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약자배려' 정신 물려주셨죠"

"아버지는 '약자배려' 정신 물려주셨죠"

이경숙 기자
2007.09.03 10:39

[2007당당한부자]장애인 돕는 최호준 아트레온 회장ㆍ경기대 교수<상>

↑최호준 아트레온 회장
ⓒ이경숙 기자
↑최호준 아트레온 회장 ⓒ이경숙 기자

많은 사람들이 부(富)를 누리고 싶어한다. '부'란 글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집 안에 앉아 밭에서 나는 산물로 한 입 채우는 모습이 보인다.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서울 신촌, 그것도 교통 좋은 사거리 들머리에 자리 잡은 건물 1층과 지하1층을 시민을 위한 광장으로 내놓은 이가 있다. 올해만 해도 서울여성영화제, 세계공정무역의 날 축제가 그곳에서 열렸다.

자신의 별장으로 마련했던 북한강가 2000여평 땅엔 장애우의 휴양지 겸 주말농장 '꿈땅'을 열었다. 그곳에서 난 고추, 배추들이 장애우 가족들에게 간다. 그가 운영하는 '장아람'은 120명의 장애아동을 지원한다.

그의 재산이 여러 사람의 입을 채우고 또 마음을 채우니, 그와 같은 부자가 없겠다.최호준(61) 아트레온 회장은 부자다. 신촌엔 지상 14층, 지하 4층짜리 영화관 건물이 있고 북한강가엔 2000여평 땅이 있다. 그밖에 자산도 있으련만 그는 도통 입을 열려들지 않는다.

그는 심지어 '당당한 부자' 인터뷰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자신의 부가 알려질까 두려워서가 아니다. "모두 선친으로부터 물려 받은 것이고 내 힘으로 번 것이 아닌데 당당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그는 겸손하게 말했다.

'상속 받은 자의 노블리스오블리주를 알려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의 방을 찾아갔다. 신촌 아트레온 14층 한 구석에 자리 잡은 그의 방문을 열자, 차향과 묵향이 먼저 손님을 반겼다. 잘 닦였으나 오래된 나무 서가에 신구(新舊) 서적이 가득 찼다. 지식인의 방이다. 그의 본업은 경기대 행정학 교수다.

◇있는 집 자식으로 태어나 단칸방에서 신혼 시작="아버지는 상당히 이상주의자였어요. 인간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소셜리즘(사회주의)에 심취하셨거든요. 저는 아버지께 자주 대들곤 했습니다."

그의 선친은 서예가인 고(故) 우석 최규명 선생이다. 우석은 글자에서 이미지를 끌어내는 작업을 주로 했다. 아트레온 13층 우석기념관에 있는 우석의 작품에선 '용(龍)'자가 하늘로 승천하고 '홍(虹)'자가 백록담과 천지연을 잇는다. 크고 힘찬 붓질에 호연지기가 어렸다.

그러나 우석 선생의 자식 훈육은 깐깐하게 느껴질 만큼 엄했다. 아침 식사 전 아들을 불러 시작한 가르침은 점심 식사 때 잠시 쉬었다가 이내 이어져 밤 늦게나 끝났다.

개성 출신인 우석 선생은 돈에 더욱 엄격했다. 3대 독자, 최 교수한테도 결혼자금, 유학자금을 주지 않았다. 최 교수는 신혼생활을 서울 망원동의 부엌도 없는 한 칸짜리 방에서 시작했고, 도쿄대 대학원 법학부를 일본 문부성 장학금을 받아 마쳤다.

↑최호준 아트레온 회장이 선친인 서예가 
고(故) 최규명씨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그가 가리키고 있는 작품은 '인내천(人乃天)' 
석자로 표현한 자화상이다.ⓒ이경숙 기자
↑최호준 아트레온 회장이 선친인 서예가 고(故) 최규명씨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그가 가리키고 있는 작품은 '인내천(人乃天)' 석자로 표현한 자화상이다.ⓒ이경숙 기자

그가 젊어서 한 고생을 전하자면 한 시간이 모자란다. 일본 유학시절엔 이사비 3만엔을 아끼려고 여행가방에 이삿짐을 넣어 지하철로 1시간반거리를 6번에 거쳐 오갔다. 아내, 두 아이와 서울로 옮겨와선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싼' 미동아파트 7층에 전세로 살았다.

"한참 계단을 오르다 이제는 다 올라왔겠거니, 하면 5층이고 그랬어요. 그 다음엔 반포의 방 세칸짜리 아파트 중 방 두칸을 전세 얻어 살았죠. 아버지는 작은 누나가 살던 아파트를 팔아 반포에서 안과 개업을 할 때도 한 푼 보태주지 않으셨어요."

◇"밑바닥부터 산다는 초심이 내 인생의 자산"=그는 선친이 생활력을 강조했던 건 조부의 영향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조부인 최치훈 선생은 위당 정인보와 친구로 지낸 당대의 한학자였으나, 집안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생활력이 강하셨던 것 같습니다. 6.25 전에 양말공장을 하셨는데, 사실 사업수완이 좋다기 보다는 재운이 따랐죠. 종로에 건물 한 채를 사서 시작하셨는데 그게 극장(옛 신영극장) 등등 계속 늘어났어요."

최 교수는 선친이 세상을 떠나기 3년여 전, 1997년부터 조금씩 자산을 상속 받기 시작했다. 세무, 회계 등 자산관리에 필요한 사항도 그 과정에서 거의 독학하다시피 깨우쳤다.

자신은 '아버지와 갈등관계였다'고 묘사하지만 선친에 대한 속 깊은 사랑과 존경은 아트레온 곳곳에서 묻어난다. 이 건물 13층의 카페 '더 테라스' 앞에는 선친이 쓰던 동전지갑과 직접 새긴 도장들이 유리장 가득 진열되어 있다. 동전지갑은 위에 새겨진 '서울신탁은행 노량진점 개점기념'이란 글씨가 겨우 읽힐 정도로 낡았다.

"아버지는 택시는 탈 생각도 하지 않으셨어요. 늘 경로증을 가지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셨죠. 손주 만나러 미국에 가실 때도 3등칸(이코노미 클래스)을 타셨고요. 저는 그렇게 못할 것 같아요. 그래도(사이가 좋진 않았어도) 저희에게 정신적 기반, 물질적 기반을 만들어주신 것은 자랑스럽고 고맙습니다."

그는 선친으로부터 물질적 자산을 받기 전에 정신적 자산부터 받아 나눴다. 1974년 이대 앞 '다락방'이란 공간을 3000원에 빌려 결혼식을 올렸을 땐 축의금으로 모인 20만원을 전부 청계천 야학에 기부했다. 그의 신혼방 보증금은 50만원이었다.

"아버지는 늘 '약자에 대한 배려'를 말씀하셨어요. 전 아버지가 언행이 다르다고 생각하고 대들곤 했죠. 그래서 제 딴엔 (아버지께) 선언적으로 해온 것들이 지금 와서 돌아보니 '있는 집 자식이지만 바닥부터 산다'는 초심을 잃지 않게 해줬네요. 그게 인생 사는 데에 플러스가 된 것 같아요."(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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