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증인' 법대로라지만…현실은 '기업 군기잡기'

'국감증인' 법대로라지만…현실은 '기업 군기잡기'

진상현 기자
2013.10.04 17:54

누구든 증인 채택 가능..현안과 동떨어진 질문 등으로 망신주기 일쑤

올해 국정감사에도 대기업 총수와 기업 CEO(최고경영자) 등이 대거 불려나갈 전망이다. 4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와 국토교통위원회 등 경제 관련 상임위에서 이들을 무더기로 증인으로 채택했기 때문이다.

국정감사의 민간인 증인 채택은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 10조에 근거하고 있다. 이 조항은 증인·감정인·참고인의 출석을 요구받은 자 또는 기관은 '국회에서의 증언·감정등에 관한 법률'에서 특별히 규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누구든지 이에 응해야 한다고 돼 있다. 각 상임위가 의결만 하게 되면 민간인이건 공무원이건 관계없이 출석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이처럼 관련 법에 따라 적법하게 이뤄지는 기업인 증인 채택이지만 경제계의 불만은 매년 높아만 가고 있다. 증인 채택이 질의 답변을 제대로 소화하기 힘들 정도로 무분별하게 이뤄지는데다 실질적인 문제 해결 보다는 군기잡기식으로 국감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올해도 국토교통위원회에서 4대강 담합과 관련해 대기업의 대표라는 이유로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하는 등 무리한 사례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는 아직 결론도 나지 않은 '학교 주변 호텔 건립'과 관련해 대한항공 사장을,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 중단과 관련해 메가박스 사장을 증인으로 채택하는 요구가 나오기도 했다.

환경노동위원회에서는 정의당 심상정 의원 1명이 신청한 기업인 증인만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허창수 전경련 회장 등 13명에 달했다. 환노위는 결국 이날 증인 채택 안건을 처리하지 못하고 여야간에 협의를 더 진행하기로 했다.

순기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국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기업들이 잘못된 행태를 시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더기 증인 채택으로 인한 부작용이 훨씬 더 크다는 게 문제다. 자신들이 내놓은 정책에 대한 홍보를 목적으로 한 경우가 적지 않고, 호통이나 인신 공격성 발언 등 '보여주기식' 국감이 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어렵게 참석 했지만 아예 질문 한번 못받고 끝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정무위원회 국감의 경우 출석한 26명의 증인 중 질의를 받은 최고경영자는 이형희 SKT부사장, 소진세 세븐일레븐 대표 등 14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12명은 한마디 질문도 받지 못하고, 하루 종일 국감장만 지키다 돌아갔다.

새누리당의 한 재선의원 “개별 기업의 최고경영자나 총수라면 충분히 존경받을 수 있는데 현안과 무관한 질문뿐만 아니라 인신공격성 질문까지 난무하니 국회출석을 꺼리는 거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렇다보니 국감만 되면 주요 기업 회장과 CEO들의 해외 출장이 이어지는 웃지못할 풍경도 연출되고 있다. 불가피한 업무 출장도 있지만 국감을 의식한 출장도 적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나마 올해 부터는 이것도 여의치 않게 됐다. 지난해 국감 증인으로 채택됐으나 불출석했다는 이유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 등이 지난 4월 정식 재판 끝에 1000만~15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 받았기 때문이다. 증인 참석을 피하려면 법정에 설 각오까지 해야한다는 얘기다.

기업인들의 하소연과는 별개로 국회는 증인 채택과 관련된 규정을 더 강화하려는 추세다. 민주당 홍영표 의원은 정당한 이유 없이 불출석할 경우 처벌 수위를 현행 3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에서, 5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같은 당 박영선 의원도 지난 2월초 불출석자에 대한 강제구인을 가능케하고 처벌수위를 높이는'국회 증언감정법 개정안을 내놨다.

국회의원들 가운데도 자정 분위기는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요지부동이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여당 내에서는 논리가 궁색한 경제인 출석 요구는 지양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다"면서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이 되기는 아직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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