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은 '화합'의 산물이라기보단 '생존'을 위한 현실적 선택의 결과다. 전쟁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절박함이 컸다. 그 출발점엔 유럽의 오랜 앙숙, 프랑스와 독일이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의 과제는 명확했다. '경제 재건'과 '전쟁 방지'였다. 갈등의 불씨는 석탄과 철강이었다. 당시 철강은 군수산업의 핵심이었고, 석탄은 필수 에너지원이었다. 프랑스와 독일은 이 산업의 주도권을 놓고 치열하게 다퉜다. 1950년 로베르 슈만 프랑스 외무장관이 묘수를 냈다. 석탄과 철강 생산을 공동 관리하자는 구상이다. 두 나라가 경쟁하던 핵심 자원을 초국가적 기구 아래 두자는 발상이었다. 상호 감시를 통해 누구도 몰래 전쟁 물자를 생산할 수 없게 만들었다. 구상은 1951년 파리조약 체결로 현실화됐다.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 6개국이 참여한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의 출범이다. 협력은 확산됐다. ECSC는 대상 범위를 전 산업으로 넓혔다. 1957년 로마조약으로 유럽경제공동체(EEC)와 유럽원자력공동체(Euratom)가 설립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