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진's 종소리
정치, 사회, 경제 등 다양한 이슈를 깊이 있게 다룹니다. 대통령과 정부, 여야 정당, 사회적 논란, 시대 변화 등 우리 사회의 주요 현안을 날카로운 시각으로 분석해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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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장제원 의원이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을 그림자처럼 따르며 정권교체를 이루고 지금까지 막전막후에서 온갖 일을 도맡았던 그가 제22대 총선 불출마를 12일 공식 선언했다. 당선인 비서실장 중도 사퇴를 끝으로 이렇다 할 공직을 맡지 않던 장 의원은 자신의 표현대로 가지고 있는 '마지막'을 내놨다. 친윤(친윤석열)의 상징으로서 비난도 견제도 온몸으로 받던 장 의원의 불출마 씨앗이 몰고 올 파장은 예단하기 어렵다. 본인 스스로 "버려짐이 아니라 뿌려짐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총선은 딱 120일 남았다. 사실 그동안 정치권 안팎에서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장제원은 절대 불출마하지 않는다"라는 얘기가 상당했다. 직선적 성품으로 마음먹은 건 밀어붙이는 스타일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회부의장을 역임했던 선친 때부터 다지고 쏟아온 부산에 대한 애착이 누구보다 강해서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오직 저를 믿고 한결같이 응원해 주신 사상구민께 죄송한 마음"이라고 했다. 그런 그가 용기를 냈다. 장 의
#"블랙핑크가 아니라 우리(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블랙핑크의 일정에 맞춰야 한다. " 대통령실 참모의 말이다. 세계를 휩쓰는 K컬처의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해외 순방을 나가보면 피부로 느껴진다. 주요국 장관들마다 K팝 스타의 굿즈(goods)를 구해달라는 자녀들의 요구에 쩔쩔맨다고 한다. 지난달 블랙핑크의 APEC(인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프로그램, 영국 국빈만찬 참석 등도 우리 정부가 아니라 미국과 영국 정부가 나서서 섭외했다. 전 세계 반도체산업을 쥐락펴락하는 피터 베닝크 네덜란드 ASML 회장의 지난 여름 갑작스러운 방한도 알고 보면 한류 팬인 딸의 간곡한 부탁 때문이었다고 한다. #상전벽해다. 1988년 첫 미국 직배급 영화였던 '위험한 정사'가 상영됐던 명동 코리아 극장에는 관객을 쫓기 위해 뱀이 풀렸다. 개방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막아보려는 안타까운 몸부림이었다. 30여년 만에 K컬처는 세계의 중심에 섰다. 기적 같은 성공을 설명하기 위해 수많은 분석이 나왔다. 정답은 없지만 지난해 미국 스탠포드대 월터 쇼렌스틴 아시아태평양연구소의 콘퍼런스에서 나왔던 시각은 참고할 만하다.
