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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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하면서 옆에 뭐가 푹 꺼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2014년 10월17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판교테크노밸리의 야외 공연장에서는 제1회 판교 테크노벨리 축제가 열렸다. 그룹 포미닛 티아라 등 여러 가수가 출연할 예정이었다. 첫 번째 초대 가수로 당시 인기 걸그룹 포미닛이 무대에 올라 축하 공연을 펼쳤다. 공연을 더 가까이서 보고 싶은 일부 시민들은 공연장 옆 유스페이스 지하 주차장의 환풍구 위로 몰려들었다. 오후 5시 53분경, 포미닛의 공연 도중 주차장과 연결된 환풍구 덮개가 사람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 위에서 공연을 보던 관람객 27명이 약 20m 아래 6층 높이에서 바닥으로 추락했다. 이 사고로 16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상자 대부분이 30~40대 직장인이었다. 사고 이후 한 시민이 제보한 영상에는 가수의 공연 도중 공연장 한쪽이 소란스러워지더니 무너져내린 환풍구 덮개가 담겼다. 제보자는 "뭔가 퍽 하면서 옆에 뭐가 푹 꺼지는 느낌이
1793년 10월 16일 프랑스 파리의 혁명 광장에서 루이 16세의 아내이자 '비운의 왕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년)가 처형됐다. 적대국 프랑스에 시집을 와 왕비가 됐던 오스트리아의 공주에게는 수많은 혐의가 적용됐다. 프랑스 혁명 정부는 국고 낭비, 백성 기만, 오스트리아와의 결탁 및 전쟁 유발, 루이 16세를 타락시킨 죄 등을 물어 마리 앙투아네트를 단두대에 올렸다. 14세 때부터 정략결혼이란 도구로 쓰인 한 여성의 비극적인 최후였다. 처형 직전 마리 앙투아네트는 "난 죄를 지어서 죽는 게 아니니 부끄러워할 것은 없다"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홀로 성난 민중의 분노를 받아낸 가짜뉴스 피해자━ 프랑스 혁명을 일으켰던 민중은 오스트리아 공주 출신인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해 광적인 분노를 보였다. 이들은 심각한 경제난과 부패한 정치권, 왕실의 사치 등에 대한 원인을 왕비에게 찾았다. 특히 당시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된 사건으로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기 사건'이 꼽
2014년 10월15일. 하늘과 맞붙은 땅, '눈의 거처'란 뜻을 가진 히말라야에 악몽이 몰아쳤다. 한해 중 하늘이 가장 맑고 파랗다는 10월 중순 갑작스레 닥친 폭설과 눈사태로 트레킹에 나섰던 등산객 등 적어도 20여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실종됐다. 결국 이 사건으로 39명이 사망하고 70여명이 실종돼 네팔 최악의 산악 재해로 기록되고 있다. ━히말라야 동시다발 눈사태…사망·실종 100명 넘어━2014년 10월. 전 세계에서 찾아온 168명의 등산객이 트래킹 중이었다. 10월 15일 네팔 당국은 안나푸르나봉으로 가는 길목의 머스탱 지역과 마낭 지역에서 자국민 12명을 비롯해 캐나다인 4명, 폴란드인 3명, 이스라엘인 3명, 베트남인 1명, 인도인 1명 등 모두 24명의 시신을 발견했다. 또 60여 명이 현재 구조돼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수십 명이 여전히 연락이 닿지 않았다. 당시 히말라야 폭설 및 대형 눈사태는 이례적인 현상 때문으로 발생했다. 1년 중 10월은 히말라야의 날씨
2018년 10월14일 오전 8시10분 서울 강서구의 한 PC방.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아르바이트생이 한 손님의 흉기에 찔려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자상은 얼굴과 목에 집중됐다. 얼굴만 30곳 이상 찔렸고, 모든 상처가 깊었다. 피해자의 응급처치를 담당한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임상조교수는 "가해자가 칼을 끝까지 넣을 각오로 찌른 듯 모든 상처가 칼이 뼈에 닿고서야 멈췄다"며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범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체포된 피의자는 상해 등으로 전과 2범인 김성수였다. 그는 아르바이트생이 자신에게 불친절했으며, 견딜 수 없는 모욕을 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경찰도 막지 못한 비극━ 당시 경찰에 따르면 이 사건은 사소한 실랑이에서 비롯됐다. 김성수는 피해자에게 "자리가 더럽다", "기본이 안돼 있다"며 시비를 걸더니, 게임에서 진 것을 문제삼아 환불을 요구했다. 피해자가 환불을 거절하자, 싸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함께 있던 김성수의
