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칼럼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자 금융·기업법 전문가인 김화진 교수가 국내외 경제, 금융, 기업, 사회 이슈를 깊이 있게 분석하고 통찰력 있는 시각으로 전달하는 코너 입니다.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자 금융·기업법 전문가인 김화진 교수가 국내외 경제, 금융, 기업, 사회 이슈를 깊이 있게 분석하고 통찰력 있는 시각으로 전달하는 코너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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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염재호 전 총장이 SK의 이사회 의장인 사외이사로 취임하게 된 것이 화제다. SK는 이번에 처음으로 CEO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면서 이사회 의장을 사외이사로 보하는 기업지배구조 개편을 단행한다. 일각에서는 대학의 총장을 지낸 인사가 사기업의 사외이사로 가는 데 대해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하지만 우리와 문화가 다른 서구에서는 흔한 일이다. 하버드대 파우스트 전 총장은 골드만삭스 사외이사고 스탠퍼드대 헤네시 전 총장은 알파벳의 이사회 의장인 사외이사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전직이 아닌 현직 총장들이 사기업의 사외이사를 겸직하는 경우가 많아 논란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2008년 당시 미국 40개 대학의 총장 중 19인이 사외이사를 겸직했다. 사실 파우스트 총장은 재직 시 스테이플스 사외이사를, 헤네시 총장은 구글을 포함해서 3개 회사의 사외이사를 지냈다. 프린스턴대 틸먼 총장도 나란히 구글 사외이사였다. 아이비리그 최초의 흑인 여성 총장 시몬스 브라운대 전 총장은 현직 때 골드만
지난달 서울대생들이 64년 만에 대선배들의 족적을 따라 미네소타주립대에 다녀왔다. 방학을 이용해 세계 각국에 2~4주 가서 공부하고 현장체험도 하는 ‘SNU 인 더 월드 프로그램’(SNU in the World Program)의 일환이다. 트윈시티에 있는 미네소타대는 밥 딜런을 포함, 29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명문이다. 특히 서울대와 인연이 깊다. 서울대는 1955~62년 미네소타대로부터 ‘미네소타 프로젝트’를 통해 의학, 보건학, 농학, 공학 등 분야에서 혁신적 성장을 이루는 기초가 된 큰 지원을 받았다. 6·25전쟁 직후인 1955년 9월 12인의 서울의대 교수가 미네소타행 비행기에 오른 이후 1년 단기연수부터 정규 박사과정에 이르기까지 프로젝트에 참여한 서울대 교수가 모두 226명이다. 재원을 지원한 미국 정부가 미네소타대를 선정한 이유는 한국에서 전사한 미군 중 미네소타 출신들의 비율이 가장 높고 전쟁고아 입양도 가장 많을 정도로 미네소타가 한국과 인연이 깊어서였다.
롤스로이스(Rolls Royce)는 최고급 자동차의 대명사다. 해외에서는 할리우드 스타, 정상의 운동선수 등 돈 많고 남의 눈에 잘 띄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자동차이기도 하다. ‘아이언 맨’(2008년)에서 토니 스타크가 타는 차도 롤스로이스다. 그런데 롤스로이스는 항공기엔진 회사이기도 하다. 미국의 GE, 프랫&휘트니와 더불어 업계를 선도한다. 롤스로이스는 1904년 찰스 롤스와 헨리 로이스가 합작으로 창업했다. 그런데 창업 이전부터 열기구 비행에 열중한 롤스는 자동차보다 항공기에 더 천착했다. 회사 사업도 항공으로 확장하려 했는데 로이스와 이사회가 반대했다. 롤스는 라이트 형제와 친분을 쌓아 같이 비행도 많이 했다. 결국 영국 역사에서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첫 인물이 된다. 롤스는 1910년 라이트 형제가 제작한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32세로 요절했다. 롤스 사후인 1915년 첫 롤스로이스 항공기엔진이 깜짝 선보였다. 1차 대전 발발에 즈음해 영국 정부가 요청한 것이다. 1960년대
기업에 있는 사람들은 다 안다. 업계 1등이 얼마나 중요한지. 1등이라는 사실 자체가 자산이고 브랜드다. 고객들은 싫증을 잘 내고 유행은 바뀌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신제품을 내놓아야 1등을 유지한다. 그러려면 연구·개발과 설비투자가 계속되어야 한다. 다 돈이 든다. 돈은 규모가 클수록 끌어들이기 쉽다. M&A가 방법이다. 사업확장 자금은 잘 안 빌려주는 금융기관들도 M&A 금융에는 반색한다. 얼마 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대기업들의 M&A를 용이하게 해주겠다고 했는데 환영할 일이다. ‘재벌의 문어발식 사업확장’은 그동안 거의 주홍글씨처럼 여긴 관념이지만 그것을 이제 불식하겠다는 것이다. 물려받은 사업 중에는 잘 경영할 수 없는 것이 반드시 있다. 현대의 대형 상장회사는 한 인간의 힘으로 경영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많은 사람이 머리를 합쳐야 한다. 창업자들은 자기도 많이 알 뿐 아니라 회사를 키워온 회사 안팎의 인적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물려받은 사람들은 그 준
