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오늘도 온라인에서는 수십, 수백개의 이슈들이 뜨고 사라지길 반복한다. 흘리듯 넘겨버리는 무수한 이슈들 가운데 가장 주목해야 할 이슈를 뽑아 그 한꺼풀 뒤에 숨어 있는 의미를 짚어본다.
오늘도 온라인에서는 수십, 수백개의 이슈들이 뜨고 사라지길 반복한다. 흘리듯 넘겨버리는 무수한 이슈들 가운데 가장 주목해야 할 이슈를 뽑아 그 한꺼풀 뒤에 숨어 있는 의미를 짚어본다.
총 206 건
#1. 1777년 겨울, 조지 워싱턴 장군이 이끄는 미국 독립군은 영국군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겨울을 넘길 주둔지로 워싱턴 장군은 펜실베이니아주 밸리포지를 택했다. 문제는 식량 등의 보급이었다. 전쟁 통에 엄동설한까지 닥치면서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았기 때문이다. 독립군 측 대륙회의가 화폐를 남발한 것도 물가급등에 한몫했다. 그러자 펜실베이니아주 의회는 '물가통제법'을 만들어 모든 독립군 보급품의 가격을 일방적으로 정했다. 결과적으로 이 법은 비극적 결과를 초래한 악법이 된다. 독립군에게 팔아봐야 제값을 못 받게 되자 상인들은 보급품을 영국군에게 팔아버렸다. 독립군은 식량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그해 겨울 수많은 독립군이 굶주림 속에 죽어간 뒤에야 주 의회는 물가통제법을 폐지했다. #2. 비슷한 시기, 조선 정조 때 일이다. 한양에 기근이 들어 쌀값이 크게 뛰었다. 가격이 더 오를 것으로 기대한 일부 상인들이 사재기에 나서면서 쌀값 폭등은 더욱 심해졌다. 백성들의
#. 질문 한 가지. 아래 두 가지 유형의 나라 가운데 어디에서 사는 게 더 행복할까. 1. 부자가 권력을 가지는 나라. 2. 권력을 가진 자만 부자가 될 수 있는 나라. 본인이 부자인지 아닌지, 권력자인지 아닌지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 있겠다. 만약 내가 그 나라에서 어떤 신분일지 모른다면 어떨까. 부자가 되는 게 쉬울지, 권력자가 되는 게 쉬울지에 따라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 '신자유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故)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시카고대 교수는 자신의 역저 '노예의 길'(The Road to Serfdom)에서 '1번 나라'가 더 나은 곳이라고 단언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이 석학의 논리에 따르면 1번은 자본주의 국가, 2번은 공산주의 국가에 해당한다. 나의 능력과 의지가 아닌 정부 등 타인의 선택에 따라 나의 운명이 결정되는 나라가 2번이다. 이런 자유가 없는 세상을 하이에크는 경멸했다. #. 그렇다고 하이에크가 정부의 역할을 모조리 부정한 건 아니다. 권력을
#1. 2012년 5월 서울, 퇴임 후 방한 중이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김황식 당시 국무총리의 집무실을 찾았다. 유럽에서 온 '선배 총리'에게 김 전 총리는 "정치인으로서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무엇이라고 보느냐"고 물었다. 슈뢰더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하나의 정책이 당장은 인기가 없고, 그 성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그 사이에 선거가 치러지면 패배할 가능성이 크더라도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그 패배를 감내하는 것."('독일의 힘, 독일의 총리들1'-김황식 지음) 앞서 슈뢰더는 실제 그 말대로 했다. 진보 사회민주당(사민당) 출신이면서도 '노동개혁'이란 지지기반의 이해에 반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선거에서 패해 정권을 내줬다. 슈뢰더가 이끄는 사민당이 집권한 1998년 독일은 통일 후유증으로 실업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보수 기독교민주연합(기민당)의 헬무트 콜 정권에서 독일은 통일을 이뤘지만, 저성장·고실업의 이른바 '독일병'은 날
#1. 1990년 6월4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페어몬트호텔.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공산당 서기장), 양국의 국가원수가 사상 처음으로 마주앉았다. '태백산'이란 암호명 아래 극비 추진된 제1차 한소 정상회담이다. 역사의 한 획을 그을 중요한 회담이었던 만큼 한국 측 배석자들은 서류를 꼼꼼히 준비해갔다. 반면 소련 측 참석자들은 서류 한 장 없이 펜 한 자루씩만 달랑 들고 회의장에 들어왔다. 회담에 동석한 김종인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자신을 소개하자 고르바초프가 김 수석이 손에 들고 있던 서류 봉투를 가리키며 농담을 던졌다. "이게 왜 이렇게 얇습니까?" 그때 소련은 우리에게서 경제적 지원을 받을 생각만 가득했다고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은 회고했다.(저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 그 시절 소련과의 외교는 경제협력에 다름 아니었다. 외교에 있어 경제가 군사, 문화 등 모든 분야를 압도한 대표적인 사례다. #2. 소련의 적통을 이은