#73년 전 이맘때 한국전쟁의 분수령이 됐던 장진호 전투에서는 기막힌 일이 벌어진다. 12만의 중공군에게 포위됐던 미 해병대 1사단 병사들은 다급히 무전을 쳤다. "투시 롤(초콜릿 사탕 브랜드)이 떨어졌다. 빨리 보내달라"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간절한 외침이었다. 사방에서 전우가 죽어 나가는 와중에도 박격포탄을 뜻하는 해병대의 은어 '투시 롤'을 사용했다. 적군의 도청을 걱정해서다. 그러나 후방의 통신병은 이를 몰랐다. 중공군의 대공 사격을 피해 역시 목숨을 건 지원 항공기가 투하한 수백 개의 보급품 상자 안에는 진짜 초콜릿 사탕이 들어있었다. 현장을 몰라 소통이 안 돼 벌어지는 대참사다. #"제발 민심을 제대로 전해주시라" 얼마 전 사석에서 정부 고위관계자가 기자들에게 간곡하게 부탁했다. 빤한 얘기지만 세상의 대부분 일은 빤한 걸 몰라서 혹은 지키지 않아서 틀어진다. 믿기 어렵겠지만(?) 역대 어느 정권이든 대통령실은 가장 바쁘게 일한다. 때로 당위에 때로 서류와 숫자에 매몰되다 보
#몇 년 전까진 개고기 식당에서 부서 회식을 하는 회사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개 식용에 대한 거부감과 혐오는 해가 다르게 커졌다. 요즘 그랬다간 부서장이 근로기준법(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 위반으로 처벌될지도 모른다. 오랜 세월을 이어온 음식문화 중 개고기보다 빠르게 소멸의 운명을 맞은 게 있을까 싶다. 20년 전쯤만 해도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소위 보신탕집이 10곳은 족히 있었다. 하나씩 하나씩 문을 닫더니 2023년 10월 현재 단 한 군데도 남아 있지 않다. 경복궁역 인근에 한 식당이 2020년 봄에 메뉴판에서 '영양탕'과 '수육' 따위를 삭제했고 그게 끝이었다. 국회 앞도 마찬가지다. 서여의도 KBS 앞 상가 지하 등 여야를 막론하고 정객들이 즐겨 찾던 보신탕집들이 있었지만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다른 동네도 비슷하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포 단골집은 9년 전쯤 문을 닫았고,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 후에도 포장해갔을 정도
#졌잘싸. '졌지만 잘 싸웠다'는 이 말은 부산엑스포 유치전을 앞두고 기자들 사이에서 단언컨대 가장 많이 나왔던 말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기세가 워낙 강해서다. 막판 대역전극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11월28일 프랑스 파리 BIE(국제박람회기구) 총회에서 179개 회원국의 비밀투표로 결정되는 2030년 엑스포 개최지 결정은 아직 두 달이 남았다. 부산엑스포 유치를 이루려면 결선투표까지 가서 이탈리아 로마 표를 흡수하는 수밖에 없다. 용산 내부에선 문재인 정권이 허송세월했다는 불만도 많다. 중국이 2035년 엑스포 유치를 염두에 두고 있어서 '대국의 심기'를 살피느라 감히 방해가 될 수 있는 '2030년 부산' 따위는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그만큼 정부 내에서도 유치를 위한 치밀한 준비가 없었다는 얘기다. 정치권 일각에선 기대를 접은 기류가 적잖다. 비슷한 지역에서 연속 개최가 어려운데 일본이 2025년 엑스포(오사카·간사이)를 개최하니 2030년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양보하고 2035년 유치를 노려도 좋다는 시각이다.
#캠프 데이비드는 시원했다. 울창한 숲속 길로 들어서자 여름 한낮 불볕더위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 대통령의 전용별장이라니 나무 한 그루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파란 하늘과 어우러진 그곳은 아름다웠다. 미군을 비롯한 보안요원들도 상냥했다. 검측 과정에서 가방을 일일이 열어보고 차량 밑에까지 들어가 샅샅이 살피지만 친절했다. 미국인이 아닌 이를 대하는 특유의 고압적 태도는 없었다. 기자들도 역사적 순간을 즐겼다. 한국어와 영어, 일어가 교차하는 임시 프레스센터에는 활기가 넘쳤다. 티셔츠 등 기념품을 늘어놓은 간이 판매대에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 현장에서 들린 표현대로 사상 첫 한미일 정상회의는 그 자체로 어메이징했다. #정상들의 얼굴도 밝았다. 시종일관 분위기는 부드러웠고 종종 환한 미소도 보였다. 산책로를 오가는 친근하고 여유로운 세 정상의 발걸음은 '강력한 원 팀'의 탄생을 세계에 과시하려 듯했다. 실제 한미일 협력체의 탄생은 외신들이 이미 평가한 대로 그 역사적 의미가 엄청나다. '인태지역의 지정학을 바꾼 8시간'(조태용 국가안보실장) '어느덧 세상의 맨 앞'(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과 같은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내가 평검사 때 잠바 입고 수첩 하나 들고 검찰총장실 찾아갔다. 