사모펀드를 부채상인(Merchant of Debt)이라고 부르던 때가 있었다. 차입매수(LBO)를 통해 상장회사 주식 전부를 인수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LBO는 타인자본의 저렴한 속성과 이자 지불에 대한 세금혜택이 요긴한 거래다. 그러나 빚을 가장 전문적으로 잘 다루는 이들조차 실패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빚은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사상 최대 바이아웃은 2007년 텍사스 전력회사 TXU에너지 바이아웃이다. 약 50조원이었다(포스코가 시총 30조원이다). 그런데 TXU는 사상 최대인 동시에 사모펀드 최대 실패작이다. 이 딜은 사모펀드계의 고수들인 KKR와 TPG, 골드만삭스의 클럽 딜이었다. 아폴로와 블랙스톤도 채무인수로 참여했다. 그러나 TXU는 2014년 채무 약 45조원으로 도산했다. 미국 역사상 여덟 번째 규모의 도산이다. 사모펀드업계 최고수들이 모여 클럽 딜을 했는데 왜 실패했을까. 가장 큰 이유는 당시 시장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에 노련한 투자자인 이들의 시야마저
에르메스(Hermes)는 1837년 창업한 프랑스의 명품 제조회사다. 제품 중에는 그레이스 켈리 모나코 왕비의 이름을 딴 ‘켈리’ 핸드백이 가장 유명하다. 1000만원이 넘는다. 지난 5월 말레이시아 경찰이 전 총리 부인이 가지고 있던 에르메스 핸드백 284개를 압수한 적이 있다. 대략 견적이 나온다. 에르메스는 1993년 기업을 공개했는데 당시 청약경쟁률이 34대1이었다. 이 패밀리도 다른 유복한 집안과 마찬가지로 가족 간에 돈 문제로 갈등이 심했다. 기업공개로 일부 가족 구성원이 공정한 가격에 지분을 처분할 수 있어 분쟁이 순화되었다고 한다. 기업공개가 특이한 기능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2010년 10월 에르메스 CEO 패트릭 토머스는 알프스에서 사이클링을 하던 중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건 전화였다. 2시간 후 지분 17%를 취득했다고 발표하겠다는 내용이다. 그후 2014년까지 무려 4년간 이어진 법정공방과 프랑스 정부의 조사가
알프스는 세계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장애물이었다. 한니발과 나폴레옹이 군대를 이끌고 알프스를 넘은 얘기가 상징이다. 필자는 차를 몰고 알프스의 모든 고개를 넘어보았는데 겨울철만 아니면 걸어서도 넘을 만했다. 이제는 터널이 많아 관광할 게 아니라면 금방 넘는다. 스위스의 알프스 터널들은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연결하지만 독일 남부와 이탈리아를 연결하는 의미도 있어 유럽의 남북을 잇는 혈맥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잘하는 농담이 하나 있다. 스위스와 이탈리아 사이 알프스에 터널을 만들기로 했다. 세 나라 업체가 입찰에 나섰다. 터널은 양쪽에서 파 들어와 가운데서 만나는 방식으로 만든다. 먼저 독일업체가 말하기를 자기들은 가운데서 정확히 만나는 오차가 1미터 이내다. 스위스업체가 말하기를 자기들은 가운데서 정확히 만나는 오차가 1센티미터 이내다(스위스 퍼펙트). 그러자 이탈리아업체가 말하기를 자기들은 중간에 만난다는 보장은 못 하지만 중간에 못 만나게 되면 하나 값으로 두 개를 뚫어주겠다. 경
타임(Time, Inc.)은 2014년 6월 타임워너에서 분리됐다. 시사주간지 타임(Time)을 필두로 96종의 잡지를 발행하는 타임은 독립해서 새로운 길을 가게 되었고 워너는 워너미디어로서 순수한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남았다. 타임은 1923년 헨리 루스와 브리튼 헤이든이 같이 창업했다. 두 사람은 코네티컷에 있는 기숙학교에서 같이 공부했다. 거기서부터 학교신문을 같이 편집했고 예일대학도 같이 다녔는데 두 사람은 예일대학 신문도 같이 편집했다. 졸업 후 두 사람은 볼티모어뉴스에서 다시 같이 일했다. 루스와 헤이든은 성격도 다르고 관심사도 달랐지만 줄곧 ‘한 조직처럼’ 같이했다. 타임 창간 때 둘 다 24세였다. 헤이든은 31세에 병으로 요절했다. 유언장에는 상속인들이 타임 주식을 49년 동안 팔지 못하게 돼 있었다. 루스는 68세까지 살았다. ‘당대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민간인’으로 불렸다. 내가 대학생 때는 누구나 별로 읽지도 않으면서 타임을 둘둘 말아 한 손에
