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서 TV 뉴스도 못 틀었다"…한남동에 남은 계엄 트라우마

"식당서 TV 뉴스도 못 틀었다"…한남동에 남은 계엄 트라우마

박상혁 기자, 김서현 기자
2025.12.02 07:25

[MT리포트] 비상계엄 1년, 12.3이 남긴 것 ③-5 조용한 한남동 관저 일대

[편집자주] 12.3 비상계엄 이후 1년이 지났다. 국민의 힘으로 계엄은 저지됐다. 민주주의는 복원됐고, 경제는 회복 중이다. 역사적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그날의 기억을 되살리는 한편 12.3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들도 다시 살펴본다.
28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일대 거리 모습. 행인들이 적어 한산한 모습이었다. /사진=김서현 기자.
28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일대 거리 모습. 행인들이 적어 한산한 모습이었다. /사진=김서현 기자.

"처음 보는 광경이라 지금 떠올려도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입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죠."

11월말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관저 일대는 차분한 분위기였다. 거리엔 직장인 등 몇몇만 오갔다. 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차량 소음이 선명히 들릴 만큼 주변은 조용했다. 차도 통제는 없었다. 길가엔 쓰레기도 없었다.

하지만 올해초에는 달랐다. 귀를 막아야 할 정도로 시끄러웠고 소음은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윤석열 전 대통령 체포 과정에서 찬반 집회 참가자들이 몰려들며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한파주의보 등 추위는 사람들을 막지 못했다.

식당 주인 최모씨(48)는 그때의 혼돈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그의 가게 앞은 집회 인파로 가득 찼고, 한겨울 추위 속에서도 소음이 종일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18년 넘게 이곳에서 장사했지만, 그런 상황은 처음이었다"라며 "일하는 가게가 역사적 현장의 한가운데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라고 했다.

지난 1월15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윤석열 전 대통령 지지·응원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지난 1월15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윤석열 전 대통령 지지·응원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지난 1월15일 두번째 체포 시도가 진행됐고 식당 근처는 아수라장이 됐다. 최씨는 "탄핵 반대 진영 집회 참가자들이 내려와 곳곳에 쓰레기를 버렸고, 노상 방뇨하는 사람도 많았다"라고 말했다. 이어 "동네가 순식간에 지저분해졌지만 민감한 분위기 속에서 민원을 넣기조차 어려웠다"라고 했다.

최씨는 식당에서 정치 관련 TV 뉴스는 아예 틀지 않았고, 채널을 바꿔 달라는 요구가 들어오면 "갑자기 고장 났다"고 둘러대며 코드를 뽑기도 했다. 서로 다른 진영의 손님이 마주쳐 실랑이를 벌일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지금은 안정을 되찾았지만 '언제 또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여전히 스친다. 최씨는 "올해는 평생 잊지 못할 한 해로 남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확성기 소음에 동네 전체가 울렸다…한남동 주민의 '그날'
28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 거주지 일대 모습. 이곳 역시 한산한 모습이었지만 올해 초 이곳은 집회 참가자들로 소란스러웠다. /사진=김서현 기자.
28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 거주지 일대 모습. 이곳 역시 한산한 모습이었지만 올해 초 이곳은 집회 참가자들로 소란스러웠다. /사진=김서현 기자.

한남동 관저 인근 주거지도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202경비대 직원과 보안 인력이 오갈 뿐이다. 주민 외 사람은 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올해초만해도 주민들은 온종일 이어진 소음과 혼잡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다. 밤늦게까지 계속된 집회로 일상도 크게 흔들렸다.

15년 넘게 거주한 전모씨(55)는 잇따른 집회로 출퇴근 등 이동에 큰 불편을 겪었다. 그는 "도로가 완전히 막혀 평소 10분이면 가는 길을 두 시간이나 걸려 이동한 적도 있었다"라고 했다.

전씨를 가장 많이 괴롭힌 건 집회 소음이었다. 집회 참가자들이 주거지가 있는 고지대까지 올라와서 확성기를 들고 농성을 이어갔다. 그는 "좌우든 정치적 성향을 떠나 주민에게는 일상의 편안함이 제일 중요하지만, 하루 종일 소음이 이어졌고 욕설도 자주 들렸다"라며 "자녀가 있는 가정이었다면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하고, 시위가 멎은 4월부터는 주민들도 그때의 일을 꺼내진 않는다. 말은 안 해도, 모두 기억하기 싫었던 아찔한 경험이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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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혁 기자

안녕하세요. 사회부 박상혁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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