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1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1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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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위님, 실손의료보험혜택을 활용해 공진단을 무료로 처방해주는 한의원이 있습니다." 김용훈 서울 중랑경찰서 수사과 지능팀 조사관(경위)은 2020년 5월 KB손해보험 조사관으로부터 한 건의 제보를 받았다. 공진단은 실손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보약임에도 한의원이 허위로 진료비영수증을 발행해 보험혜택을 받아 공짜로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곳이 있다는 제보였다. 공진단은 원나라 때 명의 위역림이 황제에게 진상한 보약이다. 허준도 동의보감에서 '백병이 나지 않게 하는 최고의 보약처방'이라 소개했다. 사향, 녹용 등 고급 약재로 만든 탓에 30환(5g)에 180만원 이상을 호가하기도 한다. 사향의 질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KB손해보험 조사관은 직접 서울 서초구 A 한의원을 방문해 공진단을 처방받아 왔다. A 한의원이 발급한 통원확인서와 진료비영수증에는 '용내안심환'이란 약을 받은 것으로 돼 있다. 석 달 치 약값은 270만원. 2009년 이전에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한 경우 '용내안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이네임', 영화 '극한직업'(감독 이병헌), 영화 '독전'(감독 이해영)은 모두 마약범죄를 소탕하는 경찰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작품들에는 또 다른 공통점이 숨어있다. 알려지지 않은 한 명의 주인공이 있었다는 점이다. 2005년 국내 1호 '마약류범죄전문수사관'으로 선정된 김석환 경기남부경찰청 성남중원경찰서 형사과장(56·경정)이 그 주인공이다. 김 과장은 마약수사 '베테랑'으로 해당 작품들의 마약수사 관련 검수를 맡았다. 김 과장은 현재도 영화 '독전2'(감독 백종열)의 제작과정에 도움을 주고 있다. 24일 머니투데이가 만난 김 과장은 "마약범죄가 너무 퍼졌다"며 "더 이상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김 과장의 말처럼 지난해 마약범죄 발생건수는 8088건으로 3년 전인 2018년 6513건에 비해 19.4% 증가했다. ━끈기와 인내가 필요한 마약 범죄 수사━1990년 11월 순경으로 경찰에 입직한 김 과장은 초반 1
"몰라요. 그냥 대출받으려고 통장 빌려준 거예요." 충북 지역에 거주하는 60대 부부는 지난 1월 메신저피싱에 속아 1억2000만원을 잃었다. 딸에게 휴대전화가 고장 났다는 메시지를 받고 요구를 들어준 게 화근이었다. 휴대전화에 설치된 원격조종 앱이 순식간에 돈을 빼갔다. 경찰에 신고했을 때 돈은 결제대행사의 가상계좌와 대포통장을 거쳐 메신저피싱 일당에게 넘어간 뒤였다. 26년 경력의 베테랑 수사관 오완균 충북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경제범죄수사팀장은 돈세탁에 사용된 통장 명의자 A씨를 만났다. A씨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다. 자신은 대출을 받기 위해 통장을 빌려줬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직감이 들었다. 계좌내역을 살펴보니 피해금 일부가 A씨 지인의 계좌로 송금된 상태였다. 결국 오 팀장은 반년간의 수사 끝에 A씨를 비롯해 메신저피싱에 관여한 31명을 검거했다. 이들은 동네 선후배 사이로 돈을 쉽게 벌 수 있다는 생각에 통장을 빌려주고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로또 3등 당첨!! 고맙습니다!" 한 로또 번호 예측 사이트에 이같은 '당첨 간증글'이 줄을 이었다. 해당 게시글은 각각 다른 아이디로 작성돼 당첨된 복권 사진과 함께 "XX님 감사합니다" 등의 인사말이 담겼다. 하지만 당첨 후기를 남긴 아이디는 실제 사용자가 존재하지 않는 유령 계정. 로또 당첨 번호 예측 사이트 운영자가 회원들을 유인하기 위해 허위로 계정을 생성한 것이었다. 가짜 후기로 회원을 끌어모은 사이트 운영진들은 회원들에게 당첨 확률이 더 높은 번호를 알려주는 고액의 특별 서비스가 있다고 속여 이용자들에게 수백만원을 결제하게 유도했다. 이들은 이런 수법으로 6만명 넘는 피해자들로부터 600억원에 달하는 금액을 뜯어냈다. 사기 피해 사실을 먼저 파악한 복권 수탁사업자 '동행복권'은 경찰에게 해당 사건을 의뢰했다. 사이버수사 베테랑 윤희동 경감(49)이 팔을 걷고 나섰다. 윤 경감은 CC(폐쇄회로)TV와 같은 직접적인 증거가 남지 않는 사이버 범죄와 범죄 피의자 사이를 연결
