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1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1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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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았어요" 이진아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 수사관(경위·34)은 경찰이 되기 전 회계사로 일할 당시 자금 추적을 했던 일화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2011년 23세 나이로 회계사 자격증을 딴 이 수사관은 같은 해 12월부터 2016년 5월까지 삼일회계법인 감사본부, 2019년 11월까지 한국자산관리공사 국유재산 관리기금실에서 근무했다. 이 수사관은 회계사로 일할 당시 한 회사의 횡령 사건 수습에 투입된 적이 있다. 한 직원이 회사가 관리하는 자산을 팔아 11억 매각대금을 챙긴 것이다. 이 수사관은 사후대책 마련 전담팀(TF)에 투입돼 자금 흐름을 추적했다. 추적 끝에 이 수사관은 횡령 직원이 자금을 축적한 계좌를 찾아냈다. 당시 느꼈던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 수사관은 이 일을 계기로 범죄 자금 추적에 큰 관심이 생겼다. 결국 2019년 경찰청 회계사 경력채용 2기에 합격해 이듬해부터 경기남부청 범죄수익추적수사팀에서 일하고 있
쉬운 수사는 없다는 게 경찰 수사관들의 공통된 의견이지만 그 중에서도 반부패·공공범죄·경제범죄 수사는 특히 어려운 수사로 꼽힌다. 피해자도 없는 경우도 많고 피의자 대다수는 명백한 증거 앞에서도 죄를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경찰은 공무원, 기업인 등 해당 분야에서 수십년간 경력을 쌓은 이들이 '큰 그림'을 그려가며 길게는 수년간 준비한 범죄를 파헤친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명확한 증거를 찾아야만 피의자를 법정에 세울 수 있다. 원종철 경위(39)는 지난해 3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로 정부 합동특별수사본부(합수본)가 출범한 후 부동산 투기혐의를 받는 포천시청 공무원 박모씨를 구속시켰다. 공직자를 대상으로 한 투기 의혹 수사에서 1호로 구속된 사례다. 언론에 '포천시청 공무원 사건'으로 알려진 이 수사는 합수본 출범 29일만에 박씨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까지 이어진 '속도전'이었다. ━LH사태 후 합수본의 첫 구속 사건 담당…포천시청 외곽부터 수사한 이유━LH사태로 공직
'돌아가 주세요. 신고 취소할게요.' 지난달 23일 늦은 밤. 가정폭력이 의심된다는 신고를 받고 피해자를 찾아 나선 경찰에게 '신고를 취소하겠다'는 문자가 도착했다. 경찰은 신고 취소 문자에도 피해자의 안위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3~4차례 전화 통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피해자는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신고자는 오히려 경찰에게 ' '아무것도 아니다', '신고 취소했다', '왜 자꾸 전화하냐', '돌아가 달라'는 4통의 문자만 남겼다. 돌아가라고 거듭 요구하는 피해자의 문자를 본 김덕중 경위(46)의 머릿속에는 '전화를 받지 않는 게 이상하다. 피해자는 여전히 위험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17년차 베테랑 경찰의 촉이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너네들이 왜와 XX, 이건 가족 문제야" 흥분한 가해자 달래며 피해자 구한 '베테랑'━신고받고 출동한 지 30여분이 흐른 밤 11시쯤. 김 경위는 경찰서 형사과에 공조 요청을 신청했다. 같은 건물에 여러 세대가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
"빚이 3000만원이에요. 구청에서 주는 기초 생계비로 이자를 갚으면 남는 게 없어요" 아직 날씨가 쌀쌀하던 지난 2월의 어느 날. 지적장애인 A씨가 김예빈 경장(24)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빚이 있다고 털어놨다. A씨는 직장동료이자 10년 지기 지인 B씨에게 7년간 8100만원을 빼앗긴 사기 피해자였다. A씨는 피의자가 346차례에 걸쳐 요구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신용대출과 담보대출까지 받았다고 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A씨는 외부의 도움이 절실한 상태였다. 지인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 12월 고소장을 내고 피의자가 검찰에 송치됐지만 범죄 피해를 복구하진 못해서였다. 김 경장은 오랜 시간 범죄 피해로 힘든 시간을 보낸 A씨에게 일자리를 소개하고 은행에서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피해자가 커피 한 잔에 털어놓은 속마음...대화로 형성된 '라포'━김 경장은 지난 2월부터 경남 창원서부경찰서에서 피해자전담경찰관으로 일하며 범죄 피해자들을 돕고 있다. 피해자전담경찰관은 범죄 피해자의
