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오늘도 온라인에서는 수십, 수백개의 이슈들이 뜨고 사라지길 반복한다. 흘리듯 넘겨버리는 무수한 이슈들 가운데 가장 주목해야 할 이슈를 뽑아 그 한꺼풀 뒤에 숨어 있는 의미를 짚어본다.
오늘도 온라인에서는 수십, 수백개의 이슈들이 뜨고 사라지길 반복한다. 흘리듯 넘겨버리는 무수한 이슈들 가운데 가장 주목해야 할 이슈를 뽑아 그 한꺼풀 뒤에 숨어 있는 의미를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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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루킹 사건'과 '모리토모 스캔들'. 한일 양국에서 각각 진행 중인, 정권 실세가 연루된 사건이다. 별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두 사건에는 한가지 공통된 키워드가 등장한다. 바로 오사카다. 드루킹은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오사카총영사로 도모 변호사를 추천했다고 한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게 드루킹이 정부와 여권에 복수를 다짐한 계기가 된 것으로 경찰은 의심한다. 정부 비판적인 평창동계올림픽 관련 기사의 댓글 추천 수를 부풀리다 드루킹은 덜미가 잡혔다. 모리토모 스캔들은 오사카에 위치한 학교법인 모리토모 학원이 국유지를 헐값에 사들인 게 발단이다. 이 학교의 명예교장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부인 아베 아키에 여사다. 일본 재무성이 총리의 부인을 위해 모리토모 학원에 특혜를 줬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두 사건의 전개 과정에도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일본어로 '손타쿠'(そんたく), 한자어로는 '촌탁'(忖度)이라는 폐습이다. 남의 마음, 특히 윗사람의 뜻을 미리 헤아려
1976년 7월26일, 일본 도쿄지검 특수부가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를 전격 체포했다. 미국 군수업체 록히드로부터 5억엔(약 50억원)의 뇌물을 받고 전일본공수(ANA)에 록히드의 항공기를 사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혐의였다. 일본 정계를 발칵 뒤집은 이른바 '록히드 사건'의 서막은 그렇게 올랐다. 검찰이 전직 총리를 체포한 건 일본 헌정 사상 처음이었다. 비록 총리 자리에서 물러난 다나카였지만 여전히 집권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을 거느린 '어둠의 쇼군'이었다. 검찰은 그해 8월 다나카 전 총리를 뇌물수수 및 외환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1983년 1심 법원은 그에게 징역 4년에 추징금 5억엔을 선고했다. 뇌경색으로 투병하던 그는 확정 판결을 보지 못한 채 1993년 세상을 떴다. 검찰이 '어둠의 쇼군'과 일전을 벌이던 당시는 일본 검찰이 역사상 가장 빛나던 순간이었다. 그 중심에 도쿄지검 특수부가 있었다. 일본 검찰은 특수부를 전국 250여개 지검·지청 가운데 딱 3곳에만 두고 있다. 도쿄, 오사카, 나고야 지검이다.
19년 전 대학 시절 일이다. 단과대 학생회 사무실 앞을 지나던 중이었다. 학생회 간부였던 친구가 갑자기 불러세웠다. "야, 너 전자기기 좀 다룰 줄 알지?" "아니 그렇진 않은데" 사실이 그랬다. "TV랑 비디오 연결하는 거 정도는 하잖아. " "응 뭐 그 정도는. " 그렇게 답한 게 화근이었다. "1시간 뒤 후생관 2층에서 우리 대동제(대학 축제) 프로그램으로 일본 영화를 틀어주는데, 네가 가서 비디오 연결 좀 해줘. 지금 할 사람이 없어. " "무슨 영화?" "그건 나도 몰라. 다른 사람이 준비했어. " 얼떨결에 투입된 현장에서 TV와 비디오를 연결했다. 상영 시간이 되자 학생 10여명이 몰려와 앉았다. 전등을 끄고 비디오를 틀었다. 현장책임자(?)로서 화면이 잘 나오는지 확인할 겸 끝까지 자리를 지키기로 했다. 틀어놓고 보니 영화가 아닌 일본 애니메이션이었다. 주인공이 '맥가이버'처럼 과학 지식을 이용해 위기 상황을 벗어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중간부터 뭔가 이상했다. 배경이 사우나로 옮겨갔고, 주인공이 한증막에 갇혀있다 탈출을 시도하는 장면이 시작됐다.
2006년 3월14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Durham)의 한 대형마트 주차장. 술에 취해 보이는 한 흑인 여성이 오랫동안 차에서 내리지 않자 보안요원이 911에 신고했다. 경찰이 도착하자 여성은 자신이 스트립 댄서이고, 듀크대 학생들에게 불려갔다가 욕실에서 30분 동안 성폭행을 당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해자들의 이름까지 불러줬다. 미국 남부를 대표하는 명문 듀크대 학생들의 성폭행 의혹 사건은 전국적 이슈가 됐다. 마이클 니퐁 지방검사는 뉴욕타임즈와의 전화 통화에서 "인종적 증오가 수반된 매우 혐오스러운 집단 성폭행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TV에 출연해 "그들이 데이트 성폭행 약물을 사용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성 발언까지 했다. 사건 발생 한달 뒤 듀크대 학생 로디 셀리만과 콜린 피너티는 1급 강간과 1급 성폭력, 납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의 기숙사 출입기록, 택시 영수증, 휴대폰 통화 위치 등에 따르면 이들이 당시 범행 현장에 있었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니퐁 검사는 기소를 강행했다.
