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칼럼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자 금융·기업법 전문가인 김화진 교수가 국내외 경제, 금융, 기업, 사회 이슈를 깊이 있게 분석하고 통찰력 있는 시각으로 전달하는 코너 입니다.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자 금융·기업법 전문가인 김화진 교수가 국내외 경제, 금융, 기업, 사회 이슈를 깊이 있게 분석하고 통찰력 있는 시각으로 전달하는 코너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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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대륙 중남부에 있는 앙골라, 잠비아, 콩고민주공화국(DRC나 '콩고'로 불린다) 세 나라는 고난의 역사를 가졌지만 천연자원의 보고다. 특히 면적이 한반도의 열 배가 넘고 과거 자이르로 불리던 콩고는 구리와 코발트 매장량이 각각 세계의 15%와 60%다. 이 국가들이 생산해서 서방에 수출하는 광물은 이동전화기, 반도체, 원자로 등의 제조에 사용되고 관련 산업은 항공, 자동차, 화학, 전자 등 넓은 범위에 걸친다. 특히 미래 모빌리티산업이 큰 수요처다. 세 나라는 '중앙아프리카의 구리 벨트'로 불리기도 한다. 인류 문명은 구리에서 시작되었다. 비소나 주석을 조금 섞으면 청동이 된다. 채굴량의 75%가 전기·전자제품과 전기자동차의 심장인 전기모터에 쓰인다. 배터리 원료인 코발트는 구리와 니켈광산에서 부산물로 생기는데 상업적으로 쓸 만한 코발트의 50% 이상이 콩고에서 나온다. 코발트 왕국인 중국의 중개상들이 다 쓸어간다. 중국은 콩고를 필두로 이 지역에 일찌감치 수조 달러 규모의
세계에서 가장 바쁜 공항은 미국의 애틀랜타국제공항이다. 1998년에서 2019년까지 약 1억1000만 명이 이용했는데 필리핀 인구 정도다. 가장 바쁘다 보니 규모도 커서 로스앤젤레스(LA)에 있는 디즈니랜드의 39배 면적에 펼쳐져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애틀랜타공항의 무려 일곱 배, LA공항의 아홉 배 되는 면적의 공항이 콜로라도의 덴버국제공항이다. 135.7평방킬로미터(㎢)다. 뉴욕 맨해튼의 두 배 면적이다. 물론 그래도 사우디아라비아의 킹파드국제공항보다는 작다. 킹파드의 면적은 덴버공항의 거의 여섯 배인 776㎢다. 지구상에는 그보다 작은 나라가 23개나 있다. 바레인보다 약간 더 크다. 물론 다 쓰지는 않는다. 걸프전 때 미군이 사용하느라 그렇게 된 것이다. 덴버는 로키산맥 바로 동쪽 기슭에 있어서 시가지 사진에 항상 눈 덮인 로키산맥이 배경으로 나온다. 고도가 높은데 정확히 해발 1마일이다. 별명이 '마일하이시티'(mile-high city)다. 동계스포츠 중심이어서 스키장이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Tallinn) 구시가는 꼭 동화책같이 생겼다. 탈린 성벽과 탑들은 1265년에 처음 건축되었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번 증축된 것이다. 물론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구시가 안에 Olde Hansa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이 있는데 내가 가 본 모든 레스토랑 중 가장 고색창연했다. 그 건물은 1657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그 전에 지어졌는데 무너져서 다시 지었다고 한다. 외국에서 들여온 물건들을 쌓아두는 창고로 쓰였다. 레스토랑은 음식과 주류, 인테리어와 종업원 복장 모두 한자동맹 시대를 재현했다. 중세도시 탈린은 그러나 첨단 디지털 산업도시다. 2007년에 글로벌 디지털 도시 톱10에 들었고 유럽연합(EU)의 IT(정보기술) 기관과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의 사이버방위센터가 있다. 스카이프의 발상지인데 유럽에서 인구 대비 스타트업 수가 가장 많은 도시다. 스카이프 창업자이자 억만장자의 이름도 얀 탈린이다. 무슨 연유인지는 잘 찾아지지 않는다. 국토의 4
