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올드'가 온다
우리 주변에는 새로 얻은 10년, 가열차게 다시 사는 사람들이 많다. 은퇴하고 나서도 피가 끓는다면, 그 뜨거운 심장을 더 뛰게 해야 할 것 아닌가. 그것이 대한민국의 살 길이다. 머니투데이는 이들을 '뉴올드(NewOld)'라 부르고자 한다. 고령화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뉴올드를 찾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 주변에는 새로 얻은 10년, 가열차게 다시 사는 사람들이 많다. 은퇴하고 나서도 피가 끓는다면, 그 뜨거운 심장을 더 뛰게 해야 할 것 아닌가. 그것이 대한민국의 살 길이다. 머니투데이는 이들을 '뉴올드(NewOld)'라 부르고자 한다. 고령화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뉴올드를 찾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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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하늘의 별만큼이나 수많았던 우리의 이야기들 바람같이 간다고 해도 언제라도 난 안 잊을 테요~. 안 잊을 테요~.” 세월이 묻어난 주름진 손이 통기타 위에서 유려하게 움직인다. 잔잔한 선율 위에 깊이 있는 목소리가 더해지고, 환상적인 화음이 울려 퍼진다. ‘왕년에 잘 나가던’ 아저씨들이 먼지 묻은 오래된 기타 하나 둘러메고 골방에 모여 앉았다. 시시껄렁한 농담을 섞어가며, 고리짝 시절의 추억을 다시 꺼내 온 그들의 수다가 이토록 뜨거운 ‘후폭풍’을 불러올 줄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TV 안방극장은 물론 어딜 가나 ‘세시봉 친구들’이 화제다. 덕분에 낙원동 상가에서는 다시금 옛 열정을 불사르며 통기타를 찾는 중장년층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고도 하고, 그 시절의 향수를 앞세운 문화공연도 줄을 잇고 있다. 자유롭고 젊은 인생을 보여주고 있는 세시봉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인생을 누리기 위해 기꺼이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는 중장년층 역시 늘고 있다. "젊게 사는 데 나이가 무슨
보루네오가구가 은퇴자와 청년구직자를 위한 일자리 창출 지원사업에 나선다. 보루네오가구는 창립 45주년을 맞아 '2011 위대한 프로젝트, 퇴직자 및 청년 구직자 새출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8일 밝혔다. 이 프로그램은 정성균 보루네오 대표가 지난달 31일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 자리에서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 사회적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힌 뒤 구체적 실행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우선 오는 9일부터 26일(일)까지 홈페이지를 통해 전국 50여개 매장 개설을 위한 대리점주 및 영업사원을 공개 모집한다. 대상은 가구업계 종사자가 아닌 만 40세 이상퇴직자들을 원칙으로 하고 대리점 후보 지역은 회사 차원에서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최종 선정된 대리점주에겐 1년치 임차보증금을 1년간 무상 지원한다. 또 인테리어 컨설팅 및 비용을 전액 지원하고 초기에 사업 안정에 어려움을 겪는 대리점의 경우 1년간 임대료 역시 지원해준다는 방침이다. 새로 선정될 대리점주들이 가구업계 종사자가 아닌 초보자임
우리나라 노장년층(시니어 세대)은 70세는 돼야 노인이라는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본인 실제 나이보다 평균 7.7세 젊다고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교보생명은 지난해 시니어파트너즈와 공동으로 우리나라 40세 이상 69세 이하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노인'의 기준 나이를 69.3세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15일 밝혔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70~74세는 돼야 노인세대로 진입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54.4%, 75세는 넘어야 한다는 답변이 14.4%로 전체의 68.8%를 차지했다. 65~69세라는 의견은 26.5%, 60~64세라는 의견은 4.7%에 그쳤다. 또 심리적 나이와 실제 나이의 차이를 조사한 결과 조사대상의 36.9%는 본인의 실제 나이보다 6~10세 젊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26.2%는 1~5세 차이라고 답했다. 실제 나이보다 무려 11~15세 젊다고 느끼는 응답자로 16.6%로 나타났다. 선호하는 호칭에 있어서도 응답자의 절반 이상(56.4%)이 ‘
