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금고 지배구조 기로⑦]지역사회 공헌 금융조합 역할 꾸준..'관리감독 사각지대' 오명 숙제

누구나 학창시절 새마을금고 통장에 푼돈을 저금했던 기억이 있다. 큰 은행이 없던 동네 비탈진 골목에도 새마을금고 하나쯤은 있었다. 새마을금고가 은행 기능뿐 아니라 지역사회 공헌, 조합원 복지향상 등을 목표로 하는 금융협동조합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새마을금고는 조합원에게 규칙적인 저축을 권장하고, 이를 통해 조성한 자금을 저리 융자해 수공업자, 자영업자 등을 돕는 조직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계, 두레나 품앗이 등의 상호부조 전통까지 정신적 배경으로 볼 수 있지만 지금의 새마을금고(중앙회장 신종백)는 1963년을 첫 해로 본다. 그해 4월 경상남도 재건국민운동본부 중심으로 도내 5개 마을에 신용조합이 생겼다.
1961년 설립된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시도별 재건국민운동본부를 거느렸다. 이 본부의 주요 활동이 국민계몽과 단합, 의식주 개선뿐 아니라 국민저축 장려였다.
글자 그대로 마을금고 역할을 수행하던 조합은 1971년 새마을운동이 본격화하면서 폭발적인 성장 계기를 맞는다. 임의기구이던 마을금고는 이때 제도화 단계에 진입한다. 1972년 '신용조합법' 시행으로 새마을금고의 설립, 대출한도, 이자율 한도 등 법적인 규제 테두리에 들어왔다.
1982년 새마을금고법이 제정돼 부실금고 통폐합, 정비작업이 벌어졌고 새마을금고 안전기금도 설치됐다. 조합원 납입금 환급보증과 회원 재산보호가 목적이다. 농촌에서 출발한 만큼 초기엔 영농활동 지원이 주목적이었지만 도시화가 진행되고 전국단위 금고가 되면서 극장·병원·학교·목욕탕·장학회 설립 등에 투자했다.
금고 숫자는 정점을 찍은 1979년 이후 위축세다. 그래도 조합원과 자산은 꾸준히 증가했다. 2012년엔 자산 100조원 시대를 열었다.
지금도 전국 각지에 촘촘한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지역별 새마을금고 이사장은 지역 유지 대접을 받는다. 금고 지점장이면 동네 현황이나 주민들의 주머니 사정을 훤히 본다.
금융전문성이나 관리감독 측면에선 숙제가 여전하다. 금고가 태동한 1963년에 비하면 금융산업이 비약적으로 성장했는데 새마을금고에선 잊을 만하면 지점장·직원의 도덕적 해이 사건이 터져 나와 조합원을 불안하게 했다.
2009년 서울의 한 새마을금고 지점장이 자신을 통하면 높은 이자를 줄 수 있다며 고객 자금 80억원을 유치한 뒤 잠적했다. 지난해 대구의 한 새마을금고 직원이 고객돈 16억원을 빼돌려 사라진 일도 있다. 2009~2013년의 5년간 횡령사고만 총 21건에 피해액은 266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때문에 중앙회와 안전행정부의 감사가 금융감독원 감사보다 허술하다는 지적도 꾸준히 나온다.
새마을금고는 지난해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마을금고(MG)라는 영문약칭과 새 CI도 발표하면서 이미지 쇄신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