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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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인 2011년 11월 11일 당시 대구의 초등학교 215곳 중 절반에 가까운 101개 학교가 집단 휴교했다. 이날은 과자 '빼빼로'를 상징하는 숫자 1이 날짜에 무려 6번이나 들어가 '밀레니엄 빼빼로 데이'라고 불렸다. 당시 빼빼로 제조사는 "1000년에 한 번 찾아오는 빼빼로 데이"라며 밀레니엄(millennium)이란 단어를 조합해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하지만 제조사 주장과는 달리, 숫자 1이 6번 이상 들어가는 날짜는 사실 100년 주기로 찾아온다. 당시 빼빼로 데이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한 제조사 측의 상술이었던 셈이다. 이런 가운데 대구에서 절반 가까운 초교가 휴교에 나서자, 트위터(현 X)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밀레니엄 빼빼로 데이란 상술에 어린 학생들이 빠지지 않도록 한 것", "등교 시 혼잡한 학교 분위기가 예상돼 집단 휴교 조처한 것" 등의 주장이 제기됐다. 더욱이 2년 전인 2009년 빼빼로 데이에는 대구 초교 중 단 2곳만 휴교했던 터라,
"시신들을 하나씩 하나씩 모아뒀는데...근데 우리 집 아저씨는 없어." 1977년 11월11일 밤 9시15분 전라북도 이리시(현 익산시)에서 발생한 이리역 폭발 사고로 사망한 철도순직자 한유상씨(당시 39)의 아내는 사고 직후 현장을 이렇게 떠올렸다. 그의 아내는 그날 이래로 10살, 5살, 1살 난 세 자녀를 홀로 키웠다. 사고 이후 구술 기록한 백서에 그는 "어디 가서 우리 신랑을 찾냐. 찾을 길이 없었다"라며 "산 사람 찾기는 포기하고 시신이라도 찾자고 돌아다녔다"고 전했다. 2019년 익산시 주도로 발간한 '이리역 폭발 사고 시민백서'에 따르면 이 사고는 희생자만 59명에 달하는 최악의 철도 사고로 꼽힌다. 그중 철도순직자는 16명으로 이리역 앞 사고 현장에서 7명, 역 구내에서 9명이 사망했다. ━다이너마이트 914상자 실은 열차서 '촛불' 켰다━사고 발생 이틀 전인 그해 11월9일, 다이너마이트 914 상자와 전기 뇌관을 비롯해 40톤 이상의 폭발물이 담긴 한국화약주식회사
2009년 11월10일, 서해 대청도 부근 해역. 남북 해군 사이에 치열한 교전이 발생했다. NLL(북방한계선) 이남을 침범한 북한 고속정 1척이 우리 해군의 경고 사격에 조준 사격으로 대응하면서 약 2분간 총격전이 이어졌다. 이 전투로 북한군은 11명이 사상했으며, 타고 온 고속정도 반파됐다. 반면 우리 군은 단 한명의 사상자도 내지 않았다. 1999년 6월, 2002년 6월 두 번의 연평해전에 이어 3번째 서해교전인 이것을 우리 군은 '대청해전'으로 명명했다. ━北, 경고 사격에 조준 사격으로 맞불━ "귀측은 우리 해역에 과도하게 접근했다. 즉시 북상하라" 군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33분 우리 군의 레이더에 NLL로 접근하는 북한 상해-I급 경비정 383호가 포착됐다. 북한 383호는 약 한 시간 만인 11시27분 NLL을 침범했다. 우리 해군은 국제공동상선통신망을 통해 2회 경고통신을 보냈다. 아울러 인근 해역에 있던 참수리급 고속정 2개 편대(4척)와 울산급 호위함인 전
"언제부터 국경 개방이 시행됩니까?" "즉시, 지체없이.(Sofort, unverzuglich)" 1989년 11월 9일, 영원할 것만 같았던 '철의 장막' 베를린 장벽이 붕괴됐다. 이는 당시 동독의 신임 중앙 위원회 정보 담당 서기인 샤보프스키가 한 사소한 말실수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그러나 이 말실수는 세계의 변화를 이끌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3주 뒤 몰타 회담에서 냉전 종식이 선언됐으며, 이듬해 10월 독일의 재통일이 이뤄졌다. ━국가를 나누던 '죽음의 지대' ━ 베를린 장벽은 1961년 처음 축조됐다. 동베를린의 서쪽 경계선에 존재하던 이 장벽은, 독일 분단과 냉전 시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구조물 중 하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50년까지 수백만명에 달하는 동독(독일민주공화국)인이 서독으로 탈주했다. 동서독 분단이 고착된 후에도 이탈자의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서베를린은 동독 주민들이 서독 및 서방 세계로 탈출하는 주요 경로였다. 이에 동독 입장에서는 서베