2008년 6월 오씨는 연세대 간호대 교수 정년퇴임을 8개월 앞두고 있었다. "퇴임하면 남편이랑 등산이나 하면서 보내야 하나 걱정하고 있던 차였죠. 마침 울란바타르대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새로 설립하는 간호대학장을 맡아줄 수 있겠냐는 제안이었죠." 오씨는 남편과 함께 그냥 놀기 삼아 대학을 찾아가봤다. 1995년 한국인이 설립한 이 대학은 22개학과에 학생이 3000여명. 그러나 학교를 둘러본 바로 그 날 오씨는 몽골 이주를 결심했다. "학교에 들어섰는데 1960년대에 제가 다니던 대학의 모습과 너무 비슷한 거에요. 건물도, 학생도, 교수도 푸근함이 느껴졌어요. 아! 이곳이라면 나도 할 수 있는 일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오씨는 머뭇거리는 남편을 설득하고, 자식들에게도 통보했다. 퇴임하려면 아직 반년 정도 남았지만, 마음 먹은 이상 머뭇거리기 싫었다. "여행용 가방에 그냥 밥솥과 쌀만 담아 출발했죠. 하루라도 젊었을 때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었어요." 오씨 부부는 일
은퇴 후 외국으로 이주하려는 행렬이 정점을 찍었던 것이 2006년. 많지 않은 돈으로 편안히 여생을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로 이주하는 은퇴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후 해외 이주는 급격히 줄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환상이 깨졌기 때문.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겠지만, 분위기에 편승해 준비도 없이 출국했던 게 화근이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그러나 철저히 준비한다면 무난하게 정착하는 것도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안경덕 오가실 부부 사례에서 보듯 가장 중요한 건 일거리이다. 아무리 은퇴 후 삶을 보내러 이주했다고 해도 일 없이 지내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의사소통이 잘 안돼 일자리 구하는 게 어렵다 보니 현지 한국인 상대로 자영업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실패하는 사례가 더 많다. 이기직 필리핀정보넷 필코로드 사장은 "필리핀에 이주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사업이 하숙집인데 장사 잘된다는 말만 듣고 인수했다 낭패를 본 사람들이 많다"며 "꼼꼼하게
예순 일곱 동갑내기인 안경덕씨 부부는 3년 전 몽골로 이주했다. 관광이나 하며 노후 편하게 보내자고 돈 싸 들고 간 게 아니다. 그렇다고 자원봉사 목적도 아니었다. 이들은 지금 몽골에서 적잖은 연봉을 받으며, 엄청난 일들을 해내고 있다. 간호대 교수 출신인 부인 오가실씨는 울란바타르대 초대 간호대학장을 맡아 지난 달 1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의사만 있지 간호사는 거의 없는 척박한 의료환경에서 나이팅게일 정신이 얼마나 중요한지 제대로 한번 보여주고 있다. 경영컨설팅회사를 경영했던 안씨는 이 대학 출판문화원장을 맡아 세계고전문학을 출간하고 있다. 징키스칸밖에 몰랐던 몽골 젊은이들의 인문학적 소양을 드높이고 있다. "늙어서 고생은 돈 주고 사서라도 해야 합니다. 하고 싶은 일 열심히 하며 그 성과를 즐겨야 합니다." 몽골 이주 후 이들은 나이를 잊어버렸다. 내년이면 칠순인 이보규씨는 억대 연봉자이다. 36년간 서울시 공무원을 하는 동안에도 이만큼 벌어본 적이 없다. 지금 이씨는 자기계발과
굳이 발버둥치지 않아도 남부럽지 않은 노후가 보장된 삶이었다. 33년간 서울대 치대 교수를 지냈고 의학분야 여러 학회장도 맡았었다. 은퇴하고 병원을 차려도 됐고 제약회사 고문으로 가도 됐다. 그런 그가 벤처기업을 차려 코스닥 상장을 앞두고 있다. 그의 나이 예순 여섯. 제자 뻘인 투자자를 만나 고개 굽신거리며 창업한 회사이다. 20~30대에도 하기 힘든 일을 60대에 시작한 것이다. 이유는 단순 명쾌했다. "죽을 때까지 연구개발을 하고 싶어서"였다. 은퇴후 병원 차리거나 제약사 갈수도 있었지만 "죽을 때까지 연구개발 하고파" 2004년 벤처설립 지난 2월 정년 퇴임한 정종평 나이벡 대표가 회사를 설립한 건 2004년. 치과대학 연구센터인 지능형생체계면공학연구센터(IBEC)를 서울대 사내 벤처로 만들었다. 연구센터의 약자에 나노를 뜻하는 'N'을 더해 회사이름을 붙였다. 그의 나의 쉰 아홉이었다. "정부 지원을 받아 시작한 연구이기 때문에 퇴직하더라도 계속 연구를 해서 사회에 돌려주
이광환 감독(64)은 우승을 많이 한 감독은 아니지만 명감독이었다. 1991년 백인천 감독 후임으로 LG트윈스를 맡았을 때 그는 자율야구라는 걸 선보였다. '스파르타' 일색이던 한국 야구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3년 뒤 그는 LG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프로야구 감독으로서 우승은 한차례뿐이었지만 그는 2008년 넥센히어로즈 감독으로 퇴임하기까지 자율훈련, 투수분업화, 야구다운 야구 등 한국야구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그런 이 감독이 은퇴 2년 여 만인 지난해 5월 다시 감독을 맡았다. 199패1무1승. 새로 맡은 야구단의 성적표이다. 설립 후 28년동안 이긴 거라곤 2004년 9월 1일 단 한차례뿐이다. 당시 신문에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서울대 야구부다. 백전노장과 백전백패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지만 그래도 이 감독은 "하루하루가 즐겁다"고 말했다. "새로운 세계를 본다"고도 했다. 예순 넷의 노(老) 감독은 요즘 매일 3~4시간씩 훈련으로 땀범벅이다. "제가 원래 일
