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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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206 건
1959년 9월 17일. 이날은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이었다. 하지만 사상 최악의 태풍 '사라'가 한반도를 강타하면서 비극적인 추석을 맞게 됐다. 사라로 인해 800명 이상이 사망하면서 우리나라는 한국전쟁(1950년)이 발발한지 10년도 되지 않아 또다시 큰 인명피해를 겪어야 했다. ━3등급 태풍 한반도 휩쓸어...849명 사망·부상 2533명·실종 206명━1959년 9월12일에 발생한 태풍 '사라'는 17일 오키나와 일대를 지나 한반도로 진입하면서 3등급 태풍이라는 무시무시한 위력으로 한반도 남부를 휩쓸고 지나갔다. 한국이 태풍의 직접영향권에 들자 동해 남부선을 포함해서 경상도로 향하는 모든 열차가 운행 중단되고 모든 전선전화가 두절돼 통신에 곤란을 겪었다. 부산에서는 해일로 인해 방파제가 무너져 해수가 도시 내로 흘러들어 중구 남포동과 영도구 대평동 일대가 물에 잠기고 부산세관 소속 보세 창고가 침수됐다. 마산의 피해도 컸다. 바다는 산더미 같은 너울 파도로 삽시간에 흘러넘쳐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必死則生 必生則死)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기간에 쓴 난중일기에 적힌 표현이다. 이순신은 1597년 9월 16일(음력기준) 벌어진 명량 해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부하들에게 이 같은 명령을 내렸다. 명량 해전 당시 이순신이 이끌던 조선 수군의 판옥선은 13척에 불과했다. 같은 해 7월 이순신을 대신해 삼도수군통제사(조선 수군의 최고 지휘관)에 올랐던 원균이 일본군에게 대패했기 때문이다. 원균은 부산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을 공격하라는 선조의 명을 받고 판옥선 160여척을 동원했다. 하지만 원균이 이끌던 조선 수군은 거제도와 칠천도 사이의 칠천량에서 처참하게 패했다. 이후 선조는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해 조선 수군을 복구하도록 했다. 이순신은 칠천량 해전에서 도망쳤던 12척의 배와 전라 우수사 김억추가 끌고 온 1척의 배를 모아 명량 해전을 준비했다. 이순신은 첩보 작전을 통해 일본군의 왜선이 약 300척에 달한다는
1986년 9월 15일. 경기 화성 태안읍 안녕리에서 70대 여성이 사라졌다. 이 여성은 나흘 뒤인 그해 같은 달 19일 실종 장소 인근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당시 여성은 하의가 벗겨져 있었지만 성폭행 흔적은 없었다. 직접적인 사인은 경부압박 질식사였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악명 높은 '화성 연쇄살인'의 시작이었다. 이 살인을 시작으로 화성에서는 5년간 10건의 사건이 더 발생했다. ━피해자는 모두 여성, 연령대는 중학생부터 70대까지━첫 사건 이후 추가 사건은 약 한 달 뒤인 10월 20일 밤 발생했다. 20대 여성이 성폭행당한 후 피살됐다. 이후 두 달 뒤인 1986년 12월 12일 20대 여성이 남편과 저녁을 먹고 먼저 귀가하다 그대로 사라졌다. 이 여성 역시 성폭행 후 피살됐다. 발견 당시 사체는 스타킹으로 양손을 결박당하고 머리에 팬티를 씌워진 상태였다. 3차 사건 이틀 만인 그달 14일에 4차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또 20대 여성이었다. 이 여성 역시 성폭행
2008년 9월15일, 158년 역사의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세계 4위 투자은행(IB)의 몰락으로 수백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고 리먼과 거래하던 다른 금융기관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 시작된 부동산 버블에 미국발 금융위기는 본격화됐다. ━"한 마을을 통째로 사들여"…부동산 버블의 충격파━리먼 브라더스(이하 '리먼')는 158년 전통의 세계 4위 투자은행으로, 독일에서 온 유대계 이민자 헨리 리먼과 그의 형제들이 미국 앨라배마주(州) 몽고메리에 1850년 창립했다. 1984년 아메리칸익스프레스에 인수됐지만 10년 만에 독립했고 세계 4위의 투자은행으로 몸집을 키웠다. 파산 불과 1년 전인 2007년 기준 리먼의 총 자산규모는 6900억달러, 매출액은 600억달러였다. 리먼의 파산은 2000년대 초부터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1990년대 연 5~6%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던 미국의 IT(정보기술) 열기가 2000년대 초 급랭하면서 경제성장률은 0.3%
