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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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코스피는 숨 가쁘게 급등락을 반복했다. 월간 장중 변동 폭이 566.5포인트에 달했을 정도. 1458.68을 기록했던 코스피가 같은 달 장중 최저이자 연저점인 892.16까지 내려앉았다. 2008년 9월16일부터 10월15일 한 달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사이드카가 발동되다 보니 여의도의 10월 베스트셀러 자동차는 사이드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사이드카는 현선물 시장 간 가격 괴리를 막기 위해 코스피200지수 선물이 5% 이상 변동할 때 걸린다. 그러다 그해 10월27일 한국은행이 금리인하를 단행, 각종 부동산 대책이 나오면서 28일 모처럼 증시에 활기가 돌았다. 그러나 10월29일 '제2의 IMF행' 공포가 재차 부각되면서 코스피 1000선이 다시 붕괴했다. ━코스피 2000선 넘더니 1000선 붕괴…'박스피' 신세━2000년대 중반까지 코스피 지수는 1000선을 넘어설 때마다 고꾸라지기를 반복했다. 국내 증시는 '박스피' '가두리 양식장'이라는 별명으로 불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1992년 10월28일 자정 서울의 한 교회. 새 하루를 알리는 알람 소리에 기도는 흡사 절규로 바뀌었다. 여기저기서 눈을 질끈 감고 '할렐루야'를 외쳤으나, 그리스도의 재림이나 종말은 요원해 보였다. "휴거는 왜 일어나지 않습니까" 한 교인의 말에 장내가 술렁였다. 목사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고 있다.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다"고 수습했다. 다른 목사도 "더 기다려보자", "몇년을 준비해온 우리 입장을 생각해달라"고 부탁했다. 다만 휴거는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이장림의 '짬뽕' 종말론, 폐해는 컸다━ 휴거(携擧)는 '그리스도가 재림해 '믿는 자'만 하늘로 들어 올리고, 지상엔 대환난을 일으킬 것'이라는 가설이다 다미선교회 담임목사 이장림은 프랑스 점성술사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과 휴거를 암시한 요한계시록을 뒤섞어 자신만의 시한부 종말론을 만들었다. 그는 1999년 세계가 멸망할 것인데, '요한계시록'에 멸망 전 7년 동안은 짐승
1998년 10월27일.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 가정주부 A씨(당시 35세)의 시신이 발견됐다. 이웃 주민의 신고로 출동한 119 구급대와 경찰이 수습한 시신은 목과 입 등이 결박되고 목뼈가 부러져 있었던 데다 입고 있던 옷도 거의 벗겨진 상태였다. 강간 살인이 의심된 사건은 용의자 특정에 실패하면서 미제로 남았지만 18년이 흐른 2016년, 기적처럼 범인이 검거됐다. ━목 조르고 성폭행 후 살인…최초 목격자는 초등학생 딸이었다━A씨의 시신은 허리띠로 결박된 상태였다. 옷이 거의 벗겨진 시신의 목뼈는 강한 압박으로 부러져 있었고 얼굴에는 울혈(몸속 장기나 조직에 피가 몰리는 증상)점과 일혈(실핏줄이 파열된 흔적)점이 올라와 있었다. 이는 오랜 시간 압박을 가했을 때 벌어지는 현상으로 피해자의 사인도 경부압박질식사로 확인됐다. 시신을 처음으로 목격한 사람은 A씨의 초등학교 5학년 딸이었다. 하교 후 집에 돌아온 딸은 현관문이 열려있고, 집 안에 어머니가 엎드려 있는 모습을 보고
1979년 10월 26일 청와대 인근에서 총성이 울렸다. 44년 전 오늘, 서울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 부장의 총격으로 서거했다. 향년 만 62세. 김재규는 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히던 인물이기에 그가 시해의 주범이라는 소식은 전 국민을 경악하게 했다. 그러나 그는 "국민 여러분, 민주주의를 만끽하십시오"라며 담담하게 사형을 받아들였다. 그가 박 전 대통령을 살해한 이유는 무엇일까. 김재규는 자유민주화를 향한 열망을 시해 이유라고 주장했으나, 충동적인 범행이라는 설, 미국의 개입설 등 여러 추측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김재규 "박정희의 자주국방 정책, 잠꼬대에 지나지 않아"━ 김재규는 박 전 대통령의 고향 후배이자 육사 동기였기에 심복 중의 심복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자주국방 정책을 두고 갈등을 빚었다. 박 전 대통령은 1969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밝힌 아시아에 대한 외교 정책인 이른바 '닉슨 독트린'
