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서 한국 온 지 36년째 '노숙인 무료 급식 봉사'…"어머니와 헤어질 때 눈물, 하지만 다른 이 도와야 해"

지난 2일. 김하종 신부(68)가 무거운 여행 가방을 내려놓았다. 추석을 앞두고 휴가차 찾은 고향 이탈리아. 눈앞에는 아흔이 넘은 노모가 있었다. 모처럼 머물며 김 신부는 가족들과 집안일을 하고, 커피를 마시며 해돋이를 보고, 저녁엔 벽난로 앞에서 밀린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는 어머니와 헤어질 시간이었다.
김 신부는 어머니를 꼭 껴안았다. 그리고 이마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다시 여행 가방을 들고 현관을 지나 문턱을 넘었다. 집 계단을 내려가며 김 신부는 마음이 산산조각 나는 것 같았다.
"문 뒤에는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었지요. 심장 수술을 해 건강도 좋지 않으시고요. 저는 장남입니다. 어머니 곁에서 부양해야 할 사람이지요."

그런데도 작별해야 했다. 1998년부터 그가 설립해 운영해 온 '안나의 집'. 그해 IMF가 터졌을 때 길 위의 사람들이 늘었다. 실직자와 노숙인이 넘쳤다. 김 신부는 이들을 위해 밥을 지어 주기 시작했다. 2020년부터 코로나19 사태가 불거져 인근 무료 급식소가 문을 다 닫았을 때도, 36년째 한결같이 그 자릴 지키고 있다.
하루 한 끼를 세 끼로 나누며 굶주림을 채우는, 500명이 넘는 이들이 그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김 신부는 집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뒤엉킨 생각과 솟구치는 감정이 그를 압도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하지만 가야 한다고, 예수께서 나를 부르신다고, 다른 이들을 맞이하고 도와주고 사랑하도록 책임을 맡기셨다고.

김 신부는 "평생 한국의 가난한 이웃들, 독거 어르신들을 위해 헌신했지만, 정작 사랑하는 내 어머니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해드린 것이 없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고 말했다.
푸른 눈의 산타, 노숙인의 대부인 그는 그렇게 한국에 돌아와 다시 앞치마를 멨다. 오늘도 굶으며 그를 기다린 노숙인들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