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신종플루보다 무서운 혈액부족 사태

[광화문]신종플루보다 무서운 혈액부족 사태

방형국 편집위원
2009.11.05 12:20

흔히 '피'(血)는 '뜨거운 동지애'를 지칭하는데 사용된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격언이나, '피를 나눈…' 따위의 붙임말은 신체에서 가장 뜨거운 것을 공유하고 있는 '동체'(同體)임을 강조할 때 사용되곤 한다.

임꺽정이 수하의 부하들과 형제의 연을 맺을 때 한 의식이 바로 종지에 각자의 피를 받아내 나누어 마시는 것이었으며, 옛날 부모형제가 심한 병을 앓고 있을 때 그 병을 낫게 하기 위해 한 일이 바로 자기 손가락을 자르거나, 깨물어 피를 내어 먹이는 것이었다.

'연'(緣)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지연', '학연'에 앞서 위치하는 것이 바로 '혈연'(血緣)인 것을 보면 '피를 나눴다'는 것은 곧 피를 나눈 대상과 나는 동체이고, 이는 죽을 때까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존재라는 의미를 갖는다.

'피'(血)는 '정신'(精神)을 의미하기도 한다. 손가락을 깨물거나 배어낸 뒤 흐르는 피를 받아 굳은 결심, 또는 결백, 강한 주장을 쓰는 '혈서'는 피를 곧 정신으로 인식하는데서 가능한 것이고, 이는 심장한 의미를 갖기도 한다.

사망 사고의 경우 어느 부위를 다쳐서라기보다는 사고로 인한 출혈이 사망원인이 되곤 한다. 그 말이 그 말 같지만, 부상보다는 피가 모자라 죽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갑작스런 죽음의 대부분도 알고 보면 피가 원활하게 흐르지 않는데서 비롯한다. 심장마비가 그렇고, 뇌졸중이 그렇다. 인체에서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부위가 있겠는가 만은 심장이나 뇌와 같은 부위에 피의 일시적인 공급 중단은 급작스런 죽음을 낳을 수 있다.

병원마다 피가 모자라 혈액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신종플루 감염을 우려, 헌혈을 하는 사람이 크게 줄어든 탓이다. 살릴 수도 있고, 고통을 덜어줄 수도 있는 환자를 피가 모자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다 하니 어쩌면 신종플루 사태보다 혈액부족 사태가 더 심각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문화체육관광부 등 정부와 공공기관들이 뒤늦게나마 릴레이 헌혈에 나서는가 하면, 정운찬 총리는 '세종시 논란'으로 바쁜 와중에도 공직자들의 헌혈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차제에 공직자들과 같이 마땅히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사람들, 즉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도 헌혈행렬에 동참할 것을 권한다.

연말연시를 앞두고 양로원 고아원 등 불우이웃에게 따뜻한 온정의 손길을 내미는 일이 많아질 텐데, 이때 불우이웃돕기를 하는 김에 더불어 헌혈행렬에 뛰어들어 어려운 환자들을 위해 뜨거운 피를 나누는 것도 의미 있는 일로 생각된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올해도 사회 지도층 인사들에게 '사랑의 열매'를 옷깃에 달아주는 행사를 할 것이다.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올해만이라도 '헌혈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헌혈증서를 갖고 있는 사회 지도층인사들에 한해 '사랑의 열매'를 달아주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

저명인사들의 양복 옷깃에서 반짝이는 '사랑의 열매'의 빨간색은 바로 빨간색의 '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연예인들도 팬들로 뜨거운 사랑을 받는 만큼 돌려줘야 한다. 요즘에는 연예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웬만한 사람들보다 크다 하니 이들의 헌혈은 청소년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마침 날씨도 춥고, 약속도 없고, 주말에도 특별히 할 일도 없으니 기자도 오늘 헌혈을 해야겠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기자가 헌혈을 마지막으로 한 것은 지난 1991년 예비군 훈련장에서였다.

18년 동안 주변의 어려운 환자들을 위해,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뜨거운 피를 나누는 사회, 그것은 분명 '뜨거운 동체(同體)들'이 함께하는 따뜻한 사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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