#1. '핵탄두 보유량 세계 1위' '군사력 세계 2위' '유일하게 미국을 파괴할 수 있는 국가'. 러시아를 수식하는 말들이다. 그런 러시아가 몇 수 아래인 줄 알았던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헤매고 있다. 연료가 바닥나 탱크가 주저앉은 것 정도는 애교다. 사기가 떨어진 러시아 군인들은 급기야 자기네 탱크 기름통에 구멍을 뚫고 있다. 러시아 군이 우크라이나 수도를 향해 다시 진격을 시작했다지만, 당초 계획보다 한참 늦었다. 도시에 진입해도 처절한 시가전을 피하기 어렵다. '강한 남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졸지에 '미친 독재자'의 상징으로 전락했다. 이런 상황을 겪은 게 비단 러시아만은 아니다. 도저히 질 수 없을 것 같던 싸움에서 허우적댄 건 이탈리아와 청나라도 마찬가지였다. #2.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이탈리아는 수에즈 운하를 차지하기 위해 이집트로 쳐들어갔다. 당시 이탈리아는 8만명의 병력을 투입하고도 고작 3만명의 영국군에 패했다. 병력의 절반에 해당
#1. 2016년 11월8일 미국 뉴욕. 전형적인 민주당 지지층인 미 동부의 젊은 중산층 남녀 5명이 모여 대선 개표 방송을 보고 있다. 당초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낙승을 기대하며 들떴던 이들은 개표가 진행될수록 점점 침울한 분위기로 빠져든다. 결국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로 개표가 일단락되자 한 여성이 충격에 빠져 읊조리듯 말한다. "맙소사, 우리 미국은 인종주의자들의 나라였어." 그러자 옆에 있던 흑인이 그걸 이제 알았냐는듯 비꼰다. "맙소사, 그거 노예였던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했던 말인데." 2016년 미 대선 직후 미국 지상파 NBC의 코미디쇼 SNL(Saturday Night Live)에 방송된 장면이다. 그해 미국 대선은 한마디로 백인 노동자들의 승리였다. 트럼프는 시종일관 불법 이민자들 때문에 일자리를 빼앗긴 블루칼라 백인들의 '분노'를 자극했고, 성공했다. 중남미 이민자도 포용해야 한다며 힐러리가 내세운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
#1. 1920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화당 지도부는 워런 하딩 상원의원을 대선 후보로 점찍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대통령처럼 생겨서. 그는 남자답고 위엄있는 외모를 가졌다. 이목구비는 뚜렷했고 눈썹은 짙었다. 별명이 '그리스 조각상'이었으니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랴. 공화당 중진들은 하딩을 불러놓고 물었다. 대선 후보로 추대하려고 하는데 혹시 사생활에 문제가 있느냐고. 하딩은 한참을 생각한 뒤 대답했다. "친구의 부인과 바람을 피우고 있고, 서른살 어린 여성과의 사이에 혼외 딸을 하나 갖고 있어요. 그게 전부요." 그리곤 잠시 후 덧붙였다. "참 술을 좋아해서 자주 마십니다." 참고로 이 당시 미국에선 '금주법'이 시행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공화당은 하딩을 대선 주자로 내세웠다. 마땅히 대안이 없었다. 그들은 재빨리 문제(?)를 수습했다. 하딩의 유부녀 애인에게 돈을 쥐여주고 가족과 함께 장기간 아시아로 여행을 떠나도록 했다. 하지만 사정을 모르는 국민들의 눈엔 하딩의 근
#1. 1922년 12월,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스위스 로잔에 머물고 있었다. 작가로 본격 데뷔하기 전 캐나다 신문 데일리스타의 파리 특파원으로 있을 때다. 취재 때문에 왔지만 헤밍웨이는 알프스에 완전히 매료된다. 그는 파리에 있던 아내 해들리 리처드슨에게 전보를 보냈다. 이쪽으로 와서 함께 스키를 타자고. 남편의 연락을 받은 리처드슨은 곧장 짐을 꾸려 출발했다. 열차가 리옹역에서 정차 중일 때였다. 갈증을 견디지 못한 리처드슨은 잠시 열차에서 내렸다. 재빨리 에비앙 생수 한병을 산 뒤 돌아온 리처드슨은 깨달았다. 머리 위 선반에 올려둔 가방이 사라졌다는 걸. 하필 그 가방엔 헤밍웨이가 등단을 준비하며 4년 동안 써온 단편소설 원고가 모조리 들어있었다. 당시 잃어버린 원고는 10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20세기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의 초기 원고가 도난당한 이 사건은 훗날 수많은 추리소설의 소재로 활용된다. 다시 1922년으로 돌아가보자. 컴퓨터가