이 감독은 박식했다. '재테크는 빵점'이라고 했지만 경제학 서적에서부터 철학서까지 책에 대한 공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드라마틱했던 야구 인생과 세상사 저변을 꿰뚫는 독서, 9회 말을 끝낸 그가 드라마틱한 연장전을 연출하고 있는 비결도 여기에 있는 듯했다. ◇소중현대(小中顯大) - 작은 것 속에 큰 것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이 감독이 절실하게 깨닫는 말이라 한다. 큰 것에 매달리지 말고 작은 것에서 소중함을 찾고 사는 것. "작은 것을 소중히 하라는 게 나이 들어 잔재미로 살라는 게 아니다. 작은 것에 몰입하다 보면 크고 새로운 길이 보이는 법이다." 1년 전 이 감독이 운동장을 내려다보다 서울대 야구부를 맡은 건 사소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이 감독에게, 그리고 30여명 야구부원들에겐 상당히 소중하고 큰일인 것처럼 말이다. ◇안타만 치려고 하지 마라. 삼진아웃만 당한다. 이 감독은 "나이가 들수록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조급해질 수 있다"며 "이런 조급함 때문에 안타를 치겠다는
올해 칠순인 이보규씨는 자기계발과 창업 분야에서 스타강사다. 강연으로 버는 수입만 연 1억원이 넘는다. 그렇다고 이씨에게 엄청난 커리어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동사무소 9급직에서 시작해 36년간 서울시 공무원을 하다 2002년 한강사업본부장으로 은퇴했다. 시청 공무원과 스타강사, 어울리지 않은 조합 같지만 은퇴 후 이씨는 엄청나게 공부하고 연구했다. 은퇴하고 읽은 책만 500여권이다. 메모하고 노트정리하고 고시생처럼 공부했다. 그래서 지금은 대학생들도 가르치고, 공무원들도 가르치고, CEO들도 가르친다. 동서울대 교양학과 외래교수, 호서대 창업대학원 초빙교수 등 교수 타이틀만 2개이다. 지자체와 대학, 기업, 단체 등 한달 평균 강연이 30회가 넘는다. 하루 2~3건씩 뛰는 것도 예사다. 은퇴하고 나서 10여년을 어떻게 살았는지 그림이 그려졌다. "열번 설명하는 것보다 제 강의를 한번 들어보시는 게 낫지 않겠어요? 두 시간 후에 덕성여대 평생교육원에서 강의가 있으니깐 그리로 오세요.
심현용씨는 "온라인은 취미가 아닌 삶의 도구"라며 "나이가 들어 소외감을 느끼지 않으려면 오프라인에만 머물러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심씨는 자신의 블로그를 만들어 볼 것을 제안했다.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블로그에 자신의 일상과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채워나가다 보면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잘하는지를 보다 확실하게 알 수 있다"며 "자신이 올린 게시물에 대한 피드백도 받고, 젊은 세대의 블로그를 찾아가 읽다 보면 소통이 얼마나 사람을 젊게 만드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블로그를 만들었다면 실버클럽(www.silverclub.kr)과 같은 메타블로그(하나의 주제에 따라 모인 블로그의 집합체)에 등록하는 게 좋다. 각자의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 글 제목과 요약문이 자동으로 이 곳으로 수집돼 1~2시간 후에 메타블로그 사이트에 오르고 사람들이 이를 클릭하면 본인의 블로그로 바로 연결되는 구조이다. 심씨는 또 인터넷방송을 통해 생생한 정보를 늘
심현용씨 직업은 인터넷방송 자키이다. 나이 예순에 인터넷방송 자키라는 타이틀을 가진 것도 특이하지만 그의 방송진행 방식은 더 독특하다. 그는 캠핑카에 온갖 방송장비를 싣고 전국을 다닌다. 시골 축제현장 생중계도 하고, 뉴스가 있는 곳을 찾아 사회이슈를 토론하기도 한다. 시골장터 촌부들도 게스트로 출연시키고, 경기도지사시절 손학규 민주당 대표처럼 유명인사도 초대한다. 혼자서 방송장비 다 챙기고, 섭외도 하고, 방송도 한다. 마치 푸른 초원을 찾아 끊임없이 말을 달리는 유목민처럼, 심씨는 3000명의 고정 시청자를 몰고 바람처럼 전국을 누빈다. "한 달에 500만원은 버니깐 작은 수입은 아니죠. 하지만 돈 때문이 아닙니다. 낯선 것에 대한 도전이죠. 익숙한 것을 떠날 줄 아는 것, 그게 청춘 아닌가요." 그는 이동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디지털유목민의 진정한 '칸(khan)'이었다. 지난 7일 심씨를 만나기 위해 서울 성동구 용답동 한국청년회의소를 찾았다. 심씨는 이 곳에서 한 달에 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