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자들이 발로 뛰는 취재 현장의 뒷얘기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사물의 앞면 보다는 뒷면이 진실에 더 가까울 수 있기에 기자수첩을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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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플레이, 자동차 등 주력 수출 상품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핵심 부품·소재에 대한 대일의존이 심해 완제품 수출이 늘수록 대일 무역적자가 확대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2011년 9월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는 '부품·소재산업 육성 10년, 그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2001년 '부품·소재 특별법' 제정 10주년을 맞아 그간의 성과를 설명한 자료였다. 당시 정부는 부품·소재 수출이 늘고 무역수지 흑자폭이 커진 점은 '빛'으로 자랑했지만 여전히 대일 의존도가 높다는 '그림자'도 지적했다 8년이 지난 지금도 '그림자'는 국내 소재·부품 산업에 드리워 있다. 일본 수출규제 조치 이후 온 나라가 소재·부품 국산화를 외치기 시작한 게 그 증거다. 우리는 일본이 수출을 허가하지 않는다면 당장 반도체 공장이 멈출 수 있다는 뼈아픈 현실을 확인했다. 한국은 이미 1989년 '가마우지 경제'라는 지적을 받았지만 기술자립의 묵은 과제를 풀지 못했다. 새의 목에 끈
탈북민 여성 한모씨와 여섯 살 배기 아들 김모군이 지난달 31일 서울 관악구 소재 임대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은 안타까움을 넘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무관심과 ‘복지 사각지대’ 문제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한씨 모자의 비극은 대북 식량지원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던 때 일어났다. 정부는 5월4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생색내지 말라’는 비난에도 지원을 추진했다. 6월5일 국제기구를 통해 북한 취약계층을 돕는 사업에 800만달러를 무상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어 19일 쌀 5만톤을 북한에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관련 언론 보도를 접한 한씨의 마음은 어땠을까. 한씨는 5월13일 통장에 남아 있던 3858원을 모두 인출했다. 통장 잔고에는 ‘0원’이 찍혔다. 한씨 모자는 이로부터 약 보름 뒤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발견 당시 집 냉장고 안에는 물이나 음료수도 하나 없이 고춧가루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대북 식량지원 논의가 한창일 때 정작 굶주림을 피해 한국을 택한 탈북민이 서울 복판에
“집값은 물가상승률 정도만 오르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역대 어느 정부나 마찬가지입니다” 전 정부 마지막 경제수장을 역임한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는 2년여 전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와 한국은행 금리인하 정책이 맞물려 주택시장이 꿈틀대던 시기, ‘집값 안정’의 기준을 묻는 물음에 대한 답이었다. 당시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김현미 의원은 “정부가 빚을 내서 국민들에게 집을 사라고 부추긴다”며 정책 비판의 선봉에 섰다. 김 의원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6월 국내 부동산 정책을 총괄하는 국토교통부 장관이 됐다. 취임 일성으로 다주택자와 전쟁을 선포했고 대출 규제,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 강화, 3기 신도시 등 각종 대책을 쏟아냈다. 하지만 집값 오름세는 정책이 발표된 얼마 후에 더 가팔라졌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8억5715만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회의원들이 거래소엔 왜 오죠?" 지난 9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등 야당 의원들이 한국거래소를 방문한 것을 두고 한 증권업계 관계자가 한 말이다. 정치인들이 거래소에 온다고 떨어진 주가가 오르는 것도 아니고 당장 무슨 대책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거래소 방문은 다소 뜬금 없다는 반응이었다. 이날 거래소를 찾은 나 원내대표는 최근 우리나라 증시 급락에 대해 '제2의 IMF' 사태 등을 거론하며 "문재인 정권의 책임이 가볍지 않다"고 비판했다. 증시 불안의 대응방안을 점검하기 위한 방문이었다지만 이 와중에도 정부 비판은 빼놓지 않았다. 같은 날 오후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경쟁적으로 한 대형 증권사를 방문, "지금 상황이 IMF 때와 비교할 만큼 위기상황인가"라며 오전에 있었던 나 원내대표의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누구의 주장이 옳든지 간에 투자자 입장에서는 주가 급락을 소재로 한 정치권의 '네 탓 공방'으로만 비춰질 뿐이다. 주가는 떨어지고 손실은 늘어 가는데 여기서
