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국의 아포리아
아포리아는 그리스어의 부정 접두사 아(α)와 길을 뜻하는 포리아(ποροσ)가 합쳐져 길이 없는 막다른 골목, 또는 증거와 반증이 동시에 존재하여 진실을 규명하기 어려운 난제를 뜻하는 용어. '김남국의 아포리아'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에 대해 지구적 맥락과 역사적 흐름을 고려한 성찰을 통해 새로운 해석과 대안을 모색한다.
아포리아는 그리스어의 부정 접두사 아(α)와 길을 뜻하는 포리아(ποροσ)가 합쳐져 길이 없는 막다른 골목, 또는 증거와 반증이 동시에 존재하여 진실을 규명하기 어려운 난제를 뜻하는 용어. '김남국의 아포리아'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에 대해 지구적 맥락과 역사적 흐름을 고려한 성찰을 통해 새로운 해석과 대안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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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는 좌, 우파를 막론하고 어느 정부가 들어서든 직면하게 되는 세 가지 난제가 있다. 첫째 부동산, 둘째 교육, 셋째 통일이다. 이 문제들은 지금까지 모든 정부가 도전했지만 어떤 정부도 해결하지 못했다. 그나마 나은 평가가 어느 정도 선에서 적절히 관리했다는 것이다. 특히 부동산은 우리의 욕망을 시장이란 이름 아래 감춘 결집체이기 때문에 인간의 이기심에 의해 가격이 상승하면 사람들은 그 결과를 두고 정부가 시장을 이기지 못했다고 비웃는다. 최근 부동산의 불안정은 방역대책과 함께 정권을 흔드는 표적이 되면서 정국이 더욱 요동치고 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둘러싼 딜레마는 인간의 이기심을 인정하고 그것이 만든 결과를 시장을 통해 타협해낸 자본주의적 인간관의 성공과 창조적인 인간의 본성이 교육에 의해 완전하게 구현될 수 있다고 믿었던 사회주의적 인간관의 실패를 연상시킨다. 사회주의는 무엇보다도 자본제적 생산양식에 고유한 시장의 무정부성을 계획에 의한 의식적 통제로 대체하려는 시
영국 의회에는 매주 수요일 총리가 의원들의 현안에 답하는 ‘총리의 질의응답 시간’(Prime Minister’s Question Time)이 있다. 질문을 원하는 의원들이 일어서면 의장이 지명하고 총리는 곧바로 여야를 가로질러 놓인 탁자 앞으로 나와 대답한다. 야당 대표와 마주 보는 탁자의 넓이는 전통적으로 서로 칼을 뽑아 겨눠도 닿지 않을 정도의 거리로 정해져 있다. 1시간가량 진행되는 이 질의응답을 보고 있으면 영국의 외교정책부터 런던의 하수구 문제까지 막힘없이 대답하는 총리의 국정파악 능력에 놀란다. 어떻게 총리가 보좌진의 도움 없이 모든 현안에 즉각 대답할 수 있을까. 개인차를 떠나 제도적인 이유를 찾자면 의원내각제의 힘이다. 초선의원이 된 이후 야당의 경우라도 ‘그림자 내각’(shadow cabinet)의 차관보나 차관, 장관을 맡아 각 부처를 돌면서 중진의원(front bencher)이 되기까지 20여년을 보내면 국정 현안을 거의 빠짐없이 파악할 수 있다. 1997년
1992년 4월 한인들이 큰 피해를 입었던 미국 ‘LA(로스앤젤레스) 폭동’의 발생원인 가운데 하나는 이전해 3월에 있었던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LA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던 한인 두모씨는 CCTV(폐쇄회로TV)로 흑인 여학생이 자기 가방에 음료수를 집어넣는 것을 확인하고 그가 도둑이라고 확신한 나머지 계산대 앞에 선 그의 가방을 잡아채며 음료수를 내놓으라고 소리쳤다. 실랑이 끝에 여학생은 가방으로 두씨의 머리를 쳤고 돌아서서 가는 여학생을 향해 두씨는 권총을 발사했다. 여학생은 현장에서 사망했고 두씨는 살인죄로 기소됐다. 그러나 이후 CCTV를 확인한 결과 여학생은 음료수를 카운터에 올려놓았고 음료수 값을 치를 2달러를 손에 쥐고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더구나 흑인 여학생은 인근 고등학교의 우등생이었다. 재판은 잦은 흑인 강도에 시달리던 두씨가 충분히 착각할 여지가 있었고 따라서 정당방위를 인정한다며 사회봉사와 보호관찰을 선고했다. 분명히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이 사실이라고
프랑스 정치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는 “모든 정치적 변혁은 과거에 비하면 혁명적이지만 미래에 비하면 반동일 뿐”이라고 말했다. 과거의 어떤 사건이 끊임없는 해석과 재평가를 거치면서 안정적인 역사적 지위를 획득하기는 쉽지 않다. 5·18 민주화운동은 1980년 신군부에 의해 고립된 광주에서 시작해 아시아 민주화운동의 전범이 됐고 세계 인권사의 한 축을 담당하는 사건으로 발전해왔다. 물론 이 과정은 민주, 인권, 평화를 중심으로 5·18 민주화운동의 가치와 정신을 지속적으로 재규정하고 확장해온 한국 민주주의의 진전으로 가능했다. 1980년 5월 광주는 신군부 세력의 계엄확대를 통한 정권장악 시도에 시민들이 정면으로 저항한 현장이었고 고립 속의 짧은 승리와 시민공동체의 출현을 거쳐 계엄군이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하고 학살한 반인도적 범죄의 현장이었다. 패배로 끝난 듯했던 5·18 민주화운동은 1987년 6월항쟁의 기폭제가 됐고 민주주의 이행 역사에 새로운 길을 제시한 1995년의
