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오늘도 온라인에서는 수십, 수백개의 이슈들이 뜨고 사라지길 반복한다. 흘리듯 넘겨버리는 무수한 이슈들 가운데 가장 주목해야 할 이슈를 뽑아 그 한꺼풀 뒤에 숨어 있는 의미를 짚어본다.
오늘도 온라인에서는 수십, 수백개의 이슈들이 뜨고 사라지길 반복한다. 흘리듯 넘겨버리는 무수한 이슈들 가운데 가장 주목해야 할 이슈를 뽑아 그 한꺼풀 뒤에 숨어 있는 의미를 짚어본다.
총 206 건
2년 전 이맘 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앨라배마주 헌츠빌에서 연설을 했다. 여느 때처럼 그는 원고를 무시하고 즉석에서 의식의 흐름대로 얘기했다. 내용은 대부분 자화자찬과 정적들에 대한 비난이었다. 별난 대통령을 보기 위해 몰려든 청중들도 연설이 1시간반을 넘기자 지루해하기 시작했다. 일부 청중이 자리를 뜨려 하자 급해진 트럼프 대통령은 느닷없이 화제를 바꿔 육두문자를 날리기 시작했다. 타깃은 NFL(북미 프로미식축구 리그)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49ers)의 쿼터백 콜린 캐퍼닉이었다. 그가 인종차별에 항의해 경기 전 국가 연주 때 한쪽 무릎을 꿇었다는 이유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구단주가 이런 비(非)애국적인 선수를 당장 해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바란대로 청중들은 뜨거운 박수와 환호로 호응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언행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백악관 부비서실장을 지내며 트럼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케이티 월시는 그 이유를 ‘애정 욕구’
"강력한 제국의 지위를 잃고 몰락해가는 섬나라가 과거 식민지 국가를 상대로 기습 공격을 단행했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떠오르겠지만, 60여년전 영국도 이런 일을 벌인 적이 있다. 영국의 수에즈 전쟁 얘기다. 이집트는 1922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오랫동안 외교·국방·교통 분야는 영국이 관장했다. 준(準) 식민지였던 셈이다. 그러다 1956년 영국은 이집트에서 모든 병력을 철수한다. 그로부터 한달 뒤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은 수에즈 운하의 국유화를 선언한다. 영국과 프랑스가 운영권을 가진 운하였다. 영국의 앤서니 이든 총리는 격분했다. 대영제국이 한때 식민지였던 국가로부터 이런 도전을 받다니. 이든 총리는 즉시 응징을 결심한다. 군대를 투입해 수에즈 운하를 다시 빼앗는다는 계획이었다. 영국은 프랑스와 이스라엘을 끌어들였다. 그해 10월29일 이스라엘은 이집트 시나이 반도의 주요 도시를 기습 점령했다. 영국과 프랑스도 이집트에 군을 상륙시켜 운하로 진격을
'핸콕'(2008년)이란 영화가 있다. 윌 스미스가 주인공으로 나온 슈퍼히어로 물이다. 대개 이런 영화에선 영웅이 재난 현장마다 날아가 헌신적으로 사람들을 구하지만 이 영화는 달랐다. 오랜 영웅 노릇에 지친 '초인' 핸콕은 술에 찌든채 세월을 보낸다. 어쩌다 슈퍼맨과 같은 능력으로 사람을 구하려 나서도 사고만 치기 일쑤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하지만 현실의 '슈퍼파워'들이 꼭 힘에 걸맞는 책임을 다 하는 건 아니다. 지금의 초강대국 미국이 그렇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미국은 더 이상 세계의 경찰 역할을 계속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중동을 오가는 전세계 유조선들의 안전을 지켜주던 미국은 이제 그 멍에를 벗어던지려 한다. 이란이 세계 최대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위협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나라는 자국 선박을 스스로 지키라"며 각국에 파병을 요구했다. 그런 미국을 무작정 탓할 수만은 없다. 반세기 넘게 세계의 해결사 노릇을 하느라 미국은 빚더미에
1986년 가을, 도널드 트럼프 당시 트럼프오거니제이션 회장은 미국 조지아주의 한 농장주를 돕고 있었다. 빚더미에 앉은 농장주의 남편은 농장이 경매로 넘어가게 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살 보험금이 나왔지만 빚을 갚기엔 어림도 없었다. 농장주 애너벨 힐의 안타까운 소식을 뉴스로 본 트럼프가 직접 모금운동에 나섰다. 트럼프는 농장주에 돈을 빌려준 은행의 부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농장의 경매를 미뤄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부사장은 어쩔 수 없다며 곧 농장을 경매에 부치겠다고 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협박했다. "내 말 잘 들어! 만약 당신들이 농장을 경매에 넘긴다면 내가 당신과 당신 은행을 살인죄로 고발할거야. 당신들이 농장주 가족을 괴롭혀서 죽게 만든 거니까. " 부사장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아… 곧 다시 전화드리겠습니다. " 결국 은행은 경매를 포기했다. 이후 트럼프와 친구들은 모금을 통해 농장의 빚을 모두 갚아줬다. 트럼프의 타고난 오지랖이 선행으로 이어진 경우다. 동시에 그의 협상술, 아니 '협박술'이 먹힌 사례이기도 하다.
