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국의 아포리아
아포리아는 그리스어의 부정 접두사 아(α)와 길을 뜻하는 포리아(ποροσ)가 합쳐져 길이 없는 막다른 골목, 또는 증거와 반증이 동시에 존재하여 진실을 규명하기 어려운 난제를 뜻하는 용어. '김남국의 아포리아'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에 대해 지구적 맥락과 역사적 흐름을 고려한 성찰을 통해 새로운 해석과 대안을 모색한다.
아포리아는 그리스어의 부정 접두사 아(α)와 길을 뜻하는 포리아(ποροσ)가 합쳐져 길이 없는 막다른 골목, 또는 증거와 반증이 동시에 존재하여 진실을 규명하기 어려운 난제를 뜻하는 용어. '김남국의 아포리아'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에 대해 지구적 맥락과 역사적 흐름을 고려한 성찰을 통해 새로운 해석과 대안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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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정치공동체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자연상태의 인간에 대해 홉스는 외롭고, 가난하고, 형편없고, 잔인하고, 부족하다고 묘사한 바 있지만 해나 아렌트는 아예 인류의 범주로부터 추방당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 전역에서 무국적자가 증가하자 이들의 비참한 상황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 무국적자는 정치공동체에 참여가 불가능함을 의미했고 사실상 도덕과 법 사이의 모호한 공간에 버려진 이들을 가리켰다. 국가가 없다는 것은 곧 권리가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렌트가 보기에 인간의 권리는 오직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조건이 갖춰져야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권리는 결코 선험적인 인간의 존엄에 근거하지 않으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인간의 선험적 존엄이란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잘못된 신화이다. 결국 아렌트는 모든 사람에게 어떤 권리보다 우선해서 보장돼야 하는 기본적 인권으로서 정치공동체에 속할 권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귀결되어 가던 1945년 2월 처칠과 루스벨트, 스탈린은 크림반도의 얄타에서 만났다. 사실상 서로의 이익을 보장하며 전후 질서를 구획해 가던 회담에서 스탈린이 폴란드 국경선을 300Km 서쪽으로 옮기자는 제안을 했고 루즈벨트는 이에 동의했다. 이른바 커즌 선으로 불리는 폴란드 동쪽의 영토를 소련이 차지하고, 대신 오데르 나이세 강 동쪽의 독일 땅을 폴란드에 줌으로써 1200만여 명의 강제이주가 불가피하게 발생할 결정이었다. 루스벨트가 스탈린의 이런 무자비한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몇 가지 정황으로 짐작할 수 있다. 우선 두 사람이 대지주의 아들과 구두수선공의 아들로서 전혀 다른 배경을 가졌지만 의외로 서로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가진 사이였고, 아직 냉전이 본격화하기 전 미국과 소련은 전후 세계 질서 운영에서 우호적인 협력이 가능할 것으로 믿고 있던 시기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동아시아에서 일본군의 강력한 저항에 고전하고 있던 미국이 소련의
미중 패권경쟁의 격화 속에 한일관계의 악화도 심상치 않다. 적극적인 관계 개선 노력 없이 현재와 같은 정체상태가 지속되는 원인에 대해 세력전이론에 기반한 설명이 있다. 압도적 패권국가가 존재하고 이 국가와 주변 국가들 사이의 힘의 불균형 속에 오히려 평화가 유지된다는 세력전이론에 따르면 동아시아 지역은 일본에서 중국으로 패권국가의 지위가 넘어가는 상황에서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1895년 청일전쟁 승리 이후 지속된 일본의 패권적 지위는 2010년 중국의 GDP(국내총생산)가 6조1000억달러로 일본의 5조7000억달러를 처음으로 추월하면서 역전된다. 한국과 중국·일본의 GDP는 1990년 한국을 기준으로 대략 1대1.3대11.2였다면 2010년에는 1대5.6대5.2로 변화한다. 2010년을 기점으로 중국과 일본 사이의 세력전이도 놀랍지만 한국과 일본의 힘의 크기도 1910년 이후 가장 대등한 상태로 들어섰다. 이러한 세력전이와 힘의 균형 상태가 오히려 동아시아에 구조적인 갈등의
한국 사회에서 민족이란 단어는 1906년 무렵 처음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초기에 지식인들 사이에서 쓰이다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널리 퍼졌다. 그러니까 우리의 근대가 처음부터 민족을 말한 것은 아니다. 예컨대 1898년 만민공동회의 헌의 6조를 보면 민족이 아니라 개인의 생명과 재산의 보호를 주장하는 시민적 권리가 중심 내용을 이룬다. 독립신문도 국가 차원보다 개인 차원의 자유를 강조하는 의미에서 독립이라는 개념을 주로 사용했다. 그러나 외세의 개입과 제국주의 침략이 본격화하면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바탕으로 한 근대적 담론들은 급속히 민족주의 담론으로 대체되어 갔다. 민족의 신화를 비판하는 학자들은 민족이 오랫동안 지속된 문화인종적 공동체로부터 발전했다기보다 역사적으로 ‘발명된 전통’(invented tradition)이라고 본다. 민족의 연속성이나 문화적 순수성은 민족주의에 의해 만들어진 신화일 뿐이며 민족주의가 필요에 따라 민족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 따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하는 방식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최근 소동은 우리의 관심이 영국 의회의 움직임에 맞춰지면서 EU의 앞날과 세계질서에 가져올 영향을 놓치는 측면이 있다. 현재의 논의는 적어도 3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다시 검토해볼 수 있다. 첫째는 영국과 EU가 북아일랜드 국경 개방 여부를 둘러싸고 갈등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이 국경논쟁이 세계질서에서 상징하는 의미는 무엇인가다. 둘째는 과연 브렉시트가 가져올 분열의 결과보다 우파 민족주의 부활을 중심으로 한 동유럽과 서유럽 사이의 분열이 EU의 앞날에 더 큰 변수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셋째는 만약 브렉시트 및 강대국 국제정치의 부활과 함께 EU가 쇠퇴한다면 이러한 진전은 세계질서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다. 우선 EU가 영국의 탈퇴에도 불구하고 북아일랜드 국경 개방의 유지를 요구하는 것은 이 정책이 신구교도 사이의 오랜 유혈충돌을 종식한 1998년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의 대표적 성과이기 때문이다. EU는 1995년부터 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