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발
기발한 아이디어를 처음 낸 사람들을 만나러 갑니다. 아이디어의 시작과 발명, 이른바 '아시발'입니다. 시발(始發)은 '처음으로 일어남'이란 뜻입니다. 세상을 선하게 만드는 아이디어가 더 많이, 널리 퍼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처음 낸 사람들을 만나러 갑니다. 아이디어의 시작과 발명, 이른바 '아시발'입니다. 시발(始發)은 '처음으로 일어남'이란 뜻입니다. 세상을 선하게 만드는 아이디어가 더 많이, 널리 퍼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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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붓한 세 가족이었다. 엄마, 아빠, 그리고 아들 진호씨(가명)가 함께 살았다. 그러다 몇 년 전에 진호씨 모친이 하늘나라로 먼저 떠났다. 사랑이 가득한 엄마이자 아내였었다. 진호씨까지 독립한 뒤, 그의 아빠는 경기도 용인에 홀로 살았다. 아내가 숨지고 나서는 건강이 나빠져 있었다. 자식은 나와 살면서도 그게 늘 걱정이었다. 2023년 9월 5일. 부친은 그날도 적막한 집에서 아침을 시작했다. 혼자서 밥을 먹고, 설거지하고, 빨래를 돌렸다. 부지런한 성격이라 청소를 자주 했다. 창문을 닦고 바닥을 훔쳤다. 외로움을 떨치기 위한 일이기도 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진호씨 아빠가 거실 바닥에 쓰러졌다.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곁엔 아무도 없었다. 자칫하면 이대로 숨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진호씨에게 연락이 왔다. 아빠가 기절한 채 발견돼 병원에 옮겨져 회복하고 있다고. 급히 병원에 달려온 그는 아빠를 보며 울었다. 또 궁금해했다. "아빠가 집안에서 쓰
16살 미국 소년이 숨졌다. 이름은 체이스 나스카. 집에서 0.8㎞ 떨어진 철도 선로에서 발견되었다. 2022년 겨울이었다. 소년은 친구에게 마지막으로 문자를 보냈다. 거기엔 이리 적혀 있었다. '미안해, 더는 견딜 수가 없어.'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자살한 소년은 아무런 메모도 남기지 않았다. 황망했던 엄마 미셸은 아들의 SNS 틱톡 계정을 살폈다. 필사적으로 죽음의 답을 찾고 싶었다. 'For you'라는, 알고리즘이 추천한 영상들을 볼 수 있었다. 우울증·절망·죽음에 대한 게 무수히 쏟아졌다. 아들이 죽은 뒤 1년이 흘렀어도, 틱톡 추천엔 여전히 이런 영상이 떠 있었다. '고통을 없애세요. 죽음은 선물입니다.' 또 다른 추천 영상에서, 남성은 이리 소리치고 있었다. "내 인생은 엿 같아, 너무 비참하고 싫어!" 미셸은 체이스의 형에게 이유를 물었다. 아들이 왜 계정을 그리 어둡고 우울하게 만든 건지. 그러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체이스가 그런 게 아니에요, 엄마. 그건
1993년 초, 여중생이 경남도청 사무실에 찾아왔다. 송호룡씨는 당시 경남도 지적과장이었다. 토지 정보와 관련한 업무를 맡고 있었다. 학생은 울면서 이리 말했다. "아빠가 교통사고로 갑작스레 돌아가셨어요. 돌아가시기 전에, 어디에 땅을 사두셨다는 얘길 들었었는데…." 어린 나이에 허망하게 아빠를 잃은 딸. 갑자기 생계가 기울어진 벼랑 끝에서 기억해낸 얘기였다. 단지 땅이 있단 것만 알 뿐, 이를 어떻게 찾을지 몰라 무작정 찾아온 거였다. 학생 얘기에 마음이 찡해졌다. 찾아줄 수 있었으나 걸리는 게 있었다. '개인정보보호법'이었다. 호룡씨가 말했다. "그 당시엔 개인정보 보호 때문에, 정보를 알려주면 안 되게 돼 있었어요. 그렇지만 사정이 딱하더라고요. 나중에 문제 돼도 꼭 찾아줘야겠다 싶었습니다." 호룡씨는 지적전산망을 샅샅이 뒤졌다. 아빠 명의의 땅, 수백 평이 정말 있었다. 땅값이 오른 땅이라 가격도 좀 되었다. 아빠가 남긴 땅이 있다고, 학생에게 알려줬다. 학생은 고맙다고 호룡
