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생존의 연대]<1-⑪>

유럽연합(EU)은 '화합'의 산물이라기보단 '생존'을 위한 현실적 선택의 결과다. 전쟁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절박함이 컸다. 그 출발점엔 유럽의 오랜 앙숙, 프랑스와 독일이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의 과제는 명확했다. '경제 재건'과 '전쟁 방지'였다. 갈등의 불씨는 석탄과 철강이었다. 당시 철강은 군수산업의 핵심이었고, 석탄은 필수 에너지원이었다. 프랑스와 독일은 이 산업의 주도권을 놓고 치열하게 다퉜다.
1950년 로베르 슈만 프랑스 외무장관이 묘수를 냈다. 석탄과 철강 생산을 공동 관리하자는 구상이다. 두 나라가 경쟁하던 핵심 자원을 초국가적 기구 아래 두자는 발상이었다. 상호 감시를 통해 누구도 몰래 전쟁 물자를 생산할 수 없게 만들었다.
구상은 1951년 파리조약 체결로 현실화됐다.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 6개국이 참여한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의 출범이다.
협력은 확산됐다. ECSC는 대상 범위를 전 산업으로 넓혔다. 1957년 로마조약으로 유럽경제공동체(EEC)와 유럽원자력공동체(Euratom)가 설립됐다. 관세 장벽이 무너지고 공동시장이 열렸다.
1963년 프랑스와 독일의 엘리제 조약 이후 두 나라는 유럽 통합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이 조약엔 △정상회담 정례화 △외교·안보 협의 △청소년 교류 등이 포함됐다. 단순한 화해를 넘어 유럽 통합의 단단한 초석이 됐다.
교류는 '이동의 자유'로 이어졌다. 1985년 솅겐협정은 국경 검문을 없앴다. 사람과 자본이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노동시장과 소비시장이 하나로 묶였다. 기업과 시민에게 국경은 무의미해졌다.
1990년대 들어 통합의 과정이 정점을 찍었다. 마스트리히트 조약으로 유럽연합(EU)이 공식 출범했다. 단일 통화인 유로화 도입도 결정됐다.
EU 통합의 가치는 역설적으로 브렉시트(영국의 탈퇴) 이후 더 선명해졌다. 2020년 영국은 EU를 떠났지만 대가는 혹독했다. 단일시장에서 이탈하자 무역 비용은 늘고 투자는 위축됐다. 영국 재정책임청은 브렉시트로 중장기 GDP(국내총생산)가 약 4% 줄고 무역 규모는 15%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경제공동체가 단순한 정치적 틀이 아닌, 실질적인 '경제 안전망'임이 증명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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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EU 통합의 핵심을 '경제적 상호 의존성'에서 찾는다. 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선임연구위원은 "EU 공동체 모델의 출발은 경제적 상호 의존성을 확대해 협력의 지속성을 높인 것에 있다"며 "여러 대립과 갈등에도 공동체가 유지된 힘은 경제적 기반이 서로 얽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일 관계에도 시사점이 있다. 정 연구위원은 "한일 간에도 상호 의존성을 높일 분야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석탄·철강처럼 산업의 기초가 되는 에너지나 소재 부문에서 안정적인 공동 공급망을 구축해 나간다면 경제 공동체적 성격을 강화하고 갈등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