2020년 10월25일. 삼성을 최고의 글로벌 기업으로 만든 이건희가 사망했다. 향년 78세. 삼성그룹 총수이자 삼성전자 회장을 맡았던 고(故) 이건희는 2014년 심근경색 증세로 쓰러져 자택 근처의 순천향대학교병원으로 이송됐다. 응급실에 도착한 직후 심장이 멎었으나 바로 심폐소생술을 실시해 호흡과 심장 박동이 살아났다. 하지만 의식이 깨어나지 못해 삼성서울병원으로 이송, 스텐트 시술을 받고 VIP 병동에 입원했다. 주기적으로 사망설이 돌며 꾸준한 관심을 받던 이 선대회장은 6년 5개월 15일 동안 병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영면에 들었다. ━그룹 회장된 삼남, 세계적인 그룹으로 성장시키며 세계에 눈도장━ 이건희 선대 회장은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의 셋째 아들이다. 1987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회장직을 맡은 그는 취임 당시 10조원이 되지 않던 삼성그룹의 연 매출을 30년가량 경영하며 40배에 가까운 약 400조원으로 늘렸다. 특히 한국의 반도체 산업을 일으킨 주역이다. 메모리 반도
"팔아. 빨리 팔아. 얼마라도 좋다. 팔기만 하면 된다." 1929년 10월24일 목요일 오전 11시.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에 위치한 '뉴욕 증권거래소' 사람들이 외치기 시작했다. 매도 주문이 갑자기 늘어나더니 곧 눈덩이처럼 늘어났다.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대폭락 사태가 발생한 것. 이후 이날은 '검은 목요일'이라고 불린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가 20% 하락했다. 이날 하루 거래된 주식은 1290만주. 종전 하루 최대 거래량인 400만주의 3배가 넘었다. 시카고와 버팔로 주식거래소는 낮 12시30분에 아예 문을 닫았다. 같은 해 9월20일 영국에서 있었던 런던 증권거래소 대폭락 이후 월스트리트 대폭락까지 이어지면서 12년 동안 서구권 전체에 엄청난 대공황이 시작됐다. ━미국판 '빚투'가 이끈 상승장…거품 있었다━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경제는 호황을 누렸다. 자동차와 건설을 비롯해 전 분야에서 생산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7초에 자동차 한 대가 나온다고 했다. 경제가 번영하자 1
2002년 10월 23일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극장에서 뮤지컬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당시 배우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 군복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현대 군복을 입은 이들이 무대에 난입했다. 관객들은 하나의 연출이라 생각했지만 잠시 후 울려 퍼진 총성에 공연이 아님을 깨닫게 됐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극장이 폐쇄된 상태였고 관객들과 배우 등 800여명은 그대로 인질이 됐다. 사상 초유의 인질극은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 영화 '테넷'에서 나오는 우크라이나 키이우 오페라 극장 테러의 모티브가 됐다. ━몸에 폭탄 두른 테러범들…"전쟁 안 멈추면 다 죽이겠다"━극장에 난입한 이들은 체첸의 무장단체였다. 이들은 "당장 전쟁을 멈추고 러시아군을 체첸에서 일주일 안에 철수하지 않으면 극장 전체를 날려 버리겠다"고 공표했다. 러시아 전역은 충격에 휩싸였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테러범들과 어떤 거래도 하지 않겠다"며 "체첸에서 러시아 군은 철수하지 않겠다"고 강경 입장을 밝혔다.
37년 전인 1986년 10월 22일 대한민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악의 관중 폭력 사태가 벌어졌다. 야구 팬들이 선수단 버스에 불을 지른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이날 대구시민운동장에서는 삼성 라이온즈와 해태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 3차전이 열렸다. 당시 정치권에서 영남과 호남의 갈등이 극에 달했던 만큼, 야구장 안에서의 삼성 팬들과 해태 팬들의 관계도 시한폭탄과 같았다. 앞서 광주에서 열린 1차전 팀의 패배(2차전은 승리)를 지켜봤던 삼성 팬들은 "대구에서 열리는 경기는 다를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실제로 삼성은 3차전 1회 말부터 3점을 뽑아내며 초반 분위기를 가져왔다. 하지만 해태는 2회 초 곧바로 3점을 따내 동점 상황을 만들었다. 이후 두 팀은 접전을 벌였으나 7회 초 삼성이 실책을 범했고, 해당 경기는 해태의 6대 5 역전승으로 끝났다. 대구의 삼성 팬들은 홈에서 팀이 역전당하자 극도로 흥분했다. 이들은 경기장 안으로 온갖 쓰레기와 술병을 집어던졌다. 심상치 않
