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철 부회장 "'투기자본의 천국' 오명 없앨 것"…정부에 관련 '포이즌필' 도입등 법·제도 개선 적극 요구할 듯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가삼성물산과제일모직(298,500원 ▼10,000 -3.24%)합병에 반대하며 공격에 나선 가운데, 재계가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을 차단하기 위한 종합대책 마련에 나서기로 했다.
재계는 그동안 우리 기업들이 여러 차례 해외자본에 휘둘려 온 것이 근본적으로 '방어막'이 미미했기 때문이라고 판단, 관련 법·제도 개선을 위해 적극 나설 계획이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상근부회장은 9일 경기 의정부 미2사단에서 열린 행사에서 본지 기자와 만나 최근 엘리엇 사태와 관련, "기업의 경영이 악화된 것도 아니고 사업 개편을 진행하는 중인데 해외 헤지펀드가 이 틈을 타 들어오는 상황은 참 안타깝다"며 "결국 질이 안 좋은 투기자본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러면서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이런 경우는 드문데 오죽하면 한국이 '투기자본의 천국'으로 까지 불리겠냐"고 반문하며 "이것은 상법 등 전반적인 제도나 정책 방향이 잘못됐음을 방증하는 것으로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원인을 분석하고 종합적인 대책을 짜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2000년대 들어 해외 투기 세력이 국내 법·제도의 허술한 틈을 타고 국내 주요 대기업들을 공격해왔고, 해당 기업들이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막대한 국부가 유출됐다는 게 재계의 인식이다.
대표적으로 2003년 SK그룹이 소버린 펀드로부터, 2006년 KT&G가 미국의 세계적 기업 사냥꾼인 칼 아이칸으로부터 거센 경영권 위협을 당한 바 있다. 삼성물산에 대한 외국 자본의 공격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4년 영국계 펀드인 헤르메스가 삼성물산의 지분 5%를 사들여 우선주 소각을 요구하면서 경영 분쟁을 일으켰었다.
전경련은 이런 일련의 사례들이 구조적인 제도상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개별 기업의 대응을 넘어선 범 재계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신석훈 전경련 기업정책팀장은 "1997년 이후 자본을 개방하면서 우리 기업들에 적절한 방어 장치를 마련해줬어야 하는데 현재는 창(해외자본)의 공격만 있고 방패는 없는 상황"이라며 "우리 기업들의 취약점을 파악해 공격하고 우리기업들이 위축되면 '먹튀'하는 안타까운 상황들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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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전경련은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이나 '차등의결권주' 같은 기업 경영권 방어 수단의 도입 논의에 다시 불을 지피겠다는 입장이다. 포이즌필은 적대적 M&A가 벌어질 경우 기존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지분을 매입할 수 있도록 미리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로 대다수 선진국이 시행 중이다.
차등의결권주도 보통주의 몇 배에 달하는 의결권을 가진 주식으로 구글이나 포드 등 글로벌 기업들은 경영권 안정을 위해 창업자들에게 이를 부여해 적극 활용 중이다.
신 팀장은 "그동안 포이즌필이 계속 논의가 되다 2009년 상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경제민주화 이슈가 커지면서 진전되지 않았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다시 논의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