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포트
-
[스코어보드대상]황희 "군 복지·사기 등 무형전력, 첨단무기보다 중요"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양천구갑)이 '2025 국정감사 스코어보드 대상'을 받았다. 황 의원은 "국방의 본질인 '군인'의 가치에 주목한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황 의원은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이 주최한 '2025 대한민국 최우수법률상 및 국정감사 스코어브 대상' 시상식에 참석해 이같이 밝혔다. 황 의원은 머니투데이 더300이 매년 평가하는 국정감사 스코어보드에서 국회 국방위원회(국방위) 부문 최고점을 받았다. 황 의원은 올해 국방위 국감에서 군의 복지체계 강화 필요성을 강조하며 국방위 '군복지개선소위원회' 신설을 이끌었다. 황 의원은 "그동안 국방개혁은 무기체계 고도화에만 집중해 왔다"며 "하지만 장기간 휴전 상태에 있는 우리에게 군의 복지와 사기 등 무형 전력은 어떤 첨단 무기보다 중요한 안보자산"이라고 강조했다. 황 의원은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이번 국방위 국감에선 군인의 주거·급여·자녀교육 등 복지 전반을 점검하고 체계적인 개선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다"며 "'군인 가족들이 전투기 몇 대만도 못한 존재는 아니지 않느냐'는 질의는 현장의 절박한 목소리를 담은 것"이라고 말했다.
-
[스코어보드대상]유용원 "초급·중견간부 이탈 가속화…사기·처우개선 시급"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비례)이 '2025 국정감사 스코어보드 대상'을 받았다. 유 의원은 "우리 군이 흔들리지 않도록 더 치밀하고 단단하게 제 자리에서 끝까지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유 의원은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이 주최한 '2025 국정감사 스코어보드 대상' 시상식에 참석해 이같이 밝혔다. 유 의원은 머니투데이 더300이 매년 평가하는 국정감사 스코어보드에서 국회 국방위원회(국방위) 부문 최고점을 받았다. 올해 국방위 국감에선 북한이 공개한 극초음속 미사일의 위험성 등을 지적하며 군의 대응 방안 마련을 촉구했다. 또 초급·중견간부 이탈이 가속화하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장병 사기 진작, 처우 개선을 위한 대책 마련을 주문하며 주목 받았다. 이날 시상식에서 유 의원은 "그동안 저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며 당면한 문제를 정확히 제기하는 것이 국정감사의 본질이라고 믿어 왔다"며 "그래서 이번 국정감사가 단순히 비판을 위한 절차가 아니라 제도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지금 제대로 안 하면 '계엄' 또 온다…"헌정질서 회복 첫걸음은 처벌"
12·3 비상계엄 사태 발생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계엄 전후 상황에 대한 수사는 진행 중이다. 계엄 처벌에 왜 이렇게 긴 시간을 들이고 있을까. 법조계는 "헌정질서 회복의 첫걸음이 처벌이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비극이 다시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선 명확한 진상규명부터 해야 한다는 얘기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오는 14일까지 수사를 진행한다. '김건희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의 수사 기한은 오는 28일까지다. 법원에는 각 특검이 기소한 사건들이 쌓여있다. 서울중앙지법은 내년 초부터 계엄 관련 사건들을 연이어 선고할 것으로 보인다. 계엄에 대한 처벌 과정이 지속되면서 일각에서는 피로감을 호소한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수사를 장기화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하지만 온 국민을 충격에 빠트린 초유의 사태였던 만큼 제대로 짚고 넘어갈 필요성이 크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유승익 명지대 법학과 교수는 "내란은 헌정질서 파괴 범죄로 우리 법에서 이미 규정을 하고 있다"며 "그런데 내란으로 읽힐 수 있는 계엄 선포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은 우리 헌정 질서의 일부분이 파괴됐거나 최소한 허약해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
"식당서 TV 뉴스도 못 틀었다"…한남동에 남은 계엄 트라우마
"처음 보는 광경이라 지금 떠올려도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입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죠. " 11월말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관저 일대는 차분한 분위기였다. 거리엔 직장인 등 몇몇만 오갔다. 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차량 소음이 선명히 들릴 만큼 주변은 조용했다. 차도 통제는 없었다. 길가엔 쓰레기도 없었다. 하지만 올해초에는 달랐다. 귀를 막아야 할 정도로 시끄러웠고 소음은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윤석열 전 대통령 체포 과정에서 찬반 집회 참가자들이 몰려들며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한파주의보 등 추위는 사람들을 막지 못했다. 식당 주인 최모씨(48)는 그때의 혼돈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그의 가게 앞은 집회 인파로 가득 찼고, 한겨울 추위 속에서도 소음이 종일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18년 넘게 이곳에서 장사했지만, 그런 상황은 처음이었다"라며 "일하는 가게가 역사적 현장의 한가운데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라고 했다. 지난 1월15일 두번째 체포 시도가 진행됐고 식당 근처는 아수라장이 됐다.
