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 기간 탄광에서 근무한 노동자 근로 중 얻은 진폐증으로 인해 우울증이 악화해 극단적 선택에 이르렀다면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있단 법원 판단이 나왔다.
28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0부(부장판사 정은영)는 최근 고인 A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진폐 유족연금 및 장례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A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배경에 업무로 인해 얻은 질병의 영향이 있었음을 인정한단 취지다.
A씨는 탄광에서 광원으로 근무하다 1986년 진폐증을 진단받았다. 이후 병원에서 오랜 기간 요양을 하다 2023년 10월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A씨는 사망 전 불안장애와 수면장애, 우울 에피소드를 진단받은 이래로 같은 증상으로 진료를 받아왔다. A씨의 자녀들은 근로복지공단에 진폐 유족연금 및 장례비용을 청구했다. 그러나 공단은 2024년 3월 '진폐증과 사망 사이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비용을 지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 처분에 불복한 자녀들이 심사청구를 냈으나 기각됐고 산업재해보상보험 재심사위원회에 제기한 재심사청구도 기각됐다. 이에 자녀들은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자녀들은 A씨 사망이 업무로 얻은 진폐증과의 인과관계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진폐증과 만성폐쇄성 폐질환을 진단받은 이후 호흡곤란 증상이 악화되고 합병증 등으로 인해 수면 장애와 불안장애 증상을 겪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망 직전 진폐합병증인 기흉 관련 증상으로 정신질환이 더욱 악화돼 정상적 인식능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A씨 자녀들의 손을 들어줬다. 사망과 업무와의 인과관계를 인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망인은 업무상 질병인 진폐증으로 인해 발생한 우울증 등 정신질환이 악화돼 정신적 억제력이 결여되거나 현저히 저하돼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서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된 것이라 추단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A씨가 사망하기 약 1년 전부터 폐 기능이 급속하게 악화했을 뿐 아니라 그 무렵 호흡곤란을 지속해서 호소해 왔는데 호흡곤란은 불안과 공포를 증가시키는 요소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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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진폐 합병증으로 인해 망인의 기존 불안장애, 우울 등의 증상이 더욱 악화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망인이 앓고 있던 다른 질병 등이 불면증, 우울증의 주된 악화 원인으로 작용했을 만한 요소도 찾을 수 없다"고 짚었다.
A씨가 의사로부터 폐 질환이 개선되지 않을 것이란 말을 들은 점도 참작됐다. 완치를 기대하기 어려운 질병으로 인해 입원 생활이 장기화하면 불안·우울·불면 등 다양한 정신병리가 유발될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재판부는 A씨가 '가만히 있어도 숨이 차고 기력도 없어 일상이 너무 힘들고 지친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겠다' 등 표현을 했던 점에 비춰 극단적 선택 무렵에 깊은 절망감과 무력감에 빠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법원 감정의는 재판부에 "기흉·객혈·가래 등 다수의 중증 폐 질환의 동시다발적 발생으로 인한 압도적인 외상 경험과 공포감이 극단적 선택에 영향을 미쳤을 개연성이 있다"며 "호전을 기대할 수 없는 질병의 악화와 전반적인 신체 기능의 감퇴는 삶의 의지를 약화하는 충분한 요인이었으며 특히 장기 투병으로 인한 고통과 고령을 고려하면 그 영향은 더욱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판단된다"는 취지의 의견을 밝힌 것으로 파악됐다.
이 판결은 근로복지공단에 판결에 승복하면서 지난달 14일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