유럽에서 좌우파의 개념은 3차례의 과정을 거쳐 변화해왔다. 우선 경제적 차원에서 시장 중심의 분배를 강조하는 우파와 국가 중심의 재분배를 강조하는 좌파 구분이 전통적으로 자리잡았고 이후 사회적 차원에서 권위에 대한 존중을 강조하는 우파와 권위에 대한 해방적인 흐름을 강조하는 좌파가 등장했다. 최근에는 시장에 의한 분배와 국가에 의한 재분배라는 사회경제적 차원의 좌우파 구분은 약화하고 극우정당이 대표하는 고립적 민족주의와 녹색당이 대표하는 다원적 세계주의라는 사회문화적 차원의 좌우파 개념이 지배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좌우파 개념도 이러한 내용을 비슷하게 공유하지만 코로나19 위기를 겪으면서 다원적 세계주의 대 고립적 민족주의라는 좌우 개념이 훨씬 선명하게 나타났고 세계주의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룩한 방역정책의 성공이 집권여당에 대한 지지로 이어졌다. 특히 한국의 민주적 투명성, 생명존중의 책임성, 열린사회의 세계주의를 표방한 방역정책 성과는 개인의 권리보다 공동체의
최근 코로나바이러스 위기는 폭넓은 공공의료시스템 구축과 투명하고 신속한 행정서비스체계가 ‘인간안보’(human security)에 중요한 구성요소며 기존 안보개념은 주권을 둘러싼 정의로부터 탈정치화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국가를 중심으로 군사적 수단을 사용해 영토의 보전과 정치적 독립을 유지하는 것을 ‘국가안보’(national security)라고 한다면 인간안보는 개인을 기근이나 질병, 억압으로부터 보호하고 갑작스러운 일상의 중단에서 오는 고통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시 말해 기존 국가안보 개념이 주권을 중심으로 한 정치공동체 수호에 우선을 두었다면 인간안보 개념은 그렇게 수호된 국가 안에서 개인의 자유와 자아실현을 어떻게 증진할 것인지에 우선을 둔다. 그러니까 국가안보에서 인간안보로의 전환에는 적어도 2가지 이행이 전제된다. 첫째는 영토에 대한 보호에서 사람에 대한 보호로의 이전이고, 둘째는 군사적 수단에 의한 안보에서 개인의 지속적인 발전을 통한
아카데미 시상식과 영화 ‘기생충’을 보면서 세계가 이미 우리 안에 들어와 있고 우리 또한 세계 체제에 깊숙이 편입됐음을 실감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세계와 우리 사이에 물리적 거리는 사실상 없으며 오히려 문제는 우리 의식 속에서 재생산되는 중심과 주변의 이분법이다. 우리 안의 중심과 우리 안의 세계에 대해 봉준호 감독은 지난해 10월 미국 매체 벌처와 인터뷰에서 “그동안 오스카상을 받지 못한 것은 이상하지만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다. 오스카상은 국제영화제가 아니라 매우 로컬(local)한 영화제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자유주의자의 언어로 오늘날 지구적 문제가 된 양극화의 모순과 사회·경제적 갈등의 심화를 고발하면서 ‘살인의 추억’ ‘괴물’ ‘설국열차’를 통해 “국가 공권력을 조롱하고 사회 불만세력의 행동을 부추기는” 전형적 예술인의 자세를 보여왔다. 스스로의 문제를 직접 보지 못하고 서구인들에 의해 주어진 프리즘을 통해 자신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탈진실(post truth)의 시대’를 상징하는 대표적 정치인이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직접 시민들과 소통하면서 기성 언론권력에 저항한다고 말한다. 사실을 왜곡하고 통계를 조작한다고 비난받지만 더 거대한 악을 무찌르기 위해 불가피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지지하는 사람도 많다. ‘탈진실의 시대’란 대중여론을 형성하는데 개인의 신념이나 감정에 대한 호소가 객관적 사실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가리킨다. 애초 탈진실이라는 개념은 누구도 객관성과 공정성을 독점하지 못하기 때문에 맥락과 해석에 따라 서로 다른 진실이 존재할 수 있다는 자유주의의 상식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합리적 오류 가능성이란 상식은 곧 진실을 무시하고 시민들의 선입견과 감정을 이용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려는 반자유주의 세력에 의해 도전받기 시작했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개인을 넘어선 교량형 사회적 자본을 만들어낼 기술적 가능성 때문에 기대를 모았지만 의외로 탈진실의 시대를
