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1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1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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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것 같아요." 지난 5월22일 서울경찰청 지하철경찰대에 절도 의심 신고가 접수됐다. 피해자는 술에 취해 지하철을 탔다가 최신 기종의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고 했다. '부축빼기 범죄'가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부축빼기란 취객을 도와주는 척 접근해 휴대전화와 지갑 등 물품을 훔쳐 가는 범행을 말한다. 서울경찰청 지하철경찰대 수사3팀 소속 고은 경사는 곧장 수사에 착수했다. 당시 피해자의 동선을 파악해 CCTV(폐쇄회로TV)부터 분석했다. 전동차 내부를 비추는 CCTV 영상에서 부축빼기범으로 추정되는 범인이 보였다.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리지 않아 인상 착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 유사 사건 6건이 추가로 접수됐다. 별건으로 접수돼 다른 수사관들이 수사에 나섰지만 피의자 A씨는 눈만 내놓은 채 얼굴을 가리고 있어 특정에 어려움을 겪었다. 고 경사가 유사 사건 6개의 CCTV를 확인해보니 얼굴은 확인할 수 없었으나 걸음걸이와 체형 등이 익숙했다. 지난 5
"피해자 보호와 경찰의 적극적인 대응을 위해서는 스토킹·가정폭력 범죄와 마찬가지로 교제 폭력에 대한 특별법 제정이 필요합니다." 서울 중랑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김영두 경위(37)는 지난 8일 교제폭력범죄 특별법 제정의 중요성을 이같이 밝혔다. 김 경위는 지난 8월31일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치안정책리뷰에 '교제폭력 특별법 제정과 방향에 대한 제언'을 주제로 글을 실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교제폭력 신고는 집계를 시작한 2017년 3만6267건에서 지난해 7만7150건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올 7월에는 한 유명 여성 유튜버가 연인 관계였던 남성으로부터 4년에 걸쳐 폭행을 당하고 수십억원을 빼앗긴 사실을 고백하기도 했다. 김 경위는 14년 전 경찰 생활을 시작한 뒤 11년 동안 여성·청소년 범죄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경찰은 일선 경찰서에 여성청소년과를 두고 교제폭력, 가정폭력, 성폭력, 아동학대 등 여성·청소년·아동·노인 같은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에 대응한
"피해자 다수가 더 이상 돈을 구할 곳이 없어 벼랑 끝까지 몰린 사람들이었습니다." 2022년 11월 19일 늦은 오후 한 시사프로그램 내용이 유난히 귀에 '꽂혔다'. 경기 의정부를 중심으로 사기 행각을 벌이는 대부중개업체 이야기였다. 피해자 본인은 물론 지인과 가족까지 파산시키는 수법이 악랄했다. 의정부를 관할하는 경기북부경찰청 형사기동대 광역수사1반은 즉각 수사에 돌입했다. 김창배 반장(54)과 동료 수사관 4명은 휴가를 반납하고 1년 넘게 수사에 매진했다. 그 결과 대부중개업체 대표 A씨 등 211명을 사기 등 혐의로 검거했다. 2019년 6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전국에서 확인된 피해자만 425명, 피해액은 125억원에 달했다. ━"금융권 대출 어려우세요? 중고차 사면 저금리 대출"…가족·지인까지 파산하게 만든 일당━ 대부중개업체 대표 A씨는 신용도가 낮아 저금리 대출이 어려운 피해자들을 노렸다. 이들은 우선 피해자들이 제 2·3금융권과 대부업체 등에서 최대한 많은 대출을 받
"정말 중요한 물건이거든요. 꼭 좀 찾아주세요." 지난달 24일 오후 7시10분쯤. 한 고등학생이 어머니와 함께 서울 남대문경찰서 태평로파출소를 찾았다. 학생은 서울 중구 청계천 일대에서 친구들과 운동을 하려고 점퍼를 벗었는데 누군가 옷을 훔쳐갔다고 말했다. 점퍼 주머니에는 400만원짜리 '인슐린 펌프기'도 있었다. 인슐린 펌프기는 1형 당뇨 환자들에게 중요한 의료기기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1형 당뇨는 인슐린이 분비되지 않는 병으로 인슐린 펌프기를 부착하지 않으면 고혈당이 악화돼 급성 케톤산증과 같은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학생과 어머니는 현장 주변을 3번 넘게 돌아다녔지만 결국 발견하지 못했다. 주말 청계천을 찾은 시민들과 집회 인파가 거리를 가득 메웠다. 두 사람은 애타는 심정으로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32년차 경찰의 촉… '분명 버리고 갔을 거야'━ 당시 파출소에 있던 사람은 32년차 경찰 박남훈 순찰2팀장이었다. 그는 신고자의 이야기를 듣고 '옷 사이즈가 안 맞았