우크라이나 사태로 가장 많은 우크라이나 난민을 받아들인 나라는 폴란드다. 가장 가까운 나라이고 그 외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오래전에 우크라이나와 폴란드는 한 나라였던 적도 있다. 폴란드는 그 국가적 기원이 17세기 초에 탄생했던 폴란드-리투아니아 동군연합인데 이 연합은 전성기에 인구가 1100만 명에 이르렀고 오늘날의 폴란드보다 다섯 배 큰 영토를 가졌다. 지금 우크라이나의 대부분이 동군연합에 포함되었다. 군사력도 막강해서 1605~1618년에 있었던 러시아와의 전쟁에서도 승리했다. 폴란드 역사에서 가장 화려했던 시기다. 폴란드-리투아니아 동군연합은 18세기 말에 그 영화를 다하고 쇠락했다.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세 나라가 1772년, 1793년, 1795년 세 차례에 걸쳐 폴란드를 분할해 폴란드는 1918년까지 123년 동안 지도에서 사라졌다. 그 사이 1807년에 나폴레옹을 지원한 보상으로 바르샤바공국이 잠시 세워졌으나 나폴레옹의 몰락과 함께 없던 일이 되었고 181
2021년 3월에 수에즈 운하가 6일 동안 막히는 대형 사고가 났다. 2만 개가 넘는 컨테이너를 싣고 말레이시아에서 네덜란드로 가던 400m(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높이) 길이 컨테이너선 에버기븐(Ever Given)이 강한 모래바람으로 균형을 잃고 200m 폭의 운하를 비스듬히 막아버렸다. 사고가 단선 구간에서 발생해 운하 내부에서 369척의 선박이 줄지어 대기했는데 그 때문에 약 96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역사상 가장 비싼 교통체증이다. 지중해와 홍해에도 수많은 선박이 운하 입구에서 대기했다. 하루 100척 정도만 통과할 수 있어서 대기표 문제도 생겼다. 세계 모든 선사와 보험회사에 비상이 걸렸다. 배를 아시아와 유럽 사이의 다른 루트인 아프리카 남단 코스로 돌릴 것인가. 그 코스는 수에즈 통과보다 10일이 더 걸린다. 하루 2만6000달러 연료비도 추가된다. 상황이 언제 종료될지 모른다. 항로를 변경해서 가는데 운하가 재개되면? 타이밍도 문제였다. 코로나로 글
동예루살렘 구시가지에 성묘교회가 있다. 가톨릭 교회,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시리아 정교회, 콥트 정교회, 에티오피아 정교회 6개 기독교회의 공동성지다. 예수님이 십자가형을 당하고 무덤에 매장되었다가 사흗날에 부활했다는 종교적 사건의 무대다. 1600년이 넘은 기독교의 가장 성스러운 장소다. 이 교회 입구 위쪽 2층에는 아치형 창이 2개 나 있다. 그런데 어느 시대 어느 시간에 찍힌 사진을 보아도 오른쪽 창 밑으로 사다리가 하나 외벽에 걸쳐 있다. 그 유명한 움직이지 않는 사다리다. 1750년대부터 그곳에 있으니 거의 280년 동안이다. 1750년 이전에 제작된 판화에도 사다리가 보이기 때문에 그 이전부터 놓여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757년에 오토만의 오스만3세가 예루살렘의 성지를 교회별로 나누어 분배하는 현상유지(Status Quo)를 결정했고 그때부터 모든 교회가 일체의 물품을 이동시키지 않은 결과다. 기독교 분열상의 상징물이라고도 한다. 기독교 내부뿐 아니다
알래스카가 미국이 러시아로부터 돈을 주고 사서 미국 영토가 되었다는 정도는 다 안다. 1867년에 요즘 가치로 약 15억 달러에 매입했다. 그 가격이면 일론 머스크는 알래스카의 2천 배 되는 땅을 살 수 있다. 러시아는 바보였나. 석유를 포함해 엄청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고 위치도 베링해협을 관장하는 북미대륙 맨 위에 있어서 군사적 의미가 지대한 큰 땅인데 그 땅을 그 돈을 받고 팔았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별 가치 없는 작은 섬을 두고 전쟁까지 불사하는 세상이다. 결론은, 러시아는 물론 바보가 아니었다. 첫째, 당시까지 러시아의 불구대천 원수는 영국이었다. 이른바 '그레이트 게임' 중이었다. 그런데 알래스카는 영국령인 캐나다와 붙어있는 지역이다. 모스크바와는 7,000km로 너무나 멀고 시베리아라는 장애물을 넘어 베링해를 건너야 근근히 닿는 곳이다. 영국에게 빼앗기기 십상으로 예상되었는데 영국의 적이고 당시 가까운 사이였던 미국에 넘기면 괜찮을 것으로 생각되었고 거기다가 많지는
도시 전체가 박물관인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는 한때 유럽의 최강자였다. 우선은 그 지리적, 지형적 강점 덕분에 번성했다. 아드리아해 가장 깊은 곳에서 보호받는 베네치아는 지중해 지역 최대 규모의 석호 한가운데 위치해 폭풍과 해일의 위협이 없다. 항만이 들어서는 데 완벽한 조건이다. 섬 지형이어서 육지 쪽으로부터의 안보 위험도 낮다. 그 지점을 시작으로 베네치아는 전 유럽과 지중해의 상권을 장악해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도 탄생했다. 르네상스 시대 베네치아공화국 국력의 상징은 14세기에 건설된 베네치아 무기창이다. 도시 전체 면적의 15%를 차지해 선박을 건조하고 기타 해양 장구를 제작하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산업혁명 이전 유럽에서 가장 큰 산업시설이었는데 해양 강자 베네치아의 파워가 여기에서 나왔다. 하루에 선박 한 척을 건조했다. 베네치아공화국의 선단은 3000척 규모였다. 그리스와 사이프러스도 사실상 지배했다. 지금은 베네치아 비엔날레가 베네치아 무기창