대학시절 그는 '로열패밀리'로 불렸다. 아버지는 검찰의 핵심 요직을 거쳐 고검장까지 올랐다. 그 역시 아버지를 따라 법조인이 되기 위해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사법시험 최종합격자가 발표되기 며칠 전 그는 자신의 합격 사실을 미리 알았다. 그걸 친구들에게 숨기지도 않았다. 그의 언행엔 거침이 없었다. 총학생회 선거 유인물을 나눠주는 재수 시절 친구에게 그는 "너 빨갱이냐"고 쏘아붙이고 지나갔다. 거침없는 언행은 검찰에 가서도 바뀌지 않은 모양이다. 서지현 검사가 폭로한 검찰내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전직 검사 A씨가 바로 그였다. 2015년 3월 서울 한 지검의 회식 자리에서 한 여검사가 "아이스크림 맛있겠다"고 하자 B부장검사가 "나는 네가 더 맛있어 보여"라는 입에 담지 못할 망언을 했다. 이 성희롱 발언이 외부에 알려져 논란이 되자 B부장검사는 사표를 냈다. 당시 검찰은 B부장검사를 감찰하고 징계하긴 커녕 "누가 흘렸느냐"며 이른바 '빨대'(제보자) 색출 작업을 벌였다.
2007년 1월4일 서울 여의도의 한 음식점. 한나라당의 강재섭 대표와 황우여 사무총장이 주재한 신년맞이 오찬 기자간담회 자리였다. 당시 OO일보가 연재하던 성인 소설 '강안남자'가 화제에 올랐다. 강 대표가 갑자기 OO일보 기자를 찾기 시작했다. "OO일보 어딨어? 요새 조철봉(강안남자의 주인공)이는 왜 그렇게 안 해? 옛날에는 하루에 세번씩도 하더니. 요새는 '오늘은 한 번 하나?'하고 보면 또 안 하고. 그렇게 안 하면…" 여성이라면 불쾌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발언이었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옆에 있던 기자가 제지하고 나섰다. "대표님, 여기자들도 있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한번은 해줘야지, 한번은. 너무 안 하면 철봉이 아니라…낙지지" "대표님! 여기까지" 강 대표는 화제를 바꿨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여기자들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어있었다. 간담회가 끝난 뒤 일부 기자들이 당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이날 오후 강 대표의 성희롱 발언이 온라인 매체를 중
#1866년 영국 런던의 한 거리. 붉은 깃발을 든 채 천천히 걷는 사람을 자동차 한대가 느릿느릿 따르고 있다. 기수는 맞은 편에서 다가오는 말이나 자동차를 향해 깃발을 흔들어 차량이 오고 있다고 알린다. 자동차에는 운전사와 뒷좌석의 신사 외에도 '기관원'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한명 더 타고 있다. 운행 중에 기관원이 하는 일은? 딱히 없다. 1865년 제정된 '기관차량 조례'(The Locomotive Act) 탓에 벌어진 풍경이다. '적기조례'(Red Flag Act)로도 불리는 이 법에 따르면 자동차는 도심에선 시속 3km, 교외에선 시속 6km 이상으로 달릴(?) 수 없다. 또 자동차를 타고 어딘가로 가려면 항상 운전수, 기관원, 기수 등 최소한 3명을 대동해야 한다. 이 가운데 붉은 깃발을 든 기수는 반드시 차량보다 55미터 앞서 걸어야 한다. 교통사고를 예방하고 말이 차량 때문에 놀라 날뛰는 사태를 막겠다는 명분으로 만들어진 법이다. 하지만 사실은 자동차가 마차를 대체하면
"솔직히 재판도 팔자소관이다. 판사도 사람인지라 젊을 땐 엄격했다가 나이가 들수록 너그러워지는 경향이 있다. 고참 판사라면 집행유예로 풀어줄 사건도 신참 판사한테 가면 실형을 받는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한 전직 대법관이 한 말이다. 판사에 따라 판결이 다르게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젊은 판사에게 실형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한 사람들은 억울하고 화가 날 법한 얘기다. 그러나 이야기의 핵심은 젊은 판사들이 가혹하다는 게 아니다. 고참 판사들의 양형이 약한 편이라는 게 요지다. 좋게 말하면 균형감각이 생기기 때문이고, 나쁘게 말하면 세상의 탁류와 어느 정도 타협한 탓이다. 그렇게 보면 젊은 판사가 내린 판결이 더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전직 대법관도 머쓱했는지 이렇게 덧붙였다. "가장 정의로운 판사는 젊은 신입 판사다." 법원·검찰을 출입하는 법조 기자들에겐 2가지 불문율이 있다. 첫째, 압수수색 계획을 미리 알더라도 기사로 쓰지 않는다. 피의자가 기사를 보고 증거를 인멸하는 사태
