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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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조사가 되는지 짐작은 가지만 참 어이가 없습니다. 집권 후까지 내다본 사업구상은 이해할 만하지만 공정한 여론조사가 됐으면 합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의 지난 7일 페이스북 글이다. 나흘 앞서(3일) 쿠키뉴스와 조원씨앤아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자신의 5자 구도 지지율이 16.1%인데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지지율이 7%에 그쳤다고 했다. 언뜻 보면 홍 후보 지적도 일리 있다. 지지율이 2~3일만에 반토막이 났으니 억울할 법도 하다. 하지만 조사가 잘못됐다는 뚜렷한 근거는 없었다. 대신 여론조사기관이 1등 후보에 줄선 것 아니냐는 의혹으로 날을 세웠다. 대선기간 여론조사를 대하는 다른 후보들의 태도도 비슷하다. 겉으로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면서 자신에게 불리한 여론조사에는 "조사 시점이 잘못됐다" "구도 설정이 오류다"며 신뢰도에 문제를 삼는다. 핵심은 "특정 후보를 띄우기 위한 여론조사 아니냐"는 거다. 해당 여론조사가 특정인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몰아세우며 신뢰도 자
우리나라 대통령에 대한 두가지 속설이 있다. 첫째, 안경을 쓰면 대통령이 될 수 없다. 둘째, 서울대를 나오면 대통령이 될 수 없다. 사실일까? 적어도 지금까지 국민 직선제로 선출된 대통령 중엔 안경 쓴 사람이 없었다. 윤보선·최규하 전 대통령이 안경을 썼지만 각각 국회와 통일주체국민회의의 간접선거로 뽑혔다. 직선제 대통령 중에도 이명박,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등이 재임 중 안경을 쓰곤 했지만, 선거기간 중엔 안경 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서울대 출신은 어떨까?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48년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해 졸업까지 하긴 했다. 하지만 당시엔 대학에 갈 형편이 되는 사람이 턱없이 부족했다. 서울대라도 원서만 내면 들어갈 수 있던 때였다. 제도화된 대학 입시를 거쳐 서울대에 들어간 사람 중엔 아직 대통령이 나오지 않았다. 대한민국 대통령에 대한 안경과 서울대의 징크스는 어느 정도 사실인 셈이다. 안경 징크스의 경우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안경 낀 대통령이 당선
#전국에서 가장 '돈을 잘 버는' 세무서는 서울도, 울산·창원도 아닌 부산에 있다. 부산 남구 수영구 해운대구를 한꺼번에 관할하는 수영세무서. 2016년 국세통계에 따르면 수영세무서의 2015년 세수는 11조5000억원으로 전국 세무서 중 최고다. 한 해 전보다 무려 8조9000억원 늘어난 경이적인(?) 성장이다. 수영세무서는 금융위기 이후인 1999년 해운대세무서를 통폐합하면서 한차례 몸집을 불렸다. 결정적으로는 최근 문현금융타운(남구) 등 금융공공기관과 금융사들의 지방이전 이전 덕이 크다. 예탁결제원, 자산관리공사(캠코), 한국거래소 등이 옮겨오면서 증권거래세, 법인세 등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따라서 수영세무서의 영광을 부산경제 회생의 증거로 읽으면 명백한 착시다. 지역에 뿌리를 둔 기업들이 잘 돼서 생긴 일이 아니다. 예컨대 거래소 본사는 부산에 있지만 실질적인 금융 경제 활동이 벌어지는 경제수도는 서울이다. #부산의 진짜 경제활동은 어떤 상태일까. 상징적 지표가 둘 있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 외교 무대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한국 외교당국을 보면서 떠오른 속담이다. 최근 흐름만 보면 딱 들어맞는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이 가시화되는 시점, 한‧중 불협화음을 막을 구원투수로 기대한 게 미국이었다. 애초 우리 외교당국은 렉스 틸러슨 미 국무부 장관의 첫 한중일 순방에 기대감을 내비쳤다. 실제 틸러슨 장관도 한미 외교장관 공동기자회견에서 "중국의 사드 보복은 부적절하고 유감스럽다"며 이어질 방중 기간 중 사드 문제를 언급할 것임을 시사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정작 중국을 방문한 틸러슨 장관은 사드를 언급하지 않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물론 왕이 외교부장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공식이건 비공식이건 ‘사드’ 배치의 타당성을 설명하거나 사드 배치에 따른 보복에 유감을 표하거나 하는 것은 없었다. 우리 외교가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틸러슨 장관의 방한을 두고도 이미 우리
