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한일전에 날린 휴가 어디서 보상받나

[기자수첩]한일전에 날린 휴가 어디서 보상받나

심재현 기자
2019.08.08 17:24

반도체업계에서 20여 년 잔뼈가 굵은 한 지일파 기업인과 8일 점심을 했다. 이날 아침 나온 일본의 반도체 수출규제 품목 첫 허가 소식을 두고 양국 갈등이 소강기에 접어든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그는 "아베 정부 성향이나 태생을 볼 때 지금의 미묘한 변화 기류가 출구전략일 가능성은 낮다"고 했다. "여름 휴가 가긴 글렀다"는 말에 자리에 있던 이들이 모두 쓴웃음을 흘렸다.

아베 총리는 알려진 것과 달리 민감한 싸움을 무수히 도발하면서 성장한 인물이다. 흔히 '잃어버린 20년' 우경화 바람을 타고 손쉽게 총리에 오른 귀공자로 묘사하지만 대북, 대중 온건파와 정치적 생명을 건 권력투쟁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가득한 곳이 지금의 일본 총리 관저다.

지난달 참의원선거에서 아베 총리에게 과반 의석의 몰표를 몰아준 지지기반이 기대는 것도 그의 이런 전력과 기질이다. 여기엔 아베가 내세우는 '강한 일본', '보수 재구축'이라는 허황된 꿈도 덧칠돼 있다.

지난달부터 본격화된 일본 경제보복 역시 그 연장선에서 빚어진 사태라는 점에서 치밀하게 준비된 도발이라는 분석이 많다. 아베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감정으로 포장된 계산된 도발에 감정으로 대응했던 게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피해국인 우리의 감정 표출을 탓하는 게 아니다. "일본엔 안 진다, 아니 못 진다." 이 말에 토를 달 사람이 있을 리 없다. 다만 아베의 이상론(異常論)이 그렇듯 우리의 이상론(理想論)도 현실 문제를 풀어내기엔 다소 버거워 보이는 게 사실이다.

공은 다시 우리에게 넘어온 것 같다. 이례적인 한일 경제전쟁을 두고 미국과 중국의 배만 불린다는 비판이 나온다. 휴가를 포기한 기업인들만 가족에게 미안해해야 할까. 어설픈 이상주의로는 한일 모두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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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현 특파원

머니투데이 뉴욕 특파원입니다. 뉴욕에서 찾은 권력과 사람의 이야기. 월가에서 워싱턴까지, 미국의 심장을 기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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