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
세상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건이 역사에 남을 만한 것인지 판단할만한 여유도 없습니다. 시사에 대한 지식인들의 평론은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세상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건이 역사에 남을 만한 것인지 판단할만한 여유도 없습니다. 시사에 대한 지식인들의 평론은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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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21세기가 시작된 지 어언 20여년이 흘렀다. 지난 2000년은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닷컴붐’이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산업계 지형을 흔들어 놓은 시기다. 비록 ‘닷컴버블’로 큰 홍역을 치르긴 했지만, 패러다임 전환기였음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다시 20여년이 흐른 지금, 세계는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디지털붐’이 또다시 세상의 판을 뒤집어 놓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19라는 예기치 못한 사태까지 발생하면서 ‘디지털세상’은 한층 속도가 가팔라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비즈니스 모델이 검증된 지금의 ‘디지털붐’은 과거처럼 ‘디지털버블’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코로나19 이후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 차지하는 위상도 달라지고 있다. 올 2분기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3.3%로 중국 다음으로 높았다. OECD는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3월 –1.2%에서 최근에는 –0.8%로 상향 조정, 선진국 중에서는
세계 인쇄만화 시장의 1등은 일본이다. 시장규모가 3조2000억원 정도로 미국의 2.5배에 달한다. 일본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시각적 매개물을 통해 상황을 간단히 설명하는 능력을 지닌 데다 1960년대 학생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이 만화에 뛰어들면서 산업으로 발전했다. 이런 바탕이 있었기 때문에 '재패니메이션'이란 만화영화 장르가 탄생할 수 있었다. 1960년대 '타이거마스크'와 '우주소년 아톰' 이후 일본이 세계 만화영화 시장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는데 2001년에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란 작품이 일본 영화사상 최고의 흥행작이 됐다. 최근 우리나라 만화시장은 웹툰을 통해 발전하고 있다. 인터넷조사업체 코리안클릭에 따르면 국내에서만 하루평균 900만명이 웹툰 모바일앱을 이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용시간도 동영상의 73% 가까이 된다. 저연령층 위주였던 이용자 구성도 바뀌었는데 2015년 46%였던 20대 이하 비중이 지난해 30%로 낮아진 반면 구매력이 높은 30~40대의
대한민국의 제조업과 산업화를 상징하는 존재를 꼽는다면 아마도 ‘산업단지’일 것이다. 별도 구역을 설정하고 산업활동에 필요한 각종 기반시설을 설치한 산업단지는 산업시설의 집적화를 통한 효율화와 더불어 기존 도시에 산재한 공장들로 인한 환경오염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존재였다. 국가와 지자체 등이 나서서 전국적으로 조성한 산업단지들은 우리나라의 제조업 발전에 핵심 역할을 해왔으며, 고용창출과 지역발전 측면에서도 크게 기여했다. 언제부터인가 이러한 산업단지들은 과거와 같은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항상 꽉 차있을 것만 같던 산업단지들이었지만 기존 업체들은 산업단지를 떠나 해외로 이전하고 있으며 새롭게 입주를 희망하는 기업들은 감소하면서 산업단지들이 비어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청년들이 아닌 외국인들이 생산현장의 핵심인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제조와 생산에서 핵심이 되는 부문은 언제부터인가 산업단지 현장을 떠나 서울과 수도권으로 옮겨가는 분리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산업단지가 가
코로나19 사태가 중국에서 시작된지 8개월째다. 바이러스가 더위에 약할 것이라는 기대는 날아갔다. 바이러스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강했다. 우리나라는 적극적인 방역과 국민들의 협조로 어느 정도 소강상태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여전히 난리다.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니 경제활동이 위축되어 실물 경제는 바닥을 뚫고 들어갈 기세다. 반면 경제를 살리려고 풀어놓은 돈 때문에 자산 가격은 천장을 뚫고 있다. 우리나라가 특히 심하다. 집값이 난리다. 집값은 주식 등 다른 자산과는 단위가 다르다. 대박을 터뜨리면 인생이 바뀐다. 기회는 왔다. 너도 나도 아파트를 사려고 혈안이다. 정부가 7월까지 대책을 22번이나 냈다. 그런데도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소비자 주택가격 전망지수는 7월 들어 역대 최고치에 근접했다. 8월 4일 공급대책을 내놨다. 지켜보자. 주식도 난리다. 코스피 지수는 코로나19 쇼크로 지난 3월 19일 1457포인트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이후 계속 올라 7월말에 2249포인트를
