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1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1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총 197 건
"식당에서 타는 냄새가 납니다." 지난 5월2일 서울 서대문경찰서 충정로지구대에 무전 하나가 전파됐다. 주취자 관련 신고를 받고 출동한 동료 경찰관이 무전으로 다른 팀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경주 경감(50)은 즉시 현장으로 향했다. 대로변에 있는 한 식당에서 탄내와 검은 연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식당 주인이 퇴근했는지 문은 잠겨있었다. 소방에 공동 대응을 요청했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식당 주변으로 다른 식당들이 가깝게 붙어있었고 인근에 시장도 있어 불이 커지면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경감은 경찰 조끼 속에서 드라이버처럼 생긴 장비 하나를 꺼냈다. 해당 장비를 열쇠 구멍으로 넣고 몇 차례 돌리니 문이 열렸다. 식당에 들어가 보니 가스레인지가 켜져 있었다. 곧바로 가스를 차단한 뒤 탄내와 연기가 배출되도록 조치했다. 이 경감은 "자살기도자나 화재 발생 시 빨리 문을 개방해야 할 경우가 있는데 빠른 대처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유튜브 등을 통해 문 개방
"집주인이 전화를 받지 않아서 전기료도 못 내고 있어요." 지난해말 서울 영등포경찰서 민원실로 '전세사기' 수사를 의뢰하는 임차인들 발길이 이어졌다. 150여세대와 전세임대차 계약을 맺은 건물주는 어느날 잠적했다. 강경상 영등포서 지능범죄수사2팀장(53·경감)과 팀원들은 타 경찰서에 접수된 변씨 관련 전세사기 사건까지 맡아 병합 수사했다. 실시간으로 크고 작은 고소·고발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일선서 수사과는 경찰 내에서 업무량이 많다는 평을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도 강 팀장과 팀원들은 약 8개월간 수사 끝에 130억원규모 전세 사기를 벌인 일당 전원을 검찰에 넘겼다. 강 팀장은 "우리팀의 주수사관이 수사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며 "이번 사건에 대해 영등포서를 집중수사관서로 지정해주시길 요청했다"고 했다. ━서울 영등포·금천·동작 일대 130억원대 전세사기…임대사업 동업자, 명의 대여자까지 일망타진━ 우선 강 팀장과 팀원들은 세입자들 피해 접수에 집중했다. 경찰은 변씨와 구씨가 소유
# 지난 4월12일 서울 서초구 한 아파트 15층 난간에 20대 대학생이 올라섰다. 동 트기 전인 오전 4시 잿빛 하늘. 우뚝 선 사람 실루엣만 보였다. "한 남성이 뛰어내리려고 한다"는 112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소방에 공동 대응을 요청했다. 소방은 혹여 학생이 뛰어내릴 경우를 대비해 에어매트 설치에 나섰다. 주민들이 귀가해 잠든 시간이라 주차장은 꽉 차 있었다. 차량을 빼고 에어매트가 들어갈 만한 자리를 확보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에어매트에 40%쯤 공기가 주입됐을 때였다. 좁은 난간에 위태롭게나마 서 있던 학생이 떨어졌다. 학생은 심정지 상태로 사망했다. 눈앞에서 투신한 학생을 본 경찰관은 온종일 잔상을 봤다. '차량을 빼고 에어매트를 설치하는 동안 옥상에 올라가 설득했다면 살릴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다음 날인 4월13일 오전 5시 같은 아파트 단지 옆 동에서 또 다른 사람이 투신해 사망했다. 한 아파트에서만 연이틀 극단 선택이 발생한
"중학교 졸업 기념 킥보드 탑니다." "정모 겸 폭주 진행합니다. 경찰차는 다 털릴 준비 하세요." 서울시 공유자전거 '따릉이' 등 폭주족인 이른바 '따폭연'(따릉이 폭주 연대)이 SNS(소셜미디어)에 올린 글 내용이다. 주 연령층이 10대인 이들은 공유형 자전거, 전동킥보드 등 수단을 이용해 질주하는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려왔다. 빠른 속도로 행인을 치고 가거나 경찰을 조롱하는 내용이 영상에 포함됐다. 지난 4일 따폭연은 오후 6시 따릉이 폭주족 집결을 예고했다. 서울 최고 기온이 40도에 육박하던 날 경찰 123명은 서울 시내 37곳에서 순찰에 나섰다. 하지만 폭주족은 나타나지 않았다. 경찰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따폭연은 SNS를 통해 같은 달 10일 또 다른 장소에서 폭주 계획을 알린 상태였다. 송파경찰서 여성청소년과 박지환 경장은 송파서 관내에서도 따폭연이 모인다는 112신고를 접했다. 쉬는 날이었지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등 SNS 모니터링을 시작
