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희연 서울교육감이 23일 고승덕 전 서울교육감 후보와 맞붙은 1심 공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아 수도 서울 교육에 다시 빨간불이 켜졌다. 2심과 3심이 남았지만 당선무효가 뒤집히긴 쉽지 않아 리더십에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식물교육감' 우려가 커짐에 따라 조 교육감이 추진해 온 무상급식, 학생인권조례, 혁신학교 등 각종 정책들도 흔들릴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3일 고 후보를 낙선시킬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기소된 조희연 교육감에게 당선 무효형인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조 교육감은 지난해 6·4 지방선거 당시 기자회견을 열고 "고 후보가 미국 영주권 보유자라는 제보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고 후보는 1991년, 1996년, 2008년에 발급받은 여권과 미국 비자 사본을 제시하며 "미국 국무부는 영주권자에게 비이민 비자를 발급해 주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이후 영주권 논란에 대해 지난해 10월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 등 일부 교육단체들이 조 교육감을 검찰에 고발했고 검찰은 기소를 결정했다.
법원은 "조 교육감이 고 후보의 영주권이 없는 줄 알면서도 허위 정보를 퍼뜨렸다"고 주장한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에서 최종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으면 조 교육감은 공직선거법에 따라 당선 무효가 확정된다. 1심에서 500만원이 선고되면 2~3심에서 감형을 받더라도 통상 100만원 미만의 판결을 받긴 매우 어렵다.
이에 따라 조 교육감의 진보적 성향이 드러난 서울교육청의 각종 정책도 표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조 교육감은 지난 1월 '주요업무계획'을 발표하며 24개의 실천과제, 76개 세부과제, 12개의 중점과제를 선정했다. 이 중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특목중·고교 평가, 9시 등교 등의 정책은 리더십 부재로 인해 변곡점을 맞았다.
시교육청은 지난 2일 2015년도 특수목적고등학교 및 특성화중학교 운영성과 평가 결과를 발표하며 서울외고, 영훈국제중의 평가 결과가 지정취소 기준 점수(60점)보다 낮은 것으로 최종 집계됐다고 밝혔다. 시교육청은 두 학교를 대상으로 지정취소 청문을 열었으나 서울외고가 학부모 집회, 청문 보이콧 등을 통해 평가가 부당하다고 주장하면서 평가사업은 반발에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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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취소 결정권은 교육감과 교육부에 있다. 교육감이 먼저 의견을 제시하면 교육부는 이에 대해 동의나 거절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교육감의 직위가 위태로워지면서 교육청의 추진력은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서울교육청의 또 다른 주요 정책인 9시 등교 사업은 올해 3월부터 실시됐다. 시교육청은 올 3월 2일부터 관내 초등학교 598개교 중 447개교(74.7%), 중학교는 383개교 중 14개교(3.7%), 고등학교는 318개교 중 1개교(0.3%)가 9시 등교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9시 등교 정책은 초등학교에 비해 등교시간이 이른 중·고교의 참여율이 저조하면서 뭇매를 맞았다. "조 교육감의 탁상행정, 실험교육에 학부모와 학생들이 동의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9시 등교는 학교 자율로 실시된다. 조 교육감의 당선무효 가능성이 커지면서 정책에 참여하지 않는 학교 수도 늘어날 전망이다.
조 교육감뿐만 아니라 진보교육감들의 공통 공약인 무상급식과 혁신학교, 학생인권조례 등의 정책도 장기적으로는 흔들릴 것으로 보인다.
조 교육감은 지난달 상근시민감사관, 학생인권옹호관 등을 연달아 선임하며 청렴운동, 학생인권 강화 추진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이들의 권위가 위태로워지면서 학교 현장에서의 영향력도 제한될 가능성이 커졌다.
서울 내 고교에 근무하는 한 교사는 "선거철엔 본청 공무원들이 미리부터 각 후보의 성향에 따라 결재받을 보고서를 따로 작성할 정도로 혼란을 겪는다"며 "교육감의 지위가 흔들리면 시교육청에서 장기적으로 추진 중인 각종 사업들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혁신고교에 근무하는 한 교사는 "곽노현 전 교육감이 물러난 후 보수 교육감이 들어서면서 예산이 확 줄어든 적이 있다"며 "판결 내용과 상관없이 시교육청에서 정책적으로 진행하는 사업의 대상인 교사와 학생은 불안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