그렇게 내 방에 찾아와라" 윤석열 대통령은 종종 참모와 각료 등에게 거침없는 소통을 강조한다. 형식을 갖추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요식행위는 중요치 않다는 얘기다. 실제 취임 후 14개월여를 그렇게 달려왔다. 어느 비서관이 직속상관인 수석비서관을 제치고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한다는 식의 소문은 드문 괴담이라기보다 흔한 미담에 가까워졌다. 윤 대통령은 필요하면 행정관이나 초선의원, 민간의 각계 인사와도 수시로 직접 대화한다. 직전 보수정권 청와대에서도 근무했던 한 인사는 "1년 반 동안 박근혜 전 대통령을 딱 두 번, 그것도 멀찍이 떨어져서 만났는데 용산에서는 반년도 안 돼 윤 대통령을 가까이서 수십 번 봤다"고 했다. #대통령을 참모들이 따라가기 힘들다. 타고난 체력에 일을 즐긴다. 주중에는 청사에서 저녁 식사를 곁들인 회의가 일상이고 주말에는 관저로 불러 보고를 받는다. 외교무대에서 일정은 가혹할 정도다. 밀려오는 요청을 굳이 마다하지 않는다.
#"선관위 담당이 누구지?" 채용 비리 의혹이 봇물 터지듯 쏟아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태를 다루는 과정에서 기자들 사이에 한 번쯤 주고받은 말이다. 언론사에서 선관위는 통상 정치부 국회팀에서 겸임으로 맡고 있다. 여야 간에 날 선 정쟁과 굵직한 정국 이슈들에 치여 평소 관심 대상에서 멀었다. 전담하면서 출입하는 기자가 거의 없는 사각지대였다. 공직사회 속사정에 밝은 한 고위 관료는 '신도 숨겨놓은 직장'이라고 표현했다. 업무 조건, 지역 선관위와 토착 세력의 끈끈한 관계, 정치권을 우회하는 예산 확보 요령 등 그들만의 탄탄한 생태계가 구축돼 있다는 얘기였다. 그중 곪아 더 감출 수 없게 된 '아빠 찬스' '형님 찬스'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감시받지 않는 이들의 민낯도 놀랍거니와 감사원 감사조차 거부하는 행태에서는 민심과 얼마나 동떨어진 조직으로 전락했는지도 절감된다. #감시와 통제는 권력의 핵심이지만 양면의 칼, 독이 든 성배다. 본인 스스로가 예리한 칼날이었던 윤석열 대통령이 민정수석 폐지를 전면에 내걸고 실현한 건 그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다.
#"청와대 업무 회의 중에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가 뭐였는 줄 아느냐."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일했던 한 인사가 취기가 거나하게 오른 뒤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가 알려준 답은 '지지층 결집'이었다. 각종 정책을 펴고 메시지를 내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지지층을 의식했다는 얘기다. 돌이켜보니 전체 국민을 생각하거나 국가의 미래를 고민하는 건 뒷전으로 느껴졌다는 고백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최대 실정은 부동산 정책도 국가채무 1000조원도 아닌 국민을 갈라치기한 것이란 지적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편을 가르면 메시지는 시원시원해진다. 여기에 반일감정까지 얹으면 도덕적 우위까지 차지한다. 민정수석이 대놓고 죽창가를 올렸던 시절이다. #"매국노" 12년 만에 한일 셔틀외교가 복원됐지만 관련 기사마다 가장 많이 보이는 악플이다. 일부 누리꾼들이야 익명에 기대 마음껏 댓글을 단다지만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얼굴을 내걸고 원색적 비난을 쏟아낸다. 한일정상회담 다음날 민주당
#"한눈에 확 비교가 되더라고요"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열린 17일 도쿄 한일 비즈니스라운드 테이블의 장면을 지켜봤던 국내 한 기업인의 말이다. 약 25년 만에 한일 행사에 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이 일제히 자리를 함께 하면서 양국 경제인들의 외모부터 눈에 들어오더라는 얘기다. 1968년생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물론 정의선 현대차 회장(1970년생), 구광모 LG 회장(1978년생) 등 우리 기업인들은 세대교체를 이뤄 젊다. 반면 일본 측 참석자들은 1937년생인 사사키 미키오 미쓰비시상사 특별고문을 비롯해 도쿠라 마사카즈 스미토모화학 회장(1950년생), 고가 노부유키 노무라증권 회장(1950년생) 등 대부분 70대 이상이었고, 60대 이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보수적인 일본 재계의 분위기는 출신학교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날 일본 측 11명 경제인 중 학벌 파괴 기업을 선언했던 히타치제작소 회장을 제외한 전원이 학벌의 상징인 도쿄대와 게이오대를 졸업했다. #한일 미래파트너십 기금은 20억원으로 출발했다.
