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언터처블' 선관위는 끝…감시·감독·검증의 시간④

6·3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는 유연한 현장 대처를 저해하는 현행법도 영향을 미쳤다. 현장에서 투표용지를 출력하는 사전투표와 달리 본투표는 선거일 이전 투표용지를 미리 인쇄해 각 투표소로 보내는 구조다. 이번처럼 본투표 참여자가 예상보다 많을 경우 준비된 투표용지가 동나면 추가 용지 즉각 투입이나 수급이 어렵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본투표에서도 일부 현장 발급 방식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본투표와 사전투표의 투표용지 발급 방식을 다르게 설계했다. 공직선거법 제151조 제1항은 본투표용 투표용지를 각 구·시·군 선관위가 미리 작성해 선거일 전날까지 읍·면·동 선관위에 송부하도록 했다. 반면 사전투표 용지는 제158조 제3항에 따라 사전투표 관리관이 발급기를 통해 인쇄해 교부한다. 전국 어디서든 투표할 수 있는 사전투표 특성상 선거인의 선거구에 맞는 투표용지를 현장에서 출력하기 위해서다.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본투표 사전 인쇄 방식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줬다는 평가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투표용지 최소 인쇄 비율을 상향하겠다고 밝혔으나 수요를 예측해 준비하는 현행 구조가 유지되는 한 현장 변수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투표용지를 선거인수대로 100% 준비하는 것도 부담이다. 투표용지가 남을 경우 완전한 회수와 폐기에 공을 들여야 하고 부정선거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지난 2020년 총선 당시 민경욱 전 미래통합당 의원은 개표소에서 발견된 잔여 투표용지를 근거로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본투표에도 현장 인쇄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선관위 공무원 노조는 지난 8일 성명에서 "투표용지가 남으면 부정선거라는 오해와 공격에 직면하고, 부족하면 행정 불신으로 이어지는 딜레마 속에서 현장의 유연한 대처가 제약받을 수밖에 없다"며 "사전 인쇄 방식을 유권자 수에 맞춰 실시간 발급 시스템으로 전환하면 용지 과다·부족 논란을 원천적으로 해소하고 참정권을 보다 안정적으로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정 선구에서만 투표가 가능한 본투표의 경우 각 투표소에서 필요한 투표용지 종류가 확정돼 있는 만큼 현장 발급 방식의 운영 난이도가 오히려 낮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처리 속도와 장비 장애는 고려해야 할 변수다. 사전투표는 이틀 동안 유권자가 분산되지만 본투표는 하루에 수백만 명이 몰린다. 발급기 출력 속도가 뒷받침되지 못하면 대기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출력에 이상이 생기거나 정전 등 전원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투표 진행 자체가 중단될 수도 있다. 선관위를 둘러싼 불신이 여전한 상황에서 '기계 조작'이라는 새로운 의혹이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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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전국 1만4000여개 투표소에 발급기와 예비 장비, 보안 용지, 비상 전원 장치 등을 배치하려면 상당한 예산이 필요하다. 현장에서 원활한 투표용지 출력이 이뤄지려면 투표소당 발급기가 예비 장비를 포함해 수십 대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발급기를 투표소에 예비로 설치해 유사시로 활용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지만 투표용지 전량을 현장에서 인쇄하는 것은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보궐선거나 유권자 밀집 지역, 고령층 거주 비중이 높은 지역 등에서 시범 운영하는 방안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접전 지역이나 투표율 예측 오차가 컸던 지역을 대상으로 도입을 검토할 수도 있다. 안전장치 마련도 필수다. 투표 중단 사태를 막기 위해 예비 발급기와 비상 전원 장치를 의무적으로 배치하고 통신 장애 발생 시에도 작동할 수 있는 기계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장비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발급기 봉인, 사전 점검 절차 법제화 등과 투표용지 인쇄·보관 과정과 동일한 감시 절차 마련 등도 뒷받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