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위크]뉴시니어 뉴히어로/ 아날로그 아닌 골든로그 세대
“밤 하늘의 별만큼이나 수많았던 우리의 이야기들 바람같이 간다고 해도 언제라도 난 안 잊을 테요~. 안 잊을 테요~.”
세월이 묻어난 주름진 손이 통기타 위에서 유려하게 움직인다. 잔잔한 선율 위에 깊이 있는 목소리가 더해지고, 환상적인 화음이 울려 퍼진다. ‘왕년에 잘 나가던’ 아저씨들이 먼지 묻은 오래된 기타 하나 둘러메고 골방에 모여 앉았다. 시시껄렁한 농담을 섞어가며, 고리짝 시절의 추억을 다시 꺼내 온 그들의 수다가 이토록 뜨거운 ‘후폭풍’을 불러올 줄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TV 안방극장은 물론 어딜 가나 ‘세시봉 친구들’이 화제다. 덕분에 낙원동 상가에서는 다시금 옛 열정을 불사르며 통기타를 찾는 중장년층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고도 하고, 그 시절의 향수를 앞세운 문화공연도 줄을 잇고 있다. 자유롭고 젊은 인생을 보여주고 있는 세시봉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인생을 누리기 위해 기꺼이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는 중장년층 역시 늘고 있다. "젊게 사는 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고 심드렁한 듯 당당하게 말하는 그들, 말하자면 '뉴시니어 세대'의 등장이다.
젊은 시절 받아들인 문화적 다양성. 인생의 황혼기를 맞기까지 누구보다 치열하게 일구어 낸 경제적 성취와 여유. 이들이 우리 시대 전반에 끼치는 영향력은 놀라울 정도다. 단지 그들만의 복고 문화를 불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 젊은 세대의 공감을 끌어내며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새로운 주인공으로 부각되고 있다.
청춘보다 더 빛나는 '황혼의 청춘', 뉴시니어 세대의 인생만발(人生滿發) 현장을 찾았다.

◆ “통기타만 잡으면 다시 청춘”
지난 29일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 위치한 한 작은 병원. 삭막하기만 한 이곳에 통기타 소리가 울려 퍼진다. ‘눈이 큰 아이’ ‘봄이 오는 길’ 등 정겨운 멜로디가 울려퍼지자 휠체어를 탄 환자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하고, 이내 흥겨운 박수소리와 함께 합창이 시작된다.
멜로디의 주인공은 ‘통기타70’이라는 통기타동호회 회원들. 이곳 주인인 전태경 씨는 “마음이 맞는 날이면 약속도 없이 기타 하나 둘러메고 산에 올라가 즉흥 연주를 벌이기도 하고 허름한 술집에서 술값대신 노래 한곡조를 구성지게 뽑는 일도 다반사”라고 소개한다.
전씨는 “사실 우리 세대만 하더라도 어렸을 때 기타 한번 안쳐본 사람이 누가 있냐”고 말을 이었다. 그러니 요즘의 세시봉 열풍은 지금 시작된 관심이 아니라, 이미 오랫동안 중장년층 사이에 흐르던 문화가 단지 세시봉을 계기로 드러났을 뿐이라는 얘기다.
이날 기타 연주자로서는 유일한 여성회원이었던 이영주 씨는 “특히 여자들은 기타를 배우고 싶어도 부모님 눈치 보느라 티조차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남성회원들에게 부러움의 눈길을 던졌다. 그는 “결혼하고 지금까지 아이들만 다 키우면 자유다. 내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겠다는 생각을 몇번이고 했었다”며 “내 인생에 이렇게 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면서 살 수 있는데, 이만하면 성공한 인생 아니냐”고 활짝 웃어보였다.
통기타동호회 만큼 70년대의 명곡을 라이브로 즐길 수 있는 라이브카페의 인기도 높아졌다. 최근에는 미사리뿐 아니라 홍대 주변에까지 중장년층을 타깃으로 한 라이브카페가 속속 등장하고 있는 추세. 실제로 올해 들어서만해도 홍대 주변에 비슷한 콘셉트의 라이브카페 서너군데가 새롭게 문을 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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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홍대역 근처에 라이브카페를 오픈한 7080홍대부르스 이용범 대표는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모두 한데 어울려 노래하고 춤을 추기도 한다”며 “주말에는 좌석이 모자랄 정도다. 50대 중장년층은 지금껏 즐기고 싶어도 그럴 만한 공간이 없었는데, 고객들 역시 그 점을 가장 좋아하는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 “공연 즐기고, 강좌 듣고…청춘 보다 더 바쁜 그들”
통기타와 포크룩 문화의 주역인 뉴시니어 세대를 겨냥한 문화 공연도 덩달아 늘었다. 지난해부터 에릭크립튼, 산타나, 이글스 등 추억속 거장들이 연이어 콘서트를 개최하는가 하면, <맘마미아>를 시작으로 <민들레 바람되어> <메노포즈> 등 이들의 이야기를 녹여낸 공연도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공연티켓을 판매 중인 인터파크에 따르면 이들 공연에서 40대 이상 관객의 비중은 대략 30%를 웃도는 정도. 현재 광주에서 공연중인 손숙, 허수경 등의 주연의 연극 <엄마를 부탁해>는 40대 예매율이 60%에 달한다.
오는 4월15일까지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천변카바레> 역시 중장년층의 선호도가 높은 대표적인 공연 중의 하나. ‘돌아가는 삼각지’ 등 1960년대 주옥 같은 노래들로 사랑 받은 가수 배호에 대한 이야기다.