위풍당당한 반려견 순찰대 '은송' 대원이 동네를 순찰할 때였다. 도움 필요한 사람은 없는지, 위험 요소는 없는지, 자세히 보고 있었다. 윤기 있는 까만 털에, 행복하면 나오는 분홍빛 웃음이 멋진 개. 꼬리를 좌우로 흔들던 은송 대원은 걸음이 느린 편이다. 느린데 무슨 순찰이냐 할 수 있겠으나 천만의 말씀. 그래서 더 천천히, 주변을 살피는 장점이 있었다. 그때였다. 은송 대원이 무언가 발견했다. 초등학생 친구들이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려 했다. 작은 친구들이 주춤주춤, 하는데 차가 자꾸만 쌩쌩 지나갔다. 학생들은 당황해 건너지 못하고 있었다. 은송 대원은 어린이들에게 다가갔다. 안전하게 다 건널 때까지, 멋지게, 곁에서 호위해주었다. 한 번은 버스정류장과 차도 사이에서 위태롭게 휘청이던 취객도 발견했다. 몸을 못 가누며 도로로 향했다가, 다시 올라오는 걸 반복했다. 은송 대원과 보호자 민서 대원은 112에 신고했다. 경찰이 부축해 챙기는 걸 본 뒤 다시 순찰에 나섰다. 한솜이
고속도로 위에서 한 남성이 숨졌다. 2011년 3월 저녁이었다. 서해안고속도로 안산 분기점에서였다. 화물차는 왼쪽(강릉 방향)으로, 승용차는 오른쪽(목포 방향)으로 가려고 했다. 차선 변경을 해야 했다. 별수 없이 두 차가 맞물리는 상황이었다. 서로 끼지 못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별안간 장애물이 나왔다. 승용차는 그걸 보고 빠졌는데, 화물차는 미처 피하지 못했다. 속도를 늦추지 못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화물차가 그대로 충돌했다. 사망 사고. 실은 윤석덕 한국도로공사 차장(2011년 당시 군포지사)이 계속해서 우려했던 거였다. 때는 2009년. 경기도 동탄에 있는 인재개발원에서 교육받고 회사로 복귀하던 길. 윤 차장은 잠시 다른 생각을 하다가 둔대 분기점에서 길을 잘못 들었다. "아차, 했는데 고속도로에선 후진도 못 하잖아요. 멍청이처럼 목포 방향으로 가고 있더라고요. 도로 설계도 했고, 건설도 했고, 유지 관리도 하는 사람도 길을 놓치는데, 국민들은 오죽할까 싶었어요." 그
2015년 1월. 어르신 관련 부서로 발령 받은 ㅎ팀장은 혼란스러웠다. 담당 과장이 그를 불러 말했다. "구청장님이 원하시는 사업이 있는데, 진행이 잘 안 되고 있는 게 있어요. 팀장님이 새로 오셨으니 한 번 해보시면 어떨까요." ㅎ팀장은 그게 뭐냐고 물었다. 일종의 '무더위 쉼터' 같은 거란 대답이 돌아왔다. 업무적 개념에서의 무더위 쉼터는 시원한 에어컨이 있는 경로당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했다. 그가 당시를 회상했다. "원하시는 게 실내 시설이 아니라 그늘막 형태였어요. 인도나, 이런 길에 다닐 때 무더위나 햇빛을 잠깐 피할 수 있는 그런 개념이었지요." ㅎ팀장은 상상의 벽에 부딪혔다. 여러 그늘막 형태를 검토하던 이전 자료를 보며 고민을 이어갔다. 무더위 쉼터를 냉방 기능 없이 만들어야 하고, 근거를 찾기도 어렵단 것. 그러니 걱정 됐다. 그와중에 필요성은 일부 느꼈다. 뭐든 일단 검토해보는 걸 선호하는 편이었다. 뭣보다 구청장 의지가 너무 강했다. "무조건 해보라"는 거
"아이고, 웅댕이(엉덩이) 뜨셔서 좋지요. 어째 이런 걸 생각해냈대."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 있던 83세 어르신의 말이었다. 정류소 전광판엔, 그가 타야할 버스가 10분 후 온단 안내가 떴다. 기온은 영하 2도. 이따금 칼바람이 얼굴을 쳤으나 엉덩이만큼은 따뜻했다. 이른바 '엉뜨(엉덩이가 뜨뜻한) 의자'라 불리는 온열의자 덕분이었다. 중구 버스정류장 엉뜨 의자에 앉아 있던 정소율씨(28)는 "버스 와도 일어나기 싫을 정도로 좋다"며 좋아했다. 외국인들도 감탄했다. 외국인들의 한국 이야기를 다루는 '어썸코리아' 유튜브 채널엔 베네수엘라인 세 명이 버스정류장에 감탄하는 모습이 담겼다. 아들이 버스정류장 의자를 만져보라 하자, "따뜻하다. 버스 놓치면 그냥 자도 되겠다"며 원더풀(멋지다)을 연발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이런 아이디어를 낸 게 정말 존경스럽다고. 대체 이걸 처음 생각해낸 사람은 누구였을까. 꽤 오래 전 일이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일단 서울시 보도자료를 뒤지니,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