총장 최종후보로 선정되었던 인사가 성추행 문제로 사퇴한 후 우여곡절 끝에 총장선거를 처음부터 다시 하기로 하고 서울대가 지난 6일 후보 공모공고를 냈다. 총장 공석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생긴 원인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가장 먼저, 사퇴한 후보 자신이 문제였다. 본인도 사죄하고 물러났다. 그런데 그게 다라면 차순위 순서로 총장을 뽑으면 되는데 그렇지 못하다. 그 후보를 선출한 결정 과정이 잘못되었던 것인지 아예 선출 제도 자체가 잘못 되었던 것인지에 대해 심각한 논란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비중이 컸던 후보 2인이 빠지고, 새로운 후보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불과 몇 달 만에 실시하는 재선거이기 때문에 ‘리메이크’ 수준이 될 것 같다. 잠재적 후보들에 대해서는 알려질 만큼 알려졌고 교수, 직원, 학생, 이사회, 총장후보추천위원회(총추위) 모두 구성원 변동이 거의 없어 기이한 선거가 진행되게 된다. 같은 수험생이 같은 규칙에 따라 지난번 시험문제로 재시험을
세계 대학들의 랭킹표를 보면 특이한 대학이 눈에 띈다. 캘리포니아공대(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이하 칼텍)이다. 칼텍은 종합대학교가 아니고 학부에서는 과학, 대학원에서는 공학에 특성화한 대학이다. 학생이 2200명 남짓에 교수가 300명 정도니 유수 대학들의 10분의1 규모다(하버드는 각각 2만2000명과 4600명이다). 그런데 칼텍은 어떤 랭킹에서도 모두 10위 안에 든다. 심지어 최근 영국 타임스랭킹은 칼텍을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에 이어 스탠퍼드와 공동 세계 3위에 올려놓았다. 사립인 칼텍은 1891년 세워졌다. 스탠퍼드와 버클리가 정치권에 방해 로비를 펼쳐 주립 종합대학으로 확장되지 못했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며 원자폭탄 개발에서 중추 역할을 한 리처드 파인만이 재직한 학교로 유명하다. NASA와도 종종 같이 일한다. 소재지 파사데나 북쪽에 NASA의 R&D부문인 제트추진연구소(JPL)가 있다. 대중적으로도 유명하다. 맷 데이먼이 주연한
교통체증으로 차가 많이 막히면 누구나 한 번쯤 그런 상상을 해보았을 것이다. 공중으로 쑥 떠올라 저 아래 차들을 내려다보며 목적지로 쏜살같이 날아간다. 장거리 해외여행 때도 비행 외에 드는 시간이 너무 많다. 공항까지 가야 하고 탑승절차, 보안검사, 그리고 대기. 도착해서 짐 찾기, 줄 서서 기다리기, 호텔까지 한참 걸려 가기. 내집 앞에 비행기가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내 호텔 앞에 내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우버가 2020년을 목표로 진행 중인 에어택시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도심항공산업이 탄생하게 된다. 도심과 공항을 이어주기도 할 것이다. 지난 5월에 공개된 에어택시 프로토타입은 꼭 드론같이 생겼고 동체는 헬기보다는 경비행기같이 생겼다. 전기로 구동해 헬기보다 조용하고 경제적이다. 지금 우리가 해외에서 쓰는 우버 앱(애플리케이션)처럼 에어택시 앱이 나올 것이라고 한다. 글로벌 항공산업과 항공운송산업이 문자 그대로 날아오르고 있다. 에어택시가 대표하는 항공기술적 혁신이 M&A(인수·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된 가운데 다음달 퇴임하는 3인의 대법관들 후임이 임명 제청되었다. 우리가 이러고 있는 중에 미국 연방대법원에서는 ‘난리’가 났다.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이 갑자기 오는 7월31일 자로 종신직인 대법관직에서 퇴임하겠다고 한 것이다. 케네디는 1987년에 레이건 대통령이 임명했다. 오코너 대법관 퇴임 후 지난 12년간 대법원에서 5:4 판결의 이른바 ‘스윙보트’(균형추)였다. 81세 고령 대법관이 퇴임할 수도 있다. 그런데 타이밍이 논란이다. 공석을 트럼프 대통령이 채우게 되는 것이다. 다음 대통령 선거까지 기다리지 않더라도 올해 11월 중간선거에서 상원 의석 분포가 변하게 되면 트럼프가 지나치게 보수적인 후임자를 임명하는 것은 어려워진다. 케네디의 사임이 정치적 행동은 아니라 해도 대법원 구성과 판례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했다면 좀 더 신중하고 중립적으로 처신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나오는 이유다. 케네디는 중도보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