"내 몸에 손대지 마요. 성추행 신고할 거야!" 한겨울 추위가 기승을 부린 지난 1월 어느 날 저녁. 영장을 들고 절도 혐의 피의자를 체포하러 간 인천 남동경찰서 강력팀 형사들은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피의자는 '난 범인이 아니다'라며 경찰서에 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설상가상으로 여성인 피의자는 남성이 대부분인 강력팀 형사들을 향해 '날 만지지 말라'고 소리쳤다. 막내인 조설 형사(34·경장)가 나섰다. 조 형사는 팀내에서 유일한 여성이다. 피의자에게 다가가니 술냄새가 코를 찔렀다. 술에 취한 피의자를 상대하는 데는 2~3배 힘이 든다. 말이 안 통하는 건 기본이고 힘도 평소의 배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피의자는 임자를 잘못 만났다. 조 형사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메달을 딴 태권도 선수 출신이다. 조 형사는 먼저 피의자의 한쪽 팔을 붙잡았다. 저항이 세졌다. "짭새들아" 등 거친 말도 내뱉었다. 하지만 조 형사는 나머지 한쪽 팔을 붙잡고 피의자를 바닥에 눕혔다. 피의자
"끼이익~ 쿵! 쾅!" 순찰차의 추격을 피해서 도주하고 있던 한 남성이 급기야 순찰차 운전석을 들이받았다. 피의자는 창문을 내리고 순찰차를 향해 물건을 내던지는 등 위협 운전을 계속했다. 김성용 광주경찰청 서부경찰서 동천파출소 경사(34)는 운전대를 놓지 않고 그 뒤를 밟았다. 추운 날씨에 잔뜩 쌓인 눈이 채 녹지 않은 도로였기 때문에 추격이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김 경사는 순간 '이대로 추격하면 승산이 있겠다'고 판단했다. 피의자가 눈길에 취약한 '후륜구동(뒷바퀴로 차체를 움직이는 것)' 외제차를 타고 있다는 점을 파악했다. 김 경사의 끈질긴 추격 끝에 피의자는 검거됐다. 광주광역시에서 시작된 47분의 추격전은 전남 담양, 장성을 거쳐 결국 전북 고창에서 막을 내렸다. ━순찰차 앞 범퍼 부서졌지만…끈질긴 추격 끝에 검거━동이 채 뜨기도 전인 지난달 6일 오전 5시. 광주 서부경찰서 상무지구대에 '한 남성이 편의점안에서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위협한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자는
"스스로 떨어졌어요? 맞으면 눈을 1번, 아니면 2번 깜빡여 보세요." 7층 높이에서 추락해 생사를 오가다 겨우 의식을 되찾은 인준씨(가명)는 형사의 요청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어떤 것도 알려줄 수 없단 의미였다. 서울 강서경찰서 형사3팀 소속 김영훈 경감(52)은 병상에 누워 있는 인준씨에게 질문을 이어갔지만 꾹 감긴 그의 눈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김 경감이 이 사건을 처음 접한 건 지난 1월 9일 오전 10시10분쯤이었다. 오피스텔 앞에 사람이 쓰러져 있단 신고에 당직을 서던 김 경감은 형사 2명과 함께 곧장 현장으로 출동했다. 김 경감이 도착했을 때 피해자는 호송되고 현장엔 피만 흥건한 상태였다. 최초 신고자는 피해자가 떨어진 장소인 것 같다며 인근 오피스텔 7층을 가리켰다. 오피스텔 7층으로 찾아가 문을 두드리자 남녀 6명이 나왔다.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앳된 얼굴도 끼어 있었다. 김 경감이 추락 사고에 대해 묻자 "아무것도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다. 몇 번을
"제가 핸드폰을 보면서 설명드릴게요, 경찰관님." 이렇게 말하는 용의자의 손이 휴대폰으로 향했다. 권민구 순경(27)은 용의자의 목적이 보이스피싱 일당들과 메시지를 주고받던 텔레그램 방을 '폭파'하는데 있음을 직감했다. 텔레그램 방에서는 용의자를 '대리님'이라고 부르는 누군가가 송금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권 순경은 용의자의 요청을 거부하고 "수사관이 조사를 위해 휴대폰을 임의 제출 받을 수 있다"고 절차를 안내한 뒤 지구대로 임의 동행했다. 자칫하면 보이스피싱의 결정적 증거가 사라질 뻔한 순간이었다. ━1분도 안돼 범행 현장 도착… 잃어버릴 뻔한 500만원 지켰다━지난달 28일 오후 2시 45분쯤 대구 수성경찰서 소속 황금지구대로 다급한 무전이 떨어졌다. '보이스피싱 전달책이 송금을 하는 것 같다'는 신고였다. 근무 교대를 한 권 순경은 지령을 받자마자 지구대에서 약 250m 떨어진 ATM 기기로 신속하게 순찰차를 몰았다. 아파트 앞 작은 상가 길에 위치한 1인 ATM 기기에서 돈