어느 지인이 내게 물었다. 경부고속도로가 개통한 지 몇 년째인지 아느냐고? 까마득히 오래전 일이라 머뭇거렸더니 올해로 정확히 50주년이란다. 기록을 찾아보니 1970년 7월7일 서울에서 부산까지 전구간 428㎞가 완공됐음을 새삼스레 알게 됐다. 이를 기념해 7월7일이 '도로의 날'로 제정되었으며 '일일생활권'이란 신조어도 만들어졌고, 사실상 한국 경제의 대동맥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1970년 당시 전국 고속도로 길이는 551㎞에서 50년이 지난 지금 4767㎞로 8.5배 늘어났고 자동차 대수도 12만대 수준에서 2300만대로 190배 증가했다. 인구는 3200만명에서 5100만명으로 50년간 60% 증가하는 동안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253달러에서 3만3000달러로 130배 상승했다. 고속도로 하나 놓은 것을 가지고 이렇게 호들갑이냐고 하겠지만 건설 당시엔 엄청난 반대여론이 있었다. 총공사비가 당시엔 거금이었던 430억원으로 먹고 살기도 힘든데 무슨 도로를 만드느냐 등
지난 6월10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OECD 경제전망’(OECD Economic Outlook)을 발간했다. COVID-19로 모든 국가와 기관이 발간한 미래전망들이 무용지물이 된 상황에서 해당 보고서를 소개한 웹사이트 타이틀은 ‘아슬아슬한 세계 경제’(The world economy on a tightrope)로 뽑았을 정도로 현재를 위기의 시기로 표현했다. 눈에 띄는 국가의 역할은 2가지다. 첫 번째는 COVID-19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기업의 신속한 구조조정과 디지털화 촉진, 두 번째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업종에 종사하는 국민들의 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새로운 분야로의 직업 전환 지원이다. 디지털화(Digitalization)는 낯선 개념이 아니다. 컴퓨터와 인터넷 보급을 시작으로 디지털 시대에 진입하고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가속화한 디지털화는 끝을 모를 정도로 다양한 유형으로 인간의 삶과 노동의 패턴을 변화시키고 있다. 현재 국내 대부분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코로나19(COVID-19) 상황에서 대면접촉을 자제하는 '언택트' 생활방식은 우리가 상호작용해온 방식을 바꿔놓고 있다. 임시방편으로 생각한 초기의 생각들이 이제는 우리 대부분에게 거의 영구적인 생활습관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식당은 적극적으로 온라인 마케팅을 진행하고 배달서비스가 살아남는 유일한 방식이 됐으며 퇴근 후 충동적으로 걸어들어오는 저녁식사 손님들은 더이상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 거의 10년 새 처음으로 지방, 특히 강원도 지역의 펜션과 작은 호텔 그리고 리조트는 100%에 가까운 판매율을 즐기고 있다. 마찬가지로 거의 10년의 기간에 처음으로 골프회원권 가격이 상승하고 있으며 골프장 예약의 어려움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예약전화가 인터넷 마우스클릭으로 바뀌긴 했지만 비서들은 그들의 상사들을 위한 주말 골프예약을 위해 어느 때보다 분주한 상황이다. 많은 사업이 우울한 전망에 직면했지만 그 와중에도 온라인판매자와 홈쇼핑사업자는 역대급 판매실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매출 및 유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초기 마스크대란으로 일반 국민들은 약국을 통해서만 공적마스크를 구매할 수 있었다. 당시 일부 대학생과 SW(소프트웨어)업체가 앱을 제작해 많은 국민이 판매처와 재고현황 등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디지털기기에 능숙한 계층은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디지털기기에 서툰 노령층이나 소외계층은 마스크 구매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재난지원금 신청 때도 마찬가지다. 디지털에 익숙한 계층은 5분 내로 간단히 신청할 수 있었지만 소외계층에게는 일련의 과정이 쉽지 않았다. 이른바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d)의 명암이다. 디지털 격차는 경제적으로 성별로 또는 연령별, 지역별로 지식과 정보에 대한 접근이 불균형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디지털 격차를 방치하면 정보 격차로 이어지고 이것이 권력 격차 또는 부의 격차로 이어지면서 사회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물론 한국은 디지털 정보 격차가 다른 나라들보다 가장 작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한민
