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상장 금지의 딜레마
모회사의 알짜 사업부문을 떼서 상장하는 중복상장이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중복상장이 모회사 주주가치를 훼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복상장이 코리아디스카운트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이유다. 다만 중복상장이 기업의 자금조달을 막고 투자자의 자금회수에도 걸림돌이 된다는 주장도 적잖다. 또 산업계의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가혹한 조치라는 불만도 나온다. 중복상장 금지가 효율적으로 시장에서 작동하기 위한 조건을 모색해 본다.
모회사의 알짜 사업부문을 떼서 상장하는 중복상장이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중복상장이 모회사 주주가치를 훼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복상장이 코리아디스카운트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이유다. 다만 중복상장이 기업의 자금조달을 막고 투자자의 자금회수에도 걸림돌이 된다는 주장도 적잖다. 또 산업계의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가혹한 조치라는 불만도 나온다. 중복상장 금지가 효율적으로 시장에서 작동하기 위한 조건을 모색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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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복상장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방향의 자본시장 개혁이 추진되면서 산업계와 일부 증권업계에서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그간 모호했던 중복상장 기준을 정의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는 공감했지만 획일적 규제로 이어지면 자금조달 환경이 위축될 수 있고 나아가 한국 산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18일 청와대 주재 자본시장 정상화 간담회에서 제시된 중복상장 제한 방침 후속 조치로 한국거래소와 유관기관은 오는 6월 중 거래소 상장·공시 규정을 개정하고 중복상장 시 주주 충실의무를 적용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도 함께 추진할 계획이다. 재계와 증권업계에서는 그간 중복상장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판단 기준이 부재했다는 점에서 기준 마련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다. 케이블 사업을 영위하는 티엠씨는 최대주주 케이피에프가 코스닥에 상장된 상태였지만 중복상장 논란을 딛고 지난해 12월 상장에 성공했다.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도 대주주인 BC카드 모회사 KT가 이미 상장사였던만큼 중복상장 논란이 제기됐지만 이달 증시에 성공적으로 입성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른바 '중복상장'을 주주가치 훼손과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주 저평가)'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금융당국이 중복상장을 원칙적으로 금지키로 했다. 관건은 예외 조항과 조건들이 어디까지 허용되느냐 여부다. 한국거래소가 마련하고 있는 중복상장 관련 가이드라인이 규제의 첫 시발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계는 유연한 적용을 요구한다. 정책 도입 과정에서 다양한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중복 상장 원칙적으로 금지…거래소 세부기준이 2분기 이후 적용될 예정━25일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한국거래소(이하 거래소)의 중복상장 관련 세부기준이 2분기에 의견수렴을 거쳐 확정될 예정이다. 지난 18일 청와대에서 진행된 '자본시장 안정과 정상화 간담회'에서 금융당국은 앞으로 중복상장을 금지한다는 향후 원칙을 공개했다. 거래소의 세부기준도 이미 마련된 상황이다. 당초 올해 1분기 확정이 될 예정이었지만 대통령과 청와대까지 중복상장 규제 필요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적용 시기가 2분기까지 밀렸다.
정부가 기업의 중복상장에 제동을 걸면서 기업들의 정상적인 자금 조달과 투자 전략까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주주가치 훼손이 아니라는 내부 판단에도 정치권의 입김에 상장 계획을 철회하거나 수정하는 사례도 생긴다. 정책 설계 과정에서 기업들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채 경영상 제약만 확대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자회사 IPO(기업공개)를 추진하던 기업들은 정부 정책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대안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대통령까지 나서 이른바 '쪼개기(물적분할) 상장'을 비판하면서 IPO 추진 자체에 대한 부담도 크게 커졌다는 평가다. 대표적인 기업이 LS그룹이다. LS그룹은 미국 자회사 에식스솔루션즈의 국내 증시 상장을 추진했으나 지난 1월 상장 신청을 철회했다. 상장 추진 과정에서 논란이 확산된 데다 정치권까지 가세하면서 당초 계획대로 추진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LS그룹은 "이번 상장은 모회사의 가치를 희석하는 쪼개기 상장이 아니라 과거 인수한 해외 자산을 한국 자본시장에 소개하고 가치를 재평가받는 '재상장'의 성격"이라며 정면 대응에 나섰으나 결국 상장 계획을 접었다.
중복상장은 자회사가 기업공개(IPO), 전환사채(CB), 교환사채(EB) 등을 통해 자체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창구로 활용됐다. 알짜 사업부를 분할 한 중복상장은 기업가치가 자회사로 쪼개긴 모회사의 주가에 타격을 입힐 때가 많았다. 소액주주의 투자 손실은 시장에 대한 신뢰도마저 떨어뜨렸고, 이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이어졌다. 2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 코스피 평균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 85배를 기록했다. 1년 전(0. 92배)에 비해 2배 성장했다. 주가수익비율(PER)은 같은 기간 13. 83배에서 24. 10배로 상승했다. PBR과 PER은 일반적으로 낮을수록 저평가, 높을수록 고평가된 상태로 해석한다. 투자업계에선 증시 지표가 상승했음에도 아직 저평가 단계를 벗어나진 못했다고 본다. 코스피 상장사 809곳 중 자료가 없거나 지표를 산출할 수 없는 6곳을 빼고 PBR이 1배를 밑돈 업체는 554곳. 코스피 상장사 중 약 70% 비중을 차지하는 기업의 시가총액이 당장 기업을 청산했을 때 가격에도 못 미쳤다.
중복상장이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가운데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중복상장 건수가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2023년 12월 소액주주 보호와 그룹 경영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통해 모자회사 등 공시제도를 마련한 이후다. 25일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국내 중복상장 자회사(상장 모회사의 지분 50% 이상)는 239개사로 전체의 9. 4%를 차지한다. 국내 상장사 중 자회사인 경우는 571개사로 전체의 22%를 차지한다. 상장사 5곳 중 1곳은 자회사라는 의미다. 모회사 기준으로 보면 상장한 자회사를 둔 기업은 357개사로 그 비중은 14%에 달했다. 해외 중복상장 비율(지난해 10월 기준)은 미국은 0. 05%, 중국 2. 4%, 일본 4%, 대만 2. 7% 등 해외 주요국과 비교하면 비정상적 수준이라는 평가다. 우리나라가 중복상장 금지 원칙을 내세우면서 중복상장 비중을 획기적으로 줄인 일본 사례가 관심을 받고 있다. 김정남 전 네덜란드연기금자산운용(APG) 대표는 지난 12일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에서 일본 상장 자회사가 2007년 467개사에서 지난해 7월 기준 215개사로 절반 이상 줄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