2017년 10월21일. 대낮에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의 한 아파트에서 50대 여성 이씨와 10대 남자아이 전모군이 끔찍하게 살해당했다. 그날 저녁 8시엔 강원 평창군의 한 국도 졸음쉼터에서 50대 남성 전씨가 흉기와 둔기로 살해된 채 발견됐다. 이들은 모두 한 가족이었다. 범인은 바로 살해당한 여성의 30대 친아들 김성관이었다. 경찰은 21일 오후 5시경 김성관이 아파트에서 나가는 모습을 확인한 뒤 김씨가 두 사람을 살해한 것을 보고 추적에 나섰다. 그러나 김성관은 사건 이틀 뒤인 23일 오후 뉴질랜드로 출국한 것이 확인됐다. 뉴질랜드 영주권자인 김성관은 과거 뉴질랜드 어학연수 당시 현지에서 행했던 절도 범죄로 체포되면서 범행 6일 만에 붙잡혔다. 그는 범죄인인도조약에 따라 2018년 1월11일 한국으로 송환돼 조사받았다. 조사 결과 김성관은 친모와 막냇동생을 살해한 뒤 친모의 체크카드와 귀금속 등을 훔쳐 나간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친모의 체크카드로 6000만원 상당의 자신의 빚
"우지직 꽝" 1994년 10월21일. 112와 119에 이른 아침부터 성수대교가 무너졌다는 전화가 몰렸다. 장난 전화로 여긴 경찰과 소방 당국은 무시로 일관했지만, 오전 8시20분까지 같은 내용의 전화가 빗발치자 뒤늦게 헬기를 띄웠다. 이날 아침 7시40분쯤 성수대교가 무너져내린 지 40여분이나 지나서였다. ━출근 시간 갑작스럽게 무너진 다리━ 서울 강남과 강북을 잇는 성수대교는 교량 중앙인 10~11번 교각이 밑으로 무너지면서 붕괴했다. 이 사고로 다리에 있던 시내버스를 포함해 차량 6대가 추락했으며, 32명이 숨지고 17명이 부상했다. 사상자 대부분 추락한 시내버스에서 나왔다. 이 버스는 무너진 교량에 반쯤 걸쳐있다가 뒤집힌 채 추락해 피해가 컸다. 희생자는 주로 직장인과 교사, 학생이었다. 사고 시간이 출근 및 등교 시간과 겹쳐서다. 특히 무학여중·고교생만 9명 숨져 가장 피해가 컸다. 학생들은 당시 강남에 거주했는데, 성동구에 있는 학교까지 통학하다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
1991년 10월 19일 화창한 토요일 오후.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는 여의도공원에 난데없이 나타난 차가 매우 빠른 속도로 질주하며 시민들을 덮쳤다. 사람들은 혼비백산해 비명을 질렀고, 자전거를 타던 아이들이 순식간에 쓰러졌다. 이 일로 어린이 2명이 숨지고 시민 21명 중경상을 입었다. 범인은 직장에서 해고된 일로 사회에 앙심을 품은 20대 청년 김용제였다. ━'묻지마 살인' 원조격 '여의도광장 차량 질주'━당시 '여의도공원'의 이름은 '여의도광장'이었다. 1997년부터 공원화 사업이 추진돼 지금은 숲이 울창하게 변했지만, 당시만 해도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시원하게 펼쳐진 공터였다. 시민들은 이곳에서 자유롭게 롤러스케이트나 자전거를 타고 놀았다. 주로 청소년과 어린이가 많았다. 주말 오후 이런 여의도광장에 김용제는 차를 몰고 나타나 시속 80km 속도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광장을 지그재그로 달리며 시민을 치던 김용제는 철제 자전거 공구함을 들이받은 뒤에야 멈추어 섰다. 김용제의 범행
4년 전인 2019년 10월18일, 67살 된 어머니 한태순씨는 44년 만에 딸을 품에 안았다. 한씨 나이 23살에 잃어버린 딸이었다. 6살 아이는 중년 여성이 돼 돌아왔다.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에 들어선 딸의 얼굴을 엄마는 한 번에 알아봤다. 한씨가 내뱉은 첫 말은 "아임 쏘리, 아임 쏘 쏘리(I'm sorry, I'm so sorry)"였다. 모녀는 서로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얼굴은 똑 닮아 있었다. 당시 한씨는 "안아보니까 내 딸이 맞았어. 얼굴을 대보니까 내 딸이 맞았어"라고 말했다. 이어 "엄마들은 절대 그럴(자식을 버리는) 일이 없다"며 "꼭 부모를 찾아달라. 당사자가 나서지 않으면 부모들은 찾을 방법이 없다"고 당부했다. 2023년 5월 기준 경찰청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1년 이상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장기실종아동'은 954명에 달했다. 최근 5년간 한 해에만 2만건 안팎의 아동 실종신고가 접수됐다. ━6살 딸이 없어졌다…출근하다시피 경찰서 간 엄마━한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