어느 학교나 전설 하나쯤은 있다. 미국 아이비리그 학교들도 마찬가지다. 하버드대 기부자인 존 하버드 동상의 왼발을 만지면 자녀가 하버드대에 합격한다는 게 대표적이다. 뉴욕 맨해튼에 있는 컬럼비아대 교정 한복판엔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의 동상이 있다. 이 동상의 치맛자락엔 부엉이 모양의 조각이 숨어있는데, 이를 가장 먼저 찾아낸 신입생은 학교를 수석 졸업한다고 한다. 지난 6일(현지시간) 정오 무렵.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컬럼비아대 교정에 들어섰다. 수행원 없이 컬럼비아대 관계자 한명만 대동한 채였다.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출신으로 모교 사랑이 각별한 신 회장은 이날 저녁 학교 모금 행사에 참석하기로 돼 있었다. 행사에 앞서 학교 관계자들을 만난 신 회장은 모처럼 모교를 방문한 기념으로 미네르바 동상 앞에서 '인증샷'을 찍었다. 사진만 찍고 돌아가려는 신 회장에게 학교 관계자가 동상 속 부엉이를 찾아보라고 부추겼다. 이후 한참동안 신 회장은 '전설의 부엉이'를 찾아 동상 곳곳을
뉴욕특파원으로 발령받고 출국하기 직전 사둔 책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자서전 '거래의 기술'이다. 명색이 미국 특파원인데, 최소한 현직 미국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아둬야 하겠다 싶었다. 그런데 게으른 탓인지 바쁘단 핑계로 미국에 온지 두달이 넘도록 절반도 못 읽었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최근 LA(로스앤젤레스)로 출장 가면서 비행기에서 읽으려고 가방에 챙겨넣었다. 하지만 비행기에 올라탄 뒤 막상 읽으려고 꺼내려니 슬쩍 눈치가 보였다. 책 표지에 트럼프 대통령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박혀 있어서다. 이런 책을 읽는 나를 보고 누가 '트럼프 지지자'로 오해해 핀잔을 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 결국 꺼내지 못했다. 괜한 걱정이라고 하겠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최근 캘리포니아주에서 한 남성이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슬로건이었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란 뜻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가 적힌 이른바 '트럼프 모자'를 썼다는 이유
중남미 밀림에 '꼬리감는 원숭이'가 산다. 긴 꼬리로 나무가지를 감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카푸친'으로도 불리는 이 동물은 꽤나 영리해서 손으로 그림붓을 놀릴 수도 있다. 표정도 다양하고, 아플 땐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2003년 미국 에머리대의 여키스 국립영장류연구센터 연구팀은 원숭이들에게도 '공정함'이란 감각이 있는지 궁금했다. 그 연구 대상으로 뽑힌 게 카푸친이다. 연구팀은 카푸친을 둘씩 짝지었다. 그리곤 인간 사육사에게 작은 돌을 가져다 주면 오이 조각으로 바꿔 주는 훈련을 시켰다. 카푸친이 이런 거래에 익숙해질 때쯤 사육사가 패턴에 약간의 변화를 줬다. 짝을 이룬 카푸친 가운데 한 마리가 돌을 가져오면 다른 카푸친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두 마리 모두에게 오이를 준 것이다. 가끔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카푸친에게 달콤한 포도를 주기도 했다. 정작 돌을 가져온 카푸친에겐 오이만 주면서 말이다. 그럴 때마다 일을 한 카푸친은 불만을 표출했다. 오이를 먹길 거부하고, 심지어 사육사의 얼굴을 향해 오이를 던지기도 했다.
2007년 10월3일 오후 2시45분, 평양 백화원 영빈관.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마주 앉았다. 회담 시작과 동시에 김 위원장이 돌발 제안을 던졌다. "기상이 좋지 않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오늘 일정을 내일로 미루고, 내일 오찬을 편안하게 앉아서 허리띠 풀어놓고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하루 일정을 늦춰 모레 아침에 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순간 당황한 노 대통령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즉답을 피했다. "나보다 더 센 권력이 두 군데가 있는데, 경호와 의전 쪽과 상의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김 위원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대통령께서 그거 하나 결심 못하십니까. 대통령이 결심하시면 되지 않나요. " 노 대통령은 "큰 것은 제가 결정하지만, 작은 일은 제가 결정하지 못한다"며 회담장 밖 참모들에게 검토를 지시했다. 서울과 평양의 참모들 사이에 방북 연장 여부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상황은 2시간 뒤 자연스레 정리됐다. 김 위원장이 스스로 제안을 거뒀다. 김 위원장은 "충분히 대화를 나눴으니 (연장을) 안 해도 되겠다"며 "남측에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을 테니 본래대로 하자"고 했다.
