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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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자도 나중에 정치 한번 해야지?" 정치부 기자를 하다보면 한번씩 이런 의례적인 덕담(?)을 듣는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대답한다. "아유 그럴 깜냥도 안되고, 전혀 그런 생각도 없어요." 진심이다. 일단 그럴 능력이 안된다. 또 상경계 출신이라 그런지 정치 권력에는 별 관심이 없다. 아무리 실속을 따져봐도 정치판에 뛰어들었을 때의 효용이 그에 따른 위험이나 비용에 못 미친다. 청와대 출입기자로 있으면서 이런 생각은 더 강해졌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뒤엔 더욱 그랬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청와대 사람들이 줄줄이 쇠고랑을 찼다.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신동철 전 정무비서관. 이밖에도 친하게 지내던 수많은 비서관, 행정관들이 잇따라 특별검사팀 사무실로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권력은 '손잡이 없는 양날의 칼'이라 잡는 순간 다친다는 흔해 빠진 레토릭이 이렇게 피부로 와닿을지 몰랐다. 구속된 사람들의 경우 본인의 잘못이 전혀 없진 않다. 그러나 대부분
"대통령으로서 저는 나라의 이익을 앞세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모든 시간을 직무에 쏟을 수 있는 대통령과 의회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변론을 위해 몇달씩 싸움을 계속하게 되면 대통령과 의회는 시간과 관심을 거의 모두 빼앗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대통령직을 내려놓으려 합니다." 1974년 8월8일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하야 연설이다. 당시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벼랑 끝에 몰려있었다. 그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이미 상원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고, 본회의 가결도 확실시되는 상황이었다. 닉슨이 하야를 선택했다고 해서 그가 자신의 죄를 인정한 건 아니었다. 하야 선언 직전 닉슨은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헨리 키신저를 붙들고 울부짖었다.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어. 내가 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는 거지?" 그로선 억울할 만도 했다. 닉슨은 워터게이트 빌딩의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을 도청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그의 측근인 고든 리디와 하워드 헌트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저마다 수많은 장면으로 기억할 것이다. 누군가는 수개월 광장을 메운 촛불 또는 태극기로, 누군가는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라는 헌법재판소의 또렷한 주문(主文)으로. 기자는 그 중 두 가지를 잊을 수 없다. 이정미 헌법재판관(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출근길 '헤어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팽목항 방명록. 탄핵심판 선고일인 10일 오전, 출근길 관용차에서 내린 이정미 재판관이 국민 시선을 사로잡았다. 정수리 뒤쪽 헤어롤 2개를 풀지 못한 모습 때문이다. 분홍빛 헤어롤은 여성들이 늘 이용하는 일상용품. 이 장면은 순식간에 갖가지 의미가 부여돼 급속히 퍼졌다. 그러다 탄핵 심판에 대한 고심과 긴장 때문이란 해석으로 수렴됐다. 차에서 말아뒀다가 내리면서 뺐어야 하는데 그걸 잊을 정도로 선고에 대해 중압감과 부담을 느끼지 않았느냔 거다. 파면 결정 후 진도 팽목항에선 어딘가 어색해보이는 글이 사진으로 확인됐다. 문재인 전 대표의 팽