"꼭 잡아서 대가를 치르게 해줘야죠." 얼굴보다 큰 팔뚝에 짧은 머리를 한 이재기 강북경찰서 강력3팀장(53·경감)은 '강력팀 마동석'으로 통한다. 미제 사건 피의자를 우연히 길에서 붙잡아 구속시키는 그다. 합기도 4단, 태권도 2단, 검도 1단. 도합 7단의 무술 유단자다. 집요한 수사 스타일과 생김새를 보고 동료 형사들은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의 마석도(마동석 분)를 떠올린다. 이 팀장에게 붙잡힌 피의자도 "형사님…많이 닮으셨어요"라고 터놓는다. 이 팀장은 "동료들이 든든하게 느낀다면 감사하지만 민망하다"는 반응이다. 1997년 7월 입직해 28년차 베테랑인 이 팀장은 "한 번 들어온 사건 피의자는 머리에 다 남아있다. 담당 형사라면 누구나 그렇다"며 "강력범죄 피해자가 된 시민들은 많은 불안을 느낀다.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해서 범죄자들을 꼭 잡을 것"이라고 했다. ━CCTV 속 흐릿하게 찍힌 얼굴…태연히 걸어가던 범인 검거━ 지난해말 서울 도봉구에서 등교하던 초등학생이 납
"새벽에 보안업체 직원이 은행 ATM(현금자동입출금기)에서 현금을 훔쳐 달아났습니다." 지난 7월 23일 오후 8시쯤. 서울 영등포경찰서 형사과 강력1팀으로 신고 1건이 접수됐다. 보안업체 직원이 자신이 관리하던 은행 ATM에서 현금을 챙겨 달아났다는 것이다. 현금이 사라진 사실을 은행이 알았을 땐 이미 ATM을 관리하던 보안업체 직원 40대 남성 A씨가 연락을 끊고 잠적한 상태였다. 하정현 영등포서 형사과 경위(남·43)과 강력1팀원들은 곧바로 달아난 A씨 추적에 나섰다. 이날 저녁 시작된 추격전은 9일간 이어졌다. ━택시타고 현금만 쓰는 도주범과 추격전…경찰 추적 피하고자 모텔 옮겨가며 숙박━강력팀이 CCTV(폐쇄회로)와 출입기록 등을 확인해보니 A씨는 ATM에서 현금을 꺼내 수송차량에 옮겼다. 이후 자신이 준비한 배낭에 현금을 담은 뒤 평소처럼 퇴근하며 휴대폰을 끄고 잠적했다. 경찰은 퇴근한 A씨가 곧장 택시에 탄 사실을 확인했다. 추적기법을 동원해 A씨가 탄 택시가 경기 안
"식당에서 타는 냄새가 납니다." 지난 5월2일 서울 서대문경찰서 충정로지구대에 무전 하나가 전파됐다. 주취자 관련 신고를 받고 출동한 동료 경찰관이 무전으로 다른 팀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경주 경감(50)은 즉시 현장으로 향했다. 대로변에 있는 한 식당에서 탄내와 검은 연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식당 주인이 퇴근했는지 문은 잠겨있었다. 소방에 공동 대응을 요청했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식당 주변으로 다른 식당들이 가깝게 붙어있었고 인근에 시장도 있어 불이 커지면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경감은 경찰 조끼 속에서 드라이버처럼 생긴 장비 하나를 꺼냈다. 해당 장비를 열쇠 구멍으로 넣고 몇 차례 돌리니 문이 열렸다. 식당에 들어가 보니 가스레인지가 켜져 있었다. 곧바로 가스를 차단한 뒤 탄내와 연기가 배출되도록 조치했다. 이 경감은 "자살기도자나 화재 발생 시 빨리 문을 개방해야 할 경우가 있는데 빠른 대처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유튜브 등을 통해 문 개방
"집주인이 전화를 받지 않아서 전기료도 못 내고 있어요." 지난해말 서울 영등포경찰서 민원실로 '전세사기' 수사를 의뢰하는 임차인들 발길이 이어졌다. 150여세대와 전세임대차 계약을 맺은 건물주는 어느날 잠적했다. 강경상 영등포서 지능범죄수사2팀장(53·경감)과 팀원들은 타 경찰서에 접수된 변씨 관련 전세사기 사건까지 맡아 병합 수사했다. 실시간으로 크고 작은 고소·고발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일선서 수사과는 경찰 내에서 업무량이 많다는 평을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도 강 팀장과 팀원들은 약 8개월간 수사 끝에 130억원규모 전세 사기를 벌인 일당 전원을 검찰에 넘겼다. 강 팀장은 "우리팀의 주수사관이 수사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며 "이번 사건에 대해 영등포서를 집중수사관서로 지정해주시길 요청했다"고 했다. ━서울 영등포·금천·동작 일대 130억원대 전세사기…임대사업 동업자, 명의 대여자까지 일망타진━ 우선 강 팀장과 팀원들은 세입자들 피해 접수에 집중했다. 경찰은 변씨와 구씨가 소유