"차가 전날 주차한 장소와 다른 곳에 세워져 있어요. 블랙박스 칩도 빠져있어서 뭔가 이상해요." 지난달 7일 서울 중랑경찰서에 범죄 의심 신고 하나가 접수됐다. 누군가 자신의 차량을 몰래 이용한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이튿날 사건을 넘겨받은 중랑경찰서 강력5팀 김대근 경위(43)는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피해자가 거주하는 아파트 지하 주차장 CCTV(폐쇄회로TV)부터 살펴봤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를 쓴 채 지하 주차장을 맴도는 남성이 보였다. 그는 총 3층짜리 지하 주차장을 돌며 사이드미러가 펴진 차 위주로 차 문을 당겼다. 피해자의 차는 사이드미러가 펴진 채 차 문이 열려있는 상태였다. 남성은 피해자 차량에 탑승하더니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가 약 3시간 뒤쯤 다시 돌아왔다. 피해자가 주차했던 자리는 이미 차 있어 다른 층에 주차한 뒤 사라졌다. 김 경위와 팀원들은 방범용 CCTV와 사설 CCTV 100여대를 확보해 남성의 동선을 추적했다. 남성은 중랑구 외에도 노원구 등 여
"사람 살려. 납치 강도. 사람 죽어요." 지난 4월18일 오후 7시7분쯤, 경기북부경찰청 112상황실에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자는 괴성을 지르며 납치 강도를 당했으니 살려달라고 했다. 신고자 위치값을 살펴보니 남양주시 별내휴게소 부근 세종포천고속도로였다. 가장 먼저 차량 이동 경로를 파악하는 게 중요했다. 신고 내용이 진짜인지도 확인해야했다. 당시 상황실에 있던 '24년차 베테랑' 정영래 경감은 52분 동안 신고자와 전화 통화를 이끌며 두 가지 단서를 쫓았다. 그는 빠른 판단력으로 신고자 위치를 특정했다. 신고자가 마약범이라는 사실까지 유추했다. 정 경감이 속한 상황팀은 해당 사건으로 국가수사본부에서 '베스트 마약 투약 척결팀' 인증패도 받았다. ━피 말리는 52분 추적…어떻게 운전자 위치 파악했나━ 당시 정 경감은 112 신고를 받자마자 긴급 상황이라 판단했다. 종합지령대 전화를 이용해 스피커폰으로 내부 공청을 실시했다. 후배 경찰에게 무전으로 질문 방향성을 알려주는 등 현장
"○○○씨, 당신을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 및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등 혐의로 긴급체포합니다." 지난 5월15일 오전 인천 부평구의 한 가정집으로 경기북부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수사관들이 들이 닥쳤다. 경찰은 월 방문자만 약 120만명에 이르는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 운영자가 이곳에 있다는 단서를 확보했다. A씨(30대·남)는 '공짜○○' '토렌트○○' 등 이른바 '어둠의경로'로 불리는 사이트를 운영하며 '선재 업고 튀어' '파묘' '더 글로리' '피지컬100' '나는 SOLO' 등 최신 드라마·예능·영화를 유포했다. 저작권법 위반으로는 긴급체포되는 경우가 드문 탓에 수사관들은 이날 현장에서 중요 단서들은 압수할 예정이었다. A씨 역시 수사관들에게 자신이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를 운영했다고 순순히 인정했다. 그런데 현장에서 발견한 A씨 노트북에서 성착취물을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수사관들은 곧바로 A씨를 긴급체포하고 관련 영상 사이트를 폐쇄했다. HSI(미
"한강에서 사람이 불을 피우고 있어요." 지난달 13일 오후 11시30분쯤 서울 성동경찰서 서울숲지구대에 112 신고가 들어왔다. 뚝섬한강공원에서 한 여성이 지푸라기를 태우고 있다는 시민 신고였다. 당시 안연회 서울숲지구대 경감을 비롯해 정은재 경사, 이준혁 경장, 김도현 순경 등 4명이 현장에 출동했다. 신고 장소에 가보니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중국인 여성이 맥주 캔을 마시며 한강변 쪽에 앉아있었다. 이곳은 평소 가로등도 없어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경찰은 손전등을 비추며 여성에게 다가갔다. 바닥에는 라이터가 있었고 지푸라기에 불을 피운 흔적도 있었다. 여성은 한강 산책로 앞에 설치된 펜스를 넘어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안 경감을 비롯한 경찰들은 "여기서 이러면 안된다" "일어나라"고 말했다. 여성은 "싫다"며 횡설수설했다. 경찰이 "여기서 왜 그러느냐"고 묻자 "돈이 없다. 너무 춥다"고 답했다. 인적사항을 확인하기 위해 여성 지갑을 살폈지만 신용카드만 있었다. ━"이럴 줄