지난 2월 서울 도심 주택가의 한 지하상가. 상가 지하층 공실 한 켠에 조명과 환기시설 등 주택가와 어울리지 않는 전문 설비가 갖춰져 있다. 경찰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성인 무릎 높이까지 자란 줄기와 잎이 보인다. 대마다. 임근수 경기남부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마약범죄수사계 팀장(경위)과 수사관들은 상가 주차장에서 20대 A씨를 체포했다. 임 팀장은 A씨 등 일당 3명에 대해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이 아닌 형법 114조 범죄단체조직 혐의를 적용해 송치했다. 임 팀장은 이들이 전문 재배시설을 관리하면서 지휘·통솔 체계를 갖춘 점에 주목했다. 이들 일당이 판매와 유통, 돈세탁 등 서로 역할을 나눠 맡은 점도 범죄단체조직 혐의를 뒷받침했다. 해당 혐의는 'n번방'과 '박사방'의 주범인 문형욱, 조주빈 등에 적용된 혐의다. 유죄가 인정되면 조직 내 지위와 상관없이 조직원 모두 같은 형량으로 처벌받는다. A씨는 단순한 마약 판매 사범이 아니었다. A씨 등은 지난해 8월부터 지난 5월까
기록적인 폭우가 수도권을 덮친 지난 8일 저녁 8시쯤. 서울 구로경찰서 개봉지구대 소속 권민욱 경위(36)와 이아영 경장(27)은 목감천에서 주택가로 물이 범람하는 걸 막기 위해 설치된 옹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옹벽에서 물이 새는 것 같다는 주민의 신고와는 달리 옹벽의 상태는 양호했다. 하지만 옹벽 위까지 차오른 물을 본 권 경위는 불안함을 느꼈다. 그때 권 경위와 이 경장에게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30대 여성 A씨는 112에 전화를 걸어 "반지하 집에 물이 들어오고 있다"고 다급하게 구조를 요청했다. 권 경위와 이 경장은 저녁 8시37분쯤 신고가 접수된 구로구 개봉동의 한 빌라로 향했다. 순찰차 와이퍼를 최대 속도로 올려도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심한 폭우를 뚫고 두 경찰은 8분여만에 빌라 근처에 도착했다. 물이 이미 많이 차올라 순찰차는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었다. 둘은 빌라에서 20m가량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권 경위와 이 경장은 각각 구명환과 구명조끼를 착용하
"순 하나, 순 하나(순찰차를 부르는 호출). 현시간 도난 차량 감지, 강변북로 일산에서 구리 방향으로 이동 중." 지난달 22일 오후 3시쯤 서울 성동경찰서 교통정보센터는 경찰 음어로 급하게 강신영 경위를 부르는 무전을 쳤다. 순찰 중이던 강 경위는 공조 요청을 받고 바로 출동했다. 앞서 이날 오전 9시쯤 광주광역시 광산경찰서에서 랜드로버 SUV 도난 신고가 접수됐는데, WASS(수배 차량 검색시스템)에 등록된 이 차량이 서울에 나타난 것이었다. WASS는 차량 방범용 폐쇄회로(CC)TV와 차량번호 자동판독기 등을 경찰청 통합서버와 연계해 수배 차량을 자동 검색해 추적하는 시스템이다. WASS에 등록된 차량이 시내 주요 도로와 지방 주요 고속도로에 설치된 경찰 CCTV나 차량번호 자동판독기 앞을 지나가면 관련 정보가 112종합상황실, 교통정보센터는 물론 외근 경찰의 업무용 휴대폰과 태블릿 PC에 전달된다. 해당 차량은 이날 오전 광주광역시 인근 고속도로에서 WASS에 포착됐지만 검
지난 5월 29일 저녁 8시20분쯤 4번 국도 대구~경북 칠곡 방면에 설치된 CCTV(폐쇄회로TV) 아래를 흰색 SM6 한 대가 지나갔다. 같은달 25일 대구 달성군에서 도난신고된 차량이었다. 경북경찰청 칠곡경찰서 상황실에는 곧 바로 WASS(수배 차량 검색시스템)가 작동했다. WASS는 시내 주요 도로와 외곽 경계지역 등에 CCTV에 수배 차량 번호가 포착되면 차량정보가 실시간으로 경찰에게 전달되는 시스템이다. WASS에 차량이 포착되자 칠곡경찰서는 왜관지구대 순찰2팀에게 출동 명령을 내렸다. 첫 지령은 "수배 차량이 칠곡군 왜관읍으로 진입할 것 같으니 진입로인 왜관IC를 차단하라"는 내용이었다. 왜관지구대 순찰2팀 소속 이근희 순경시보(29)는 사수와 함께 순찰차에 올라 왜관IC로 향했다. "수배차량이 이동하고 있으니 낙동강변으로 이동하라." 저녁 8시35분쯤 왜관IC 부근에 도착한 이 순경에게 새로운 지령이 떨어졌다. 이 순경은 순찰차 방향을 틀었다. 이 순경의 순찰차가 낙동
