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청계천을 걷는 즐거움

[광화문]청계천을 걷는 즐거움

이기형 뉴스룸1부장겸 시총데스크
2009.10.28 07:43

청계천에서 우리를 단연 즐겁게 하는 무리가 있다. 바로 한 무더기씩 모여 헤엄을 치는 피라미들이다. 가끔은 "헉" 하고 놀랄 만큼 큰 잉어를 보기도 한다. 서울 한복판에서 이같은 장면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신기할 따름이다. 그래서 그 녀석들의 움직임을 한참 동안 볼 때도 있다.

어린시절 시골 시냇물에서 보던 바로 그 모습이다. 우리는 큰 돌 몇개를 쌓아놓고, 그 바로 뒤에 피라미들을 잡기 위해 어항을 놓았다. 어항 속에 된장을 풀어놓으면 피라미들이 어항 가득 잡히곤 했다. 그 피라미들의 배를 따서 따끈따끈한 돌 위에 올려 말리기도 하고, 그 자리에서 매운탕을 끓여먹기도 했다.

문득 자연 그대로의 '시냇물이 흐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산에 조그만 물길이 생겨나고, 도랑이 만들어지고, 냇물이 되고, 강을 이룬다는 게 새삼 엄청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고 보면 서울에 '자연 그대로' 한강이 흐른다는 것이 너무 고맙다. 서해에서 바닷물을 펌프로 끌어올려 민물로 바꾼 뒤 북한강, 남한강 상류부터 흐르도록 하는 날이 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피라미들을 발견한 이후 청계천은 내게 다른 의미가 됐다. 청계천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이유도 '도심 속의 인공하천'이라는 하나의 건축물이 아니라 그 안에 자연을 끌어들였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갈대가 우거지고 들국화가 피고, 낙엽이 지는, 가을냄새가 물씬 풍기는 청계천을 걷는 것은 상당히 기분 좋은 일이다. 거기에다 사람들을 끌어들여 그 속에 또하나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물론 물길이 끊기면 물고기들은 사라질 것이다. '혹여 전기라도 끊겨 물이 멈추기라도 하면 어찌될까'라는 걱정이 들고, 그럴 때를 대비해 군데군데 조그만 웅덩이라도 만들어놓았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오지 않아도 될 곳에 물고기를 끌어들인 죄가 적지 않기에 이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했으면 하는 것이다.

도시라는 곳은 애시당초 냇물이 흐를 수 없는 공간이었다. 도시에는 상수도와 하수도만이 존재할 뿐이다. 하수구 역할을 하던 시궁창 같은 하천이 보기싫어 하나둘씩 복개했고, 그 뒤로 물길은 도심에서 사라졌다. 청계천도 그렇게 1958년부터 복개됐다가 거의 50년 만에 햇빛을 보았고, 피라미들을 끌어들인 것이다.

기왕에 여기까지 올라온 '물고기'들을 빌딩 속으로 끌어들일 수는 없을까.

물길을 내고 환경을 만들어주었더니 물고기가 찾아오고, 들꽃들이 피었다. 사무실도 그냥 책상, 컴퓨터 있고, 랜선이 깔려 있는 공간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재밌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녹색'은 단순히 공간에 대한 규정만은 아니다. 청계천에 물고기를 끌어올린 환경이 '물길'이라면 사람들이 뛰어놀 수 있는 직장을 만드는 데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재미'가 아닐까 싶다. 먹고 살기 바쁜 판에 무슨 한가한 소리냐는 지적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재미없는 직장은 바로 그때부터 죽어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저 하루하루 굴러갈 뿐이다. 그렇다면 재미는 어디에 기반한 것일까. 재미의 원천은 '의미'일 것이다. 우선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 더 나아가서는 구성원들과 관계를 통해 공유하는 의미다.

청계천은 그런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청계천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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