"이 기자도 나중에 정치 한번 해야지?" 정치부 기자를 하다보면 한번씩 이런 의례적인 덕담(?)을 듣는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대답한다. "아유 그럴 깜냥도 안되고, 전혀 그런 생각도 없어요." 진심이다. 일단 그럴 능력이 안된다. 또 상경계 출신이라 그런지 정치 권력에는 별 관심이 없다. 아무리 실속을 따져봐도 정치판에 뛰어들었을 때의 효용이 그에 따른 위험이나 비용에 못 미친다. 청와대 출입기자로 있으면서 이런 생각은 더 강해졌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뒤엔 더욱 그랬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청와대 사람들이 줄줄이 쇠고랑을 찼다.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신동철 전 정무비서관. 이밖에도 친하게 지내던 수많은 비서관, 행정관들이 잇따라 특별검사팀 사무실로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권력은 '손잡이 없는 양날의 칼'이라 잡는 순간 다친다는 흔해 빠진 레토릭이 이렇게 피부로 와닿을지 몰랐다. 구속된 사람들의 경우 본인의 잘못이 전혀 없진 않다. 그러나 대부분
"대통령으로서 저는 나라의 이익을 앞세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모든 시간을 직무에 쏟을 수 있는 대통령과 의회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변론을 위해 몇달씩 싸움을 계속하게 되면 대통령과 의회는 시간과 관심을 거의 모두 빼앗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대통령직을 내려놓으려 합니다." 1974년 8월8일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하야 연설이다. 당시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벼랑 끝에 몰려있었다. 그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이미 상원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고, 본회의 가결도 확실시되는 상황이었다. 닉슨이 하야를 선택했다고 해서 그가 자신의 죄를 인정한 건 아니었다. 하야 선언 직전 닉슨은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헨리 키신저를 붙들고 울부짖었다.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어. 내가 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는 거지?" 그로선 억울할 만도 했다. 닉슨은 워터게이트 빌딩의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을 도청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그의 측근인 고든 리디와 하워드 헌트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저마다 수많은 장면으로 기억할 것이다. 누군가는 수개월 광장을 메운 촛불 또는 태극기로, 누군가는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라는 헌법재판소의 또렷한 주문(主文)으로. 기자는 그 중 두 가지를 잊을 수 없다. 이정미 헌법재판관(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출근길 '헤어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팽목항 방명록. 탄핵심판 선고일인 10일 오전, 출근길 관용차에서 내린 이정미 재판관이 국민 시선을 사로잡았다. 정수리 뒤쪽 헤어롤 2개를 풀지 못한 모습 때문이다. 분홍빛 헤어롤은 여성들이 늘 이용하는 일상용품. 이 장면은 순식간에 갖가지 의미가 부여돼 급속히 퍼졌다. 그러다 탄핵 심판에 대한 고심과 긴장 때문이란 해석으로 수렴됐다. 차에서 말아뒀다가 내리면서 뺐어야 하는데 그걸 잊을 정도로 선고에 대해 중압감과 부담을 느끼지 않았느냔 거다. 파면 결정 후 진도 팽목항에선 어딘가 어색해보이는 글이 사진으로 확인됐다. 문재인 전 대표의 팽
# "자네도 기사쓰나?" 지난 1일 황대만(황교안 대통령 만들기) 첫 정모장소에서 만난 한 노신사가 물었다. 기자라는 신분을 밝히지 않은 터라 적잖이 놀랐다.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에 자네도 기사를 쓰냐는 말일세." 노신사가 다시 물은 다음에야 질문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정모에서 만난 회원들 가운데 일베의 게시글을 '기사'라 부르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일베를 자신들의 소통창구로 여기는 동시에 언론의 역할을 한다고 믿고 있었다. 언론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큰지를 느낄 수 있어 마음 한편이 무거워졌다. 