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나라도 고양이랑 살겠다"

"아이고, 나라도 고양이랑 살겠다"

신혜선 VIP뉴스부장
2017.03.04 07:04

[신혜선의 유감시대] <1> 여성의 고학력을 문제삼는 나라

‘정부야 네가 아무리 나대봐라, 내가 결혼하나 고양이랑 살지.’

시쳇말로 빵 터졌어요. 어떤 여성모임에서 국책연구원이 발표한 내용에 반발하며 내건 플래카드 문구랍니다. 딱! 봐도 오더이다. 아, 부럽기만 한 이 재기발랄함이여.

‘고소득, 고학력 여성의 눈을 낮춰 결혼을 유도하자.’ 출산율 제고 대책이었다는데, 명색이 국책연구기관에서 이런 발표를 했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시작은 이거랍니다. ‘출산율 급감 시기가 기혼여성의 학력이 높아진 시기와 일치한다.’ 그런데요? 그래서요?

기업은 노동 시장에서 인구의 절반인 여성 인력을 안 쓸 이유 없으니 채용을 늘린 지 한참입니다. 도처에서 양성평등 문화를 강조합니다. 우리 후배들은, 우리 딸들은 사회에 진출해 제 몫을 다하라는 격려를 받고 성장하고 있죠. 여성의 고학력화나 사회 진출 증가가 무슨 문제인가요? 여성의 사회 진출이 증가해도 아이를 즐겁게 낳고 잘 기를 수 있는 조건이 제시되는 게 정상 아니겠습니까.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를 봤더니 2016년 합계출산율은 1.17명이더이다. 출산아 수마저 40만 6300명으로 역대 최저라고 하고요. 지난 10년간 출산율을 올리기 위해 80조 원을 퍼부었다는데, 결과가 이 지경이라면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건 아닌지 근본적으로 살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프랑스가 떠오릅니다. 프랑스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유일하게 합계출산율 2를 기록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그 나라요, 법적 결혼만큼 동거가 일반화돼있는 거 다 아시죠?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태어나는 아이는 모두 동등한 사회적 혜택을 받죠. 아이를 혼자 키우는 엄마 아빠도 부지기수고.

우리 정부는 프랑스의 출산과 육아 지원 정책과 교육 환경이 어떤지 살펴봤을까요. 결혼을 꺼리는 그들의 출산율이 우리보다 배가 높은 이유는 뭘까요.

최근 ‘전업 육아 아빠’인 우석훈 박사(경제학)를 만났습니다. 그는 작년 3월, 바깥 일을 중단하고 두 아이 육아에만 전념하고 있습니다. 그 경험을 담아 ‘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라는 육아 책을 썼죠. 여기에 귀담아들을 내용이 있네요.

파리에서 공부한 그는 “프랑스식 육아의 기본은 국가의 역할임을 알게 됐다”고 말합니다. 즉, 아이는 국가가 키우고 가정과 개인이 돕는다는 관점이라는 겁니다. 그 핵심 개념 안에는 국공립 어린이집의 역할이 있습니다. 이를 테면 "어린이 입맛(이유식 포함)과 식사 예절 정도는 국가가 맡아서 돌보고 지도한다!" 그러면 그렇지, 합계출산율 2가 그냥 나올 리 없죠. 프랑스는 OECD에 가입한 잘난 선진국 중 아이를 낳고 기르는 최고의 조건을 갖춘 게 분명해 보입니다.

우리 정부가 ‘출산율 2! 우리도 프랑스처럼!’ 이란 발표를 했다면 ‘신박하다’(참신하다는 신조어)는 칭찬 정도는 떼놓은 당상이었을 텐데. 하지만 불가하죠. 기껏 생각한다는 게 고학력 여성에 취업 페널티를 주고, 강제할 방법도 없으면서 ‘아빠의 달’ 같은 육아휴직을 ‘장려’하는 수준의 정책만 나열하는데, 언감생심 아니겠습니까.

관점을 싹 바꾸지 않으면 어렵겠다는 생각에 이릅니다. 하긴, 우 박사가 그러더이다. “국가가 이 정도로 도와주는데 왜 고마워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정책 입안자들이 수두룩하더라.” 두 손 두 발 들일이죠.

“그나마 한국 문화는 결혼하면 일단 한 자녀는 낳는다. 그러니 결혼하고 싶게, 결혼하는데 지금보다 덜 힘들게, 무엇보다 첫 아이 정도는 편하게 기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정책을 펴야 한다.” 우 박사의 주장입니다.

젊은이들은 이에 동의하면서도 한 걸음 더 나갑니다. “꼭 결혼해야만 자격이 되는 겁니까. 결혼하지 않고 낳으면요? 엄마 아빠가 없다는 이유로 아이가 손가락질받는 일이 금지된다면요? 누가 기르더라도 문제가 없도록 하는 사회제도와 문화가 정착된다면, 낳지 말라고 해도 낳지 않을까요?” 살아보니 결혼은 글쎄인데, 아이는 낳고 싶다는 어떤 후배의 주장은 더는 이상하지 않습니다.

직장 생활 23년으로 접어듭니다. 우리 부부의 선택이었지만 둘째를 포기했습니다. 첫 아이 낳고 한 달 반 만에 출근했습니다. “곧 인사 있대. 지금 나오지 않으면 아무래도 불이익 받을 거 같아.” 고참의 배려 가득한 전화 한 통. 이후 둘째를 낳고 키울 생각을 하니 하늘이 노래지더라고요.

지금이야 “뭣하고도 안 바꿀 하나밖에 없는 내 딸” 이러지만 이 맛을 모르는 젊은이로, 수년째 ‘취준생’으로 버티는 이십 대, 삼십 대로 제가 돌아간다면요? 흥, 나라도 그냥 고양이랑 살고 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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