"히틀러는 짝XX(one ball)이라네" 2차 대전 당시 구전 동요 가사 중 일부다. 전쟁광을 깎아내리기 위해 연합군이 만든 수준 이하 노래로 취급받았다. 그런데, 사실이었다. ━히틀러의 은밀한 비밀━독일 에를랑겐대학 역사학 페터 플라이슈만 교수가 2015년 12월 바이에른주 문서고에서 히틀러와 그의 나치당 소속 일당이 란츠베르크 교도소에서 복역 중일 때 기록에서 확인한 내용이다. 552장 분량의 기록 중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부분이 바로 풍문으로만 전해지던 '히틀러 고환 1개설'이 사실이었다는 점이다. 영국 어린이들은 '히틀러 고환송(song)'을 영화 '콰이강의 다리' 주제가였던 '보기 대령 행진곡' 곡조에 맞춰 불렀다. 세간에는 히틀러가 1차 세계대전 당시 솜강 전투 도중 파편에 맞아 고환을 잃었다는 해석이 있었다. 폴란드 성직자이며 역사가인 프란시스제크 파올러는 히틀러를 치료했다는 독일군 위생병에게 들은 얘기라며 사실처럼 묘사하고 다녔다. 히틀러는 이 교도소에서 요제프 브린
세계에서 가장 인기 높은 스포츠 중 하나인 프로 복싱 헤비급 통합 타이틀전이 낙하산을 타고 링에 난입한 사내 때문에 아수라장이 된다. 사내는 링 한 가운데로 착지를 시도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약간의 오차로 링 로프 위로 떨어져 허우적댄다. '총알 탄 사나이'류의 슬랩스틱 코미디 영화가 아니다. 실제 벌어진 일이다. 1993년 11월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시저스 팰리스 호텔에서 열린 에반더 홀리필드 대 리딕 보위 WBA, IBF 세계 해비급 통합 복싱 타이틀매치(12R) 현장이다. 1만5000명 관중에 둘러싸인 야외 링은 열기로 가득 찼다. 1년 전 보위에게 패한 뒤 절치부심 칼을 갈아오던 홀리필드였지만 31세 노장이 26세 떠오르는 별(보위)을 상대하기는 벅차 보였다. 3라운드까지 홀리필드는 보위의 잽에 막혀 이렇다 할 공격 포인트를 올리지 못했다. 4라운드가 되자 홀리필드의 노련한 라이트 훅이 몇 차례 먹히면서 홀리필드가 모처럼 기세를 잡는 데 성공했다. 두 선수 사이 다운은 한 번
1970년 11월 5일 오후 2시 10분쯤. 강원 춘성군(현 춘천시) 의암댐 인근 춘천호에서 춘성군과 춘천시를 왕래하던 9t급 나룻배 금산 2호가 전복했다. 이 사고로 승객 59명 중 29명은 익사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참변은 소 배설물로 시작됐다. 나루터에서 섬을 떠나 수심이 3m 되는 지점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려던 순간, 사람 틈에 태웠던 소들이 배설물을 쏟기 시작했다. 이를 피하려던 승객들이 배의 왼쪽으로 몰리자 소도 그 방향으로 따라오기 시작했다. 이같은 소동에 배는 균형을 잃고 기울더니 순식간에 뒤집히고 말았다. 당시 생존한 이들은 "소가 우는 소리와 함께 승객들이 한쪽으로 몰리며 뒤집혔다" "배가 떠나는 듯하더니 소의 울음소리와 '배가 기운다'하는 아우성이 한꺼번에 들리면서 사고가 났다" 등의 증언을 했다. 신고를 접수한 구조대는 대대적인 인력과 장비를 투입했다. 장비로는 군용 모터보트부터 미군 헬리콥터 1대, 민간기관선 등이, 인력의 경우 경찰 200명과 예비군 1
2022년 11월 4일. 경북 봉화군 소천면의 아연 채굴 광산 제1 수직갱도가 붕괴해 매몰됐던 광부 2명이 기적적으로 구조됐다. 사고 발생 221시간 만의 생환이다. 봉화 광산 붕괴 사고는 2022년 10월 26일 오후 6시쯤 발생했다. 같은 해 8월 29일 같은 갱도, 다른 지점에서 발생한 붕괴 사고로 광부 1명이 숨진 지 2개월 만에 다시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사고 당시 갱도 내부에선 작업조장과 보조 작업자 등 7명이 레일을 설치하기 위해 굴 모양으로 땅을 파고 들어가는 굴진 작업을 하고 있었다. 작업 중 토사 약 900톤이 수직 아래로 떨어졌고, 지하 190m에 있었던 베테랑 작업조장과 입사한 지 4일밖에 안 된 보조작업자 2명이 매몰됐다. 당시 지하 30m에서 작업 중이던 2명은 전기가 끊기는 등 이상징후를 느껴 자력으로 빠져나왔고, 다른 3명은 토사에 휩쓸려 갇혔다가 광산업체 측에 구조돼 미처 피하지 못한 나머지 2명만 고립됐다. 업체는 남은 2명을 구조하기 위해 밤샘