-
경찰 뒤흔든 계엄 여파 계속된다…인사 '지연', 가담자 '색출' 돌입
경찰의 비상계엄 여파는 끝나지 않았다. 조지호 경찰청장 탄핵 심판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서 직무대행 체제가 이어지고, 올해 하반기 인사는 아직도 이뤄지지 않았다. 중간다리인 경찰서장급 총경 인사부터 막히면서 불안정한 상황이 계속된다. 비상계엄 가담 경찰관 색출 작업이 본격 시작된 점 역시 조직 내 혼돈을 키운다. ━3개월 넘게 미뤄진 하반기 인사, 총경·경정급 혼돈 속━2일 경찰에 따르면 매년 7~8월에 이뤄지던 총경 전보 인사는 이달에서야 진행될 예정이다. 경찰청은 지난달 시행됐던 근무평정이 마무리되는 대로 총경 인사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실제 인사 발표 시점은 여전히 미궁 속이다. 총경 계급은 흔히 '경찰의 꽃'이라 불린다. 시·도경찰청 과장, 일선 경찰서장 계급으로 실질적인 지휘관 역할을 맡기 시작하는 계급이면서 경정·경감 등과 함께 실무의 최전선에 있는 인력이다. 치안감·경무관 등 고위 지휘관에게도 직접 업무보고를 맡으면서 지휘부와 현장경찰을 잇는 경찰 조직의 가장 중요한 고리다. 총경들의 배치를 보면 그 해 경찰의 치안 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
-
재판에 넘겨진 내란 책임자...단죄, 얼마나 내려질까
비상계엄 직후 윤석열 전 대통령 등이 수사를 받고 내란 우두머리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선고는 내년 초 예정돼 있다. 피고인들이 혐의에 따라 형량이 얼마나 나올지 주목된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지귀연)가 내년 1월 심리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재판부가 오는 29일 3개의 내란 사건 재판을 병합한다고 했기 때문에 윤 전 대통령과 함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 등과 조지호 경찰청장·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 등에 대한 사건도 함께 내년 2월 중순쯤 결론이 나올 방침이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과 관련, 내란 우두머리·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재판받고 있다. 내란 우두머리(수괴)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처한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의 추가 기소에 따라 특수공무집행방해, 일반이적죄 혐의 재판도 각각 추가됐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이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집행하려 하자 대통령 경호처를 동원해 영장 집행을 저지한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 등이 적용됐다.
-
"비상대권으로 헤쳐가야"부터 선포까지…공소장으로 본 계엄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구상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12·3 비상계엄·내란·외환 관련 형사재판에 넘겨진 이들의 공소장으로 계엄 선포까지의 상황을 재구성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비상대권', 계엄 구상의 시작━윤 전 대통령의 계엄 첫 구상 시점은 취임 반년 만인 2022년 11월로 추산된다. 윤 전 대통령의 외환 혐의(일반이적죄) 공소장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그때부터 '비상대권'을 언급했다. 당시 여소야대 속에서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대립으로 정치적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한 시점과 맞물린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3월 군·정보 라인과 가진 삼청동 안가 만찬 자리에서 더욱 구체적인 계엄 논의에 나섰다. 김용현 전 경호처장(이후 국방부 장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등과 함께 식사하며 "비상대권을 통해 헤쳐 나가는 수밖에 없다. 군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외에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처장 앞에서 7~8차례 '비상대권', '비상조치권' 등을 언급했다.
-
12월3일 22시27분부터 4월4일 11시22분까지…123일의 기록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 2024년 12월3일 22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통해 대한민국 전역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1979년 계엄 선포 이후 45년 만이었다. 선포 직후 군병력이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 이동했고 여·야 정치권 모두 긴급 의원총회를 소집하는 등 상황은 급박하게 흘러갔다. 자정 무렵엔 계엄군이 헬기 등을 통해 국회 경내로 진입했고 경찰은 국회진입을 차단했다. 우원식 국회의장 등 일부 의원들은 국회 담장까지 넘어 본회의에 참석했다. 계엄군이 국회 본청 진입을 시도했지만 시민들과 당직자, 보좌진들의 저항에 막혀 실패했고 결국 4일 오전 1시1분 계엄해제요구 결의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계엄선포 155분 만이었다. 3시간여가 흐른 오전 4시27분. 윤 전 대통령은 국회의 해제요구를 수용하겠다고 밝혔고 3분 뒤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 국무회의에서 계엄해제안이 의결됐다.