2022년 9월14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내 여자 화장실에서 20대 여성 역무원이 흉기에 찔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피해자를 3년 가까이 스토킹한 서울교통공사 입사 동기 전주환(당시 31세)이었다. 전주환은 신당역 여자 화장실을 순찰하던 피해자를 뒤쫓아가 화장실 칸 안에서 흉기를 휘둘러 살해했다. 계획 범행이었다는 정황은 여럿 확인됐다. ━피해자 살던 집 찾아간 전주환…우산 써 못 알아볼까 강수량 확인━전주환은 사건 당일 오후 2시30분쯤 피해자가 살았던 서울 은평구의 6호선 구산역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피해자를 만나지 못한 전주환은 오후 6시쯤 구산역 역무실에서 내부망인 서울교통공사 통합정보시스템(SMERP)에 접속해 피해자의 근무지와 야근 일정을 확인한 뒤 1회용 승차권을 구입해 신당역으로 이동했다. 전주환은 여자 화장실에서 1시간 10여 분 동안 피해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가 미리 준비한 흉기를 휘둘렀다. 흉기에 찔린 피해자는 화장실에 있는 비상벨 등을
2004년 9월 13일, KBS 2TV 예능 '일요일은 101%' 촬영 중 성우 장정진이 게임의 일환으로 송편을 급하게 먹다가 호흡기를 막은 송편에 질식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장정진은 의식불명에 빠졌고, 1달여 간의 치료 끝에 10월 11일 다발성 장기 부전으로 별세했다. 향년 51세. 장정진의 죽음 여파로 '일요일은 101%'는 종영됐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장정진을 안타까운 죽음으로 몰고 간 '음식 빨리 먹기' 게임이 지상파에서 버젓이 방송돼 시청자들의 비난을 샀다. ━빠르게 떡 먹다가…"하임리히법도 안 통해"━ 2004년 9월 13일, 고(故) 장정진은 KBS 2TV 예능 '일요일은 101%'의 서브 코너 '골목의 제왕' 추석 특집 방영분을 녹화하고 있었다. 당시 진행되던 게임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와 비슷한 형태로 음식을 빨리 먹어야 하는 게임이었다. 이 과정에서 장정진은 송편을 빠르게 먹다가 송편에 호흡기가 막혔다. 현장에서 함께 녹화 중이었던 전(前) 레슬링선수 심권호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2022년 9월12일. 부산 부산진구 양정동의 한 빌라에서 모녀가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을 발견한 건 15살 중학생 아들이었다. 사건 다음날 낮 12시50분쯤. 15살 중학생 아들은 15시간 동안 들었던 잠에서 깼다. 그의 눈에 들어온 건 거실과 방안에 각각 쓰러져있던 엄마와 누나였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숨진 모녀를 발견했다. 이불이 덮인 채 발견된 40대 엄마 B씨는 흉기에 찔린 흔적이 있었고, 화재가 난 방에서 발견된 10대 딸 C양은 타박상과 목이 졸린 흔적이 있었고 치아 1개가 탈구된 상태였다. 용의자는 이들의 이웃이었던 50대 여성 A씨로 좁혀졌고, 그는 모녀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몸에 좋은 주스라고 해서 먹었는데…" 약물 섞인 도라지물━사건 당일 A씨는 손녀와 함께 피해자 집을 찾아와 B씨의 아들 D군에게 '몸에 좋은 주스'라며 도라지물을 권했다. 여기에는 수면유도성분과 향정신성 약물 등 2가지 약
"조종석이 응답하지 않아요. 비행기가 납치된 것 같습니다." 2001년 9월 11일 화요일 아침. 미국 뉴욕 한복판에서 충격적인 테러가 발생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라는 위용을 자랑하던 세계무역센터로 비행기 한 대가 달려와 그대로 부딪혔다. 큰 굉음과 함께 건물은 빨간 화염에 뒤덮이기 시작했다. 이날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된 비행기는 총 4편. 첫 테러가 발생한 지 17분 뒤 제2 세계무역센터에 다른 비행기 한편이, 곧이어 다른 비행기가 미국 국방부 청사인 펜타곤을 들이받았다. 마지막 비행기 한 대는 워싱턴에 있는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을 향해 날아갔지만, 승객들의 저항으로 펜실베이니아 한 광산에 추락했다. 미국 전역은 하루 만에 일어난 큰 테러 사건으로 인해 비상사태에 빠지게 됐고, 뉴욕은 공포에 휩싸이게 됐다. 이 테러는 2023년 현재까지도 역대 가장 큰 인명피해를 유발한 테러 공격으로 기록되고 있다. ━미국 중심을 노린 19명의 테러범…유독가스 못 참고 고층에서 뛰어