"공동체를 파괴하는 범죄와 폭력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고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모든 권한을 동원해서 이를 소탕해나갈 것입니다. " 1990년 10월 13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범죄와 폭력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다. 이 선언이 발표된 3일 뒤 치안 관계 장관들은 유례없는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범죄와 폭력을 끊어낼 것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유례없는 조직범죄 소탕에 1992년까지 약 1만 6000명의 경찰이 충원되고 경찰청 보안부는 방범국으로 개편됐다. 2년간 이어진 '범죄와의 전쟁' 기간에 5대 강력범죄(살인·강간·강도·절도·폭력)의 발생률이 이전보다 5.9% 감소하는 성과가 이뤄졌다. 경찰은 또 이 기간 동안 전국 각지에서 조직폭력배 1421명을 검거해 1086명을 구속했고 274개 폭력 조직을 적발해 와해시켰다. ━조폭 1086명 구속, 274개 폭력 조직 와해 성공…치안 강국 됐다━군사정권 당시 '공안정국'을 조성하면서 경찰력 상당수가 간첩 조작과 민주화 세력 탄압에 악용되면서 치
2002년 10월 12일. '파라다이스'라 불리던 인도네시아 발리 쿠타 해변의 한 클럽에서 큰 폭발이 발생했다. 이 폭발로 건물 벽이 무너지고 주변 차들까지 연쇄 폭발을 일으키며 일대가 아수라장이 됐다. 사상자가 400명이 넘었던 이 폭발은 단순 사고가 아니었다. 인도네시아에서 활동하는 이슬람 무장단체의 테러였다. ━주말 밤 뒤흔든 폭음…순식간에 아수라장 된 휴양지━사건 당일 오후 11시 30분(현지 시각)쯤 발리에서 서핑 명소로 유명한 쿠타 해변의 외국인 전용 나이트클럽인 '사리클럽' 정문에 일제 미니밴 한 대가 갑자기 돌진해 왔다. 충돌했던 차는 잠시 후 폭발했고 몇초 뒤 훨씬 강력한 폭음이 지축을 흔들었다. 토요일 밤을 만끽하며 춤추던 500여명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화려한 조명이 비추던 무대는 피바다를 이뤘고, 중화상을 입은 부상자들은 출구를 찾느라 우왕좌왕하다 연기에 질식해 숨져갔다. 당시 폭발은 클럽 건물을 형체도 없이 날려버렸고 주변 건물 10여동도
"I Love You. 사랑해요. 사랑해요!" 1996년 10월 11일. 전설적인 팝 스타 마이클 잭슨이 한국에서 첫 공연을 펼쳤다. 83회에 걸쳐 개최된 '히스토리 월드 투어'의 일환이었다. 한국에서는 10월 11일, 13일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총 2회 공연했다. 마이클 잭슨은 첫 등장부터 4만여 관객을 뜨겁게 달궜다. 공연 시작을 알리는 축포와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았고,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영상이 끝나자 무대 위 놓인 우주선 속에서 은빛 우주복을 입은 마이클 잭슨이 헬멧을 벗으며 등장했다. 그가 서울에서 부른 첫 곡은 '스크림'(Scream)이었다. 이날 공연은 당초 오후 7시30분 시작될 예정이었으나 무대 특수 장치 등 장비를 실은 전용 수송기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예정보다 1시간10분 늦은 저녁 8시40분에야 시작됐다. 공연 지연에도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마이클 잭슨은 130분 공연 시간 동안 화려한 비디오 아트와 조명, 의상 등이 음악과 완벽히 어우러
30년 전인 1993년 10월 10일. 전북 부안군 위도에서 낚시를 마친 사람들은 집으로 가기 위해 육지로 향하는 '서해페리호'를 기다렸다. 주민들도 김장철을 앞두고 멸치 등을 육지에서 판매할 기대감에 부풀었다. 하지만 기대감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됐다. 사람들을 가득 싣고 육지로 가던 배는 갑자기 뒤집어졌고, 이 사고로 배에 타고 있던 승객 중 292명이 숨졌다. 선박 관리 미비와 인력 관리 부실 등 안전사고 예방이 되지 않은 예견된 사고였다. ━탑승 정원보다 141명 초과…30분 만에 가라앉은 배━110톤 규모의 서해페리호는 1990년 만들어진 신형 여객선이었지만, 이용객이 많지 않아 매년 적자에 허덕였다. 그러나 위도에서 육지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기 때문에 운항을 멈출 수 없었고,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아 하루 1회 가까스로 운항했다. 그런데 항상 텅텅 비어있던 배는 위도가 낚시 관광지로 떠오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주말마다 수백명이 이 배를 타고 낚시를 하러 오갔