# "자네도 기사쓰나?" 지난 1일 황대만(황교안 대통령 만들기) 첫 정모장소에서 만난 한 노신사가 물었다. 기자라는 신분을 밝히지 않은 터라 적잖이 놀랐다.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에 자네도 기사를 쓰냐는 말일세." 노신사가 다시 물은 다음에야 질문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정모에서 만난 회원들 가운데 일베의 게시글을 '기사'라 부르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일베를 자신들의 소통창구로 여기는 동시에 언론의 역할을 한다고 믿고 있었다. 언론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큰지를 느낄 수 있어 마음 한편이 무거워졌다. 참석자 중 한명은 "언론이 일방적이고 편향적인 기사로 여론을 호도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탄핵사태에 대해) 침묵하고 있을 때 일베에서 먼저 탄핵부당함에 대한 기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며 "일베의 순기능은 95%, 역기능은 5% 정도"라고 평했다. # "5월3일. 장충체육관이라도 빌려 2만여명의 황대만 회원을 한자리에..."(백도한 황대만 대표) '5월대선'
"대통령이 수사의 주요 대상으로 사실상 돼 있는 사건이다. 대통령의 영향력이 미치게 되면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되는 것이라 생각되고 가장 우려되는 대목이다" 지난해 11월16일 '최순실 특검법' 논의가 이뤄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이같은 우려를 표했다. 국회 속기록을 보면 이 법안은 발의 때부터 수사대상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문제점을 잉태한 상태였다. 그러나 여야 의원들이 초점을 맞춘 것은 '특검후보추천권'의 중립성 여부와 '특검팀 규모'였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승인을 거부한 ‘수사 기간’은 관심 밖에 있었다. '수사기간 연장 승인의 주체'에 대해선 논의조차 없었다. 국회의원 209명 명의로 발의된 이 법안은 그렇게 단 이틀만에 통과됐다. 현직 대통령을 수사할 수도 있는 근거법을 만들면서 꼼꼼히 챙기기는커녕 정치적 명분만 부각시키는 데 주력했을 뿐이다. 애초부터 논란의 씨앗이 배태돼 있었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여·야 모두가 최순실 특
'촛불'과 '태극기'가 두 개의 광장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완전히 갈랐다. 광화문 광장의 촛불과 노란 리본, 각양각색 깃발들이 잘 어울리듯, 시청 광장의 태극기와 군복, 그리고 성조기도 어느새 익숙해졌다. 촛불과 태극기가 경합을 벌인 2월 25일 하루 동안 최순실, 이재용, 장시호 외에도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까지 소환조사를 받았다. 헌법재판소는 27일을 최종변론기일로 지정했고 28일이면 특검 활동이 종료된다. 특검수사와 탄핵소추의결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긴장도 가파르게 고조되고 있다. '내란'이나 '시가전', '피로 물든 아스팔트' 등 날 선 선동과 협박의 언어가 광장은 물론 헌재 재판정에서까지 들린다. 헌법재판관과 특별검사를 상대로 공공연한 '백색테러' 위협이 자행되고,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흉기 든 남성이 뛰어 드는 일까지 최근 벌어 졌다.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테러 첩보가 입수되면서 경찰이 신변보호에 나서야 할 지경이다. '유신' 시절도 모자라 '자유당' 시절로 돌아간 게
‘선한 의지’와 ‘분노’가 오갈 때다. 책상 위 놓여 있던 책을 집어 중간의 페이지를 펼쳤다. 인상 깊었던 내용이어서 접어둔 터였다. “모든 것을 선한 의지로 받아들이자. 그래야 사물이 더 잘 보인다. 그래야 좋은 대화를 할 수 있다. 그래야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다. 그래야 세상이 바뀐다.” 안희정의 책 ‘함께, 혁명’의 한 부분이다. 잠언처럼 다가오는 느낌이 좋아 담아둔 문구인데 갑작스레 ‘선의 논란’이 불거지며 되새겨봤다. 원래 이 글은 2015년 3월 안희정이 쓴 ‘아침단상’이라는 짧은 글의 마지막 부분이다. 공교롭게도 얼마 전 안희정은 페이스북 등에 올렸던 짧은 글을 모아 ‘안희정의 길, 함께 걸어요’를 냈다. 스스로 ‘자성록(自省錄)’이라 명명하며 정치인의 성찰이라고 설명했다. 글을 보면 ‘선한 의지’ 관련 안희정의 의식 흐름이 이렇다. “스스로에게 말한다. 미움과 분노의 감정에 머무르지 말자. 편견과 선입견이 여기서 나온다. 미움과 분노에서 출발한 비판, 지적, 훈계,
#옛 소련(현 러시아)의 철권통치자 이오시프 스탈린이 정적 레온 트로츠키의 암살을 지시하며 내린 명령은 "머리를 짓뭉개 죽여라"였다. 암살자 라몬 메르카데르는 이 명령을 충실히 수행했다. 스페인 출신의 스탈린주의자 메르카데르는 1939년 망명 중인 트로츠키를 제거하기 위해 멕시코 코요아칸으로 향했다. 그러나 트로츠키가 은신 중인 집은 담이 높고 경비가 삼엄해 잠입이 불가능했다. 대신 메르카데르가 택한 전략은 '미남계'(?)였다. 그는 캐나다의 백만장자를 가장해 트로츠키 여비서의 여동생을 유혹했다. 수개월 간의 작업(?) 끝에 메르카데르는 한밤 중 트로츠키의 집에 진입하는 데 성공한다. 1940년 8월20일, 그는 등산용 도끼로 자고 있던 트로츠키의 머리를 내리쳤다. 트로츠키는 즉사하지 않았다. 경비원이 암살범에게 총을 쏘려 하자 트로츠키는 제지한다. "죽이지 말고 감옥에 보내세요." 트로츠키는 이튿날 숨을 거뒀고, 메르카데르는 멕시코에서 20년간 복역했다. 트로츠키가 미리 써둔 유