12분짜리 유튜브 영상 하나에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의 29년 경영 인생이 무색해졌다. 해명에도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자 윤 회장은 끝내 자리에서 물러났다. 막말을 서슴지 않던 해당 유튜브 영상의 부적절성은 더 언급할 가치도 없다. 누가 봐도 비상식적인 영상을 사내 공식석상에서 왜 틀었는지, 그 진짜 이유가 궁금했다. 반면교사 삼으려 했다는 취지의 해명만으론 부족했다. 윤 회장과 한국콜마 사정을 잘 아는 화장품 업계 사람들의 이야기를 두루 들어봤다. "워낙 직원을 가족처럼 편하게 생각해서 본인이 접한 영상을 별 문제의식 없이 공유했을 것"이라고 했다. 직원을 가족처럼 편하게 생각한 것, 여기서 모든 문제가 시작됐다. 윤 회장은 매달 임직원 조회에서 시나리오 없이 메시지를 전달했다. 딱딱하게 회사 경영상황을 공유하기보다는 본인의 관심사인 역사 이야기 등을 편하게 했다. 내용은 사전에 공유되지 않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문제의 영상이 포함된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임직원 조회는 분
게임업계를 취재하다 보니 지인들에게 요즘 어떤 게임을 즐기는지 자주 묻는다. 국내 게임시장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는 단순하고 강력한 방법이다. 지인들과 대화에서 흥행작들의 인기를 체감하고 생생한 평가를 접할 수 있다. 때로는 알려지지 않은 명작 정보를 얻기도 한다. 최근 들어 게임을 주제로 한 대화가 어려워졌다. “즐길 게임이 없다”고 답하는 이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게임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면 게임업계엔 위기가 찾아온다. 분야를 막론하고 소비자들의 입소문 효과가 사그라지면 직간접적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주요 게임사들의 2분기 실적에서 게임업계가 직면한 위기를 확인할 수 있다. ‘3N’으로 불리는 넥슨과 엔씨소프트, 넷마블 모두 수익성에서 부진한 성적표를 받았다. 기존 흥행작들의 인기가 사그라지는 가운데 야심차게 선보였던 신작들이 기대를 밑도는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게임사 넥슨은 지난 9일 도쿄 증시에서 일본법인 주가가 24% 급락하는 사태를 겪었다. 2분기 실
"굉장히 역설적인 상황이 된 거죠." 일본 경제 도발이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주요국 기업결합 심사의 변수로 떠오른 것 관련, A조선사 관계자는 이같이 말했다. 사측이 아닌 양사 노조에 관한 이야기였다. 기업결합 심사는 양사 합병에 반대하는 노조에게도 최대 관심사다. 심사 대상국 중 한 곳만 반대해도 합병은 없던 일이 되기 때문이다. 정부와 회사를 상대로 합병 반대 투쟁을 전개하는 노조지만, 현실적으로 합병을 무산시킬 주체는 심사 대상국이라는 사실을 노조도 알고 있다. 일본이 경제보복에 나서기 전까지만 해도 최대 변수는 세계 상선 운영 상위 25개국 중 10개국이 포진한 EU(유럽연합)이었다. 배를 만들어주는 '을'의 덩치가 커지는 것을 좋아할 리 없기 때문이다. EU 선택에 따른 결합심사 시나리오는 △반대△승인△조건부승인 세 가지로 예상됐다. 물론 '반대'가 노조에는 최선의 시나리오다. 하지만 의외로 최악의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노조 내부에서 감지된다. EU가 조건부
"'낙동강' 방어선이라고 생각했던 1950선이 무너졌네요. 현재로선 바닥도 예측하기 힘든 시기입니다." (A증권사 리서치센터장) 국내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을 지켜보는 증권업계 전문가들의 시각이 어느 때보다 비관적이다. 특히 지난 5일 코스피 지수는 전날보다 51.15포인트(2.56%) 내린 1946.98로 마감했다. 이는 종가기준 2016년 6월 28일(1936.22) 이후 3년 2개월 만에 기록한 최저치였다. 이후 코스피는 아직 1950선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반등 시기를 점치기도 쉽지 않다. 코스피 지수 1950선은 PBR(주가순자산비율) 0.83배(12개월 후행) 수준에 해당한다. 지난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 당시 국내 PBR은 0.85배 부근에서 저점을 기록했다. 국내 증시와 가장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매크로 지표인 수출은 8개월 연속 전년대비 역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유안타증권이 산출한 시가총액과 수출금액 간 회귀식에