"당신을 전기통신사업법위반 등 혐의로 체포합니다." 지난 21일 서울 강남구 모처.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소속 수사관들이 불법 통신중계기 중간관리책인 A씨(40)의 집에 들이닥쳤다. 불법 통신중계기를 거치면 해외콜센터에서 발신하는 '070' 인터넷 전화 번호도 수신자 휴대폰에는 '010'으로 시작하는 번호로 뜬다. 경기남부청은 앞서 지난 11일에는 불법 중계기를 운영한 혐의로 서울 금천구에서 40대 남성 B씨를 검거했다. B씨 수사 과정에서 입수한 단서로 윗선인 A씨의 연루를 밝혀낸 것이다. 보이스피싱은 국내에선 2006년 처음 신고됐다. 이후 등장한 메신저피싱 범죄자를 수사해도 과거에는 조직의 말단인 현금수거책을 검거하는 선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경찰 수사기법이 꾸준히 발전하면서 이제는 현금 수거책뿐 아니라 중계기 관리인과 그 윗선인 중간 관리책까지 잡아들일 수 있게 됐다. 조직의 중간책이 '꼬리 자르기'에 나서도 경찰의 추적을 피하긴 어려워졌다. 해외에는 수사권이
지난 15일 낮 12시49분. 서울 서부경찰서에 떨리는 목소리로 신고가 접수됐다. 60대 여성 신고자 A씨는 "녹번동에 사는 친구가 연락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A씨의 오랜 친구인 B씨는 신고 2분전 A씨에게 전화를 걸고 "나 약 50알 먹었다. 그동안 고마웠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이후 B씨가 몇 차례 전화를 받지 않자 불안한 낌새를 느낀 A씨가 곧바로 112에 신고를 냈던 것이다. 곧바로 서부경찰서 녹번파출소에는 '코드 1(원)'이 떨어졌다. 요구조자 또는 피해자의 생명, 신체가 위험하다고 판단될 때 발령되는 즉시대응체계다. A씨가 기억하는 B씨의 주소는 서울 은평구 녹번동 한 빌라라는 것. A씨는 "정확히 주소는 몰라도 빌라촌 입구에선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녹번파출소 순찰4팀 소속 한상욱 경위(53)와 팀원은 곧바로 녹번동의 빌라 밀집지역으로 향했다. ━수면제 50알 먹은 자해기도자 골든타임 사수 배경에는?━ 한 경위가 빌라촌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2시
"폭행을 저지른 취객이 택시를 타고 출발했어요." 지난달 23일 새벽 2시쯤 다급한 목소리로 112 신고가 들어왔다. 서울 을지로 일대에서 폭행을 저지른 취객이 택시를 타고 도주했다는 것. 비슷한 내용의 신고는 각기 다른 신고자에게 연달아 세 차례나 들어왔다. 자칫 하루에도 몇건씩 있는 단순 폭행사건으로 치부될 수 있는 신고 내용이었다. 하지만 김 경위는 신고 내용을 보다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신고자의 녹취를 전부 들었다. 녹취를 모두 들은 김권근 경위(46) 머릿속에는 '단순 폭행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스쳐 갔다. 19년차 베테랑의 꼼꼼함과 촉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해당 신고를 전달받고 긴급 배치를 명령을 받은 김 경위와 약수지구대 대원들은 취객이 탑승한 택시를 잡기 위해 약수역 인근에서 대기했다. 신고자는 택시 기사였다. 새벽 1시가 넘어가는 시간 택시 호출을 받고 승객을 기다리던 A씨(50대·남)는 택시 문을 열고 들어온 B씨(40대·남)에게 "콜을 받고 예약된 손님을 기
지난달 18일 오후 3시40분 전북 군산경찰서 서해지구대 순찰4팀에는 '코드제로'가 떨어졌다. 코드제로는 강력범죄 현행범이 발생했다는 신고로 경찰 출동시 최고 대응단계를 의미한다. 9일 머니투데이가 만난 서해지구대 순찰4팀 소속 추인재 경위(45)는 최초 신고자의 목소리를 선명하게 기억한다. 60대 남성 신고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어머니가 겁탈당하고 있어요"라며 112에 신고 전화를 냈다. 신고자가 중증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 집에 설치해놓은 홈CCTV에서 낯선 남성이 어머니를 성폭행하고 있는 모습이 찍힌 것이다. 추 경위는 범행이 벌어지고 있는 아파트로 향하는 5분여 동안 먼저 신고자로부터 받은 CCTV 영상을 통해 인상착의를 확인했다. 검은색 트레이닝복 차림, 최소 50대 이상, 안경 미착용. 짧은 시간 수없이 되뇌였다. 혹시라도 출동중에 마주칠 수 있으니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윽고 추 경위는 생각했다. "오늘 잡을 수 있다. 잡아야 한다." 혹시 모를 추가 범행을 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