'어느 때나 돌아오리 죄도 없는 어린 목숨 / 애타는 엄마 품에 두형이를 돌려줘요' (가수 이미자의 노래 '두형이를 돌려줘요' 가사) 61년 전인 1962년 9월 10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집 근처에서 놀던 조두형군(당시 4세)이 실종됐다. 사흘 뒤 부모에게는 '돈 가져오면 아이를 돌려보내겠다'는 내용의 협박 편지가 전달됐다. 전례 없는 어린이 유괴 사건에 온 국민이 사라진 조군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조군은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지금까지도 행방불명 상태로 남았다.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돈을 노리고 아이를 유괴한 이 사건은 '제1호 미제 사건'으로 기록됐다. ━부유한 집에서 자란 조두형군…"돈 주면 돌려보내겠다" 협박 편지━월요일이었던 그날 아침 조군은 국민학교에 가는 누나를 따라 집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잠시 뒤 동네 친구들을 만나 놀이터에서 놀던 중 홀연히 사라졌다. 조군의 부모는 어린 아들이 길을 잃었다고 생각해 미아 신고를 했지만, 하루이틀이 지나도 조
2022년 9월9일(한국 시간). 영국 역사상 최장수 군주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96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왕위 계승권자인 찰스 왕세자가 즉각 국왕 자리를 이어받았다. 영국 최장기간 집권 군주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스코틀랜드 밸모럴 영지에서 눈을 감았다. 사망 사유는 고령으로 기록됐다. 이틀 전 여왕은 리즈 트러스 전 총리를 임명하며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공식 석상에 얼굴을 내비치기도 했다. 7일 예정돼 있던 정치 자문 기구 회의는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의료진 권고로 취소했고, 8일에는 이례적으로 "여왕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왕실 성명이 나왔다. 곧이어 왕실 가족들이 밸모럴성에 속속 모이면서 우려는 현실이 됐다. 버킹엄궁 앞에 모여 여왕이 쾌차하기를 빌었던 국민들은 슬픔에 젖어 눈물을 흘렸다. 버킹엄궁에는 조기가 걸렸다.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는 "여왕은 많은 영국인에게 영감을 줬다. 영국은 여왕 덕분에 오늘날 위대한 나라가 됐다"라며 여왕을 추모했다. 1926년 4월2
49년 전인 1974년 9월 8일. 미국의 제38대 대통령이었던 제럴드 포드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난 전임 리처드 닉슨을 사면했다. 이로써 닉슨은 모든 형사상 책임을 피할 수 있었지만, 역설적으로 죄를 인정한 셈이 됐다. 워터게이트는 미국 역사상 최대의 정치 스캔들이다. 사전적으로 '문'(門)이란 뜻을 가진 '게이트'(gate)가 권력형 비리 의혹, 부패 스캔들 등으로 쓰이기 시작한 결정적 사건이기도 하다. ━'워터게이트' 호텔서 도청기 설치하던 남성들…재선된 닉슨━사건은 대통령 선거전이 한창 벌어지고 있던 1972년 6월 1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워싱턴 D.C.의 '워터게이트' 호텔에서 근무하던 경비원은 새벽 2시30분쯤 건물 가장 아래쪽의 구석진 곳과 주차장 사이 문 위에 테이프가 묶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누군가의 침입을 의심한 경비원은 경찰에 신고했고, 같은 건물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본부 사무실에서 남성 5명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이들은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위
세계 2차 대전 개전 1년여인 1940년 8월24일, 독일은 심각한 실수를 저지른다. 그날 밤 런던 외곽 군사 목표물을 폭격하려던 독일 공군은 런던 중심에 폭탄을 떨궜다. 여러 민가가 파괴되고 민간인이 숨졌다. 영국 전체가 들끓었다. 윈스턴 처칠 총리는 독일이 다분히 고의로 민간을 공격했다고 믿고 즉시 베를린에 보복 폭격을 가하라고 명령했다. 독일의 무차별적 영국 폭격, 이른바 '전격전(Blitz)' 첫 단추는 이렇게 끼워졌다. ━막가파식 폭격 개시━약 40대 영국 폭격기가 베를린을 공습했다. 처음부터 강도가 센 건 아니었다. '눈에는 눈' 정도의 보복이었다. 히틀러가 거주하는, 심장부가 공격받자 영국만큼이나 독일도 큰 충격을 받았다. 나치 독일 공군(Luftwaffe) 사령관 헤르만 괴링은 '베를린이 공격받는 건 불가능하다'고 떠들어댔지만, 헛소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독일을 자극했다. 8월29일까지 영국의 베를린 폭격은 3차례 이뤄졌다. 9월4일 히틀러는 신경질적이며 폭력적인 대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