-
"피로 만든 역사 지켜야"…계엄의 밤, 국회로 달려간 다섯 시민의 증언
전 국민을 충격에 안긴 지난해 12월3일 밤. 일면식도 없는 수많은 시민들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이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강행한 비상계엄 해제를 위한 국회로 향했다. 나이도, 직업도, 성별로 달랐지만 이유는 같았다. 선배 세대가 피로 만든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참극을 막아야 한다는 결심이었다. 머니투데이는 비상계엄 1년을 맞아 계엄 당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달려간 시민 5명과 만났다. 일상으로 돌아간 이들에게 그날 밤의 충격은 여전히 생생했다. 다시 같은 일이 벌어져도 국회로 가겠다는 의지도 확고했다. ━'계엄 선포' 듣자마자 국회로 향한 시민들━ 직장인 최윤이씨(28)씨는 계엄 소식을 듣자마자 국회로 향했다. 밤 10시30분 장례식장에서 텔레그램을 확인한 그는 "40여년간 없던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에 눈앞이 캄캄했다"고 했다. 영등포 집 근처에 군이 깔렸을 것이란 불안보다 국회로 가야 한다는 판단이 들었다. 가까스로 잡은 택시에서 기사도 손을 떨고 있었다. 기사는 "위험하다"고 했지만 최씨가 "안 가는 게 더 무섭다"고 말하자 "가까운 곳까지 가보겠다"며 차를 몰았다.
-
"계엄 후 '정서적 내전'에 지쳐"…국회 달려간 청년의 토로
"계엄 당일 국회에 간 절 칭찬한 친구가 탄핵이 인용되자 크게 화를 내더라고요. " 20대 남성 A씨는 지난해 12월3일 밤 집에 누워 있다가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접하고 친구들과 국회로 달려갔다. A씨와 친구들이 도착하자 경찰관들이 국회를 에워싼 상황이었다. 국회 상공에는 헬기가 날아다녔다. 국회가 계엄 해제 안건 표결에 들어가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국회 앞을 지켰다. A씨는 "명백한 잘못이 있으니 윤석열 전 대통령이 당연히 파면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4일 뒤 예상치 못하게 탄핵 소추안이 부결됐다"고 말했다. 그가 더 놀란 건 계엄 이후 윤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윤어게인' 세력의 등장이다. 그의 주변에서도 탄핵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A씨는 "무조건 진보 성향이라고 생각했던 친구도 어느새 소셜미디어에 부정선거, 윤어게인을 올리고 있더라"고 말했다. 계엄 이후 A씨는 극심한 갈등을 체감하고 있다. 그는 "계엄을 선포한 12월3일 이후에 정서적 내전이 더 심해진 것 같다"며 "일상에서마저 갈등이 양극화됐다는 현실에 무서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한강 소설 읽다 국회 간 대학생
지난해 12월3일 밤, 문예창작과 1학년생 채윤씨(20)는 서울 서대문구 집에서 비평 과제를 하고 있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소설을 통해 '문학의 시대적 책임'을 서술하라는 과제였다. 소설의 배경인 1980년의 광주를 공부해 갔다. 머리를 싸매다가 자정이 돼서야 확인한 휴대전화는 뜨거웠다. "계엄이 선포됐다. " 단체 대화방에 수많은 메시지가 쏟아져 있었다. 채씨는 "처음엔 인공지능이 만든 가짜라고 생각했다. 계엄일 리가 없지 않냐"며 "뒤이어 유튜브를 켰더니 난리가 난 국회 주변 영상이 보였다. 대통령이 진짜로 계엄을 선포한 건가 싶어 얼떨떨함이 컸다"고 말했다. 그는 곧장 나갈 채비를 했다. 채씨는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코트를 걸치고 태블릿PC와 보조배터리를 가방에 넣었다. 심야버스를 기다릴 시간도 없었다. 눈에 보이는 택시를 잡아탔다. "여의도 간다"고 하자 60대쯤 돼 보이는 택시 기사는 "젊을 때 나도 학생 운동했다. 통제 때문에 다는 못 들어갈 테니 가능한 데까지 가보겠다"고 말했다.
-
계엄날 백발 시민은 군인에게 말했다…"날 쏘고 넘어가라"
지난해 12월3일 밤 11시40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 철공소 사업을 하다가 은퇴한 백발의 문혁씨(73)가 놀란 건 무장한 군인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국회로 달려온 수많은 청년들과 함께였다. 문씨는 "(청년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동시에 느꼈다"고 말했다. 문씨는 계엄 당일 잠을 자려고 누웠다가 지인의 전화를 받고 계엄 선포 사실을 알았다. 그는 지인들에게 연락을 돌리며 "몸부터 숨겨라"고 당부했다. 정작 자신은 차를 몰고 국회로 향했다. 평생 서울에서 살며 여러 격동의 순간을 목격한 문씨는 "계엄의 무서움을 알기에 잡히면 큰일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면서도 "시민들이 국회로 모이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몸이 먼저 움직였다"고 했다. 국회 정문 근처에 도착하자 군인들이 버스에서 우르르 내렸다. 그들은 총을 들고 열 맞춰 시민들과 대치했다. 문씨는 "지휘관 지시에 앞줄 군인 8명이 담장을 넘어 국회로 들어가길래 지인과 함께 군인들을 끌어내렸다"며 "군홧발에 얼굴을 찍힐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지만 젊은 군인들은 적극적인 의사를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