이 무대의 음악을 책임지고 있는 재즈가수 말로는 “중후하게 앉아 있는 중장년의 남성들이 배호 노래가 흘러나오면 의자 끝에 바짝 당겨 앉아 박수를 치고, 노래를 따라하는 모습을 보면 뭉클하다”고 공연장 분위기를 전한다.
그는 “그분들의 시대야 말로 지금보다 재즈라든지 문화적인 자극이 많았던 시대다”며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은 그분들이 제대로 된 음악을 듣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음에도 지금까지는 그럴만한 공간이 없었다. 실제로 연주되는 그 시대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관객들의 만족도가 크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향유하며 문화 공연을 즐기는 뉴시니어 세대는 더 나은 인생을 위해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는 데도 능동적이다. 세종예술아카데미의 오페라플러스가 대표적인 예. 전체적으로 50대 이상 수강생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은퇴 후 여유시간이 있는 중장년층들이 먼저 점심시간 강좌를 요청했다는 것이 아카데미 측의 설명이다. 관계자는 “클래식플러스를 먼저 개설해 지난해 좋은 반응을 얻었고, 올해는 그 연장선상에서 오페라플러스 강좌를 운영 중이다”며 “30~40명 정도가 수강하는 데 그 중 2/3가량이 뉴시니어 세대다”고 소개했다.
30년 공직 생활을 하다 은퇴한지 얼마 안됐다고 자신을 소개한 허단 씨는 “예전에도 오페라나 공연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욕심이 많았는데 시간적 여유가 생기니 이런 강좌도 찾아 들을 수 있게 됐다”며 “리움이나 세종문화회관 등 인터넷으로 강좌를 꼼꼼히 비교해 보고 등록했다”고 말했다.
실제로도 그는 일주일에 서너번씩 뮤지컬이나 오페라 등 문화공연을 자주 관람하는 편. 그는 “강좌를 들은 이후로 공연 보는 재미가 더욱 늘었다”며 “오페라는 문화적 장르의 하나지만 결국은 인문학 공부와 다름없다”고 만족해 했다.
물론 뉴시니어 세대를 위한 강좌가 이처럼 문화적인 부분에만 국한돼 있는 건 아니다. 최근에는 백화점 문화센터를 중심으로 영어나 재테크 등의 강좌도 늘고 있는 추세. 현재 신세계백화점 문화센터 수강생 중 뉴시니어 세대의 비중은 48% 정도이며,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역시 지난해 비해 뉴시니어 세대의 수강생 수가 10% 정도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롯데백화점 문화센터를 담당하고 있는 김은희 과장은 “해외여행을 위해 간단한 기초영어를 배우거나, 요리나 인테리어 같은 자기계발분야에 대한 수강 비중도 높은 편이다”며 “예전에는 뉴시니어 세대가 몰리는 강의가 요가나 노래수업이 대부분이었다면, 최근에는 미술, 인문학, 고전 등등 다양하다. 그 스펙트럼이 계속 넓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젊은 오빠에게 동안 외모는 기본”
적극적으로 삶을 즐기기 위해서는 '젊은 오빠'다운 동안 외모를 유지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젊음을 추구하는 뉴시니어 세대는 단순히 건강을 챙기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을 꾸미는 데 과감히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그랜드성형외과 오민 원장은 “예전에는 눈꺼풀이 처지니 등 필요해서 하는 시술이 많았다면 요즘엔 자신의 외모에 투자하는 데 적극적이다”며 “투자하는 비용이 늘어나더라도 무엇보다 자연스럽게, 더 좋은 결과를 원하는 경향이 강하다. 실제로 지방에서 올라와 시술을 받을 정도로 적극적인 분들이 많다”고 전한다.
물론 이들 중 대다수는 보톡스와 같은 주름 시술을 받는 경우가 대다수. 하지만 코나 양악수술을 원하는 시니어 세대 또한 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직업적 필요에 의해 시술을 택하는 경우도 늘었다. 수명이 늘어나고, 60세가 넘어서도 자신의 직업을 전문적으로 이어가길 원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나타난 변화다.
지난 31일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 위치한 ‘뉴시니어라이프’ 모델수업 교실. 멋지게 차려 입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델 수업에 한창이다. 서울시에서 지원을 받고 있는 비영리단체인 ‘뉴시니어라이프’는 말하자면 시니어 모델을 훈련하는 곳이다. 이곳 관계자는 “사실 모델 훈련보다 더 중요한 교육은 50대 이상의 세대가 더 당당한 태도로 자신을 가꾸고, 삶을 꾸리는 걸 도와주는 곳”이라고 소개한다.
현재 철도공무원으로 일하며 은퇴를 앞두고 있는 서형철 씨는 이곳에서 모델 수업을 수강 중인 학생이다. 그는 “고생만 하다 몇년 전 돌아가신 부모님을 보면서, 나는 어떻게 노년기를 보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젊게 사는 게 최고다는 마음에 이곳을 찾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수업을 들으면서 옷차림이나 걸음걸이 등 많은 부분을 교정하게 됐다는 서씨. 그는 “기차를 둘러보며 승객들 옆을 걸어갈 때 걸음걸이가 당당해지니 더 자신감이 생긴다”며 “젊어 보인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도 좋고, 또 스스로 외모에 더 신경을 쓰는 자극도 된다. 외모가 젊어지니 마음도 덩달아 젊어진 듯하다"고 흡족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