지난 16일 새벽. 영하 10도 추위 속에 A씨(여·22)씨는 속옷 차림으로 거리로 뛰쳐나왔다. 손이 자꾸 떨렸다. 간신히 '112'를 누른 A씨가 울먹이며 말했다. "남자친구가 때려서 밖으로 도망쳤어요." A씨의 목소리는 잔뜩 겁에 질려있었다. 서울 강동경찰서 천호지구대로 신고가 접수된 시각은 오전 1시20분. 당시 야간 근무 중이던 손종협 경위(52) 등 지구대원 2명은 급히 신고 장소인 인근 원룸으로 출동했다. 오전 1시23분 현장에 도착한 이들은 건물 앞에서 떨고 있던 A씨와 함께 원룸 안으로 들어갔다. A씨는 함께 사는 남자친구가 목을 조르고 물건을 집어던져 급하게 도망쳤다고 했다. 집안은 난장판을 연상케 했다. 소주와 콜라가 쏟아진 채 뒤섞여 바닥을 적시고 있었고,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휴대전화와 노트북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만취 상태인 피의자 B씨(24)는 경찰과 A씨를 향해 욕설을 쏟아내며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위험 상황을 감지하고 A씨와 B씨를 재빨리 분리한 손 경
은영(가명·20)씨가 사라진 건 지난 10일 밤이었다. "친구를 만나고 오겠다"는 말과 함께 밤 9시쯤 집을 나선 은영씨는 새벽이 가까워진 자정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가족들의 불안감이 쌓여가던 그때, 무거운 공기 틈으로 은영씨 언니의 휴대전화 알림이 공허하게 울렸다. "다 끝내고 싶어". 발신자는 은영씨였다. 자정을 넘긴 11일 오전 0시30분. 경기 분당경찰서 서현지구대에 '딸이 없어졌다'는 실종신고가 접수됐다. 신고자는 은영씨의 어머니였다. 야간 근무 중이던 김호연 순경(29)을 포함한 지구대원 4명은 사라진 은영씨의 행방을 쫓았다. 다행히 몇 차례 시도 끝에 은영씨에게 연락이 닿았다. 김 순경과 대원들은 은영씨 휴대전화 기지국 신호를 기준으로 서현역 인근 모텔 20여개를 뒤지기 시작했다. 새벽까지 이어진 수색에 등줄기가 땀으로 젖었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1시간30분간의 수색이 이어졌고 오전 2시쯤 끝내 은영씨를 찾아낸 김 순경은 은영씨를 무사히 가족 품으로 돌려보냈다. 지난
지난해 9월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50대 후반 남성이 자택 문 앞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그의 목에는 방어흔 없아 치명상 하나뿐. 자칫하면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오인하기 쉬운 상황이었다. 서울경찰청 과학수사대 3팀 장권호 경위(48)를 비롯해 그의 팀원들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점을 감지했다. 기나긴 현장 감식에 들어간 이들은 끝내 자택 내부 화장실 수도꼭지에서 지문을 채취했다. 하마터면 묻힐 뻔한 사건의 실상은 이렇게 밝혀졌다. 피해자 회사 직원이었던 30대 남성이 퇴직금 지급 문제를 두고 피해자와 갈등을 벌이다 살해한 것. 2006년부터 과학수사 업무를 시작해 15년 차에 접어든 장 경위는 전국 최다 출동 기록을 보유한 그는 잔뼈 굵은 베테랑이다. 그는 지난해 상반기에만 총 141건의 변사사건에 출동했다. ━변사·살인·강도 '다 나간다'…끔찍한 살인 현장에서도 '단서' 하나 안 놓쳐━장 경위와 같은 과학수사요원은 하루 평균 적게는 3건에서 많게는 7건가량 현장에
"현행범이라 상상하고 저를 공격해보세요." 민새롬 중앙경찰학교 무술교관(경위)이 방어 자세를 취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곧바로 오른팔을 뻗었지만 민 경위가 가볍게 쳐냈다. 기자의 자세가 흐트러지자 민 경위는 잽싸게 뒤쪽으로 파고들더니 무릎으로 기자를 들어 올렸다. 몸이 붕 떴다가 바닥에 내리 앉았다. 민 경위는 그대로 기자 팔을 몸 뒤로 꺾고 수갑을 채웠다. 합기도와 유도, 태권도, 특공무술 등 합계 '15단' 유단자인 민 경위가 직접 개발한 체포술이다. 현행범이 공격하거나 만취자를 부축하는 등 다양한 상황에 따른 대처법이 마련돼 있다. 민 경위는 경찰특화 체력교육 훈련 체계와 실전체포술 개발 공적을 인정받아 지난해말 특별 승진했다. 5년째 경찰학교에서 체포술을 가르치고 있는 민 경위를 지난 27일 충북 충주에 있는 중앙경찰학교 초심관(체육시설)에서 만났다. ━8년전 경찰 공격하는 만취 난동꾼 제압...맨손 체포술 중요성 느껴━ 민 경위를 경찰의 길로 이끈 건 남다른 체격과 신체 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