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7월 27일 아침 서울 서초구 우면산이 무너졌다. 출근길 도로와 주택가를 덮친 토사는 16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갔고 수많은 이재민과 막대한 재산 피해를 남겼다. 당시 국민이 받은 충격은 피해 규모 때문만은 아니었다. 산사태는 깊은 산속이나 산지에 인접한 지역에서 발생하는 재해라는 오랜 인식을 깨고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도 대규모 인명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우면산 산사태는 우리나라 산림재난 정책의 전환점이 됐다. 이후 서울시를 비롯한 여러 지방자치단체는 산림재난 전담조직을 신설했고, 정부는 산사태 예방 정책을 전면적으로 재정비했다. 그 대표적인 성과가 바로 '산사태취약지역' 지정·관리 제도다.
'산림보호법'이 개정되면서 산사태 우려지역을 조사해 취약지역으로 지정하고, 사방사업 등 예방사업을 우선 추진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마련됐다. 올해부터는 '산림재난방지법'이 시행되면서 보다 체계적인 관리체계가 구축되고 있다.
하지만 산사태취약지역 제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여전히 남아 있다. 일부에서는 다른 지역과 비교했을 때 산사태취약지역에서의 산사태 발생 빈도가 더 낮다며 실패한 정책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이는 제도의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시각이다.
산사태는 집중호우와 지질, 지형, 토양, 식생 등 다양한 환경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 오늘날의 과학기술로도 산사태를 완전히 예측하거나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이 제도를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산사태취약지역에서 산사태가 몇 건 발생했느냐가 아니라 그로 인한 피해를 얼마나 예방하고 줄였는가이다. '산림재난방지법'은 산사태취약지역을 '산사태등으로 인해 인명 및 재산 피해가 우려되는 지역'으로 정의하며 연 2회 이상 점검토록 규정하고 있다. 산사태취약지역 제도는 산사태가 발생하더라도 인명과 재산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그 목표를 두고있는 것이다.
예방시설을 우선 설치하고 대피소 지정 등 주민 대피체계를 구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산사태취약지역은 '산사태가 반드시 발생하는 곳'이 아니라 '산사태 피해를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산사태취약지역'은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2012년 전국 390개소로 시작해 지난해 말 기준 3만4000여개소로 늘어났다. 정부는 2030년까지 약 6만개소를 지정·관리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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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장에서는 또 다른 고민이 존재한다. 중앙정부는 피해 예방 효과를 높이기 위해 가능한 많은 지역을 지정하려는 반면, 실제 관리를 담당하는 지방자치단체는 늘어나는 행정 부담을 우려한다. 산술적으로 기초지방정부 한 곳이 150여개의 산사태취약지역을 관리해야하는 현상황에서 제한된 인력만으로 모든 지역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란 쉽지 않다. 예방정책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취약지역 확대와 함께 관리 인력과 예산도 충분히 뒷받침돼야 한다.
'산사태취약지역'이라는 용어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취약'이라는 표현은 해당 지역 주민에게 불안감을 주고 지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법률 용어는 명확해야 하지만 국민의 정서와 재산권에 미치는 영향 또한 고려해야 한다. 보다 중립적이고 국민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명칭으로의 변경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기후변화는 이제 '기후재난'이라는 현실이 됐다. 국지성 집중호우는 갈수록 빈번해지고 있으며 산사태 위험 역시 커지고 있다. 어떤 수단으로도 산사태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철저한 대비와 예방활동을 통해 피해는 충분히 줄일 수 있다.
' 산사태취약지역 제도'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중요한 것은 산사태의 발생 여부가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얼마나 지켜냈는가이다. 산사태가 발생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하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것이 산사태취약지역 제도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앞으로도 흔들려서는 안 될 우리 재난관리 정책의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