올 연말에 들려온 소식 가운데 가장 신선한 충격은 34세 여성 정치인 산나 마린이 핀란드의 새로운 총리가 됐고 심지어 연정에 참여한 핀란드 4개 정당 대표가 모두 여성이며 전체 각료 19명 가운데 12명, 그리고 핀란드 국회의원의 47%가 여성이란 사실이었다. 우리가 실체를 알 수 없는 북핵 위기나 미중 패권경쟁의 담론에 사로잡혀 있을 때 정작 우리 삶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 우리 사회 내부의 중요한 의제들은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여성의 권리신장과 성평등 문제도 그러한 의제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여성혐오를 뒤집어 보여주는 미러링이나 사회적 공개처벌의 효과를 가져온 미투논쟁 등이 주춤한 사이 페미니즘의 세계적 흐름은 일련의 보편주의적 전환을 보여주고 있다. 페미니즘 연구의 방법론 차원에서 보면 비판에서 구성으로의 변화가 두드러지고 내용 차원에서는 평등에서 자유로 이동하고 있으며, 분석의 대상으로 보면 특정 젠더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일반적인 사회정의에 대한 관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북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에서 등장하는 가장 흥미로운 개념은 ‘건설적 모호성’(constructive ambiguity)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한 신·구교도 사이의 폭력적인 갈등으로 3000여명이 희생된 불행한 역사를 끝맺은 1998년의 성금요일협정은 제7조에서 무장해제에 관한 내용을 다룬다. 이 조항은 구체적인 제도화 형식이나 운영 방식을 설명하는 다른 조항들과 비교할 때 의외로 간단하다. 7조는 모든 관련 당사자는 무장해제가 협상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임을 인식하고 서로 노력하며 국제위원회의 감시 아래 2년 안에 완전한 무장해제를 이룬다고 짧게 언급했다. 이러한 모습으로 7조가 써진 데 대해 아직 완전한 합의에 이르지 못한 어려운 사안을 추상적이고 원칙적인 수준에서 간략하게 언급함으로써 협상참여를 쉽게 만드는 ‘건설적 모호성’을 보인다고 평가한다. 실제 구교도 계열인 아일랜드공화국군의 무장해제는 1998년 협정이 체결되고 한참 후인 2001년 시작되어 2005년 완결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쓴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에선 한반도 상황과 관련해 외교·안보 문제에 문외한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신경질적으로 2가지 질문을 한다. 첫째는 한반도에서 대규모 미군을 유지함으로써 얻는 이익이 무엇인가이고, 둘째는 미국이 한국을 위한 방위비용으로 막대한 지출을 하는데 한국은 여전히 미국의 친구인가다. 당시 국방장관이던 짐 매티스는 미군이 안정적인 민주주의를 위해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으며 한국은 자유선거와 활기찬 자본주의를 가진 민주주의의 요새라고 대답한다. 트럼프가 여전히 불만을 표시하자 알래스카에선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감지하는 데 15분이 걸리지만 한반도에선 7초면 알 수 있다고 추가한다. 그래도 트럼프가 한반도 주둔 미군의 중요성을 이해하려 하지 않자 매티스는 제3차 세계대전을 막기 위해 미군이 그곳에 주둔한다고 냉정히 말한다. 2018년 12월 미국이 시리아에서 철군을 발표하자 매티스는 이에 항의해 국방장관직을 사퇴하면서 미국의 이익
최근 조 국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찬반논쟁은 우리 사회에 엄연히 존재했지만 실제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던 계급과 신분의 문제를 전면에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모든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고 그 존엄과 권리에서 평등하다는 세계인권선언의 이상과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거리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도처에서 쇠사슬에 묶여 있다”는 루소의 말이 여전히 현실을 더 잘 묘사한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는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이라는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쇠사슬로 묶인 현실을 개선하는 과정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자유주의 평등이론 가운데 운 평등론자들은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을 ‘운’과 ‘선택’으로 나누고 자신의 선택으로 인한 불평등은 정당하지만 운으로 인한 불평등은 정당하지 못하다고 본다. 따라서 운의 차이를 어떻게 사회제도적으로 통제해서 운의 불평등에 영향받는 개인에게 평등한 삶의 기회를 부여하느냐에 관심을 쏟는다. 물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