참석자 중 한명은 "언론이 일방적이고 편향적인 기사로 여론을 호도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탄핵사태에 대해) 침묵하고 있을 때 일베에서 먼저 탄핵부당함에 대한 기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며 "일베의 순기능은 95%, 역기능은 5% 정도"라고 평했다. # "5월3일. 장충체육관이라도 빌려 2만여명의 황대만 회원을 한자리에..."(백도한 황대만 대표) '5월대선'
"대통령이 수사의 주요 대상으로 사실상 돼 있는 사건이다. 대통령의 영향력이 미치게 되면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되는 것이라 생각되고 가장 우려되는 대목이다" 지난해 11월16일 '최순실 특검법' 논의가 이뤄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이같은 우려를 표했다. 국회 속기록을 보면 이 법안은 발의 때부터 수사대상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문제점을 잉태한 상태였다. 그러나 여야 의원들이 초점을 맞춘 것은 '특검후보추천권'의 중립성 여부와 '특검팀 규모'였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승인을 거부한 ‘수사 기간’은 관심 밖에 있었다. '수사기간 연장 승인의 주체'에 대해선 논의조차 없었다. 국회의원 209명 명의로 발의된 이 법안은 그렇게 단 이틀만에 통과됐다. 현직 대통령을 수사할 수도 있는 근거법을 만들면서 꼼꼼히 챙기기는커녕 정치적 명분만 부각시키는 데 주력했을 뿐이다. 애초부터 논란의 씨앗이 배태돼 있었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여·야 모두가 최순실 특
'촛불'과 '태극기'가 두 개의 광장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완전히 갈랐다. 광화문 광장의 촛불과 노란 리본, 각양각색 깃발들이 잘 어울리듯, 시청 광장의 태극기와 군복, 그리고 성조기도 어느새 익숙해졌다. 촛불과 태극기가 경합을 벌인 2월 25일 하루 동안 최순실, 이재용, 장시호 외에도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까지 소환조사를 받았다. 헌법재판소는 27일을 최종변론기일로 지정했고 28일이면 특검 활동이 종료된다. 특검수사와 탄핵소추의결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긴장도 가파르게 고조되고 있다. '내란'이나 '시가전', '피로 물든 아스팔트' 등 날 선 선동과 협박의 언어가 광장은 물론 헌재 재판정에서까지 들린다. 헌법재판관과 특별검사를 상대로 공공연한 '백색테러' 위협이 자행되고,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흉기 든 남성이 뛰어 드는 일까지 최근 벌어 졌다.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테러 첩보가 입수되면서 경찰이 신변보호에 나서야 할 지경이다. '유신' 시절도 모자라 '자유당' 시절로 돌아간 게
‘선한 의지’와 ‘분노’가 오갈 때다. 책상 위 놓여 있던 책을 집어 중간의 페이지를 펼쳤다. 인상 깊었던 내용이어서 접어둔 터였다. “모든 것을 선한 의지로 받아들이자. 그래야 사물이 더 잘 보인다. 그래야 좋은 대화를 할 수 있다. 그래야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다. 그래야 세상이 바뀐다.” 안희정의 책 ‘함께, 혁명’의 한 부분이다. 잠언처럼 다가오는 느낌이 좋아 담아둔 문구인데 갑작스레 ‘선의 논란’이 불거지며 되새겨봤다. 원래 이 글은 2015년 3월 안희정이 쓴 ‘아침단상’이라는 짧은 글의 마지막 부분이다. 공교롭게도 얼마 전 안희정은 페이스북 등에 올렸던 짧은 글을 모아 ‘안희정의 길, 함께 걸어요’를 냈다. 스스로 ‘자성록(自省錄)’이라 명명하며 정치인의 성찰이라고 설명했다. 글을 보면 ‘선한 의지’ 관련 안희정의 의식 흐름이 이렇다. “스스로에게 말한다. 미움과 분노의 감정에 머무르지 말자. 편견과 선입견이 여기서 나온다. 미움과 분노에서 출발한 비판, 지적, 훈계,
#옛 소련(현 러시아)의 철권통치자 이오시프 스탈린이 정적 레온 트로츠키의 암살을 지시하며 내린 명령은 "머리를 짓뭉개 죽여라"였다. 암살자 라몬 메르카데르는 이 명령을 충실히 수행했다. 스페인 출신의 스탈린주의자 메르카데르는 1939년 망명 중인 트로츠키를 제거하기 위해 멕시코 코요아칸으로 향했다. 그러나 트로츠키가 은신 중인 집은 담이 높고 경비가 삼엄해 잠입이 불가능했다. 대신 메르카데르가 택한 전략은 '미남계'(?)였다. 그는 캐나다의 백만장자를 가장해 트로츠키 여비서의 여동생을 유혹했다. 수개월 간의 작업(?) 끝에 메르카데르는 한밤 중 트로츠키의 집에 진입하는 데 성공한다. 1940년 8월20일, 그는 등산용 도끼로 자고 있던 트로츠키의 머리를 내리쳤다. 트로츠키는 즉사하지 않았다. 경비원이 암살범에게 총을 쏘려 하자 트로츠키는 제지한다. "죽이지 말고 감옥에 보내세요." 트로츠키는 이튿날 숨을 거뒀고, 메르카데르는 멕시코에서 20년간 복역했다. 트로츠키가 미리 써둔 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