"저희는 절차대로 감리자를 선정하고 철거심의를 진행했습니다. 감리자가 현장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습니다" 지난달 4일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의 생명을 앗아간 서울 서초구 '잠원동 붕괴사고' 직후 한 구청 직원은 자신감이 넘쳤다. "87세 노인이 어떻게 현장을 감독하는 상주 감리자가 됐냐"는 질문에는 "건축사 자격증을 보유해 자격에는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현행법과 제도 아래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는 얘기다. 책임 떠넘기기는 서울 양천구 목동 빗물펌프장 수몰 사고에서도 반복됐다. 서울에 호우주의보가 발령된 지난달 31일 40m 깊이 빗물 저류 배수 시설에서 작업자 2명과 이들을 구하기 위해 내려간 현대건설 직원 1명이 고립돼 목숨을 잃었다. 순식간에 물이 휩쓸려오는 상황에서 수문을 통제하는 제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빗물 펌프장을 시공한 현대건설 측은 "직원이 수문 작동에 필요한 비밀번호를 알지 못했다"며 구청에 책임을 떠넘겼다. 양천구청 측은 "준공 전이라 운
한일 관계가 악화된 국면에서 일본계 자금의 유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글로벌 개방 경제에서 자본은 쉼없이 국경을 넘나들지만 여전히 국적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 자본 역시 전 세계를 무대로 하고 있지만 자국 정부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결국 ‘민족자본’의 성격을 지닌 셈이다. 국내 은행들도 ‘민족자본’의 정체성을 강조한다. KDB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IBK기업은행 등 국책은행 영문명에는 ‘KOREA’가 포함돼 있으며 민간 시중은행도 한국의 정체성을 내세운다. 우리은행은 1899년 고종황제의 내탕금을 기반으로 설립된 대한천일은행을 뿌리로 뒀으며, NH농협은행은 농민 출자로 이뤄진 농협중앙회가 지분 전량을 소유한 ‘100% 순수 국내자본’이라고 강조한다. KB국민은행은 은행명에 ‘국민’을 넣었다. 신한은행의 출발은 특별하다. 국내 최고(最古)의 한성은행(1897년 설립)을 모태로 한 조흥은행을 2006년 인수하면서 민족자본의 역사성을 더했지만, 신한은
반도체업계에서 20여 년 잔뼈가 굵은 한 지일파 기업인과 8일 점심을 했다. 이날 아침 나온 일본의 반도체 수출규제 품목 첫 허가 소식을 두고 양국 갈등이 소강기에 접어든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그는 "아베 정부 성향이나 태생을 볼 때 지금의 미묘한 변화 기류가 출구전략일 가능성은 낮다"고 했다. "여름 휴가 가긴 글렀다"는 말에 자리에 있던 이들이 모두 쓴웃음을 흘렸다. 아베 총리는 알려진 것과 달리 민감한 싸움을 무수히 도발하면서 성장한 인물이다. 흔히 '잃어버린 20년' 우경화 바람을 타고 손쉽게 총리에 오른 귀공자로 묘사하지만 대북, 대중 온건파와 정치적 생명을 건 권력투쟁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가득한 곳이 지금의 일본 총리 관저다. 지난달 참의원선거에서 아베 총리에게 과반 의석의 몰표를 몰아준 지지기반이 기대는 것도 그의 이런 전력과 기질이다. 여기엔 아베가 내세우는 '강한 일본', '보수 재구축'이라는 허황된 꿈도 덧칠돼 있다. 지난달부터 본격화된 일본 경제보복 역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표정은 시종일관 굳어 있었다. 옆에 선 다른 참석자들도 입을 꽉 다물었다. 홍 부총리는 수십 명의 기자들을 앞에 두고 모두발언을 시작했다. ‘24시간 모니터링’, ‘선제적이고 단호한 조치’ 등 강한 단어가 사용됐다. 급등락하는 환율 상황에 대한 위기감이 묻어 있었다. 7일 열린 긴급 거시경제금융회의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최종구 금융위원장,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등 정책당국 수장이 모두 모인 무게감 있는 회의였다. 하지만 중국 인민은행이 심리적 마지노선이었던 ‘1달러=7위안’ 선이 깨지는 ‘포치(破七)’를 용인한 게 지난 5일이었고,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게 5일(현지시각)이라는 걸 감안하면 회의에 ’긴급‘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가 낯뜨겁다. 지난 5일 환율이 급등하기 시작할 때 외환시장에 대한 정부 메시지는 “비정상적 급등, 시장원리 아니다”에 불과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지만 남의 일 보듯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