#1. 가수 겸 배우 마돈나가 가장 아름답게 그려진 영화를 하나 뽑으라면 '에비타'(1996년)가 아닐까. 과거 아르헨티나의 영부인이었던 에바 페론의 일대기를 그린 뮤지컬 영화다. 주인공 에바 페론 역을 맡은 마돈나는 서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다 젊은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남미의 퍼스트레이디를 열연한다. 영화보다 유명한 게 극중 마돈나가 부른 노래 '돈 크라이 포 미(날 위해 울지마), 아르헨티나'다. 흥미로운 건 영부인이 주인공인데도 포스터엔 대통령이 아닌 체 게바라 역의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마돈나만 나온다는 점이다. 영화 포스터엔 안 나왔지만 에바 페론의 남편 후안 페론은 1946∼1955년과 1973∼1974년 두 차례나 대통령을 역임한 아르헨티나 현대정치의 핵심 주역이다. 오늘날 전 세계 어디서나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의 대명사로 쓰이는 '페론주의'가 바로 그의 이름에서 나왔다. △권위주의 △반(反)외세 민족주의 △국유화 △임금인상 △복지확대를 주된 축으로 하는 페론
#1. 1921년 1월 독일 베를린의 가판대에선 신문 한 부가 대개 0.3마르크에 팔렸다. 하지만 2년도 채 지나지 않은 1922년 11월엔 무려 7000만 마르크를 줘야 신문 한 부를 살 수 있게 된다. 1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부담하게 된 천문학적 전쟁배상금을 갚으려고 나라가 돈을 마구 찍어낸 탓이다. 이듬해 1월부터 10월까지 미 달러화 대비 마르크화의 가치는 50만 분의 1로 추락한다. 그해 10월 독일의 물가는 한달 사이 약 300배나 뛰었다. 이 정도면 하루에도 몇번씩 물건값이 바뀐다.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는 도중에도 맥주 값이 계속 올랐다. 그래서 당시 독일 사람들은 한꺼번에 여러 잔을 시켜놓고 김빠진 생맥주를 마셨다고 한다. 돈 값이 휴지조각만도 못 하니 사람들은 100만 마르크 짜리 지폐를 메모장이나 벽지로 썼다. 노후를 대비해 평생 허리띠 졸라매고 한푼 두푼 저축해온 당시 독일 사람들은 과연 어떤 심정이었을까. 수십년 모은 돈으로 빵 한 조각 못 사는 상황이 됐을
#1. "보고 있으면 안 된다. 응징해줘야 한다. 리스트를 만들어 추적해 처분토록 해라. 정보수집, 경찰, 국정원팀 구성토록 해라." 2014년 8월7일, 고(故)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수첩에 적은 메모다. 그 앞엔 이렇게 적혀 있다. "우병우 팀, 허수아비 그림 광주, 애국단체 명예훼손 고발." 메모의 주제는 홍성담 작가의 그림 '세월오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의 허수아비처럼 묘사한 작품이었다. 청와대 시절 김영한 수석은 이 수첩을 김기춘 실장이 지시하는 내용을 받아 적는 데 주로 썼다. 지시 내용은 우병우 당시 민정비서관 등 직속 참모들에게 전달됐다. 훗날 김기춘 실장은 기억나지 않는다며 부인했다. 하지만 수첩 좌측 상단엔 한자로 '장'(長)가 적혀 있었다. 이 메모가 작성된 다음날 실제로 보수단체들은 홍 작가를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대통령과 비서실장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검찰의 수사를 받아야 한다면 그게
게임을 싫어할 아이가 있을까. 요즘 학부모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 가운데 하나가 자녀의 게임 중독이다. 그렇다고 게임을 아예 못하게 하긴 어렵다. 언제 얼마나 하게 해줄지가 문제다. 많은 부모가 매일 숙제와 공부를 끝낸 자녀에게 정해진 시간 동안 게임을 즐기게 해준다. 하지만 그게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육아 전문가의 주장이 있다. 그렇게 하면 그 아이는 하루종일 게임을 즐길 '황홀한 시간'(?)을 고대하느라 공부에 집중할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평일에는 아예 게임을 못하게 하고, 주말에 몰아서 몇시간씩 하게 해주는 게 낫다나. 딸을 가진 아빠로서 경험상 이 말이 맞는 것도 같다. 하지만 최적화된 육아 이론이 무엇이든, 아이가 게임을 언제 얼마나 할지는 전적으로 부모와 아이의 자유다. '강제적 게임 셧다운제'가 폐지된 우리나라에선 그렇다. 그러나 중국은 다르다. 청소년들을 '영혼의 아편'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세심함'(?)일까. 이달부터 18세 미만의 중국 청소년은 월요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