정권교체와 탈고립’ 호남민심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말이다. 여권으로부터 정권을 빼앗아와야 한다는 ‘정권교체’의 가치는 호남의 염원이다. 5·18 민주화운동 등 고립의 트라우마를 벗어야 한다는 소망도 있다. 호남이 ‘탈고립’의 가치를 실현해줄 정치인을 찾는 이유다. 이런 호남은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1번지’가 되면서 최대 격전지가 됐다. 대세론을 굳혀야 하는 문재인 전 대표 입장에서도, 뒤집기를 노리는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 입장에서도 ‘정권교체와 탈고립’이라는 두 입맛을 맞춰져야 한다. 후보들이 내놓은 첫 요리를 보자. 안 지시가 꺼낸 메뉴가 ‘대연정론’이다. ‘탈고립을 통해 정권교체를 이뤄내겠다’는 메시지에 가깝다. 다만 “새누리당과도 손 잡을 수 있다”는 논리로 이어지면 상대적으로 ‘정권교체’를 뒤로 미룬 것처럼 보인다. 한 호남출신 야권 관계자는 “호남인들은 더 ‘화끈한’ 것을 원하지 않겠나”라고 밝혔다. 상대적으로 ‘화끈한’ 메뉴는 문 전 대표가
탄핵 정국 하에 연이어 대선 주자들이 출마를 선언하면서 일자리 창출 공약을 내걸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가 당면한 가장 심각하고도 큰 문제가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대표적으로 지난달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을 대표로 하여 노동시간단축, 4차 산업혁명 관련 미래산업 일자리 발굴, 중소기업 임금 상승, 비정규직 처우 상승 등이 포함된 일자리 정책을 전면 발표했다. 정책의 구태의연한 반복이나 실현가능성 여부를 떠나서 상대적으로 포괄적인 일자리 정책을 내세웠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현재 우리가 처한 문제들을 인지하고 있음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일자리 정책의 가장 핵심이 되어야 할 부분은 과연 무엇인가. 현재까지 우리는 수많은 일자리 정책을 펼쳐왔다. 그리고 일자리 정책은 빈익빈 부익부를 양산하면 안 된다는 뼈저린 교훈을 안겨줬다. 이는 곧 이중적 노동시장의 해소 방향으로 일자리 정책이 진
"보수의 소모품."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드디어 정치 현실을 제대로 짚어낸 말을 했다. 대선 출마 포기에 이르러서야 얻은 깨달음이라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지난 1일 반기문 전 사무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반기문 대선캠프'에 줄을 대고 있는 정치권 인사들이 일제히 '멘붕'에 빠졌다. '이제는 정말 제대로 한번 해보자'며 의욕을 불태우고 있던 차였다. 문제점으로 지적돼온 대선 캠프 조직은 설 연휴 직후 김숙 전 유엔대사 대신 권영세 전 주중대사를 주축으로 재정비에 들어간 참이다. 오세훈 바른정당 최고위원이 '반반(半半) 행보' 대신 캠프 합류를 확정지었고 종합상황실장에 외교관 출신 전직 국회의원을 인선했다. 불출마 선언이 있기 불과 하루 전의 일이다. 캠프 관계자들뿐만이 아니다. 새누리당과 바른정당 등에서 반 전 총장만 바라보던 여권 인사들은 망연자실했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며 황당해하기도 하고 "이렇게 결기가 없느냐"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
낭랑 18세. 저고리고름 입에 물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연정도, 그 사랑의 결실로 결혼도 허락되는 나이. 계약도 할 수 있는 나이. 부모의 법률상 부양의무에서 제외되는 나이. 입대해 국방의 의무를 져야하는 나이. 그럼에도 모든 정치적 결정은 어른들에게 미루라는 터무니없는 명령에 굴복해야하는 현행법상 선거무능력자(選擧無能力者)가 대한민국 18세이다. 선거권 행사 연령을 현행 만 19세에서 만 18세로 하향하자는 논의는 꽤 오래전부터 있어온 논쟁이다. 20여 년 전 1987년 6월 항쟁 직후에도 18세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문제가 신문지상을 달구기도 했다. 가까이는 지난 19대 국회에서도 다양한 논박을 거쳤다. 18세 청년을 미성숙한 인격체로 입시체제 안에 가둬 버리려는 여당인 새누리당의 몽니로 정작 현실화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달라질까. 우선 눈에 띄는 변화로는 18세, 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전의 논의에서 정작 그 당사자인 청년들이 보이지 않았다. 흡사 어른들이 시혜적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