디즈니가 인어공주를 흑인으로 설정한 작품을 내놓아 화제다. ESG경영의 맥락에서 대체로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오래전부터 디즈니는 가장 '워크'(woke)한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워크라는 단어는 '깨어 있다'는 의미를 지녔는데 미국에서 인종차별에 대한 반대를 필두로 사회적 부조리와 불의에 비판적 의식이 있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ESG가 확산하기 전부터 기업들에도 적용돼 '가장 워크한 기업' 랭킹도 작성돼왔다. 디즈니는 1위다. 메타가 그뒤를 따른다. 그런데 요즘 워크의 의미가 과잉 PC(정치적 올바름, 개념 있는)에 대한 조롱으로 조금씩 바뀌고 있다. 미국 최대 신문 USA투데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인의 40%가 워크하다는 말을 들으면 모욕으로 느낀다. 칭찬으로 듣는 사람은 32%에 그친다. 정치적 성향에 따라 반응이 다른데 공화당 지지자의 60%, 중도층의 42%가 모욕으로 느끼고 민주당 지지자의 46%가 칭찬으로 듣는다. 65세 이상의 다수가 이 말의 뜻을 모르고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합스부르크제국의 일부였는데 1차 세계대전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무너진 1918년부터 체코슬로바키아로 존속했다. 약 70년이 경과한 1993년에 두 나라로 분리되었다. 사실 분리해야 할 특별한 이유도 없었는데 분리되었다. '벨벳 이혼'으로 불린다. 그래서 역사상 모든 국가 분단이나 분리 독립에 수반되었던 혼란, 분쟁 없이 두 국가가 탄생했다. 크기는 한국의 80% 정도인 체코가 약간 더 크고 인구는 체코가 약 1천만, 슬로바키아가 약 6백만이다. EU 멤버들이고 민족, 언어, 문화 다 유사하다. 현대자동차그룹의 공장들이 양쪽에 다 있다. 두 시설은 각각 체코의 오스트라바(현대차, 모비스)와 슬로바키아의 질리나(기아, 모비스)에 있는데 국경을 사이에 두고 약 90km, 1시간 반 거리다. 체코에서는 2006년, 슬로바키아에서는 2004년에 출범했으니 이제 거의 20년이 된다. 슬로바키아 공장이 준공된 다음 날 체코 공장이 착공되었었다. 20여 개 국내 협력사들이
연분홍색 용지 인쇄로 발간되는 신문이 있다. 인터넷 홈페이지 바탕색도 같은 색이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FT)다. 월스트리트저널과 함께 글로벌 2대 일간 경제신문이다. 전문경제지인 데다 사용되는 영어가 어렵기로 유명하다. 글로벌 1000대 은행 랭킹을 집계해서 발표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월간지 더 뱅커(The Banker)도 FT 소유다. FT의 주요 독자는 비즈니스와 금융계의 리더, 전문가들이다. 영국의 한 유명 TV 드라마는 FT를 '영국을 소유하는 사람들이 읽는 신문'이라고 풍자한 적이 있다. 정치적 성향은 중도에서 약간 오른쪽이고 신뢰도는 월스트리트저널과 이코노미스트를 앞서는 1위로 평가된다. FT는 1888년 런던에서 셰리든(Sheridan) 형제가 창간했다. 1884년에 창간되었던 파이낸셜뉴스와 오랫동안 경쟁하다가 1945년에 합병했다. 1957년에 펭귄 브랜드로 대표되는 글로벌 출판사 피어슨(Pearson) 소유가 되었다. 피어슨의 홈페이지
제임스 본드도 신문을 읽는다. 이언 플레밍은 본드가 읽는 유일한 신문이 더 타임스(The Times)라고 '007 위기일발'(From Russia, with Love, 1957)에 써놓았다. 일간신문의 이름에 뉴스가 아닌 타임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것은 특이하지만 더 타임스 때문에 세계의 많은 신문이 이름에 타임스를 붙였다. 그 대표가 미국의 뉴욕타임스다. 타임스는 1785년 1월 1일 존 월터(John Walter, 1738~1812)가 창간했다. 1785년은 나폴레옹이 육사를 나와 포병 소위로 임관된 해다. 타임스는 대중에 봉사할 목적으로 "시대(the times)의 주요한 사건들을 기록하기 위해" 창간되었다. 초기에 타임스는 프랑스를 필두로 한 유럽대륙의 소식을 입수해서 전달하는 데 강점을 쌓았고 정부 관리와 금융인들의 인기를 끌어 성공했다. 1803년에 아들 존 월터 2세가 승계했다. 아들은 이튼과 옥스퍼드 출신의 법조인, 정치인이었다. 당시 뉴스산업 내 경쟁이 심하지 않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