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신경영 선언 30주년-②]선제적 혁신으로 20개 품목 세계 1위 올라

1993년 6월 7일은 삼성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날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수백여명의 임원을 불러 모은 이건희 선대회장은 "마누라·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충격적인 말로 변화와 혁신을 주문했다. 이른바 '신경영 선언'이다. 이후 삼성은 반도체와 스마트폰, TV 등 20여개 품목에서 1위를 하는 세계 일류 기업이 됐다. 전자 기업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애플과 아마존을 제칠 정도다.
신경영 선언이 있던 해인 1993년 삼성전자의 연간 매출은 약 28조원, 자산은 41조원 규모였다. 시가총액도 3조원 규모에 불과했다. 그러나 현재 연간 매출액 302조원, 자산 448조원(2022년 기준)으로 10배 넘게 불어났다. 시가총액은 431조원, 계열사를 합치면 612조원 규모로 국내 기업 중 1위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 전체로 시야를 넓혀 봐도 엔비디아, TSMC와 1~3위를 다투고 있다.
삼성이 '초일류 기업'으로 거듭난 데에는 선제적 혁신이 주효했다. 이 선대회장은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미답지를 먼저 개척해야 한다고 봤다. 대표적인 사례가 반도체와 휴대전화다. 한국반도체를 인수할 때에도, 첫 번째 메모리 제품으로 D램을 선택할 때에도 주위의 반대와 우려가 잇따랐으나 개의치 않았다. 되레 "사재를 털어서라도 반도체에 나서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총수가 굳건하니 결과도 뒤따랐다. 그룹의 핵심 사업으로 성장한 반도체 부문에서는 1994년 세계 최초로 256메가 D램을 개발했으며, 1996년에는 1기가 D램을 만들었다. 세계 최초로 복층 구조 생산라인을 만든 것도, 메모리 강국 일본을 넘어서고 차세대 대용량 저장장치인 SSD를 상용화시키고 모두 삼성의 작품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단일 반도체 공장도 삼성이 갖고 있다.
인재를 우선시하는 '일하기 좋은 기업'도 삼성의 몫이다. 삼성은 국내 최초 대졸 여성 신입사원 공채를 신설하고, 오전 7시~오후 4시 근무제를 도입했다. 본사 기준 4만 7607명(1993년)이던 임직원 수는 지난해 말 12만 827명으로 늘었다. 전세계에서 삼성 이름표를 달고 근무하는 임직원은 26만명이 넘는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삼성전자를 3년 연속 '세계 최고의 직장'으로 꼽았다.
삼성은 최근 제 2의 '신경영선언'으로 다시금 장벽을 넘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미중 갈등과 세트(완성품)수요 급감, 인플레이션으로 전례 없던 보릿고개를 넘고 있다. 삼성전자의 올 1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95.5% 급감한 6402억원이며, 주력인 반도체 부문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악인 4조 5800억원의 적자를 냈다. 금융가는 2분기에도 영업이익 2128억원으로 바닥을 찍을 것으로 내다본다.
삼성은 메모리 점유율을 공고히 하면서 파운드리(위탁 생산) 시장에서 1위 자리를 탈환하겠다는 각오다. 투자도 대폭 늘렸다. 2042년까지 300조원을 투입해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할 계획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은 반도체나 모바일 등 주력 부문 외에도 로봇이나 원격의료 등 새 시장에서의 무한 경쟁에 직면했다"라며 "지금이야말로 새 차원의 변화와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