중국 춘추시대. 노나라의 재상 계강자가 부속국인 전유를 치려고 했다. 그러자 신하인 염유와 계로가 공자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계강자가 전유를 상대로 일을 벌이려고 합니다. " 공자가 말했다. "염유야, 이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냐. " 염유가 깜짝 놀라 말했다. "계강자가 하려는 것이지 저희 두 가신은 모두 원하지 않습니다. " 공자는 주나라 사관으로 알려진 주임의 말을 인용하며 타일렀다. "능력을 펼쳐 자리에 나아가되 할 수 없을 경우에는 그만두라고 했다. 위태로운데도 잡아주지 않고, 엎어지는데도 붙들지 않는다면 그 신하를 어디에 쓰겠느냐? 호랑이와 코뿔소가 우리에서 뛰쳐나오고, 거북껍질과 옥이 궤 안에서 훼손됐다면 이것이 누구의 잘못이겠느냐?" 논어 계씨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윗사람의 잘못을 막지 못하는 것은 아랫사람의 잘못이라는 뜻이다. 가혹한 얘기처럼 들린다. 윗사람이 귀를 닫고 밀어붙이는 일을 아랫사람이 어찌 다 막을 수 있을까? 그걸 막지 못했다고 아랫사람을 탓한다면 책임을 피할 사람이 있을까? 막을 수 없을 땐 그만 두라는 게 공자의 말씀이다.
"복수는 허무한 짓이지만, 어떤 인간들은 우리가 건설하고자 하는 세계에 발 붙일 자리가 없다." 1950년 프랑스, 나치 부역자 청산이 한창이던 때 시몬느 드 보부아르가 한 말이다.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실존주의 소설가이자 사상가였던 보부아르는 당대 최고의 지성 장 폴 사르트르와의 계약결혼으로도 유명하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점령되자 프랑스 지식인들은 두 패로 갈라졌다. 나치 독일에 저항한 '레지스탕스'와 나치에 협력한 '콜라보라시옹'. 1945년 종전 직후 프랑스 각지에서 약 1만명에 달하는 나치 부역자들이 재판도 없이 처형됐다. '잔혹한 광기'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아무리 부역자라 해도 재판도 거치지 않고 목숨을 빼앗는 건 지나치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일었다. 결국 프랑스 정부가 공식 조사에 나섰다. 1950년부터 3년간 나치 부역자 35만여명이 조사를 받았다. 이 가운데 12만명 이상이 법정에 섰다. 이 중 3만8000여명이 수감됐고, 150
# 한 남자가 속도 위반으로 법정에 불려 나왔다. 판사가 물었다. "그때 차에 또 누가 타고 있었습니까?" "제 아내와 두 아이가 타고 있었습니다. " 판사는 방청석에 있던 그의 가족을 앞으로 불러냈다. 그리곤 여섯살쯤 돼 보이는 남자의 아들에게 법대 위로 올라오라고 했다. 소년을 곁에 세우고 마이크를 갖다댄 뒤 판사가 물었다. "네 아빠에 대해서 얘기하는 거야. 유죄와 무죄 중 넌 뭐라고 생각하니?" 소년이 답했다. "유죄요. " 폭소가 터졌다. 소년과 악수를 나눈 판사는 아이를 내려보내고 말했다. "당신은 훌륭한 가족을 뒀습니다. 특히 정직한 아이를 뒀구요. 당신에게 속도위반 기록을 남기지 않겠습니다. 앞으론 주의하세요. 행운을 빕니다. " 남자와 가족은 판사에게 "정말 감사드린다"며 웃는 얼굴로 법정을 떠났다.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프로비던스 지방법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판사의 이름은 프랭크 카프리오(Frank Caprio). 올해로 82세인 이 노(老)판사는 자비롭고 관대한 판결로 이름이 높다. 이런 일도 있었다.
1535년 7월6일 영국 런던. 잉글랜드 대법관을 지낸 토마스 모어(Thomas More)가 단두대 위로 천천히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힘에 부쳤는지 그는 사형 집행관에게 도움을 청했다. "나를 부축해 안전하게 올라가도록 해주게. 내려갈 때는 내가 알아서 내려갈테니." 단두대 위에 몸을 누이면서 그는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라고 당부했다. 그리곤 "내 수염은 반역죄를 짓지 않았으니 구해줘야겠군"이라며 턱수염을 아래로 늘어뜨렸다. 영국을 대표하는 '양심적 법조인' 모어는 마지막 순간까지 농담을 할 정도로 의연했다. 그가 반역죄로 처형된 건 국왕 헨리 8세가 새 장가를 드는 데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헨리 8세는 엘리자베스 1세의 생모인 앤 불린과 결혼하기 위해 왕비 캐서린과 이혼하려고 했다. 그러나 당시 가톨릭 교회법은 이혼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헨리 8세는 로마 교황청과 결별하고 자신이 수장이 되는 영국 국교회(성공회)를 세웠다. 그리곤 캐서린과의 결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