# 지난 4월12일 서울 서초구 한 아파트 15층 난간에 20대 대학생이 올라섰다. 동 트기 전인 오전 4시 잿빛 하늘. 우뚝 선 사람 실루엣만 보였다. "한 남성이 뛰어내리려고 한다"는 112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소방에 공동 대응을 요청했다. 소방은 혹여 학생이 뛰어내릴 경우를 대비해 에어매트 설치에 나섰다. 주민들이 귀가해 잠든 시간이라 주차장은 꽉 차 있었다. 차량을 빼고 에어매트가 들어갈 만한 자리를 확보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에어매트에 40%쯤 공기가 주입됐을 때였다. 좁은 난간에 위태롭게나마 서 있던 학생이 떨어졌다. 학생은 심정지 상태로 사망했다. 눈앞에서 투신한 학생을 본 경찰관은 온종일 잔상을 봤다. '차량을 빼고 에어매트를 설치하는 동안 옥상에 올라가 설득했다면 살릴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다음 날인 4월13일 오전 5시 같은 아파트 단지 옆 동에서 또 다른 사람이 투신해 사망했다. 한 아파트에서만 연이틀 극단 선택이 발생한
"중학교 졸업 기념 킥보드 탑니다." "정모 겸 폭주 진행합니다. 경찰차는 다 털릴 준비 하세요." 서울시 공유자전거 '따릉이' 등 폭주족인 이른바 '따폭연'(따릉이 폭주 연대)이 SNS(소셜미디어)에 올린 글 내용이다. 주 연령층이 10대인 이들은 공유형 자전거, 전동킥보드 등 수단을 이용해 질주하는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려왔다. 빠른 속도로 행인을 치고 가거나 경찰을 조롱하는 내용이 영상에 포함됐다. 지난 4일 따폭연은 오후 6시 따릉이 폭주족 집결을 예고했다. 서울 최고 기온이 40도에 육박하던 날 경찰 123명은 서울 시내 37곳에서 순찰에 나섰다. 하지만 폭주족은 나타나지 않았다. 경찰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따폭연은 SNS를 통해 같은 달 10일 또 다른 장소에서 폭주 계획을 알린 상태였다. 송파경찰서 여성청소년과 박지환 경장은 송파서 관내에서도 따폭연이 모인다는 112신고를 접했다. 쉬는 날이었지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등 SNS 모니터링을 시작
"차가 전날 주차한 장소와 다른 곳에 세워져 있어요. 블랙박스 칩도 빠져있어서 뭔가 이상해요." 지난달 7일 서울 중랑경찰서에 범죄 의심 신고 하나가 접수됐다. 누군가 자신의 차량을 몰래 이용한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이튿날 사건을 넘겨받은 중랑경찰서 강력5팀 김대근 경위(43)는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피해자가 거주하는 아파트 지하 주차장 CCTV(폐쇄회로TV)부터 살펴봤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를 쓴 채 지하 주차장을 맴도는 남성이 보였다. 그는 총 3층짜리 지하 주차장을 돌며 사이드미러가 펴진 차 위주로 차 문을 당겼다. 피해자의 차는 사이드미러가 펴진 채 차 문이 열려있는 상태였다. 남성은 피해자 차량에 탑승하더니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가 약 3시간 뒤쯤 다시 돌아왔다. 피해자가 주차했던 자리는 이미 차 있어 다른 층에 주차한 뒤 사라졌다. 김 경위와 팀원들은 방범용 CCTV와 사설 CCTV 100여대를 확보해 남성의 동선을 추적했다. 남성은 중랑구 외에도 노원구 등 여
"사람 살려. 납치 강도. 사람 죽어요." 지난 4월18일 오후 7시7분쯤, 경기북부경찰청 112상황실에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자는 괴성을 지르며 납치 강도를 당했으니 살려달라고 했다. 신고자 위치값을 살펴보니 남양주시 별내휴게소 부근 세종포천고속도로였다. 가장 먼저 차량 이동 경로를 파악하는 게 중요했다. 신고 내용이 진짜인지도 확인해야했다. 당시 상황실에 있던 '24년차 베테랑' 정영래 경감은 52분 동안 신고자와 전화 통화를 이끌며 두 가지 단서를 쫓았다. 그는 빠른 판단력으로 신고자 위치를 특정했다. 신고자가 마약범이라는 사실까지 유추했다. 정 경감이 속한 상황팀은 해당 사건으로 국가수사본부에서 '베스트 마약 투약 척결팀' 인증패도 받았다. ━피 말리는 52분 추적…어떻게 운전자 위치 파악했나━ 당시 정 경감은 112 신고를 받자마자 긴급 상황이라 판단했다. 종합지령대 전화를 이용해 스피커폰으로 내부 공청을 실시했다. 후배 경찰에게 무전으로 질문 방향성을 알려주는 등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