20년 전이다. 1997년 12월13일자 월스트리트저널에 이런 설문조사 결과가 실렸다. "당신의 도덕성은 몇점 정도인가?"라고 물었다. 무려 89%의 사람들이 90점 이상이라고 답했다. 90점 미만이라고 답한 나머지 11%의 평균 점수도 74점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스로 '도덕적 우월감'에 빠져 산다는 뜻이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이뤄진 또 다른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다음 중 누가 천국에 갈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다. 선택지는 △빌 클린턴 대통령 △'성녀' 마더 테레사 수녀 △자기 자신. 복수 응답을 허용한 결과, 가장 많은 87%가 '자기 자신'을 선택했다. 테레사 수녀는 79%, 클린턴 당시 대통령은 52%였다. '지퍼 게이트'의 클린턴 전 대통령이야 그렇다쳐도 테레사 수녀보다 자신이 천국에 갈 가능성이 더 높다니. 설문조사를 바티칸에서라도 한 걸까? 인간의 착각은 도덕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호주에선 "당신의 사업능력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느냐
이명박정부 때 일이다. 2012년 3월 검찰이 한명숙 당시 민주통합당 대표의 측근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한 전 대표가 국무총리였던 시절 비서관으로 있으면서 공천헌금 1000만원을 받았다는 혐의였다. 사실상 한 전 대표를 겨냥한 수사였다. 앞서 한 전 대표는 뇌물수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두차례나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2건 모두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터였다. 자존심을 구긴 검찰이 한 전 대표를 상대로 '설욕전'에 나섰다는 얘기가 나온 이유다. 문제는 이때가 19대 총선을 코앞에 둔 시점이었다는 점이다. 이즈음 검찰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정연 씨의 미국 아파트 구입 사건에 대해서도 수사에 들어갔다. 민주당은 검찰의 '정치개입' '야당 죽이기'라며 강력 반발했다. 이명박정부 말기에 치러진 19대 총선은 정권 심판 성격이 강했다. 여당인 새누리당에게 쉽지 않은 구도였다. 당초 제1야당인 민주당의 우세가 점쳐졌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1920년 미국 시카고의 범죄조직 '조니 토리오 패밀리'에 21세 청년이 새로 들어왔다. 한쪽 뺨에 난 깊은 상처 탓에 '스카페이스'(Scarface·흉터 난 얼굴)로 불린 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수완으로 순식간에 중간보스의 자리에 오른다. 급기야 1925년 라이벌 갱단의 기습으로 크게 다친 토리오가 현역에서 은퇴하자 그는 조직의 보스 자리까지 꿰찬다. 이후 밀주, 매춘, 도박 등으로 매년 1억달러에 가까운 돈을 쓸어담으며 미국 '암흑가의 제왕'으로 군림한다. 그가 바로 영화 '대부'와 '언터처블'의 실제 모델이 된 알 카포네다. 카포네는 1929년 2월 '성 발렌타인데이 대학살'을 비롯해 수많은 폭력·살인 사건을 지시했지만 1930년까지 단 한번도 처벌받지 않았다. 시카고 시장부터 말단 경찰까지 모조리 뇌물로 매수한 탓이었다. 보다못한 연방정부가 궁여지책으로 찾은 방법이 그를 탈세 혐의로 기소하는 것이었다. 미국 국세청(IRS)을 중심으로 특별수사팀이 꾸려졌다. 수사
1934년 1월, 독일 나치의 친위대(SS) 소속 젊은 상병 아돌프 아이히만이 베를린 나치 사령부에 발탁됐다. 규칙을 잘 따르고 부지런하며 충성스럽다는 평판 때문이었다. 그는 사령부의 유대인 정책 부서에 배치받자 유대인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히브리어를 공부할 정도로 열정을 보였다. 유대인 전문가로 인정받으며 4년만에 대위까지 고속승진한 그는 1938년 독일에 병합된 오스트리아의 유대인 이주정책 책임자로서 1년만에 유대인 15만명을 추방하는 높은 성과(?)를 보였다. 이를 인정받아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엔 나치의 유대인문제총국으로 영입돼 모든 독일 점령지 내 유대인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1942년 1월 나치는 모든 유대인을 아우슈비츠 등에 강제수용한 뒤 '최종 해결'한다는 계획을 확정했다. 이들이 말한 '최종 해결'이 바로 500만명 이상의 유대인을 희생시킨 이른바 '홀로코스트'다. 아이히만은 이 계획에 따라 헝가리에서 유대인 이송 작전을 지휘했다. 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