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K웨이브 올라탄 K이니셔티브 현장을 가다] 총론 (上)
수출 1조달러 'K브랜드', 현지화로 전인미답의 길 간다
-'K브랜드 3.0' 시대

K푸드와 K뷰티를 중심으로 세계 시장을 휩쓸고 있는 K브랜드가 수출 1조 달러 시대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K브랜드는 이제 전세계가 즐기는 하나의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이 됐다. 변방에서 밀려오는 파도가 아니라, 세계 문화라는 거대한 바다의 흐름을 주도하는 심해의 해류로써 존재감을 뽐낸다. 전 세계인이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의 감각을 소비하는 건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뉴노멀이 된 것이다.
K브랜드의 경쟁력은 단순히 '한국에서 만들어 해외에 파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현지 소비자의 입맛과 취향을 읽고, 현지에서 생산하며, 현지 기업과 함께 성장하는 'K브랜드 3.0' 시대로 가고 있다. K이니셔티브(K-Initiative, 한국이 글로벌 표준을 주도한다는 뜻)의 성공 열쇠가 '현지화'에 달렸다.
과거 K브랜드의 해외 진출은 국내에서 생산한 제품을 수출하는 방식이 주류였다. 하지만 물류비와 관세 부담은 물론 지정학적 리스크와 공급망 불안이 커지면서 기존 방식만으론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기 어려워졌다. 이에 국내 기업들은 아예 해외에 생산기지를 세우고 현지에서 생산해 현지에 공급하는 전략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CJ제일제당이다. 미국 냉동식품 공장 인수 등을 통해 현지 생산 기반을 확대하면서 미국 내 주요 거점을 연결하는 공급망을 구축했다. 코스맥스와 한국콜마 역시 해외 생산시설을 기반으로 현지 인디 브랜드를 육성하며 K뷰티의 글로벌 확산을 지원하고 있다.
K유통도 마찬가지다. 국내 대형마트와 백화점, 편의점의 해외 진출도 새로운 수출 모델을 보여준다. 베트남과 몽골 등에서 한국 편의점은 단순히 상품을 판매하는 소매점이 아니다. 현지 소비자 취향을 반영한 PB상품을 선보이는 동시에 카페와 택배, 금융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생활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현지화는 단순히 '어디에서 생산하느냐'에 그치지 않는다. 무엇을 만들고 어떻게 팔 것인지까지 현지 소비자에 맞추는 게 핵심이다. 기업들은 AI(인공지능)와 빅데이터를 활용해 현지 소비자의 취향과 소비 패턴을 분석하고 국가별 전용 제품과 브랜드를 내놓고 있다.
이재명 정부 2년차인 올해 사상 처음으로 달성할 것으로 보이는 수출 1조 달러는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지는 게 아니다. 반도체와 자동차 같은 주력 산업의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는 동시에 K푸드·K뷰티·K유통 등 새로운 수출 전선을 끊임없이 만들어야 한다. 세계 시장에서 K브랜드의 위상을 높이는 것은 단순한 브랜드 전략을 넘어 국가 수출 경쟁력을 키우는 핵심 과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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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성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코트라) 사장은 "미중 패권 경쟁, 관세, 중동전쟁에서 보듯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 기업들이 기회를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며 "글로벌 격전지에서 펼쳐지고 있는 K브랜드의 현지화에서 성공 전략을 짜야한다"고 말했다.
비비고·불닭 해외 생산 더 늘린다…K뷰티, 본고장 미국·유럽 공략
-현지 생산 확충, 현지화 전략

국내 기업은 K열풍을 내수 부진을 극복할 '돌파구'로 인식하고 현지화 전략에 주력한다. 국내 제조 상품 수출을 넘어 해외에 직접 생산시설을 구축하고, 현지 핵심 입지에 위치한 대형 유통망을 뚫는 전략을 선택했다. 사업의 중심축을 국내에서 해외로 전환해 명실상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겠단 포석이다. 그 저변엔 내수 기반 사업 구조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 어렵고, 언제든 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 의식도 깔려 있다.
◆ CJ제일제당 해외 매출 첫 50% 돌파...농심·삼양식품 K라면 해외 생산 확대
만두, 김, 치킨 등 각종 간편식 '비비고(bibigo)' 브랜드를 해외시장에서 선보인 CJ제일제당은 지난해 해외 식품사업 매출 5조9247억원을 기록하며 창사 이래 처음으로 국내 매출을 제쳤다. 지난해 매출 3조5000억원을 돌파한 농심은 전통의 신라면과 해외 전략 상품 신라면 툼바를 앞세워 2030년까지 해외 매출 비중을 60% 이상으로 높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불닭' 신드롬으로 해외 매출 비중이 84%에 달하는 삼양식품은 브랜드 확장에 방점을 찍었다.
해외 시장에서 인기가 검증된 상품은 현지에 직접 공장을 짓고 생산 능력을 끌어올린다. CJ제일제당은 미국에서만 20개 식품 제조공장을 가동 중이다. 삼양식품은 해외 매출의 약 40%를 차지하는 중국 시장을 겨냥해 자싱 지역에 전용 공장을 구축해 내년부터 본격 가동할 계획이다.
파리바게뜨는 내년 가동을 목표로 미국 텍사스에 제빵 공장을 건립 중이다. CJ푸드빌 뚜레쥬르는 올해 1월부터 미국 조지아주에서 북미 가맹점에 공급하는 냉동 생지와 케이크 생산 설비를 가동 중이다.
판매 거점도 현지 소비자의 일상 유통망으로 확장하는 추세다. 농심은 호주 최대 슈퍼마켓 체인 울워스에서 한국 라면 브랜드 최초로 아시안 식품 코너가 아닌 메인 라면 매대에 진입했다. 삼양식품 불닭 시리즈는 미국 월마트 전 지역 매장에 공급 중이다. 이제 K라면이 이색 상품이 아닌 현지인이 자주 찾는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잡았다는 방증이다.
K푸드를 알리는 방식도 현지 식문화 맞춤형으로 진화하고 있다. 비비고 만두는 미국인에게 친숙한 닭고기와 고수를 속재료로 넣어 대박을 친 케이스다. bhc는 베트남에서 현지 소비자에게 익숙한 '치밥' 문화를 반영해 조각 치킨과 흰쌀밥을 메뉴 구성에 넣었다. 불닭 시리즈는 매운맛에 익숙치 않은 글로벌 소비자를 위해 치즈와 까르보나라 등 크리미한 맛을 가미했다.
아시아 최대 식품박람회인 태국 '타이펙스-아누가'부터 프랑스 파리 국제식품박람회 '시알(SIAL)'까지 세계 어디서나 K푸드 기업의 부스나 푸드트럭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친숙한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현지 음악축제와 게임 행사, 지역 축제 등 소비자와 만나는 방식도 다양해졌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K푸드는 이제 수출 이상의 단계를 고민하고 해외 사업을 키워나가야할 때"라며 "현지 고유의 문화를 우리 상품에 녹여내고 시장에 얼마나 깊숙이 들어가느냐가 글로벌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 K뷰티 중국 넘어 본고장 미국·유럽 공략...현지 오프라인 채널 진출

