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열대 한국-날씨의 습격 ①] 대기업 절전에 사무실 찜통···업무효율↓ 절전효과도 의문

# S기업 반도체 공장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L씨는 오늘도 자신의 손으로 형광등과 에어컨을 껐다. 직접 안 끄면 담당 부서 직원이 와서 끄면서 눈치를 주기 때문이다. 전력위기 극복을 위한 정부의 전기절약 캠페인에 회사가 동참하면서다.
바깥 날씨는 연일 30도를 훌쩍 넘는 폭염. PC, 프린터 등 각종 사무기기가 내뿜는 열기에 사무실 온도도 30도를 오르내린다. L씨의 옆자리에 앉은 김대리의 와이셔츠는 항상 땀으로 흥건히 젖어있다. 업무 효율성이 뚝뚝 떨어지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
# P기업 서울사무소에 근무하는 사원 K씨는 "요즘은 엘리베이터를 탈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말했다. 절전 때문에 사무실이 워낙 덥다보니 상대적으로 시원한 엘리베이터가 천국으로 느껴진다는 얘기다. K씨는 "주요 사업장인 제철소에서 전력을 많이 쓰다보니 사무실에서라도 전기 사용을 줄이자는 취지는 이해한다"며 "그래도 가끔은 견딜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것 같다"고 했다.
◇대기업 사무실은 '가마솥'
한때 여름마다 '시베리아'처럼 시원해 냉방병을 피하려면 '긴팔옷'을 입고 근무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던 국내 굴지 대기업들의 사무실이 올해는 '가마솥'처럼 펄펄 끓고 있다. 전력위기를 맞아 절전을 당부하는 정부의 정책에 대기업들이 적극 동참하면서 에어컨 등 냉방기 사용을 줄인 데 따른 것이다.
에어컨은 적정온도 26도를 기준으로 돌아가지만, 현실은 다르다. 대기업 G사 직원 H씨는 "온도를 26도로 맞춘다고 하지만,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온도는 더 올라갈 수 밖에 없다"며 "습도라도 높은 날이면 체감 온도는 더 높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일부 기업에서는 '간편한 옷차림' 지침이 내려오긴 했다. 남자 사원들의 경우 면바지와 옷깃 달린 티셔츠까지 허용된다. 그러나 H씨에겐 먼 나라 얘기다. 그는 "외부 고객들을 많이 만나야 하는 업무 특성상 정장을 안 입을 수가 없다"며 "폭염에도 어쩔 수 없이 긴팔 와이셔츠에 슈트를 입고 다닌다"고 했다.
상당수 대기업은 저녁 6∼7시가 되면 아예 중앙에서 사무실 냉방을 차단한다. 열대야 탓에 저녁에도 여전히 더운데 그나마 약하게라도 있던 냉방까지 사라지면 야근자들이 남은 사무실은 그야말로 '지옥'으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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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 모니터에 내 시력은…"
P기업에서는 저녁 7시30분 이후 에어컨 뿐 아니라 전등까지 모두 꺼진다. 야근자는 한층에 모여서 하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개인용 컴퓨터와 서류 등을 옮겨야 하는 게 번거로워 대부분 원래 사무실에 남아 모니터 빛에 의지해 일을 한다.
특히 주말에는 하루 종일 전등과 에어컨이 꺼져있다. P사 K씨는 "직원들 대부분이 주말 근무만큼은 피하고 싶어하지만, 월요일 회의 준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출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반대로 S기업 사원 L씨의 사무실은 저녁에는 전등을 켤 수 있다. 문제는 저녁 5시 전까지 전등을 켜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 시간에 불이 켜있으면 담당 직원들이 와서 대신 끄고 간다. 비가 오거나 흐린 날에는 낮에도 어둠 속에 모니터 빛만으로 업무를 봐야 한다. L씨는 "에어컨 끄는 건 그렇다 쳐도 전등까지 못 켜게 하는 것은 심한 것 같다"며 "불 끄고 모니터 보다가 나빠지는 시력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하소연했다.
◇온도 1도 오르면 업무효율 2% 떨어져…
더운 사무실이 업무 효율을 떨어뜨린다는 것은 정설이다. 기존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사무실 온도가 28~30도 사이일 경우 근로자들에게는 두통과 졸림, 집중력 저하 현상 등이 나타난다.
일본도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전력난을 겪으면서 정부 차원에서 전등 끄기, 에어컨 사용 자제 등의 지침을 내렸다.
이에 대해 타나베 신이치 와세다대학 건축학과 교수가 정책 효과를 분석한 결과, 25도부터 1도가 오를 때마다 업무 효율성이 2%씩 떨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타나베 교수는 "사무실 온도가 28도를 넘어서면 직원들이 개인용 선풍기 등 다른 전자 제품의 사용을 늘려 결국 절전 효과가 있는지도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개인용 선풍기 등은 대부분 저가 제품으로 에너지 효율이 높지 않다.