많은 사람이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섭씨 30도가 넘는 상황에서도 계속 쓰고 있어야 하는 마스크가 가져온 물리적 답답함이 큰 부분을 차지하겠지만 사회의 여러 부문에서 벌어지는 모습이 가져다주는 답답함도 작용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가져온 충격과 공포로 인해 잠시 가려졌던 많은 문제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수십 차례의 대책에도 불구하고 주택가격은 급등을 거듭하고 있으며 남북관계 역시 과거의 대립구도로 회귀하고 있다. 재정과 예산, 일자리, 국민연금, 균형발전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해결되는 문제는 없으며 문제를 뒤로 미뤄놓고 있기만 하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이러한 모습은 낯설게 다가온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는 5공화국 시절 물가안정을 위해 동결된 SOC(사회간접자본) 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 경부고속철도, 5대 신도시, 경부고속도로 확장 등 엄청난 사업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수행했으며 김영삼정부는 하나회 척결과 금융실명제를 도입했다
부동산 때문에 난리다. 6월17일 정부가 안정대책을 내놓았지만 가격을 잡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주택을 구입하려는 쪽에서는 정부가 가격을 안정시킬 의지가 있는지 따졌고 반대쪽에서는 시장을 무시한 채 쓸데없는 정책을 난발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시장에서는 집값 상승 원인으로 공급부족과 저금리를 꼽는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만큼 주택공급을 하지 못하다 보니 가격이 오른다는 거다. 일리 있는 얘기지만 생각해봐야 할 부분도 있다. 수요와 공급은 정해진 게 아니다. 가격이 오르면 사려는 사람이 많아져 공급이 부족한 것처럼 보이고 반대로 가격이 떨어지면 공급이 넘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2010년 이후 3년 동안 수도권 집값이 크게 떨어진 적이 있다. KB국민은행 조사로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가 9.3% 하락할 정도였으니 실거래 가격은 30% 넘게 내려왔다고 보는 게 맞다. 가격 하락으로 가장 곤란을 겪은 건 강남지역 재건축사업이었다. 사업지역마다 미분양이 속
세계 금융의 중심지는 뉴욕, 런던, 홍콩이다. 아시아에서는 홍콩이 세계 유수의 도시들을 따돌리고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홍콩의 위상이 위협받고 있다. 중국이 ‘홍콩보안법’을 통과시키고 미국이 이에 대해 보복조치를 단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홍콩에 대한 특별대우를 박탈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의회도 홍콩 자치권 침해에 협력하는 중국 당국자와 거래하는 은행을 제재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윌버 로스 미국 상무부 장관은 홍콩에 아시아 본부를 둔 기업들이 본부 이전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세계 금융중심지로서 홍콩의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주변 다른 도시들이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03년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이 발표되면서 아시아 금융허브가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온 서울도 마찬가지다. 서울이 아시아 금융허브가 되려면 홍콩이 왜 세계 금융중심지가 되었는지 알아야 한다. 아시아에는 홍콩 말고도 도쿄, 베이징,
20세기 이후, 그러니까 1900년 이후 우리나라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사건은 무엇이 있을까. 한국의 20세기 이후 3대 혁명적 사건의 첫번째는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일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해 나라를 잃은 사건이다. 조선왕조가 27대 순종을 마지막으로 519년 만에 막을 내린 사건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자치권을 잃어 완전히 다른 법체계와 제도, 언어와 사회문화 양식의 변화로 삶이 혁명적으로 바뀌도록 민족 전체가 강요당하는 불행한 사건이었다. 그다음은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일 것이다. 나라를 되찾은 지 불과 5년 후에 일어난 이 사건은 국내외 이데올로기 논쟁의 끝판왕 격에 해당한다. 제3차 세계대전 우려가 일어날 정도로 많은 나라가 참전한 비극적인 민족간 전쟁이었다. 이 전쟁으로 도로,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이 대부분 철저히 파괴됐고 가옥은 물론 생산시설도 거의 붕괴됐다. 이 사건 이후 미국식 자본주의가 본격 도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