1989년 11월 3일. 라면, 마가린 등을 공업용 우지(쇠기름)로 만든다는 내용의 익명 투서가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들어왔다. 이 투서 한장으로 시작된 이 사건은 국내 라면 시장은 뒤흔든 '우지 파동'으로 흔히 알려져 있다. 검찰은 미국에서 비식용 우지를 수입한 삼양식품, 오뚜기식품, 삼립 유지, 서울 하인즈, 부산유지 등 5개 식품회사를 적발하고 대표와 실무 책임자 10명을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줄줄이 입건, 구속했다. 시장에서 수거된 라면 제품만 100억원대에 달했다. 식품업계는 억울하다며 반발했다. 1960년대부터 20년간 우지를 통해 라면을 만들었고, 이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에게 동물성 지방을 공급한다는 취지에서 사용을 권장했다고 했다. 이같은 주장에 검찰은 라면에 활용된 우지가 1989년 개정된 식품공전 중 원료조항에 위배된다고 맞섰다. 국민들의 혼란을 해소하기 위해 KBS와 MBC 두 방송사가 TV 토론을 통해 해당 제품의 유무해를 가려내기 위해 관련 학자, 당국자,
1993년 11월 1일 유럽 12개국이 참가한 유럽연합(EU)이 출범했다. 이는 평화를 향한 기대를 비롯해 아시아와 미국에 맞서 유럽 차원의 경제를 육성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어우러진 결과였다. 2023년 2월 기준 27개국이 가입한 유럽연합은 미국과 맞먹는 거대한 경제 규모로 세계 주요 정치, 외교, 경제 현안에 있어서 강대국 국가원수에 버금가는 대우를 받는다. 경제통화 및 정치 통합을 추진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공동체는 2012년 지역공동체 중 처음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는 등 여전한 영향력을 자랑하고 있다. ━경제 그 이상의 통합…ECSC→EEC→EC → EU━ 유럽연합은 1957년 3월 로마조약 체결로 출범한 유럽경제공동체(EEC)로부터 시작되었다. 유럽경제공동체에 참여한 프랑스·룩셈부르크·이탈리아·독일(당시 서독)·벨기에·네덜란드 6개국은 모두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의 회원국으로, 1951년 4월 파리조약의 체결로 출범한 유럽석탄철강공동체로부터 기원한다. 프랑스의 사업가
1994년 10월 31일. 경기도 양주군에 위치한 부대의 영점 사격장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부대 내 사격 훈련장에서 사격 교육을 받던 A모 일병(당시 21살)은 자신의 K2 소총을 난사해 소속 중대장과 소대장 등 장교 2명을 살해하고 타 소대장에게 중상해를 입혔다. 이후 A일병은 총기 자살했다. ━'격발' 명령 떨어지자 돌변...15발 발사하고 자살━1994년 10월 31일 오후 2시20분. A일병은 부대 내 영점 사격장에서 실탄 10발이 든 탄창 2개를 지급받은 후 사격 대기에 있었다. '사격 개시'를 알리는 구령이 떨어지자 A일병은 돌변했다. A일병이 실탄 10발이 든 탄창을 수불받은 후 K2 소총에 장전하고 사로에서 격발 명령을 기다리다가 격발 명령이 하달되자 자리에서 일어서서 사병들을 향해 '엎드려'라고 외친 후 즉시 실탄 수불을 하던 3소대장 황모 중위를 향해 2발, 2소대장 조모 중위를 향해 2발을 발사했다. 30m 전방 사격선에서 사격통제관 임무를 수행
1999년 10월 30일 토요일. 인천시 중구 인현동 상가 건물에서 난 화재로 건물 안에 있던 중·고등학생을 비롯한 57명이 사망하고 79명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날은 인천 시내 10여 개 고등학교의 가을 축제가 있는 날이라 특히 더 붐볐다. 특히 건물 2층에는 축제가 끝난 후 모여 뒤풀이를 즐기던 120여 명의 아이가 있었다. 건물에 처음 불이 난 건 오후 6시 55분쯤이었다. 불은 4층 상가 건물 지하 1층 노래방 인테리어 공사 현장에서 시작됐다. 노래방에서 일하던 10대 남자 아르바이트생의 담배가 원인이었다. 노래방 내부 도색 공사를 한 작업자들이 페인트와 시너 통을 카운터 앞에 남겨 놓은 게 화근이 됐다. 노래방을 청소하던 아르바이트생이 담배를 피우려고 라이터를 켜는 순간 밀폐된 공간에 차 있던 유증기에 불이 붙었다. 불길은 시너 통과 노래방 천장으로 번졌고 내부는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노래방 업주가 돈을 아끼기 위해 방염처리가 안 된 우레탄 폼을 사용하는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