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맥경화, 기업들 곡소리 난다
최근 상장사들의 자금 조달이 전방위로 어려워지고 있다. 회사채·메자닌 등 다른 자금 조달 창구부터 위축된 데다, 마지막 보루였던 유상증자마저 잇단 정정요구로 발이 묶이는 형국이다. 금융당국의 자금 조달 정책 방향마저 예년보다 깐깐해져 기업들의 고민도 깊어진다. 돈의 흐름이 시장 말단까지 유연하게 흐르게 할 수 있는 해법을 모색해 본다.
최근 상장사들의 자금 조달이 전방위로 어려워지고 있다. 회사채·메자닌 등 다른 자금 조달 창구부터 위축된 데다, 마지막 보루였던 유상증자마저 잇단 정정요구로 발이 묶이는 형국이다. 금융당국의 자금 조달 정책 방향마저 예년보다 깐깐해져 기업들의 고민도 깊어진다. 돈의 흐름이 시장 말단까지 유연하게 흐르게 할 수 있는 해법을 모색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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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지난달 공개한 지난 5월 광의통화(M2) 평잔은 4184조원으로 전월대비 32조원가량 늘었다. 지난해 11월 이후 7개월째 증가세다. 시중 유동성이 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본원통화(M0) 대비 M2의 비율을 나타내는 통화승수는 2024년 연평균 14. 9배에서 지난 5월 13. 36배까지 낮아졌다. 돈의 흐름은 늘었지만 실물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그만큼 크지 않은 현 상황을 방증한다. 실제로 상장사를 포함한 기업들은 자금 경색을 호소한다. 최후의 보루인 유상증자 활용도 금융당국의 문턱이 더 깐깐해진 상황이어서 기업들의 고민이 더욱 깊어진다. 지난 5일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28일 이사회를 열고 1367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방식 유상증자를 결정한 SK디앤디의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했다. 지난달 31일에는 한울반도체, 엣지파운드리, 상지건설 등 코스닥 상장사 3곳의 유상증자 관련 증권신고서 제출이 한번에 요청됐다. 2조4000억원 규모의 유증을 시도했던 한화솔루션은 올해 4월 두 차례의 정정요구 이후 그 규모를 1조7000억원 수준으로 줄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3월20일 장 마감 후 약 3조6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발표했다. 국내 증시 역사상 최고액. 그만큼 반발도 컸다. 2024년 1조7247억원을 벌어들인 회사가 왜 대규모 유상증자를 하냐는 주주들의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튿날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주가는 약 13% 급락한 62만8000원을 기록했다. 그로부터 약 1년5개월이 지난 현재.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주가는 100만원 상단에 있다. 지난 7일 기준 종가는 109만7000원이었다. 유상증자 발표 직후 대비 75% 수준의 주가 상승이 이뤄졌다. 주가 강세의 배경에는 글로벌 차원의 방산 업계 호황이 자리하고 있지만, 유상증자 결정 역시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주주배정 유상증자 규모를 2조3000억원으로 축소하면서 동시에 한화에너지 등이 참여하는 1조3000억원 규모의 3자배정 유상증자를 결의하는 방식으로 계획을 보완한 끝에 증자를 진행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마련한 자금을 활용해 △해외 해상 및 지상 방산 거점 투자 △천무 다연장로켓, 레드백 장갑차, 대공방어시스템 등 차세대 핵심 제품 투자 등을 진행키로 했는데 이것이 기업 가치 제고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자금에 목마른 기업들은 최근 깐깐해진 금융당국의 유상증자 심사로 자금조달 통로까지 막히는 것이 아니냐고 우려한다. 시장에선 과거 대규모 희석과 자금용도 변경 등 주주가치 훼손 논란을 빚은 유상증자에 대한 반작용으로 보고 있지만, 자칫 '유상증자=주주가치 훼손'이라는 인식이 굳어질 경우 정상적인 성장자금 조달까지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나쁜 유증은 엄격하게, 좋은 유증은 빠르게"━기업들은 주주 지분의 희석이나 단기적인 주가 하락 가능성만으로 유상증자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조달 자금이 시설투자, 연구개발, 공급망 구축, 신사업, 인수합병(M&A) 등에 투입돼 기업가치를 높이면 장기적으로 기존 주주들에게도 이익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금융감독원의 유상증자 관련 증권신고서 정정 요구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인지와 그 판단 근거가 외부에 충분히 공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금감원은 정정요구 과정에서 해당 기업에 보완 사유를 전달하지만, 투자자들에겐 어떤 문구나 위험요인, 자금사용 계획이 문제였는지 별도로 상세히 공개하지 않는다.
자금조달 난이도를 둘러싼 산업계 하소연의 뒤편엔 최근 급증세에 접어든 금융감독원의 증권신고서 정정요구가 있다. 일반주주들은 환영하는 반면 운신의 폭이 좁아진 기업들은 경영 불확실성이 높아졌다며 우려를 표명한다. 7일 머니투데이가 금융감독원의 전자공시·김상훈 국민의힘 의원 제출자료를 토대로 집계한 올해 증권신고서 정정요구는 이날까지 66건으로 나타났다. 8개월 만에 지난해(43건)와 2024년(56건)의 연간 건수를 뛰어넘은 수준이다. 기업별로 보면 연달아 정정요구를 받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올 들어 한울반도체와 상지건설은 4차례, 에이전트AI·휴림에이텍은 3차례 퇴짜를 맞았다. 당국의 정정요구는 증권신고서의 효력을 정지하는 효과를 낸다. 상장사는 주가 급등락 부담을 안게 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기업 현장에선 금감원이 정식 요구에 돌입하기에 앞서 실무적 협의를 거치거나 '암묵적 제스처'를 감지하고 신고서를 정정한 사례가 적잖은 것으로 전해진다. 정정요구가 나타나는 범위는 전통적 갈등사안인 유상증자에서 합병·분할로 확산하는 추세다.
우리 경제가 역대 최고 수준의 수출 실적과 경상수지 흑자 등을 기록하고 있지만 기업들이 체감하는 자금조달 사정은 팍팍하다. 반도체 중심의 일부 업종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기업들은 직간접 금융 모든 부문에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기업들은 은행 차입뿐 아니라 회사채와 주식 발행 등 여러 조달 수단에서 애로를 겪고 있다. 이는 최근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비금융사 204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기업 자금조달 실태와 정책과제 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응답 기업들은 최근 1년간 가장 어려워진 조달 수단으로 '시중은행 차입'(43. 6%)을 꼽았다. 당면한 가장 큰 문제로도 '고금리로 인한 대출이자 부담'(48. 5%)을 지목했다. 지난달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기업의 이자 부담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기업들은 금리는 거시 여건에 맞물려 당장 내리기 어려운 만큼 시급한 정책과제로 '위험가중치 완화 통한 기업대출 확대'(52. 5%)를 원했다. 위험가중치를 내리면 대출에 따른 은행의 손실 대비 자본 적립 부담이 줄어 대출 여력이 많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