에 전원 석방됐다. 582일에 이르는 이 사건 피랍 기간은 현재까지도 국내 해적 피랍 사건 중 최장 기록으로 남아있다. ━21명 선원 석방했다…한국인 4명만 빼고━2011년 4월30일 MT 제미니호는 아프리카 케냐 몸바사항으로
1982년 11월 30일. 고(故) 팝 가수 마이클 잭슨의 전설적인 앨범 '스릴러'(Thriller)가 발매됐다. '스릴러'는 마이클 잭슨이 성인이 된 후 발매한 첫 음반 '오프 더 월'(Off the Wall)으로 성공한 이후 두 번째로 선보인 앨범이다. 그의 정규 6집 앨범이기도 하다. 마이클 잭슨은 디스코 장르의 흑인 음악으로 첫 앨범의 성공을 거둔 후였지만 흑인 음악만을 고수하지 않고 트렌드에 맞는 음악을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수많은 명곡이 담긴 '스릴러'를 탄생시켰다. 앨범 '스릴러'는 1982년 4월부터 11월까지 약 7개월 간 작업한 끝에 완성됐다. 녹음 예산으로는 당시 75만 달러(현재 기준 한화 약 9억6000만원)라는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 대형 프로젝트였다. 발매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녹음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의 웨스트레이크 스튜디오에서 단 5일간 진행됐다고 한다. 마이클 잭슨과 더불어 프로듀서 퀸시 존스까지 완벽주의자였던 만큼 녹음 과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