#"밥하기 싫어서?" 취임 초 서초동 사저 시절 윤석열 대통령의 퇴근 시간이 매일같이 늦어지자 정치권에서 나왔던 우스개다. 가정에서 음식 준비를 도맡아 했던 윤 대통령의 일상을 잘 아는 이들에게는 '살림꾼 윤석열'은 어색하지 않다. 한남동 관저에서 생활하는 요즘도 종종 아침밥 정도는 직접 챙긴다는 후문이다. 계란볶음밥 등 간단한 레시피 위주지만 '요리하는 대통령'은 신선하다. 물가 대책에 있어서도 접근이 남 다르다. 최근 참모들과 회의에서는 경제부처가 내놓은 보고서보다는 식용유값, 소주값 등 실생활 속 사례를 언급했다고 한다. "2분기부터 몇%로 안정화될 것이란 분석보다 국민이 당장 식탁에서 느끼는 체감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게 대통령의 스타일이다. #이를테면 생활밀착형, 체감형 대통령이다. 거대 담론이 총동원될 수밖에 없는 3대(노동, 연금, 교육) 개혁에서도 노조 개혁부터 드라이브를 걸었다. 회계장부 투명성, '건폭'(건설현장 노조의 불법행위) 척결 등 눈에 보이는 문제부터 붙잡았다. 전세사기 대응, 소아의료 체계 개선 등 약자가 삶에서 부딪히는 지점에서는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라'와 같은 지시를 내린다.
#1980년대 후반 어느 날 밤은 너무 무서운 기억이었다. 아파트 4층 창문으로 TV에 옷장, 냉장고 등 그야말로 모든 집안의 세간살이가 다 떨어져 부서졌다. 노동자의 도시에 살면서 피투성이로 백골단에 끌려가는 아저씨들의 모습도 낯설지 않았지만 또 다른 공포였다. 일단의 노동자들은 동료를 배신한 누군가를 거칠게 찾았지만 이미 몸을 피한 뒤였다. 노노갈등 속에 감행된 한밤의 습격은 아낙과 아이들의 처절한 울음으로 끝났다. 1990년대 후반만 해도 대학가에서 폭투(폭력투쟁)는 흔했다. 신입생 환영회처럼 소주 빈 병이 대량 배출되는 행사 때는 '재활용을 해야 하니 담배꽁초 등을 절대 병 안에 버리지 말라'는 학생회의 간절한 당부가 계속됐다. "대학생은 환경 의식이 투철하구나" 새내기들은 감탄했지만 실은 화염병 제작을 위해서였다. #2009년 평택은 전쟁터였다. 옥쇄파업을 벌이던 쌍용차 노조원들과 사측 직원들, 경찰 특공대 간에는 화염병과 볼트 새총, 쇠파이프가 난무했고 부상자가 쏟아졌다. 현장에서 급한 기사를 마무리하고 공장 정문 앞 식당에서 늦은 점심으로 자장면을 먹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