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銀인수, 금융지주사는 다를 수 있다?

저축銀인수, 금융지주사는 다를 수 있다?

현상경 기자
2011.01.12 10:46

[thebell note]

더벨|이 기사는 01월10일(11:33) 머니투데이가 만든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저축은행 매각 협상은 천편일률적으로 진행된다.

일단 부실을 견디지 못한 대주주가 매각의사를 밝힌다.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처음에는 1000억 안팎의 매각대금이 거론된다. 곧바로 잘 알려진 인수후보, 이른바 중형규모의 사모펀드(PEF), 소형 증권사, 영업망 확충이 필요한 캐피탈사 등을 찾아 나선다.

최초에는 전액 구주매각이 됐든, 아니면 신주 유상증자 위주가 됐든 대주주에게 현금이 일부 제공되는 거래구조가 짜여진다. 주인자리를 포기하고 나가는 마당이니 주머니라도 좀 채워지기를 바라는 게 인지상정.

인수후보들 대부분은 일단 매물에 흥미를 보인다. 바라는 바는 대동소이하다. 영업망 확대와 예금금리 소폭 상승만으로도 늘어나는 저축은행의 수신고 활용.

부푼 꿈을 안고 예비실사가 시작되면서 서서히 "얼마를 투입하면 저축은행이 정상화되느냐"는 구체적인 증자 규모가 거론된다. 매각자는 조금이라도 현금을 챙겨가길 원하고 인수자는 최소한의 자금으로 회사 정상화를 기대한다.

실사가 막바지에 오면서 슬슬 판이 깨진다. "1000억은 커녕, 2000~3000억원은 들어가야 부동산PF 부실이 해결되겠더라"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실갱이가 벌어지면서 협상이 흐지부지 된다. 이때부터 인수후보는 이런저런 저축은행 인수 경험자를 찾아 조언, 정확히는 매각을 포기해야 할 '이유'를 구한다. 동시에 매각자는 다른 인수자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시장이 워낙 좁다보니 실사결과나 진행상황이 실시간으로 퍼진다. 당초 1000억원으로 거론된 매각규모는 700억원까지 떨어지고 필수 증자비율은 늘어난다. 다시 위 과정이 반복되고 이번에는 시초가 700억원(구주 기준)부터 위 과정이 반복된다. 짧으면 1년, 길면 3년 이상 동안 이어진다.

P저축은행, S저축은행, H저축은행 할 것 없이 지난 수년간 부실저축은행 매각은 한결 같이 이 과정을 거쳤다. 성사 여부를 갈랐던 요인은 간단했다. 인수자가 자금력이 정말 넘쳐났거나, 부실을 떠안더라도 해당 저축은행을 인수해야 할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경영진의 판단력이 부족할 경우였을 것이다.

대책반장 출신의 금융위원장 취임 이후. 그렇게도 시장이 꺼려한 저축은행 부실처리가 금융지주사 활용을 통한 해결 방식으로 삽시간에 추진되고 있다. 인수자가 금융지주사쯤 되면 매각을 난항에 빠뜨린 요인들이 쉽게 해결된다. 일개 캐피탈사나 증권사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자금력이 있고, 대주주 적격성 판단 여부에도 무리가 없다. 시장안정을 위한 속도감을 내기에는 최적의 방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 협상과정에 들어가면 역시 비슷한 모양새가 반복되지 않을까 싶다.

KB금융지주든, 우리금융지주든 실무선에서는 조금이라도 부실이 적은 저축은행을 인수하려고 안간힘을 쓰게 된다. 처음에는 자료를 모으고 적정 인수규모와 투입금액 예상치를 내 본다. 정작 실사를 시작하고 나면 "이만큼 부실이 클 줄 몰랐다", "실사해보니 OOO저축은행은 1000억원 갖고는 안 되겠더라"라는 소문이 나오게 된다. 하지만 100% 사적인 딜이 아니다보니 '인수포기'를 선언할 상황은 못 된다.

이러다보면 지금은 은행권이 입을 모아 반대하는 예금보험공사의 공동계정 설치와 확대에도 서서히 긍정적인 기류가 생길지도 모른다. 어차피 은행 돈을 들여 저축은행을 구조조정하는 마당에 직접 계정에서 쓰든, 기금으로 모아 쓰든 매한가지니 말이다.

저축은행 인수 이후 해야 할 일도 뻔하다. 감시가 소홀했던 리스크관리 시스템을 은행권 수준으로 높이고, 여신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고. 중장기적인 먹거리를 위해 부동산 PF이외의 고수익 사업을 찾아내고....

하지만 이 뻔한 답을 두고도 H저축은행, S저축은행 등을 인수했던 새 주인들은 골머리를 앓아 왔다. 저축은행의 부실수준이 양적, 질적으로 워낙 방대한데다 얽히고 설킨 난제들로 인해 관행을 개선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

금융지주사가 추진하는 저축은행 인수가 과거와는 '다르다'라는 소리를 들으려면? 인수 이후 저축은행을 더 이상 저축은행이 아니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임원들을 통째로 갈아치우는 한이 있더라도 실패했던 부실대출 관행을 철저히 해결하고,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전면 개혁해야 한다. 어쩌면 수익사업 부족으로 날이 갈수록 예대마진이 줄어드는 상황이니 아예 저축은행을 통한 이익확보를 포기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따져보면 극히 보수적이었던 금융지주사였기에 역설적이게도 '서민금융 지원'이라는 본래 목적에 가장 충실하도록 저축은행을 만들어 줄 수도 있다. 그 정도는 돼야 '깜짝 대책'의 뜻이 통하지 않을까.

다만 그 와중에도 금융지주사 자체의 수익성 부실은 감내해야 한다. 어쩌면 소액주주들이 단결해 저축은행 인수를 결정한 금융지주사측에 '배임'을 물을지도 모른다.

선뜻 "우리 의지로 저축은행을 사겠소"라고 선언했을 정도면 소송 쯤이야 각오했을 것이다. 바야흐로 금융지주사가 '시장질서 수호자'가 되기로 했으니 그 결과를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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