K뷰티 기업들은 중국에 집중한 과거와 달리 뷰티의 본고장으로 꼽혔던 북미와 유럽 시장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반짝 인기에 그치지 않고 중장기적인 성장을 노린 포석이다. 수출 지역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현지 대형 유통망 입점과 오프라인 매장 확대 등 소비자 접점을 넓히는 방식을 선택했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화장품 수출액은 15억1000만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31.4% 증가했다. 월간 기준 역대 최대 규모로, 종전 최고였던 올해 4월과 7월의 13억5000만달러도 넘어섰다. 중국과 미국, 아세안, 유럽연합(EU) 등 주요 지역에서 수출이 고르게 늘면서 전체 실적을 끌어올렸다.
이 같은 시도는 실적 변화로 이어졌다. 아모레퍼시픽은 올해 2분기 해외 매출이 551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8% 증가했다. 특히 미주 매출이 57%, 유럽·중동·아프리카(EMEA) 매출이 63% 늘면서 성장세를 견인했다. 해외 사업 영업이익은 718억원으로 약 2배 늘어났다.
에이피알의 2분기 해외 매출은 7042억원으로 1년 전보다 178% 늘어났다. 북미와 유럽 매출 비중은 지난해 2분기 40%에서 올해 68%로 대폭 상승했다. SNS(사회관계서비스망) 등을 통해 온라인에서 소비자를 확보한 뒤 부츠와 세포라 등 현지 대형 유통망에 입점하며 판매 채널을 넓히고 있다. 10월에는 런던에서 첫 단독 팝업스토어도 연다.
구다이글로벌의 대표 K뷰티 브랜드 '조선미녀'는 영국 부츠 1263개 매장과 슈퍼드러그 약 760개 매장에 입점했다. 독일 더글라스에서 진행한 단독 팝업에는 약 2000명이 방문했으며 영국 틱톡샵 행사에서는 올해 1~8월 평균 대비 일평균 매출이 4배 수준으로 뛰었다.
◆ 미국, 일본 K패션 깃발 휘날리는 K백화점

백화점 업계는 유망 K패션, K뷰티 브랜드를 발굴해 해외 시장 판로를 확충하는 '글로벌 인큐베이팅' 전략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의 K브랜드 연계 플랫폼 '하이퍼그라운드'는 프랑스, 태국, 일본 등에 이어 최근 미국 뉴욕 중심 상권인 허드슨야드(Hudson Yards)에서 대규모 팝업 행사를 열었다. 성수, 북촌, 한남 등 국내 핫플레이스에서 주목받는 30여개 뷰티, 패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한 데 모아 현지 소비자와 바이어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롯데백화점은 베트남을 핵심 거점으로 삼고 웨스트레이크 하노이 등 대형 쇼핑몰을 성공적으로 운영 중이다. 현지 상류층 라이프스타일을 겨냥한 쇼핑, 문화, 레저 복합 공간을 구축해 성과를 냈다. 이곳에선 유망 K패션 브랜드의 해외 진출을 돕는 '넥스트랩' 플랫폼을 운영 중이다.
현대백화점은 기획과 팝업 스토어 운영 전략을 무기로 해외 진출에 주력한다. 패션 중심지인 프랑스 파리, 도쿄 시부야와 오모테산도 등에서 '더현대 글로벌(The Hyundai Global)' 플래그십스토어를 선보여 인기를 끌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국내 백화점이 해외 패션, 소비 트렌드를 이끄는 트렌디한 쇼핑 공간으로 브랜딩하고 있다"며 "유망 K브랜드 진출을 지원하면서 자사 글로벌 브랜드화 전략까지 동시에 염두에 둔 행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