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어질 때 우리는 "다음에 보자"고 인사한다. 매일 만나는 동료에게는 "내일 보자"고 한다. 영어로는 '시 유 투모로우'(See you tomorrow)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다음에 보자고 인사한다. 프랑스어로는 '오르부아르'(Au revoir), 중국어로는 '짜이찌엔'이다. 도대체 언제 다시 보자는 건가. 내일, 모레 아니면 한 달 뒤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미래 어느 날 다시 보자는 기약이다.
인간은 도대체 언제부터 내일 보자는 인사를 하기 시작했을까. 말이나 글이 만들어지기 이전, 원시사회에서도 인간은 같이 사냥하거나 열매를 따고 헤어질 때 날이 밝으면 여기서 다시 만나자는 의사를 주고받으며 무언의 약속을 했을 것이다. 정말 내일 다시 만나게 될지, 같이 사냥을 가게 될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내일 보자고 약속한 사람이 오늘 죽으면 영원히 볼 수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내일을 말하고 미래를 약속한다. 내일과 미래를 말하는 동물은 우주를 통틀어 인간밖에 없다.
철학자이자 생물학자인 다니엘 밀로 교수는 인류가 떠올린 가장 위험하고 위대한 발명은 바로 '내일'이라고 말한다. 사피엔스는 뇌의 유혹을 받고 '내일'이라는 선악과를 떠올렸고 이로써 '영원한 오늘'을 사는 행복한 동물로 돌아갈 수 없게 됐고 내일을 상상하며 불안해하는 최초의 동물이라는 것이다. 혹자는 내일이나 미래가 무슨 발명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발명은 물건을 만드는 것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허구적 개념을 고안하고 상상하는 것도 일종의 발명이다. 발명은 이제까지 없던 뭔가를 만드는 것이니까 말이다. 수레바퀴, 나침반, 종이, 자동차, 컴퓨터 등 위대한 발명은 사회를 변화시키고 역사를 발전시켜온 원동력이다. 대부분 발명은 기기나 도구 등 유형의 물건이지만 무형의 발명도 많다. 공화국, 국가, 자유 등 개념이나 가치를 고안한 것도 발명이고 문자나, 숫자, 기호, 종교를 만드는 것도 발명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일, 미래라는 개념을 상상한 것은 충분히 인간의 위대한 발명이라 할 만하다.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등 베스트셀러로 유명한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인간은 언어를 만들었고 언어의 진정한 특이성은 정보전달 능력보다 존재하지 않은 것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전설, 신화, 신, 종교 등이 그러하다. 이것들은 모두 인간의 생각이 빚어낸 허구다. 인간은 허구적 개념을 만들고 상상하고 때로는 존재한다고 굳게 믿는다. 살면서 우리가 정말 중요하게 여기는 대부분은 허구적 개념이다. 사랑, 우정, 신뢰, 가치, 애국심, 자비, 톨레랑스 등 소중한 가치는 보이지 않으며 만질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어린 왕자는 말한다. 오직 마음으로 봐야 제대로 볼 수 있고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내일이나 미래가 딱 그렇다. 보이지 않지만 정말 소중하다. 사실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허구일 뿐이다. 가상의 미래를 인간은 꿈꾸고 상상하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는다. 지금 씨를 뿌리면 미래에 싹이 트고 열매를 맺을 것이란 사실을 믿기에 농부는 농사를 지을 수 있고, 지금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면 미래에 시험에 합격하고 성공할 수 있다고 믿기에 우리는 힘을 다해 오늘을 살아간다. 간디는 당신이 오늘 뭘 하느냐에 미래가 달렸다고 말했다. 또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생물학자 프랑수아 자코브는 "나에게 내일은 마약"이라고까지 했는데 그 이유인즉 내 삶은 미래에 대한 준비과정이고 나를 먹여살리는 양식이기 때문이란다. 우리는 미래를 계획하며 오늘을 산다. 미래를 믿지 못한다면 계획도, 전략도, 희망도 아무 소용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