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터처블' 선관위는 끝…감시·감독·검증의 시간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계기로 선관위 개혁 방향을 짚는다. 독립성은 보장하되 인사·예산·장비·투표관리 등 운영 영역은 감시·감독·검증에 열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계기로 선관위 개혁 방향을 짚는다. 독립성은 보장하되 인사·예산·장비·투표관리 등 운영 영역은 감시·감독·검증에 열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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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상시조직으로 운영되는 이유는 선거 관련 전문성과 안정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다. 그런데도 전국 단위 선거 때마다 인력 공백과 장비·물류 대응 부실, 현장 위기관리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선관위를 '선거전문조직'으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10일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중앙선관위와 시·도 및 구·시·군 단위 지역 선관위는 상시적으로 운영된다. 정원은 3034명 규모다. 전국 단위 선거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조직과 인력을 상시 유지한다. 투표용지 인쇄·배분, 선거인명부와 전산, 사전투표 장비, 본투표 투표소 운영, 물류·비상공급, 개표장 관리, 정당·후보자 대응, 민원·위기대응은 모두 숙련도가 필요한 업무다. 문제는 정작 전국단위 선거 때만 되면 휴직자가 늘어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이 중앙선관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6·3 지방선거를 앞둔 지난 5월 말 기준 선관위 휴직자는 181명으로 정원의 6% 수준이었다. 지난해 12월 말 148명, 지난 1월말 164명에서 선거가 임박한 시점이 되자 휴직자가 되레 늘어난 것이다.
6·3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계기로 정치권에서 독립적 헌법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개혁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선거·법률·행정 전문가들은 선관위의 독립성은 보장하되 인사·예산·계약·장비·투표관리 등 운영 영역에 대한 외부 감시와 검증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10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국민참정권 수호를 위한 선거제도 TF'를 출범하고 투표용지 인쇄·배분·보관 절차 개선, 선관위원장 상근 체제 전환, 선관위법 개정 등을 검토하기로 했다. TF는 공직선거법과 선관위법은 물론 헌법까지 포함해 제도 개선 방안을 살펴본다는 방침이다. 여야는 특히 투표용지 부족 사태 국정조사를 실시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다. 선관위도 자체 진상규명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 개혁 논의는 속도를 내고 있다. 핵심 과제로는 감사 체계, 지휘 구조, 인력 운영, 투표관리 방식 개선 등이 꼽힌다. 정치권과 전문가들은 선관위 개혁의 출발점으로 독립성과 감시의 경계 설정을 꼽는다. 후보자 등록, 선거법 위반 판단, 개표와 당선인 결정 등에선 독립성을 보장하되 투표용지 인쇄·배분, 장비·전산 관리, 인사·계약, 사고 대응 등 선거 운영 업무는 외부 검증 대상으로 열어놔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인다.
6·3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는 유연한 현장 대처를 저해하는 현행법도 영향을 미쳤다. 현장에서 투표용지를 출력하는 사전투표와 달리 본투표는 선거일 이전 투표용지를 미리 인쇄해 각 투표소로 보내는 구조다. 이번처럼 본투표 참여자가 예상보다 많을 경우 준비된 투표용지가 동나면 추가 용지 즉각 투입이나 수급이 어렵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본투표에서도 일부 현장 발급 방식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본투표와 사전투표의 투표용지 발급 방식을 다르게 설계했다. 공직선거법 제151조 제1항은 본투표용 투표용지를 각 구·시·군 선관위가 미리 작성해 선거일 전날까지 읍·면·동 선관위에 송부하도록 했다. 반면 사전투표 용지는 제158조 제3항에 따라 사전투표 관리관이 발급기를 통해 인쇄해 교부한다. 전국 어디서든 투표할 수 있는 사전투표 특성상 선거인의 선거구에 맞는 투표용지를 현장에서 출력하기 위해서다.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본투표 사전 인쇄 방식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줬다는 평가다.
"판사들이 법률적인 판단을 할 수는 있지만 행정사무를 처리하는 전문가는 아니다. 그간 '중립성'에만 선관위 업무의 초점을 맞춘 게 문제다. " 10일 판사 출신 한 변호사가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거버넌스'(지배구조) 문제를 지적하면서 한 말이다. 중앙선관위원장은 1963년 창설 이래 줄곧 현직 대법관이 비상근으로 겸직하는 게 관례였다. 나머지 8명의 중앙선관위원도 상임위원 1명을 제외하면 비상근으로 법조인 출신이 많다. 선거 관리의 '중립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법조 출신 비상근·겸직 구조가 이어져 온 것이다. 문제는 판사들이 투표용지 인쇄와 투표소 인력 배치 등 현장 운영 전문가는 아니라는 점이다. 선거법 위반 여부 등에 대한 판단 과정에선 판사 출신 선관위원장과 선관위원들의 전문성이 발휘되지만 나머지 행정업무는 선관위 사무총장 등 행정 담당자들이 맡는다. 비상근·겸직 구조에선 조직 장악력이 떨어지고 내부 통제·관리에 허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원인을 선관위 지배구조와 조직 관리 측면에서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