1983년 10월 9일, 북한은 버마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현 미얀마)을 순방 중이던 대한민국 제12대 대통령 전두환을 암살하고자 폭탄 테러를 감행했다. 당초 북한의 타깃이었던 전두환 대통령은 행운의 '4분' 덕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테러로 서석준 부총리를 비롯해 이범석 외무부 장관, 김동휘 상공부 장관 등 각료와 수행원 17명이 사망했다. 정부 고위급 인사들이 숨진 전례 없는 테러에 대한민국 정부는 국정 운영에 큰 타격이 생겼으며, 미얀마 정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북한과 외교를 단절하고 북한대사관 직원들을 모두 추방했다. ━계획에 없던 미얀마 순방…참모진 반대에도 강행━ 전두환 대통령은 1983년 10월 8일, 공식 수행원 22명 및 비공식 수행원들과 함께 미얀마, 인도, 스리랑카, 괌 등 4개국과 호주, 뉴질랜드 등 2개국에서 진행되는 17박18일 일정의 공식 해외 순방에 나섰다. 미얀마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첫 방문지였다. 사실 미얀마는 원래 순방 계획에 없
1998년 10월8일, 제42대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이 하원에서 성추문 관련 위증 혐의와 사법방해 혐의로 찬성 258 대 반대 176 표를 받아 탄핵소추 됐다. 찬성표에는 민주당 31표가 포함됐다. 세기의 섹스 스캔들, 이른바 '지퍼 게이트'가 대통령 탄핵 시도로 이어진 날이었다. ━세기의 '지퍼 게이트'━클린턴 대통령의 성추문은 임기 2년째인 1994년 불거졌다. 클린턴이 아칸소 주지사 시절 공무원이었던 폴라 존스가 1991년 5월 한 호텔에서 클린턴으로부터 강간을 당했다며 소송을 냈다. 클린턴은 대통령 퇴임 전까지 재판을 연기해달라고 요청했지만 1997년 5월 연방 대법원은 만장일치로 재판 진행을 명령했다. 그리고 그 해 말 클린턴을 넉다운 시킬 '핵폭탄급' 스캔들이 터졌다. 그 유명한 모니카 르윈스키 사건. 사회 초년생 르윈스키가 클린턴과 백악관에서 성관계를 맺었다는 증언이었다. 백악관 인턴이던 르윈스키가 스스로 얼굴을 알린 건 아니었다. 그의 친구이며 펜타곤(국방부) 공보직
"돈이 있으면 판검사도 살 수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돈 있으면 무죄 돈 없으면 유죄), 우리 법이 이렇다." 1988년 10월 8일. 서울 영등포교도소에서 공주교도소로 이송되던 25명 중 12명이 교도관을 흉기로 찌르고 탈주해 서울 시내로 잠입했다. 이들 중 한명이 '유전무죄 무전유죄' 말을 남긴 지강헌이다. 지강헌은 흉악범이 아니라 잡범이었다. 하지만 사회보호법에 의한 보호감호제도 때문에 징역형을 마치고도 보호감호처분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과 560만 원 훔친 자신은 무려 감옥에서 17년을 살아야 하는데, 70여억 원을 횡령한 것으로 알려진 전두환의 막냇동생 전경환은 7년을 선고받고 그마저도 3년도 지나지 않아 풀려난 사실에 불만을 가지고 탈출한 것이다. 지강헌은 이런 불만을 갖고 교도관을 찌르고 탈주해 서울 시내를 전전하다 10월 15일부터 16일까지 서대문구 북가좌동에서 안광술, 강영일, 한의철 등 3명과 더불어 인질극을 벌이다 경찰이 쏜 총에 사살당했다.
22년 전인 2001년 10월 7일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미국은 같은 해 벌어진 9·11 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조직 알카에다를 지원하는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전쟁을 시작했다.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은 21세기 최초의 전쟁이자, 미국 역사상 최장기 전쟁이다. 미국은 2021년 8월까지 무려 20년간 전쟁을 지속했고, 이는 베트남 전쟁(8년)의 2배가 넘는 기간이다. 전쟁의 도화선이 된 오사마 빈 라덴은 2011년 5월에 숨졌다. 알카에다를 이끌던 그는 미국의 '넵튠 스피어 작전'에 의해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의 한 가옥 침실에서 사살됐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침공 약 한 달 만에 수도 카불 점령(2001년 11월 13일)에 성공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내 반(反) 탈레반 세력인 북부동맹과 연합해 공세를 취했다. 이에 탈레반 군대는 제대로 된 반격도 못 한 채 수도를 내줬다. 결국 탈레반 정권은 수도를 뺏긴 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 2001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