"동생이 스스로… 지금 어딨는지는 모르겠어요." 지난달 12일 오전 11시25분 서울 동작경찰서 노량진지구대에 이같은 내용의 112 신고가 접수됐다. 점심을 먹고 복귀한 노량진지구대 2팀과 홍유진 순경은 숨돌릴 새도 없이 뛰쳐나갔다. 급성 백혈병으로 아내를 잃고 장례를 치른 30대 남성 A씨는 친형과 친한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남기고 연락을 끊었다. A씨 집을 찾아낸 후 문을 강제로 열었지만 아무도 없었다. A씨가 있을 만한 곳을 특정하려 했지만 어떤 단서도 얻을 수 없었다. 모텔·고시원 등 인근 건물을 전부 뒤지기 시작했다. 이날 서울 최고기온은 31.8도. 팀원들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3시간이 넘게 수색했다. 노량진지구대 2팀은 공사 중인 28층 건물에 들어갔다. 모든 층에 전부 가보자는 팀장 지시에 홍 순경은 옥상부터 올라갔다. 문을 열자마자 옥상 난간을 넘어간 A씨 뒷모습이 보였다. 홍 순경은 당시를 회상하며 "아직 살아계셔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할
"지구대 경찰관들이 출동할 현장이 워낙 많고 바빠요. 조금만 신경을 써서 '리뷰'하면 재발을 막을 수 있겠다 싶어 관내 교통 법규 위반 사례 3년 치를 분석했어요." 서울 동대문경찰서 답십리지구대 순찰3팀 부팀장 김세민 경위(46)는 이같이 말했다. 수의사 출신으로 스리랑카에서 군 복무를 마친 그는 테러가 빈번한 그곳에서 치안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국내에 돌아와서 흰 가운을 벗었다. 이제는 제복 위에 무전기가 달린 조끼를 착용한다. 112신고 처리를 끝낸 뒤 숨을 돌리고 나서는 사건 재발을 막기 위해 분석에 공을 들이고 있다. 김 경위는 교통사고나 교통법규 위반 사례에 비슷한 패턴이 있다고 봤다. 어린이보호구역 앞에서 들어온 112신고를 살폈다. 학교 앞 횡단보도나 특정 도로에 차가 불법으로 주정차하고 있어 아이들 시야가 가린다는 내용이었다. 잘못된 끼어들기로 사고 유발 가능성이 높은 곳도, 무단횡단이 자주 발생하는 지점도 있었다. 순찰하거나 112신고에 나설 때마다 현장에
"중학생들이 도박사이트 총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지난해말 경기북부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믿기 힘든 첩보를 입수했다. 관내 중·고등학생들이 도박에 사이트 운영 조직에서 총판으로 활동한다는 내용이었다. 통상 도박사이트 운영 조직에서 총판은 도박 참가자를 유인하는 '영업사원' 역할이다. 도박 참가자가 건 돈이나 잃은 돈의 일부를 성공보수로 받는다. 수사팀은 청소년들이 또래 학생들에게 불법 도박사이트를 홍보하며 돈을 번다는 소식을 접하고 실체 파악에 나섰다. 관내 중학생 탐문에서 시작한 수사는 약 4개월만에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기반을 둔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 조직을 일망타진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도박사이트 홍보하던 중학생 3명…배후에 '거대 조직' 있었다━ 이윤호 경기북부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수사관(경감·38)과 팀원들은 경기 의정부에 있는 중·고등학교를 중심으로 수사를 시작했다. '중학생 총판'에 대한 결정적 단서는 지역 법무부 보호관찰소에서 얻었다. 도박 중독 상담과 재활 프로그
지난달 23일 오전 1시15분쯤 한 70대 여성이 112에 다급히 전화했다. 전날 오후 2시에 70대 남편이 산책하러 나가서 11시간이 넘도록 집에 오지 않는다는 것. 치매 환자여서 사고가 날까 우려스럽다고도 했다. 서울경찰청 112상황실은 70대 남성 A씨가 고령의 치매 환자라는 내용을 토대로 실종 신고로 접수했다. A씨가 가진 휴대전화 위치를 추적해보니 서울 노원구 수락산 일대로 파악됐다. 야간에 근무하고 있던 노원경찰서 상계1파출소 순찰 4팀이 신고를 넘겨받았다. 김원호 순경(29)은 강정우 경위와 함께 현장에 출동해 수락산 수색에 나섰다. 새벽 수락산은 입구부터 어두웠다. 가로등도 들어오지 않는 야심한 시간 김 순경은 손전등 불빛에 의존해야 했다. 사방이 어두워 턱에 걸려 넘어질 뻔하기도 했다. A씨가 안경을 썼다는 인상착의와 '산을 오른다'고 말했다는 신고 내용 등 정보도 한정됐다.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가 가리키는 위치에 가보니 갖춰진 등산로가 없었다. 김 순경은 정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